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화
챕터 24.
저들의 재능은 단순히 육체에 국한되어 있지 않았다.
‘내가 내공 상승 탕약을 먹이고 있다지만……. 이 속도는 예상보다 더 빠르다.’
그들이 지닌 내력도 하루가 멀다 하고 성장하고 있었다.
내력 상승을 위한 탕약. 수련에 맞는 진법.
이 둘의 상승효과를 떠나서, 그들이 지닌 재능 자체가 빛이 났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무럭무럭 성장하는 아이보다도 더 빠르게 저들은 성장해 나갔다.
특히 창술의 기초를 이미 끝마친 테론의 성장을 보자면.
‘또 다른 괴물을 하나 주운 셈인가.’
고작해야 한 달.
그사이에 이룬 성과라고 보기엔 놀랍다고 말할 정도였다.
성과가 있다면, 그에 맞는 상을 주어야 하는 법이다.
‘그리해야 스스로 생각하면서 상을 갈구할 테니 당연한 일이지.’
테스는 테론의 실력에 걸맞은 대우를 준비했고.
바로 해 주었다.
“테론이 전부를 상대로 승리하였으니 그를 백부장으로 명한다. 이의 있는 자가 있는가?”
“…….”
“없군. 지금부터 테론이 너희를 이끄는 백부장이다! 지휘관이자 상관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명을 따르도록!”
노예병이라고 해서 다 같은 처지로 둘 필요는 없을 터. 그를 이들 103명을 이끄는 백부장으로 명하였다.
보상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럼 테론, 이리 오거라. 특별히 마련한 상을 주지.”
“감사합니다!”
앞으로 다가온 테론에게 테스는 미리 준비하였던 걸 품에서 꺼내 주었다.
알싸한 향을 풍기는 알약. 영약이었다.
“받거라. 새로운 영약 중 하나다.”
“오오오!”
“꽤 도움이 될 거야.”
중원에서의 이름은 영린환.
내력을 세 달쯤 늘려 줄 만한 하위 영약. 테스가 홀스 파워에 이어서 새로 판매하려고 연구하고 있는 비전의 알약 중 하나였다.
그 영린환의 첫 주인이 바로 테론이 됐다.
-저한테는요?
-후후, 넌 나중에 더 좋은 걸 줄 거니 걱정 말거라.
-그 말 기억했어요!
가만 옆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에나.
그녀가 놀라서 전음을 보낼 정도의 보상이었다.
어마어마한 보상. 그런 보상을 해 놓고도 테스는 계속해서 그에게 새로운 걸 쥐어 줬다.
“네 가족이 이 영지에 있다고 들었다.”
“그렇습니다.”
“그들에게도 포상금을 내려 주마. 그리고 원한다면, 네 동생에게도 병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꽤 대단한 재능을 지녔던데.”
“감사합니다! 기회만 주신다면……. 한번 데려와 보겠습니다.”
“좋아. 우선 이거부터 받도록 해.”
“감사합니다!”
그가 소중히 여기던 가족을 손수 챙겨 주었고 그에 맞는 포상금을 건네줬다.
또한 생각지도 못한 기회까지 줬다.
테론의 표정은 어느새 놀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로써 완전히 마음을 사로잡게 되는 거지.’
놀람은 이내 다른 감정으로 변화했다. 바로 충성심이었다.
전에 없던 깊은 충성심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절로 우러나오고 있음을 테론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 충성심이 오롯이 눈에 담겨 테스에게 전해졌다.
‘됐다. 충성심이란 게 별게 아니지. 제대로 된 상벌만 주어져도 없던 충성심이 생기는 법이니까.’
충성하는 자와 그 충성을 받는 자. 둘이 서로 만족해 웃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 * *
상을 받은 테론을 보고 자극을 받은 걸까.
병사들 전부가 전보다 의욕을 더욱 불태웠다.
영지 내에 가족이 있든 없든, 어떤 식으로든 테스가 상과 벌을 확실히 준 덕에 나온 효과였다.
훈련에 임하는 자세부터가 달라졌다.
쓰디쓰다 못해 구역질이 나는 탕약을 다들 잘도 마셨다.
“끄으윽……. 이건 다시 먹어도 뒈지겠네.”
“속이 더부룩한 느낌이야. 그래도……. 저기 테론처럼 되려면 먹어야지.”
“크흡. 독한 저놈은 이걸 두 그릇이나 먹었더라고?”
“씁. 나도 그럼 두 그릇 먹는다! 크엑…….”
바닥까지 바득바득 긁어서 탕약을 먹는 자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들이 그리 움직이는 거.
이유는 단순했다.
테론에 대한 시샘이자 질투, 그리고 동경 때문이었다.
‘몇 달 전만 해도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놈이……. 이젠 완전히 달라졌어.’
‘처음에 어리숙하던 놈이 대체 뭘 먹고 저리된 거야?’
‘후……. 저 영약이란 거. 나도 먹고 싶은데.’
하루가 지날수록 나아지는 테론의 실력과 그에 걸맞은 대우. 이 둘을 보고서 자극을 받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했다.
처음부터 테론이 그들과 다른 처지였다면 또 몰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과 똑같은 처지였던 그다.
한데 지금은 그 처지가 완전히 달라졌다.
지휘관이 된 그의 말을 감히 거역할 수도 없었다.
“뭣들 하나? 어서 와서 훈련들 시작해야지!”
“넵! 갑니다! 가!”
“저밀, 너도 어서 안 움직이지!?”
“……갑니다! 명!”
쉽게 말을 붙일 수도 없었다.
실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서너 명이 달려들어도 그 하나를 이기기 힘들었다.
차라리 여기까진 나았다.
실력 차이는 명확했고, 이를 인정하면 그뿐이니까.
정작 부러운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음식이다.
“훈련 끝! 식사 시간이다!”
“테론 님! 여기 전용식입니다!”
“오…….”
테스는 사소한 것에도 차이를 뒀고, 테론에게 주어지는 음식은 에나 못지않은 최고급 음식들이었다.
지휘관급에게 주어지는 식단이라나.
무려 고깃덩어리가 들어간 식단이었다.
평생 고기는커녕,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도 힘든 게 이 세계의 하층민의 현실.
도적을 하겠답시고 나선 자들 중에 하층민이 아닌 자가 없었다.
그런 그들의 눈앞에 고기라니!
“크흐……. 좋군.”
아득.
씹는 사이로 자르르 흐르는 기름기. 멀리까지 퍼지는 향. 한 움큼 베어 넘길 때면 튀는 기름까지.
병사들에게 이보다 더한 자극제가 없었다.
“냉큼 훈련이나 하자고. 우리도 고기 좀 먹어 봐야 할 거 아냐?”
“우리한테도 기회가 올까?”
“오겠지. 듣기로 이번에 우리들 데리고 도적 토벌을 한다잖아. 실전을 겸해서 말이야. 그때 가면 후임들도 생기지 않겠어?”
“후임이 생기면?”
“그럼 우리들 중에 지휘관급이 또 하나 나올지도 모르잖아!? 그럼 뭐겠어? 고기라고! 고기!”
“오오오오!”
원초적인 욕망은 그들을 움직이게 했다.
* * *
이제 병사들은 말하지 않아도 저 자신의 성장을 도모했다.
듣기로 에나가 데리고 간 토벌 작전에서 꽤 많은 병사들이 열과 성을 다해 맹렬한 활약을 펼쳤단다.
테스는 잊지 않고 그에 맞는 포상을 쥐어 줬다.
포상을 받은 병사들은 크게 만족했다.
그렇게 새로 들어온 후임 병사 30명.
새로 지배의 낙인을 받은 병사들은 후임병이 됐고, 후임보다 많은 선임들 사이에서 에나보다 독한 훈련을 받고 있다고 들었다.
일종의 체계가 세워진 셈이다.
“후음, 이걸로 기초는 굴러 가기 시작한 건가.”
“저걸 기초라고 하기엔 영 부족하지 않아요? 지금이라도 제가 나서서 다시 훈련을 시켜 볼까요?”
지옥 조교로 불린 에나가 보기엔 그조차도 부족해 보이는 듯하다만, 어쩌겠는가.
이제 그녀도 그녀만의 훈련을 할 시간이었다.
“냅둬라. 에나, 너의 훈련도 중요하니까.”
“에이, 아쉽네요.”
“풋, 이상한데 재미 들리지 말고. 어서 연류검에 흐름을 더 담아 봐. 깊이 그리고 세밀하게.”
“저도 노력하고 있다고요?”
“알고는 있지. 이제는 성과를 내야 할 때가 돼서 그리 말할 뿐이야.”
당장 테론의 성장 속도는 그가 봐도 놀라울 정도였다.
그러니 그를 이끌어 줘야 할 에나가 테론보다 약하면 되겠는가.
군의 기강을 위해서 에나는 더욱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 에나를 두고 따로 훈련을 시키는 테스다.
에나도 테론에게 자극을 받았는지, 슬슬 성과를 내고 있기는 했다. 다만 문제는 그 속도로도 부족하다는 게 문제였다.
주변이 심상치 않았다.
“성과요?”
“그래. 성과. 슬슬 가을이 다가오고 있으니……. 변화가 있을 거다.”
“우음, 무슨 변화일까요?”
“전에 그레놀이 와서 이야기하기론 영지전이 심상치 않아. 여기에 뭔가 변화가 있을지도 모를 정도라던데.”
영지전이 더욱 격화되고 있었다.
귀족들 사이에서 툭하면 일어나는 게 영지전이라지만, 지금의 영지전은 뭔가 수상쩍었다.
분명 영지전의 시작은 앙스와 휘슬이 서로에게 가진 원한 때문이었다.
둘이 한참을 싸웠다.
그러다 테스론이 뒤늦게 끼어들었고, 테스론의 공물을 받은 데프 백작령도 같이 끼어들었다.
이른바 2파전이 4파전이 된 거다.
그렇게 거의 일 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끝날 법한데 끝나질 않아. 단순히 시비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가 걸려 있을지도 모르지. 그때 공물이나 기습도 꽤 수상했고 말이야.’
막대한 전비가 들어가는 전쟁을 슬슬 끝낼 법도 한데, 상황은 더욱 격화되고 있다.
제삼자로 있던 테스로서도 슬슬 무언가 이상함을 느낄 정도.
상인 행세를 하는 그레놀도 근래 들어서는 꽤 심상찮은 분위기를 풍기곤 했다.
그러니 성과를 내야 했다.
“어쨌거나 우리 장원이 데프 백작 휘하에 있기는 하니……. 뭔가 일어날 수도 있겠지.”
“어차피 오래된 영지전이잖아요. 영지전치고 이리 오래 진행되는 게 이상하긴 한데……. 그래도 갑작스런 변화가 있을까요?”
“글쎄다……. 그저 준비할 뿐이지. 혹여나 휩쓸려도 우리를 지킬 수준은 돼야 하니까.”
“그런 의미의 준비이자 성과로군요. 이해했어요.”
적어도 다른 자들에게 휩쓸리지 않을 힘. 혹여 휩쓸리더라도 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을 성과를 내야 했다.
노예 병사들이야 슬슬 성과를 냈고, 그들이 설사 죽어도 아쉬울 뿐 슬픈 일은 아니지만.
‘에나는 다르다.’
변덕에서 시작되었던 에나의 구함.
그녀는 테스로서도 깊은 인연이 생겨 버린 아이다. 그러니 그녀도 이 휩쓸림에서 살아남기를 바랐다.
다행히 그녀는 테스의 뜻을 잘 알아들었다.
“그럼 달리 수는 없네요. 제가 열심히 하는 수밖에요.”
“그래.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갈게요. 있다 저녁에 보자고요! 연단로에 너무 오래 있지 마시고요!”
“거, 잔소리는.”
“헹! 있다 봐요!”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수행에 나섰다.
날이 갈수록 검력이 매서워졌고 무거워진 검에 실린 흐름은 전생의 이화보다도 더 연속돼 있었다.
‘제대로 움직이고 있네. 정 부족하면……. 그때 가서는 영약이라도 쥐어 줘야겠지. 에나를 위한 영약이라, 뭘 만들어 준다?’
병사, 장원, 에나, 그의 준비, 연단, 마법의 수련.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듯 보였다.
실제로 그도 매번 새로운 마법을 익히고 연구해 가면서 성과를 내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구상했던 연구를 실제로 구현해 가면서 자신이 지닌 힘이 점차 강대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영지 전체에 전력 상승이라는 거대한 바퀴가 스스로 돌고 있었다.
“장원주님! 장원주님! 이거…… 한번 와 보셔야겠습니다!”
“음? 게일, 무슨 일인가?”
“난리도 아닙니다! 이대로라면 죄다 죽을 거 같습니다. 크흡…….”
다만, 모든 게 제대로 구르고 있지만은 않았다.
놀란 눈을 하고 있는 게일. 안내하는 그의 뒤를 테스가 따랐다.
‘슬슬 시작할 때이긴 했다만……. 예상보다 빠른데. 애 좀 써야겠군.’
장원에 문제가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