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의선, 황제되신다-51화 (51/191)

제51화

챕터 1.

처음 소환 시 정령이 보여준 경계심은 사라졌다.

정령은 테스의 어깨 위에 안착하여 꼭 붙어 있었다.

연단로의 온도를 올리고 약을 만들고 있는 테스. 그로서는 그런 정령의 존재가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쯧…….’

약을 만드는 데 필요한 건 집중.

그러한 집중이 한창 필요한 지금, 정령의 기운이 신경 쓰이는 탓이었다.

그때 호기심 어린 정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뭐지? 내가 가진 기운을 증폭시키는 듯한데…….

“내 방식대로 이야기하자면, 수기라고 하는 걸 증폭시켜서 만든 약이다. 사람의 기운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되지.”

테스는 즉답을 해 줬다.

-그거 흥미로운데.

“그나저나 언제까지 달라붙어 있을 참이냐?”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

“어이쿠야……. 이거, 내 스스로 스토커 하나를 붙인 셈인데.”

테스와 물의 정령의 계약.

성장을 도모하는 계약은 단순히 수기를 빨아들이는 걸로 만족하지 않았다.

일회성 계약으로는 잠깐의 성장만 도모할 뿐이었으니까.

대신에 그녀는 테스에게 다른 제안을 해 왔다.

제 성장을 위해 테스를 살펴보겠다고 제안했다.

살피는 거만으로 계약 조건을 충족하다니. 테스는 옳다구나, 하고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게 어리석은 선택일 줄이야.’

당장 그로선 나쁘지 않은 듯 느껴진 제안이었다.

그의 연단을 본다고 해서 정령이 그걸 보고 약을 만들 건 아니지 않은가.

보여 줘도 별문제가 없었다.

단순히 보여 줌으로써 계약 기간 동안 저 강력한 물의 정령을 다룰 수만 있다면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다.

한데 오산이었다.

‘인간과 정령의 기준이 다르단 건 알고 있었다만 이 정도일 줄은…….’

계약을 맺은 정령은 테스에게서 도무지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의 어깨가 마치 제자리인 양 찰싹 달라붙어서 그에게 많은 걸 물어봤다.

그때마다 테스는 차분히 답을 해 줘야 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물의 기운을 늘리는 건 어디서 배운 거지?

“내가 그거까지 가르쳐 줄 의무는 없지 않나? 계약 조건은 단순히 보여 주기만 하는 것뿐이었다고.”

-흠……. 그도 그래. 결국 내가 알아봐야 하는 건가?

“할 수만 있다면.”

그래도 쓸모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근데 그 물의 기운. 내가 좀 만져 봐도 되나?

“원한다면.”

물의 정령. 그녀는 물이란 속성이 가진 본질이자 화신.

그녀가 물을 다루는 방식은 물의 속성 그 자체를 변환시켰다.

스스스스-!

그녀의 기운이 연단로를 타고 흐르자, 그 안에 담겨 있던 수기들이 춤을 추어 댔다.

격렬한 움직임!

움직임은 이내 하나의 리듬을 만들어 냈고 옆에서 지켜보던 테스도 놀랄 만한 결과를 가져왔다.

‘언제 봐도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연단로 안에 있는 수기가 몇 배로 증폭됐고. 치유의 재생 속성이 전보다 크게 가미돼 있었다.

이대로 연단로에 담긴 약이 완성되기만 하면 된다. 이전보다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겠지.

‘하급 영약이 중급 영약이 되는 셈인가.’

가만 지켜보던 테스로서도 놀랄 효과였다.

“어떻게 한 거냐?”

-후후. 그 또한 내가 가르쳐 줄 필요는 없지 않느냐? 계약에 안 들어가 있으니.

“젠장. 맞는 얘기야.”

-그래도 몇 번이고 보여 주마. 네가 증폭시킨 물의 기운을 만지는 것도 성장에 꽤 도움이 되고 있으니까.

“질릴 때까지 시켜 주지.”

-얼마든지.

기묘한 동거의 시작이었다.

* * *

이 기묘한 동거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자는 하나 더 있었다.

테스를 제외하고 장원민들 중 유일하게 에나는 테스 옆에 붙어 있는 물의 정령을 볼 수 있었다.

친화력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내공을 익혀서일 거야.’

내공을 익히고 기감이 강화된 덕에 볼 수 있는 거였다.

오러가 강한 기사가 정령을 파악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

에나의 경우는 기사보다 더 강화된 기감 덕에 더 잘 보일 뿐이었다.

정령을 볼 수 있는 그녀는 옆에 꼭 붙어 있는 물의 정령을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때문에 몇 번이고 시비를 붙여 보지만.

“저거, 또 붙어 있네요? 쯧……. 어디 갈 데가 그렇게 없는 건가?”

-하루 종일 네 사람이 어디 있는지 이리저리 움직이며 찾는 너보다는 낫지 않느냐?

“하, 하루 종일 찾다뇨! 제가 누굴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후음……. 이 영역에 있는 수기들이 알려 주던데?

“……착각이에요. 착각!”

패배하는 쪽은 언제나 에나였다.

장원에서도 야무지기로 소문이 난 그녀인데, 유독 물의 정령 앞에서는 맥을 못 추었다.

‘연륜의 차이려나. 정령이 저래 봬도 나이가 상당할 테니까.’

물의 정령을 이겨 내지 못한 에나. 그녀는 정령을 무시하기로 마음먹은 듯, 테스에게 물어 왔다.

“테스 님, 대체 저거 언제 떨어지는 거예요?”

“말했듯이,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다.”

“그 계약, 어서 끝났으면 좋겠네요.”

“뭐, 나도 옆에 이런 게 붙어 있으니 신경이 안 쓰이는 바는 아니다만. 갈수록 효용이 대단하긴 하잖나?”

“……큽. 그건 인정 안 할 수밖에 없네요.”

기묘한 동거를 불편해하는 자는 많았지만 그녀가 가져다주는 효용은 분명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물의 정령은 단지 바라만 보고 있지 않았다.

장원의 물 문제를 해결하고자 나선 테스를 따라 움직이며 온갖 도움을 주었다.

-지하에 있는 물을 끌어내 달라고?

“맞아. 임시로라도 그리 끌어올려야 장원이 돌아가니까.”

-그 정도야 쉽지.

처음의 계약 조건대로 그녀는 주변에 남은 물을 끌어다 테스의 장원에 공급하여 주었다.

정령이 끌어당겼다는 것만으로도 물은 특별해졌다.

‘수기가 강화되잖아?’

정령의 손길을 탄 물이어서인지 전보다 강력한 수기를 맺고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저 멀리 있는 강을 여기까지 연결한다고?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

“무슨 소리야?”

-너희가 우물이라고 말하며 쓰던 지하수. 그보다 아래 더 거대한 지하수가 있는데?

“뭣?”

물에 있어서만큼은 그녀의 탐색 능력이 테스보다 뛰어났다.

‘진법을 설치해서 살피고 있었는데. 지하까지 살피는 데는 진법도 미치지 못하는 건가.’

그녀는 테스도 알아채지 못한 물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 말 정말이지?”

-정령은 거짓말은 안 하는 건 상식이다만. 성장에 도움이 안 되거든.

선악을 떠나, 성장에 도움이 안 돼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건가. 기묘한 방식이지만 어쨌건 좋다. 중요한 건 그녀가 이야기한 게 사실이란 거니까.

“그럼 멀리 갈 필요도 없어지겠네.”

새로운 수원지를 찾아냈다.

‘이렇게 되면 일이 아주 편해지지.’

안 그래도 장원 영역을 넘어 강물을 끌어오는 건 고민되는 일이었다.

두루뭉술한 서류를 이용하여 사방 4km까지 영역을 확장한 상황이지 않은가. 여기서 더 나아가 강물을 끌어오면 시비를 걸어올 자들이 많아질 터였다.

한데, 자체적으로 수원지를 확보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디까지 파면 되는 거냐?”

-네가 해자라고 말한 것보다 족히 사십 배 정도. 내가 도와준다면 좀 더 빨라지겠지. 끌어올 수 있으니까.

“그럼 도움을 좀 바라도록 하지.”

-공짜로 말이냐? 계약 기간을 한 달 더 늘려 주어라.

“……알았다.”

약간의 불편함이 생겨났지만, 그쯤이야 새로운 수원지를 확보하는 일에 비하면 불편거리도 되지 못하였다.

-이쪽이 아래서부터 끌어올려 주지.

“나는 위에서부터 파다 보면 만나겠지. 대지 조종. 강화.”

테스는 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 * *

일은 수월했다.

테스가 일직선으로 땅을 파고 들어가기 시작하고. 물의 정령이 지하수를 위로 끌어올리니 속도는 몇 배나 빨라졌다.

베일리프인 게일이 슬슬 다 말라 가는 우물로 인해 근심이 커질 무렵.

“오오오오! 우물이 차오른다! 차올라!”

“뭔 소리야!?”

“이거 보라고! 말랐던 우물이 다시 차오르고 있단 말이다! 처음 우물을 팔 때보다도 더!”

“오오!”

메말라 가던 우물이 순식간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농지를 제외하고 메말라 가던 장원의 땅들이 습기를 머금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정말 물이 다시 돌아오고 있는 건가?!”

“장원주님이 해내신 게지!”

“근데, 이러다 우리 장원에 너무 물이 많아지는 거 아냐? 그럼 그것대로 문제인데?”

“예끼, 이 사람아! 해자로 가 보라고! 거기도 난리가 났어!”

테스는 단순히 물을 끌어올림으로써 만족하지 않았다. 조절하고자 했다.

조절을 위해 그는 요령을 부렸다.

물길을 조율했다. 그가 파 놓은 해자로 물이 가도록 만들었다.

“콸콸 차오르는구만.”

“와……. 이리되면 건너오는 게 더 힘들어지겠는데?”

본래부터 메말라 있던 해자.

물길이 흐르는 지금, 해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곳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물이 차올랐다.

해자 높이의 90퍼센트 정도에 거의 다다른 순간, 테스와 정령은 다시 요령을 부렸다. 해자에 차오르던 물은 딱 적당할 때에 멈췄다.

“머, 멈췄다? 넘치는가 싶었는데!”

“미친! 이게 다 뭔 일이야.”

“장원주님이 또 기적을 만드신 게지! 기적을!”

장원에 있는 장원민들, 노예병. 그들 모두가 보기에 이건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메말랐던 물이 차올랐고 차오른 물이 그들을 보호하는 데 쓰였다.

어디 그뿐이랴.

후에 새로 차오른 물의 효능이 밝혀졌다.

그들이 새로 얻은 물은 특별했다. 아니,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네 덕에 수기를 잔뜩 머금었으니……. 진법이 아니더라도 수확량이 상당해지겠네.”

-우리 정령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능력이다. 이 정도 규모는 네 힘을 끌어 쓴 덕도 있다만? 그 선천진기라는 거. 또 한 번 주입해 주면 안 되겠느냐.

“헹. 쉽게는 안 되는 일이지. 몇 번 경험한 걸로 만족하라고.”

-아쉽구나. 아쉬워.

이제 이들이 가지고 있는 물은 그 자체로 약수(藥水)라고 봐도 무방했다.

선천진기, 테스, 물의 정령.

이 세 가지가 한데 어우러져 이룬 특성이었다.

장복하여 마시는 것만으로 신체를 건강하게 하고, 약을 달이면 약효를 상승시키는 게 약수의 기본 효능.

작물을 키우면 물을 머금은 작물도 약효를 갖게 된다.

풍년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가 된다.

전생에도 겨우 얻었던 약수지(藥水池).

이걸 이런 방식으로 얻을 줄은 테스도 미처 생각지 못했다.

‘이렇게 약수를 얻을 줄이야. 이러면 이 장원은 완전히 내 본거지로 삼을 수밖에 없다는 건가. 나중에라도 옮기는 건 무리겠어.’

갑작스런 수원지 문제로 움직인 그.

그 결과가 테스의 상상 이상으로 뛰어났다.

* * *

얼마 가지 않아 약수지의 효과는 금방 장원의 사람들에게도 알려졌다.

테스가 굳이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수원지를 확보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성큼 다가온 가을.

수확의 시기가 다가왔다.

열매가 여물어 갈수록, 장원민들의 기대는 커져갔다.

“이대로면 대풍년이로구먼.”

“미쳤어! 대체 이게 몇 배나 되는 수확량이냐!”

막상 수확할 때가 되자, 전보다 몇 배는 더 되는 수확량을 자랑했다.

“어서 수확하자!”

“아무렴!”

장원민들은 약수의 힘을 받고, 부지런히 수확을 하기 시작했다.

“다, 다섯 배다!”

“여긴 여섯 배야!”

고작 두세 배 정도의 상승이 아니었다.

최소 다섯 배, 심할 경우는 일곱 배의 수확량 상승이 있었다.

같은 토지에서 농사를 지었는데도 일곱 배라니!

“자, 장원주님 덕이야!”

“허……. 기적이다. 정말로 기적…….”

이쯤 되면 무지렁이인 장원민이라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결과를 가져다준 것이 바로 테스란 사실을!

기적을 가져다주는 장원주라…….

“이리되면 가만있을 수가 없지.”

“게일이 아이디어를 냈지 않나. 어서 준비해 보자고!”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장원민들은 스스로 나서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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