제53화
챕터 3.
테스가 관문을 열고 나오자, 기사는 잔뜩 신이 난 기색이었다.
“역시 사람이 주제를 알아야지.”
“허 참…….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가는 줄 아는 놈이로구만.”
테스가 자신의 말을 듣는다고 여기는 게다.
그 꼴이 우스웠다.
테스는 헛웃음을 지으며 그를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뭐 하자고 장원에 찾아온 거지?”
“거지? 허, 꼴에 장원주라고 그런 말투를 쓰는 거 같은데. 내 거기까진 참지.”
“누가 누구를 참는 건지 모르겠는데.”
“자네, 거기까지 하지. 이곳 장원주 테스가 맞겠지? 뭐, 이런 작은 장원에 그만한 옷을 입을 자는 또 없긴 하니까.”
기사는 자신의 눈썰미라도 자랑하고 싶은 듯했다.
한데, 눈썰미가 있다면 이 주변을 덮고 있는 해자도 눈에 보여야 할 게 아닌가. 일개 장원이 가지기 힘든 어마어마한 시설을 말이다.
그건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었다.
‘미친놈이네.’
생각지도 못한 미친 기사의 출현이다.
테스는 상황을 파악할 필요를 느꼈다.
‘영지전 탓인가.’
주변 영지전이 심각하게 돌아간 지 벌써 몇 달.
시간이 갈수록 치열해지더니 올해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고 그레놀이 전해 왔다.
그러니 이자도 영지전과 관련하여 찾아올 수도 있는 거였다.
저 바로 위에 있는 테스론의 기사.
혹, 그게 아니라면 앙스와 휘슬에서 데프 백작령 뒤편에 있는 장원들을 어찌해 보려고 수작을 부리는 걸 수도 있었다.
안 그래도 저들이 데리고 있는 용병단의 전력만 하더라도 상당하지 않은가.
‘저 정도 전력이면, 일개 장원 정도는 쉽게 쓸어버리겠지.’
그러니 저들이 어디 병사인지 아는 것도 중요했다.
잘못 행동하다가 귀찮은 일이 벌어지는 건 테스 쪽에서도 사양이다.
해서 저자가 무슨 말을 할지 들어 보려 하는데.
“내가 테스가 맞다. 그래서?”
“허어. 그럼 내가 왜 왔는지 모르겠나? 일개 장원주라면 어쭙잖게 고개를 쳐들지 말고, 어서 고개를 숙여 내 명을 받…… 컥!”
명? 어쭙잖아? 고개를 숙여?
‘이 새끼, 이거 선을 넘네?’
테스의 몸이 이미 튀어 나가고 있었다.
* * *
장원주가 됐다고 해도 테스의 출신은 용병 마법사였다.
마법사보다도 용병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한 치라도 잘못 보이면 꼴이 우스워지는 게 용병의 세계.
그 안에서 십 년 넘게 뒹굴었던 그다.
상대가 자신을 우습게 볼 때면, 그는 언제고 그 얼굴을 묵사발을 내 줬다.
그게 마법이든 주먹질이든 간에.
전생의 의선이던 시절에도 감히 그에게 고개를 꼿꼿이 드는 자는 어떻게든 처리를 해 주었으니.
“캬아아악.”
전생이든 현생이든 간에. 이리 나대는 기사의 멱을 잡고 보는 건 그답다고 할 수 있겠지.
콰앙!
뛰어가 기사의 멱을 잡은 테스는 멱을 잡은 그대로 기사를 땅에 내팽개쳤다.
“고개는 너 같은 놈이 숙여야지.”
“커윽……. 컥.”
쿠우웅. 말 위에서 그대로 떨어져 내린 기사는 도무지 정신을 차리질 못했다.
반응을 하는 쪽은 되레 용병대였다.
“스X. 그러게 적당히 좀 하라니깐!”
“쳐! 어서!”
실전을 겪은, 제대로 된 용병들은 바로 반응했다.
칼을 빼 들었고 가까이 있던 것들은 그에게 바로 달려드는 자세를 취했다.
뒤편의 일부는 미리 장전된 석궁을 빼 들었고 테스를 향해서 겨눴다.
그 속도가 전광석화와 같았다.
아군 오인 사살에 대해선 전혀 염두에 두지도 않는 듯했다. 그들의 얼굴엔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너! 뒈지기 싫으면 어서 떨어져!”
“어서!”
가까이 포위망을 좁혀 왔다. 저들.
자신감이 넘쳤다.
하기야 아무리 기사라도 석궁 여러 개에 대응하는 건 힘든 일. 특히 가까이 검 여럿이 다가왔을 때는 더더욱 대응하기 힘들었다.
철판을 잘라 버리는 오러를 지닌 기사라지만, 그 철판들이 여럿 다가와서 덤벼들면 기사도 수가 없기는 매한가지.
몇 명의 목숨이야 앗아 갈 수 있겠다만, 대신에 그도 저승길로 인도된다.
특히나 이런 식으로 바로 반응하는 자들은 상대를 하기가 더 힘든 법이었으니!
저들의 자신감도 일면은 이해가 간다만.
“머저리들, 상대를 잘못 잡았어.”
테스에게 저들의 위협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비의 파동.”
후우우웅-!
그의 몸에서 마비의 힘을 지닌 파동이 뻗쳐 나갔다.
“억…….”
“마법사다!”
다가오던 용병들의 몸부터 굳었다. 강력한 마나 앞에서 저들이 감히 저항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외곽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마나의 파동이 있자마자 몇이 바로 반응했다.
“쏴!”
“추가금 생각하라고! 머저리들아!”
장전된 석궁의 화살을 눌러 바로 테스에게 날렸다.
쒜에엑-! 쒝!
여러 개의 화살들이 테스를 향해 날아들었다.
테스는 날아드는 화살을 상대로도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마법 주문을 하나 더 읊었다.
“마나 팔 생성. 다중.”
그의 몸에서 마나로 된 팔들이 돋아났다.
3클래스에 이른 지금, 그 수만 하더라도 10이 넘었다. 돋아난 마나 팔들은 테스의 의지를 받들었다.
흡사 그가 펼쳐 내는 금나술 같은 고위의 수법들이 돋아난 마나 팔들에 의해서 구현됐다.
츠츠츠츠츠-!
날아드는 화살 전부가 그가 만들어 낸 마나 팔을 피하지 못했다. 마나 팔에 의해 잡힌 화살들이 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마나 팔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길게 뻗어 나갔다.
볼트를 날린 석궁에게로 다가오더니.
콰즉-!
어마어마한 악력을 선보이며, 철로 만들어진 석궁의 몸체를 그대로 우그러트렸다.
우그러진 석궁이 아래로 떨어지며 조각조각 부서졌다.
“이 미친…….”
“허…….”
수차례 실전을 거친 용병들로서도 처음 보는 광경!
여러 차례 용병 마법사와 협력을 했다지만, 저 정도의 수준은 결코 만나 보지 못했던 그들이었다.
‘일이 잘못됐다.’
‘망했어!’
상황이 그들이 원하는 쪽과 정반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강자를 건드린 상황. 이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끝까지 분투를 벌이고 싶은 용병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순간 같은 선택을 했다.
“도, 도망쳐!”
“어서 몸을 빼!”
도주였다.
날아가는 신용도가 문제가 되겠지만 어쩌겠는가.
이 주변 영지에서 쌓은 기반이 아까워도 목숨이 먼저였다.
목숨만 붙어 있다면, 어딜 가서라도 다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터.
그러기에 그들 모두가 순간적으로 도주를 택하였다.
“우린 두고 가냐!”
“젠장…….”
마비의 파동을 맞은 앞의 동료들은 그 꼴을 보고 침음성을 삼켰다.
원망은 하지 않았다.
그들도 같은 상황이었다면, 같은 선택을 했을 테니까.
하지만, 저들의 도망을 그대로 두고 볼 테스가 아니었다.
그는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머저리들이 어딜 가려고. 권역 생성.”
권역을 만들어 내어 대기의 마나와 자신을 동기화했다.
순식간에 동기화가 되자마자 그가 선택한 건 하나의 거대한 막.
[차단]
거대한 차단막이 돔 형태로 만들어진다.
그 안에서 당황하는 용병들 사이로 테스는 주문을 하나 더 읊었다.
마나 하인 생성. 다중.
스르르륵-!
마나로 만들어진 하인들이 땅 아래서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의 형상을 갖췄으나 각기 팔이 열 개씩 있는 괴이한 존재들이 소환됐다.
그들은 팔을 휘둘러 움직이는 용병들을 잡아채기 시작했다.
투우웅- 퉁-!
마나의 기이한 울림이 있을 때마다 도망치던 용병들의 뒷덜미가 잡혔다.
“켁…….”
“빠, 빠져 나가야…….”
마나 하인들은 단순히 잡아내는 걸로 만족하지 않았다.
용병들을 잡자마자 마나 팔을 길게 촉수처럼 늘였다.
길어진 팔은 마치 뱀처럼 용병들의 몸을 휘감았다.
용병들의 몸이 옴짝달싹할 수 없게 묶였다.
고작해야 일 분도 되지 않아, 주변에서 강자로 소문난 용병대 하나가 완벽히 제압당하였다.
“으으…….”
“살려 줘! 제발!”
그가 만들어 낸 차단막 안에서 모두가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감히 입을 놀릴 수도 없었다. 딸려 나온 촉수들은 용병들의 입까지 막아 버렸다.
“꺼윽…….”
“끕……. 끄읍…….”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게 더 공포를 느끼게 했다
그중에서 가장 큰 공포심을 느끼는 자는 튀어나오는 대로 입을 놀리던 기사였다.
딱. 따아악. 딱.
저도 모르게 떨며 이를 부딪치는 그의 눈에는 오로지 공포만 가득해 보였다.
사방이 난리 통인 가운데 촉수들은 오로지 눈앞의 기사 하나만 제압하지 않았다.
테스가 그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공포에 질린 기사는 감히 입을 다시 놀리지 못하였다.
감히 움직일 수도 없었다. 입을 놀리면 당장 잡아먹힐 듯해서 제대로 생각을 잇기도 어려웠다.
“으으으……. 으…….”
“뭐라 더 말을 해 보지 그러냐?”
질린 표정을 하는 그에게 테스는 얼굴을 가져다 댔다.
그의 얼굴이 훅 하고 다가오자, 생각지도 못한 냄새가 퍼졌다.
“……이런. 지렸냐?”
“으으으, 으으…….”
그가 놀라 지려 버린 탓이었다. 테스는 그런 그를 보고 혀를 찼다.
“죽기 전에 마지막 유언이라도 남기라고 한 건데, 쯧.”
“사, 살려 주십…….”
“네 입을 탓해라.”
기사의 기행으로 잔뜩 열이 올라 있는 테스였다.
기사 놈이 휘들의 녀석이든 테스론의 녀석이든 간에 테스는 끝장을 볼 참이었다.
그 뒤가 다소 귀찮아지겠지만, 그 뒤가 어떻게 되든 놈의 멱을 우선 따고 보려 했다.
나름의 계산도 있었다.
‘일이 크게 벌어지면, 데프 백작이 알아서 움직이겠지.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되레 좋아할지도 모를 일이고.’
장원을 소유함으로써 그는 어쨌거나 데프 백작의 아래에 있는 자이지 않은가.
아래에 있는 자가 사고를 치게 되면, 그걸 책임져야 하는 건 데프 백작의 몫이다.
물론 이리 일을 벌였으니 나중에라도 좋게 기름칠을 하거나 적당히 말을 들어줘야 하겠다만.
‘그쯤이야 나쁘지 않아.’
저 기사 녀석의 멱을 따는 값으론 되레 싸게 보였다.
고작해야 작은 장원. 그 장원의 장원주의 기휘라고 할지라도 그걸 침범한 자를 그대로 살려 둘 필요는 없는 법이었으니까.
‘우습게 보이면 한없이 우스워지는 게 이 세계의 논리거든.’
어지간한 일은 다 각오할 생각으로, 테스가 높이 든 검을 내려칠 찰나.
이대로 죽고 싶지만은 않은지 기사가 머리를 굴려 외쳤다.
“나, 나는……. 데프 백작님의 명을 받고 온 겁니다!”
“뭐?”
이어지는 말에 테스도 아래로 내리치려던 검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멱살을 잡고 물었다.
“다시 말해 봐라. 누가 보냈다고?”
“데, 데프 백작님의 명으로……. 으으……. 사, 살려만 주십쇼!”
“……젠장.”
하필 데프 백작이 보낸 기사라니.
이건 또 예상치 못한 움직임이었다.
‘영지전 상황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