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화
챕터 21.
테스는 쓰러져 버린 도적들에게로 다가갔다.
“흡수하는 손길. 강화.”
“끄으으…….”
흡수하는 손길의 빛이 주변을 채운다.
적의 생명력을 빨아들였다.
깊이 빨아들이지는 않았다.
지금 이들을 죽여야 할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생존하는 데 남는 에너지 정도를 빨아들일 뿐이었다.
‘역시나 독기가 넘쳐.’
총 열아홉의 도적. 이들의 생기와 독기를 빨아들이자 양이 꽤 됐다.
지금에 와선 일 갑자가 넘는 내력을 지닌 그임에도 상당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흐으으으…….”
혈도를 공격당해 기절하고 생기까지 빠진 이들은 신음하는 게 다였다.
적어도 이틀, 길면 사흘까지도 쓰러져 있을 터였다.
“마력 팔 생성. 다중.”
테스는 마력으로 팔을 만들어 내어 이들을 마차 안에 포대처럼 던져 쌓았다.
정확한 그의 조종에 다치는 자는 없었지만, 절대 편한 자세들은 아녔다.
열아홉의 도적을 모두 치워 내자, 그제야 에나가 무언가 깨달은 듯 보였다.
“이게……. 인간 낚시의 의미였군요? 도적들을 데려다가 어딘가에 쓰려고 하시는 거죠?”
“맞아. 나중에 영지로 데려가 종속 마법을 이용해 노예로 만들 참이다.”
“데번즈의 노예병처럼요?”
“그런 셈이지.”
바로 인간 낚시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거창하게 낚시라고 말했지만, 테스가 한 것은 별거 아니었다.
춘궁기인 이때, 도적으로 변하는 자들이 많았다.
특히 영지 수준이 낮을수록 도적이 되는 자가 넘쳐났다.
‘관리가 안 돼서지.’
장원 정도 되면 장원주가 아니라 장원 대리가 대신 다스리는 곳이 많을 터.
제대로 된 관리자가 없는데, 내부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세금을 내고 굶어 죽는 자도 있고.
춘궁기를 버티지 못해 장원을 탈출하는 자도 있을 정도.
허락 없이 장원을 나서다가는 농노로 신분이 격하되지만, 당장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 하는 탈출이었다.
차라리 장원 주민들은 서로 어떻게든 버텨 내기는 했다.
더 사정이 안 좋은 쪽은 장원 가까이에 자생하고 있는 마을들이었다.
반쯤은 화전민이고, 또 반쯤은 주변 장원에 세금을 내며 살아가는 자들이었다.
이들은 제대로 관리도 못 받는 주제에 툭하면 작은 영지들의 수탈 대상이 되곤 했다.
지켜 주는 자가 없어서다.
그렇다고 쉽게 장원 주변을 떠날 수 없는 것이 조금만 가도 몬스터나 도적이 튀어나오기 때문.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버티곤 했다.
그조차도 버티기 힘들 때가 오면, 바로 지금처럼 도적 행세를 하곤 했다.
테스는 그걸 이용해 낚았을 뿐이다.
허름한 마차를 이용해 스스로 미끼가 되고, 미끼를 보고 다가오는 자들을 순식간에 잡아내는 것.
그게 인간 낚시의 본질이다.
“그런데 저희가 안 보였더라면, 저들도 도적질을 안 하지 않았을까요?”
“그럴 리가. 여기가 아니더라도 다른 곳을 털었겠지.”
“정말요? 저희가 유혹을 한 걸지도 모르잖아요.”
“보통 사람은 이런 유혹에 넘어가지도 않는단다. 배고프면 눈이 뒤집힌다곤 하지만, 기어이 버텨 내는 게 보통이지.”
“……우음.”
“아직 이해가 안 간다면, 나중에라도 사람을 여럿 겪어 보면 알게 될 거다. 어쨌거나 본질은 저들이 내게 칼을 들이밀었고, 나는 그들을 제압했다는 거지. 그러니 그 처우는 내 몫인 거고.”
테스의 간결한 설명.
그 설명의 본질 너머를 에나는 정확히 봤다.
“다소 억지가 섞여 있는 거 같기는 한데……. 그조차도 결국 찍어 누를 힘이 테스 님에겐 있는 거고요?”
“그리 해석해도 맞다. 힘으로 찍어 눌렀다고 하면, 결국 그도 맞는 얘기지.”
“이해했어요.”
그녀가 어떤 식으로 이해를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의 얼굴에 어려 있던 작은 죄책감은 사라진 듯 보였다.
* * *
처음 한 인간 낚시 이후.
테스는 수차례 허름한 마차를 몰고 나가 낚시를 진행했다.
네 영지의 영지전으로 상당히 척박해져 있는 지금, 도적은 들끓고 있었다.
“어이! 돈 내놔! 돈만 내놓으면 살려 주마!”
“사, 살려 주십쇼! 제발 한 끼만!”
온몸을 떨며 돈을 달라고 덤벼드는 자도 있었고, 한 끼를 달라고 구걸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런 자들은 차라리 양반이었다.
영지전의 전투 용병을 하다가 탈주를 한 자들은 더욱 흉포했다.
“멈춰라! 이 몸은 휘슬 영주님의 명을 받아 통행세를 받는 권한을 받은 데캉트이시다.”
“뭐 해! 어서 손을 들어 올리지 않고!”
이들은 진짜 도적이었다.
장비도 충실할뿐더러 저들 나름의 군기를 만들어서 활동을 하는 자들이었으니까.
이미 몇 탕은 해 먹었는지 온몸에 핏자국이 눌러 붙어 있었고, 눈에는 살기가 그득했다.
‘죽일 놈들이네.’
테스는 그런 자들에겐 다른 처우를 내렸다.
“거. 미친놈들이 슬슬 넘치네. 에나, 더 볼 것도 없는 놈들이다. 처리해.”
“바로 시행하죠.”
“거 무슨 미친 연놈들이……. 컥!”
죽음이었다.
흉악하거나 살기가 짙은 자들은 바로 즉결 처형을 했다.
‘낚시를 해서 데려다가 병사로 써먹을 나란 놈도 정상적이진 못하다만……. 저리 피를 묻힌 놈들은 상태가 영 좋지 않거든.’
그가 보기엔 데려다 쓰기에도 문제이기에 내리는 적절한 조치였다.
때로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자도 있었다.
“저는 잡아가더라도 제 가족만은!”
“제가 잠시 눈이 돌아가서 그랬습니다. 눈이! 제, 제발……. 어찌 다른 방법은 없겠습니까? 제 동생이라도 살려 주고 싶습니다.”
제가 책임지는 가족을 위하여 도적이 되어 버린 자들.
잠시 눈이 돌아가 평소 하지도 않을 짓들을 벌인 자들이 있었다.
테스는 그들에게까지 독한 마음을 먹지는 않았다.
“너 자신은 지배의 낙인을 찍을 거다. 그래도 네 동생 녀석에게는 기회를 주마.”
“가, 감사합니다!”
잘못된 선택을 한 당사자가 문제이지, 그들의 가족까지 연좌제로 벌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들은 따로 데려가 장원에 들였고 일거리를 주었다.
춘궁기는 동시에 농번기이기도 하기에 저들이 할 일은 많았다.
공짜는 아니었다.
“품삯은 정확히 쳐줄 거다. 대신 언제고 몸값도 내야 할 거다. 네 형의 몸값 말이다.”
“……어떻게든 해낼 겁니다!”
그들에게 대가를 정확히 받아 내는 테스였다.
적절한 대가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드는 것. 그게 테스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자비였다.
죽음과 자비.
그렇게 두 방식을 골고루 섞어 가며, 장원 주변을 돌고 돌았다.
장원 주변에 사람을 잡아가는 귀신 마차가 있다는 소문이 돌 때까지 그의 낚시는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그 수가 100에 달했을 때에야.
“이제 기본은 갖췄구나.”
그는 만족스레 낚싯대를 거두었다.
* * *
테스가 벌인 낚시의 결과.
장원에 새로 추가된 자들의 수가 많았다.
지배 마법을 이용해 낙인을 찍은 자만 총 103명. 일부는 제 가족들까지 데리고 장원에 정착했다.
여기에 전에 그레놀이 데려온 노예들의 수만 해도 30명 있었으니.
70명이었던 장원의 인구는 어느덧 250명을 넘기고 있었다.
못해도 3배의 인구 성장!
그가 장원을 소유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라고 하기엔 어마어마한 수준.
덕분에 장원 안은 분주해졌다.
“장원이 전보다 꽉 찬 거 같아요. 매일 공사를 하기는 하는데……. 아직도 부족해 보이는데요?”
“다들 나서고 있으니 어떻게든 될 거다.”
새로 정착한 자들이 자신들이 살 집을 짓기 시작했다.
매달 이뤄지는 거래를 통해 자재는 충분했다. 데려온 목수도 제 몫을 해 주는지라 집을 짓는 작업은 순조로이 이뤄졌다.
제분소, 물레방앗간, 공용 화덕과 같은 시설들의 확장도 같이 이뤄졌다.
“다들 오늘은 무슨 일을 해야 하냐고 묻던데요? 적극적이에요.”
“그리 보이긴 하더구나. 적응이 빨라서 좋긴 해.”
“여기가 살 만해서 그런 거겠죠.”
“뭐, 이 정도로 안전한 장원 자체가 드무니까.”
잡혀 온 자들은 처음엔 울상을 지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사방을 둘러싼 해자 덕분에 몬스터의 침입도 없거니와 일을 시킨 이후에는 품삯도 제대로 지불해 주고 있었다.
지배의 낙인이 찍힌 자들은 하루 끼니만 주는 게 고작이었지만 그들은 그걸로도 만족해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굶주려 죽을 날만 세고 있던 것보단 상황이 훨씬 나았으니까.
전의 상황이 워낙 최악이었으니 지금의 상황이 나아 보일 수밖에 없는 거다.
테스는 새로운 정착민들을 정착시키고.
한편, 지배의 낙인을 찍은 자들을 데리고 새로운 일들을 준비했다.
“정말로 저들한테도 가르치실 생각이에요?”
“그래. 이미 말했듯 처음부터 그리하려고 데려왔으니까.”
“데번즈의 노예병들보다도 더 지독한 자들이 태어날지도 모르겠네요.”
“그럴지도.”
바로 병사로 삼기 위한 훈련이었다.
‘이만한 녀석들은 구하기 힘들지.’
배고프다고 칼을 든 자들은 정착민으로선 불합격.
하지만 병사로 쓰는 건 이미 합격이나 다름없었다.
칼을 들었다는 건 적절한 공격성을 지녔다는 의미. 전장에 데려다 놔도, 적어도 칼은 휘두르다 뒈질 성격이란 뜻이었다.
상대적으로 힘에 자신이 있어 나섰을 터이니 소질도 뛰어난 편이었다.
꼭 육체가 탄탄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적어도 독기라도 지녔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러니 병사로서 이들은 쓸모가 있었고.
지배 마법을 통해서 낙인이 찍혀 버린 지금에서야 배신도 못 하는 충성스러운 자들이 됐다. 그게 강제라도 충성은 충성이었다.
물론 테스는 이만한 충성으로 만족하지는 않았다.
배신을 하지 못한다는 건 최소한의 충성일 뿐이었다.
테스는 그 이상을 원했다.
‘단순히 시키면 움직이는 정도를 넘어서야 해. 생각할 줄 알고, 적극적이어야 그나마 쓸모가 있는 법이지.’
허수아비 따위는 원치도, 만들 생각도 없었다.
전생에 의선문을 지키던 집행대. 그 이상의 병사들을 원했다.
그러기에.
“마지막으로 한번 검토해 보자. 이제 한번 굴러가게 되면, 더는 뒤로 미루지 못할 테니까.”
“넵! 저야 보조 정도지만, 그거라도 확실히 해 줘야겠죠.”
“좋은 마음가짐이야.”
테스는 제가 만들어 놓은 계획을 몇 번이고 살폈다. 병사들의 몸을 기초부터 개조하는 그만의 계획이었다.
몇 번이고 봐도 계획은 그럴싸했다. 아니, 완벽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가 이 세계에 처음 각성하여 제 몸에 주입하듯 박아 넣었던 육체 수련을 더 강화하기까지 하였으니까.
전과 달리 돈이라는 자원이 어마어마하게 쌓인 지금, 계획은 이전보다도 더 완벽했다.
정신과 육체.
그 어느 하나 빼먹지 않고, 저들을 단련시킬 계획이다.
‘집행대의 방식에다가 마법까지 더했으니 효과는 확실하다. 다만……. 과연 버틸 수 있으려나.’
이 계획의 집행에 따른 결과가 걱정이 되기야 한다만, 그쯤이야 테스 자신이 감수해야 할 터.
완벽히 점검을 끝낸 그는.
“바로 굴리자.”
“이제 막 적응을 시작했는데, 벌써요!?”
“진짜 적응해야 할 건 이거니까. 자자, 가자.”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추가적인 계획이 더해지며 악명을 높이는 그만의 수련법. 테스 식 대개조 계획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