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의선, 황제되신다-50화 (50/191)

제50화

챕터 25.

‘한계치가 온 거네.’

장원에 생긴 새로운 문제. 다른 게 아니었다.

바로 수원의 한계였다.

“장원 인구가 늘기 시작하고 수위가 조금 낮아지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당장 문제는 아니었습죠.”

“농번기에 들어서고도 꽤 오래 버텼으니까.”

“네. 매일같이 들여다봐도 더 내려가지는 않긴 했습니다.”

영지의 유일한 수원은 우물 하나.

이 우물 하나만으로 백이 되지 않는 장원민이 사는 건 가능했다. 수십 년을 버티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정도.

300명이 되었을 때도 우물은 버텨 주었다.

문제는 그게 한계였다는 거다.

‘겨우 버티던 걸 이번에 넘겨 버린 건가.’

30명의 새로운 신병. 그에 따른 20명의 딸린 가족들을 이번에 데려왔다.

그러곤 며칠이 되지 않아 일어난 게 지금의 우물물이 마르는 현상이었다.

“이대로는 고작해야 일, 이 주를 버티는 게 다일 걸로 보입니다.”

“근거는?”

“전에 한참 비가 내리지 않았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도 이 정도까지 내려가곤 한 달을 좀 넘게 버텼습죠. 지금은 그보다 수가 많으니…….”

“이해했어.”

고작해야 일, 이 주를 버티는 게 고작.

베일리프를 맡고 있는 게일.

그가 우물물이 마르기 시작한 걸 보자마자 바로 찾아왔지만, 한계는 명확해 보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관리를 잘했다면.”

“자네가 죄송할 게 뭔가. 이건 내 잘못이야.”

“…….”

그는 제 할 일을 확실히 해 줬다.

지금부터 나서야 할 건 게일이 아니라 테스였다.

“후음…….”

“어쩝니까, 장원주님?”

“우선 진정부터 해. 금방 방법을 찾을 테니까.”

게일을 달래는 테스.

그는 우물을 벗어나 멀리 자신이 설치한 진법 중 하나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 * *

날랜 걸음을 옮기면서도 테스는 생각했다.

‘이미 예상은 했던 바인데, 생각보다 빨라.’

전혀 예상을 못 했던 게일과 달리 테스는 이미 우물물의 마름을 예상했다.

장원에 설치한 진법.

그를 휘돌고 있는 마나의 속삭임이 가져다주는 정보가 있었으니까. 분명 물은 마르고 있었다.

‘문제는 그 속도.’

예상보다 더 빨랐다.

영지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자원. 철이나 소금 같은 걸 말하기 이전에 물이 없다면 생명은 살 수가 없다.

그러한 물의 부족이다.

‘최악인데.’

미리 예상은 했다지만, 속도가 예측보다 더 빠른 지금.

그도 심각해져 있었다.

이 자그마한 장원에 수원지가 고작 우물 하나.

다른 영지의 우물은 오백 명의 인구도 버텨 내거늘, 여기는 너무도 수원이 빈약했다.

하기야 애당초 그게 당연했다.

수원이 풍부한 곳이었다면 장원 수준이 아니라 진작에 도시로 성장을 했을 거다.

“수행진을 이용해서 수기를 최대한 끌어당겼건만, 그로도 한계라. 애당초 무리를 했을지도.”

이 마름을 피하고자 진법을 설치하고.

여러 작업을 해 두기는 했지만, 결국 생각보다 빨리 새로운 방안을 꺼내야 할 듯싶었다.

‘뭐, 그래도 방법이 없진 않았으니까. 이왕이면 4클래스에 이르고 했으면 했는데……. 어쩔 수 없지. 우선 되는 대로 움직이는 수밖에.’

결심을 끝마친 테스는 주변 수기를 끌어당기는 수행진(水行陳) 앞에 섰다.

* * *

결국 부족한 물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둘이었다.

하나는 저 멀리 있는 수원지.

레피라고 불리는 강의 물길을 끌어당겨 오는 거다.

강의 물길을 끌어오는 건 장원에 허락된 영역을 훨씬 넘어서는 지역을 건드리는 거나 마찬가지인 행위.

때에 따라서 전쟁까지 일어날 일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영지전으로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니 그나마 다행인가.’

전 같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이지만 실행할 수밖에 없었다.

선임 병사들을 실전이 아닌 물길 만들기에 동원해야 할 판이다. 그도 나서서 물길을 길게 만들어 내야 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이조차도 시간이 좀 걸린다는 거다.

‘물길을 끌어오는 데 필요한 시간을 맞추려면 적어도 한 달 반.’

한 달 반이면 남은 물은 전부 마른다.

그때가 되면?

영지민들은 물론이고 수원을 필요로 하는 곡물들도 전부 죽어 버리겠지.

즉, 망하는 거다.

물길을 끌어오는 동안 버텨야 한다. 고로 당장 필요한 물도 만들어 내야 했다.

여기서 두 번째 방법을 써야 했다.

‘후음, 그간 모은 수기가 모자라 보이지는 않는데…….’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테스는 거대한 수기를 모아 놓은 수행진에 찾아온 거였다.

고오오-!

거대한 수기가 모여 있는 수행진의 수기.

이 안에 담긴 거대한 기운들이 제 역할을 해 줘야만 했다.

미리 마련해 놓았던 이 방안이 실패한다면, 그의 영지의 물은 전부 마른다.

그는 처절하리만큼 철저하게 계산에 들어갔다.

“이 정도 수기라면 아슬아슬하게 성공하려나? 4클래스가 됐다면 성공률이 더 높을 텐데. 이건 아쉽네.”

계산은 금세 끝이 났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수원지가 마를 때를 대비해서 그가 마련한, 두 번째 수를 쓰기에 필요한 최소의 수기가 모여 있었다.

진법을 익힌 진법가이자 동시에 3클래스에 이른 그만이 할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을 쓸 수 있다는 의미.

“해 봐야지.”

그는 품에 있던 공간 주머니에서 온갖 마법 재료들을 꺼냈다.

꺼내 든 마법 재료를 가지고 바닥을 향해 정성스레 만들어 내는 건 바로 마법진!

메말라 가는 수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가 사용할 방법 두 번째. 그건 하나의 마법이며, 동시에 이종(異種)의 존재를 불러들이기 위한 소환진이었다.

* * *

스으윽-!

소환진을 그려 내는 건 쉬웠다.

‘어려운 게 더 이상하지.’

소환진이 쉬운 건 이 세계의 특성 덕이었다.

이 세계는 특이하게 다른 차원이 많이 겹쳐 있었다. 신계와 마계는 물론이고, 심지어 정령계도 겹쳐 있었다.

겹친 곳만 무려 셋이었다.

여기에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관측된 차원들을 살펴보면 음차원부터 시작하여 아스트랄까지 있었다.

온갖 곳들이 가까이 붙어 있었다.

차원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니 이에 관련한 소환진을 그리는 건 상대적으로 쉬울 수밖에 없었다.

문제라면 그 자격.

자격이 되지 않은 자가 소환을 진행하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심각할 경우, 소환물이 목숨을 앗아 가기도 할 정도.

특히 그가 목적으로 하는 정령계는 마법사와는 상극이었다.

“……소환 계약에 실패하면 제압이라도 해야 하나. 더 준비할 시간이 없는 게 아쉬울 정도야.”

어려워도 어쩌겠는가.

마법진의 점검이 끝난 그는 곧바로 마나를 일으켰다.

선천진기가 주입된 거대한 마나가 휘돌기 시작하고, 그는 곧바로 그의 마나를 소환진에 불어넣었다.

* * *

소환진이 입을 쩌억 벌렸다.

커튼 자락이 열리듯 땅이 열리고, 타차원의 속살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정령계의 기운들이 주변을 물들이고,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가 있었다.

투웅-!

기이한 울림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존재.

정령. 수기로 이뤄진 정령은 묘령의 여인처럼 보였다. 사내라면 누구라도 홀릴 법한 외모를 지닌 정령은 푸른 수기로 몸을 이루고 있었다.

아름다운 외모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시작부터 그리 나오는 건 반칙 아니냐?”

-…….

문제는 몸을 이루고 있는 그 위에 걸쳐져 있는 장비.

한 손에 검과 다른 한 손에 방패를 들고 서 있는 그녀는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태세를 갖춘 그녀가 겨누고 있는 건 테스였다.

느껴지는 적의는 강하고 깊었다.

‘쯧, 이것도 업보라고 해야 하나.’

그녀가 보이는 적의 어린 태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고대로부터 마법사들은 정령을 도구로 사용했다.

저보다 약한 등급의 정령을 속성별로 끌어내어 강제로 마도구에 심어 버리는 건 지금도 심심찮게 벌어지는 일.

심한 경우, 정령의 존재 자체를 찢어발겨 재료로 이용하는 자도 있었다. 사연이 이러니 정령은 소환에 응하면서도 마법사란 존재를 보면 적대시했다.

그나마 눈앞의 정령이 칼을 겨누면서도 당장 달려들지 않는 게 다행이라고 할 정도.

테스는 양손을 들며 자신에게 적의가 없음을 표했다.

“애당초 전투를 벌이거나 널 잡아내려고 했다면 이런 식으로 안 불렀을 거다.”

-…….

“주변을 봐. 이 영역 자체가 내 것이야. 원한다면 진작에 널 잡아내지 않았을까?”

정령은 테스의 말을 따랐다. 주변을 바라보고, 그 기운을 살폈다.

이 거대한 장원의 기운들이 그를 관통하고 있는 걸 바로 눈치챘다.

테스의 말대로였다.

그가 전투를 원했다면, 이 작은 정령을 잡아먹는 거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즉, 거짓은 말하지 않았다.

-인정하지.

“좋아. 서로 간에 적의가 없음을 알았으니 계약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건 가능하겠지?”

-……흠.

정령은 한참 동안 테스의 눈을 직시했다.

명백히 탐색을 하는 눈.

정령의 눈길을 따라 주변의 수기(水氣)가 움직였다. 그를 샅샅이 훑으며 살피었다.

테스는 거부하지 않고 정령이 그를 살피도록 내버려 두었다.

‘성공인가?’

스스스-!

정령이 부리던 수기가 그로부터 물러났고, 정령의 음성이 들려왔다.

-적어도 자격은 있어 보이는군. 거기다……. 꽤 흥미로운 기운을 다루고 있고 말이야.

“흥미가 생겼나 보지?”

-물론. 우리의 속성을 알지 않나? 성장을 위한 속성 말이야.

“알지. 딱히 비밀도 아니고.”

정령의 성장.

성장은 수많은 경험을 기반으로 했다.

시답잖은 경험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원하기만 하면 영생을 사는 정령에게 일반적인 경험은 성장의 밑거름이 되지 못했다.

오로지 특별한 경험만이 그들에게 성장을 가져다준다.

그 종류가 무엇이든 상관은 없었다.

새로운 기운, 사람, 존재.

그게 무엇이든 관련된 경험을 하면 그들이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게 정령의 속성 중 하나였다.

그중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제 속성에 맞는 기운. 눈앞의 물의 정령은 수기를 좋아했다.

“이미 느끼고 있겠지? 내가 모아 놓은 기운들 말이야.”

-느끼지 않았다면 이곳을 찾아오지도 않았을 거야.

“맞네. 이 기운들 확실히 정순하지 않아? 계약대로만 해 준다면, 이 모든 수기를 그쪽에게 넘기지.”

-그게 대가란 건가?

테스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하고자 하는 계약은 단순했다.

진법을 이용해서 모아 놓은 수기는 제아무리 정령이라도 경험하지 못했을 터.

정령에게 경험은 곧 성장이니 이 새로운 기운이 가져다주는 경험은 막대한 성장의 밑거름이 될 터였다.

그 대가로, 테스는 부족한 물을 받을 생각이었다.

‘이 정도라면……. 최소 한 달 정도는 어찌 버티게 해 주겠지. 잘하면, 이 지역의 수기 자체를 늘려 줄 수도 있을 거고.’

많은 걸 바라지도 않았다.

적어도 그가 새로운 물길을 열 때까지 그때까지만 수기를 가져다줘도 그로선 충분했다.

마음 같아서야 정령을 가둬서 부리고 싶다만.

‘전투를 벌여서 이기는 건 가능해도 부리는 건 또 다른 문제이니……. 아직은 무리.’

4클래스에 들어서지 못한 그가 정령이란 존재를 완전히 지배하는 건 아직 무리였다.

관련 연구를 할 시간이 있었더라면 또 모르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어쨌든 좋다.

물의 정령은 지금 상황을 충분히 흥미로워했다.

-나쁘지 않은 거래군.

“그렇지. 같은 수기라도 너로선 전혀 새로운 기운일 테니까. 자, 그러니 계약을 하자. 너는 너의 기운을 이용해 물을 공급해 주고, 나는 이 기운을 넘기겠어. 어때?”

이대로 거래를 하여 임시 물만 확보할 수 있다면 그것대로 나쁘지 않았다.

당장에라도 정령이 고개를 끄덕일 거라고 여겼는데, 들려오는 대답은 전혀 의외의 거였다.

-그 계약, 다른 방식으로 비틀었으면 하는데?

“응? 정령이 새로 계약 조건을 말한다고?”

-그대가 꽤 흥미를 끌었으니까. 내가 새로 제안할 방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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