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화
챕터 23.
테론은 긴장한 낯을 하고 줄을 서 있었다.
그만 긴장한 게 아니었다. 연병장 위에 같이 선 모든 자들이 그처럼 긴장을 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인물 때문이었다.
테스. 산적으로 그들을 제압한 주인.
다른 자들은 몰라도, 그는 악감정 따윈 없었다.
칼을 들고 달려든 그를 살려 줬을 뿐 아니라 남은 그의 가족에게 살 방안을 마련해 줬으니까.
살 방안을 마련해 준 것만으로도 그가 있던 마을 영주보다 훨씬 나았다.
주인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주변을 울렸다.
“모두 다 모였군. 보아하니, 모두 기초는 됐고. 잘했어, 에나.”
“감사합니다!”
그들이 그간 해 온 육체 수련에 대한 인정이었다.
테론은 인정을 받는 것보다도, 다른 것에 놀랐다.
그간 찌푸린 표정만 보였던 에나가 저렇게 밝은 표정을 지을 수 있음을 처음 알았으니까.
테론의 놀람과 상관없이, 그들의 주인은 짧은 인정을 마치고는 그들을 이끌었다.
* * *
연무장 아래, 미리 만들어 놓은 거대한 건물 안으로 모두가 들어섰다.
“미리 이야기한 대로 가부좌를 틀어라.”
“명!”
가부좌. 다리를 서로 얽어 만들어 내는 특이한 자세.
두 달 전 처음 이 자세를 할 때만 해도, 양 허벅지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익숙하게 자세를 잡을 수 있었다.
테론을 포함한 전부가 자세를 취하자, 그들의 주인은 알 수 없는 말을 하였다.
“지금부터 너희들이 익힐 건 의선 삼재심법이다. 중원의 삼재심법을 개량……. 아니, 이건 못 알아먹겠군. 대충 오러를 익힐 가능성을 주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오러라굽쇼!?”
오러라는 단어에 반응하여 저도 모르게 되묻는 자가 있었다.
테론의 바로 옆에 있던 자였다.
오러!
기사들만의 전유물. 설사 용병이라 할지라도 베테랑급을 넘어서야 겨우 얻을 수 있는 게 오러였다.
수많은 전장에서 목숨이 오가는 경험을 여러 번 해야 겨우 얻을까 말까 한 것이 오러다.
얻기 힘든 만큼 위력은 강대하였다.
두꺼운 철판도 썰어 낼 수 있는 게 바로 오러가 지닌 힘이었으니까.
강대한 오러를 지닌 자는 마법도 베어 버린다고 알려진 건 테론도 아는 상식이었다.
그런 오러의 가능성을 준다니.
‘그렇다면 오러 연공법이잖아!?’
말도 안 되는 걸 툭 던져 주고 있는 그들의 주인이었다.
놀라웠다.
“대단한 건 아니다. 고작해야 삼류 수준이나 될까. 뭐 그렇다고 해도 꽤 쓸 만하겠지만……. 너희들에게 맞게 개량해 뒀으니 다들 잘 기억해라.”
그는 별거 아닌 걸 던져 준다는 듯, 그들에게 가르쳤다.
그가 심법이라고 말하는 오러 연공법.
생각지도 못한 오러 수련법을, 허투루 듣는 자는 여기에서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기 있는 자들 중 오러가 어떤 의미를 지지는지 모르는 자가 없었으니까.
설사 지금 그들의 신분이 노예라고 할지라도. 오러를 익혀 내기만 한다면 뒷일은 모르는 법이었다.
혹 뒷일이 아니더라도 우선 힘을 가진다고 함은 이 세계에서 생존력을 높이는 방법이었으니까.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집중했다.
두어 시간쯤 지나갔을까.
“간단한 건데, 다들 기억은 하고 있겠지?”
“넵!”
“충분히 하였습니다!”
“기합 하나는 팍 들어가서 좋구나.”
뜻 모르는 구결을 외우는 데는 충분했다.
‘근데 이걸로 뭘 하란 거야?’
문제는 구결을 알아도 그 뒤는 어찌해야 할지 모른다는 거였다.
연공법이라고 대뜸 던져 주었지만, 그걸 익힐 줄 아는 자는 단 하나도 없었다.
“에나, 지금부터는 너도 나서서 도와야겠다.”
“넵!”
이때 그들의 주인이 다시 나섰다.
“이렇게 던져 줘 봐야 의미를 하나도 알 수 없겠지. 능히 예상했던 바야.”
“그럼 어떻게 합니까?”
“너희가 어찌할 건 없다.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씨앗을 내가 심어 줄 거니까.”
“씨앗이요?”
“깊이 생각할 거 없이 오러의 씨앗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거다. 그 씨앗을 불리는 건 지금부터 구결을 갖고 노력을 해 봐야 하겠지.”
오러의 씨앗을 심어 준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뭔 개소리지?’
오러를 전수해 주기라도 한다는 건가. 그도 아니면, 이 구결을 외기만 하면 강해지는 거고?
아니면, 지난 두 달 동안 저녁마다 외웠던 혈도인가 뭔가를 쓰면 되는 건가?
구결을 보니 혈도와 관련도 있던데?
도무지 알 수 없는 개념을 계속해서 말하니, 이제는 머리가 혼란스러워져 가는 테론이었다.
그러나 더 복잡하게 생각할 게 없었다.
가부좌를 틀고 있는 테론에게 테스가 찾아왔으니까.
“눈을 반개하고, 그대로 구결에 집중해. 아직 의미는 이해 못 할 터이니 단지 전에 외우게 한 혈도를 어찌 움직여야 할지 집중하는 걸로도 우선은 충분하다. 이해하지 말고 그냥 실행해.”
“……명!”
테스는 테론의 몸에 손을 가져다 댔다.
‘서, 설마……. 이상한 취미를 가진……. 억!?’
테론은 잡스런 생각을 할 틈도 없었다. 어느 순간, 닿아 있는 테스의 손에서 어떤 거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이게 뭐야!’
처음 느끼는 생경한 기운이었다.
도도하게 흘러들어 오는 기운에, 저도 모르게 놀란 몸이 퍼뜩 튀어오를 정도였다.
“오, 생각보다 기감이 뛰어난 녀석이 있었네.”
“네, 넵?”
“아직은 의미를 몰라도 상관없다. 좋은 재능이야. 자, 다시 집중해 봐라.”
“넵!”
그 기운. 여전히 생소하고 무서웠다.
동시에 테론을 끌어당기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의 울림이 계속해서 그 기운을 느끼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의 주인은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었다.
‘이번에야말로 꼭!’
테론은 두 번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몸을 타고 들어오는 기운을 잔뜩 만끽했다.
그때, 그의 이성이 아닌 본능이 움직였다. 본능은 혈을 어찌 움직여야 할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의 정신이 저도 모르게 침잠해 들어가고.
무의식은 구결을 따라 테스가 보낸 기운을 굴리며 부풀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들어간 초집중 상태!
덕분에 테론은 테스가 멀거니 그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낄 새가 없었다.
“재밌는 녀석이 하나 있었잖아? 이 정도의 재능이라면 잘 두고 키워도 될 정도인데”
“어느 정도인데요?”
대신 옆에서 기운을 나눠 주던 에나는 그의 말을 정확히 들을 수 있었다.
“적어도 너 정도에 비견되는구나. 아직 개정대법을 시행치도 않았는데 이 정도라니……. 대어를 낚시해 왔을지도 모르겠어.”
“생각보다 더한 고평가네요?”
“후후, 질투라도 나는 거냐?”
에나가 테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약간은요. 후음……. 이런 자가 있다면 저도 분발해야겠네요. 이래봬도 조교인데, 밀리면 그런 망신이 또 없잖아요?”
“꽤 노력해야 할 거다. 뭐, 그래도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라. 언제든 도와줄 테니까.”
“우선은 저 스스로 노력해 볼게요.”
“좋은 자세야.”
알 수 없는 의미로, 테론을 한참 바라보던 그녀였다.
그것도 모르고 테론은 계속해 침잠해 들어가며 작은 기운을 계속해 굴리고 또 굴려 부풀릴 뿐이었다.
* * *
심법.
이세계서 오러 연공법이라고 알려진 수련은 금방 이루어졌다.
테스가 손수 선천진기를 이용하여 기감을 일깨운 덕분. 다들 테론만은 못하더라도 상당한 재능들을 지니고 있었다.
‘역시 이 세계는 재능을 지닌 자가 많아. 가장 선두가 테론이고……. 그 뒤로 열 명 정도가 강대한 재능을 지닌 건가.’
103명의 병사들 중 총 11명.
중원이었다면 능히 천급의 재능이라 불릴 만한 자들이었다. 그들만 11명이라니, 생각보다도 더 많은 수였다.
‘하긴. 그러니 몬스터들 사이에서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지도.’
테스는 그들의 재능에 놀라면서 동시에 이 세계의 인간이 지닌 힘의 가능성을 가늠했다.
동시에 그런 인간들을 상대로 한 몬스터들에 대한 전력도 상향 조정을 했다.
‘이런 데도 인간 영역보다 몬스터 영역이 더 넓은 걸 생각하면……. 내 준비 수준도 더 상향해야겠어.’
그에 맞춰 계획을 조정하면서.
그는 지난 일주일간 내공을 부풀리기 시작한 이들에게 또 새로운 것들을 잔뜩 던져 주기 시작했다.
“흔히 검이 최고라고 말하는 자도 있지만 아니다. 내 단언컨대, 일개 개인이 아닌 군대가 익힐 최상승의 무기는 창이다.”
“그럼 저희가 익히는 건 창법입니까?”
“그래. 그에 맞는 창들을 준비하였으니 모두 잡아라. 그리고 익혀라. 지금부터 너희들이 익힐 창법은 양가의 무공으로부터 이어졌으니 양가창법이라 하는 것이다!”
양가창법.
중원의 양가에서 전해지는 최상승의 창법 중 하나.
후에 양가의 가문 사람들 전체가 군문에 투신하며, 그 위력에 대해서 많은 자들이 혹평하였던 비운의 창법 중 하나였다.
실용성을 따져서 무의 정신이 없다느니 오로지 군인을 위한 무공이라느니 폄하하는 자들이 넘쳐났지만.
‘모르고 하는 소리지.’
의선이었던 그는 절제된 움직임을 갖춘 양가창법을 최상승의 것으로 쳤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선!
창의 모든 움직임이라는 란나찰을 제대로 구현하는 데 성공한 움직임!
절제되어 만들어진 기세!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는 게 그가 아는 양가창법이었다.
“앞으로 찌르니 찰이요, 안으로 돌려 막으니 란이고, 밖에서 다시 안을 제압하니 그것이 나다! 이해했느냐?”
“옙!”
“그대로 움직여라.”
찌르고, 돌리며, 제압한다.
란나찰이라는 기본기로 시작하여.
이를 깊이 익힘으로써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창술의 기초.
양가의 창술가들은 이러한 란나찰을 죽을 때까지 익히고 또 익혀, 인간이 지닌 힘 이상의 창을 구현해 내곤 했다.
테스는 그 정도는 바라지도 않았다.
‘홀로가 아니더라도 다수가 모여 강자를 잡아먹을 수 있으면 족할 뿐. 그게 아니더라도 내가 마련해 줄 수단은 많으니 상관없겠지.’
하나하나가 강자가 되기보단, 저들이 하나가 돼 강자를 제압할 수준이 되는 걸로도 우선은 만족했다.
그에 맞춰 창술을 가르쳤고.
익히는 저들 전부가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해 창을 다루도록 시키었다.
며칠이 지나 슬슬 창에 익숙해졌을 때쯤.
“이다음은 너희의 몸 자체를 단단하게 해 줄 외공이다. 몸의 가죽이 더 두꺼워지고 단단해질 거다. 어지간한 도검엔 찔리지도 않겠지.”
“저희가 몬스터도 아닌데 어찌…….”
“우선 익혀 보거라. 그리하면 알 테니.”
그들에게 몸 자체를 단련시키는 외공이란 걸 가르쳤다. 그 외공의 이름은 양의강체공이었다.
강체공.
근육을 발달하게 하고 체력의 한계를 늘려 주며 몸의 내구성 자체를 강하게 만들어 주는 비술 중 하나.
중원의 어지간한 무인이라면 각자 문파마다 지닌 외공을 기초라도 익히는 게 기본이었다.
그러한 강체공을 테스는 아낌없이 가르쳤다.
‘십 년만 익혀도 도검불침은 아니더라도 그 이하는 가능하니 제법 쓸 만해지겠지.’
내공. 창법. 외공.
하나만 놓고 보면 강대해지기 힘든 하위의 무공들. 허나 이 셋을 조합하면 능히 강대해질 비전들을 그들에게 아낌없이 전수했다.
* * *
성과는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나타났다.
테스의 아낌없는 전수와 그가 설치해 놓은 거대한 진법의 흐름 덕분이었다.
형을 익히던 자들은 서로를 상대로 대련을 시작하였고.
“어디 이것도 막아 봐라!”
“컥…….”
“테론 승!”
가장 강대한 무력을 보이기 시작하는 테론을 선두로, 꽤 많은 자들이 그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건 놀라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