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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선, 황제되신다-45화 (45/191)

제45화

챕터 20.

지금의 때는 춘궁기.

겨울 내내 버티다 보니 식량은 다 떨어졌고, 애써 심었을 작물도 열매가 여물기엔 아직 이른 시간.

때문에 이때가 되면 곳곳에 수많은 도적들이 들끓곤 했다.

바로 지금처럼.

“잡아아!”

“말이 속도를 내기 전에 달라붙어!”

허접한 농기구에 날도 제대로 붙이지 않은 창을 들고서 달려오는 자들의 눈빛은 흉흉하기 짝이 없었다.

‘제대로 굶주렸네. 눈이 완전히 돌아가 있어.’

말이 도적이지 사실은 굶주린 농민이 겨우겨우 버티다가 나오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하지만, 배고파 나섰다고 해도 살의를 지닌 자들이었다.

제가 배고프다가 칼을 들이밀고 보는 행위는 되레 자신이 죽음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행위.

말을 다스리는 테스 옆에서 가만 자리를 잡고 있던 에나가 검을 빼들고 있었다.

“제가 처리할게요. 저 정도쯤은 저도 충분히 처리 가능하니까요.”

“평소라면 네게 맡겼겠다만, 오늘은 아냐. 지키고 서 있어 보렴.”

나서려는 에나.

그녀의 팔을 슬쩍 끌어당겨 도로 앉히는 테스였다.

그러면서 자신은 몸을 일으켰는데, 그는 마차에서 내려서면서도 검을 뽑을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그는 마차 앞으로 차분히 나서며, 달려오는 도적들을 마주했다.

“검 없이도 펼치는 연류검이 어떠한지, 또한 끊이지 않음이 뭔지 잘 지켜보고 있어. 꼭 죽이지 않아도 어찌 흐름을 연결하는지 보면 더 좋을 테니까.”

“네?”

“잘 보면 알게 될 거야. 네게 도움이 될 테니 자세히 보도록 해.”

가까워지는 도적들을 두고도 마치 소일거리를 하는 양 나지막이 설명을 한다.

그는 그대로 속도를 높여 적과 가까워졌다.

도적들과 그가 마주하는 순간, 그에게서 흐름이 만들어졌다.

‘저런 게 가능한 거였어?’

이 세계 유일한 연류검의 전승자인 에나로서도 상상하지 못한 도도한 흐름이 그녀의 바로 앞에서 그려지고 있었다.

* * *

‘처음 흐름의 시작은 단순하게…….’

연류신공을 익히지도, 연류검으로 검술을 펼친 바도 없는 그였다.

그러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연류의 묘리를 가져와 심법을 만들고. 검법을 형성해 만들게 한 것 또한 그였다.

정확히는 전생의 그였던 의선이었다.

그 정도면, 그가 이 세계에서 연류검을 펼쳐 내는 데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단순한 흐름을 길게 이어 가는 게 연류의 기본.’

그는 달려드는 도적 떼와 마주하여 검 대신 손을 휘둘렀다.

“어서 잡아!”

“……후음.”

손을 휘둘러 만들어 내는 그 선은 에나가 펼치는 검술과 맞닿아 있었다.

‘검법이라도 꼭 검으로 펼칠 필요는 없는 법이거든. 그게 모순이라고 할지라도……. 결국 검술은 형태가 중요할 뿐이니까.’

빈손이 휘둘러짐에도 그의 손엔 검력이 실려 있었다.

후우웅- 후웅-!

휘둘러지는 손은 끝없이 이어졌다.

멈춤이라곤 없이 계속해 움직이면서 순환을 그렸다.

베고 찌르고 휘두른다.

검으로 그려 낼 만한 선들이 그의 손에서 계속해서 펼쳐졌다.

모순된 움직임 따위는 하나도 없었다.

그의 움직임은 깔끔할 정도로 절제돼 있었다.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거지?’

마차 위에서 멍하니 그를 지켜보고 있는 에나.

그녀로서는 여태껏 지니고 있던 검에 대한 상식 일부가 깨어져 나가는 순간이었다.

그런 대단한 장면을 만들어 나가면서도 테스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손으로 뻗어 나가는, 제가 만들어 내는 검로(劍路)를 응당 당연하다는 듯 계속 이어 갈 뿐.

‘이게 흐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흐름일지라도 계속 이어 간다면 자연스러워질 터. 이걸 에나가 보고 느낄 수 있으려나.’

사람을 낚고자 도적들과 마주하였지만, 이건 동시에 에나에게 보여 주는 수업이기도 했다.

흐름을 보고 읽음으로써 그가 가르쳐 주는 걸 배우길 바라는 하나의 수업!

과연 그녀가 따라와 줄지는 알 수 없었다.

테스는 계속해서 흐름을 이어 나갈 뿐이었다.

“크아악!”

“컥…….”

그 흐름의 제물은 바로 눈앞의 도적들.

투우웅. 퉁.

도도한 흐름에 마주할 때마다 도적들은 속절없이 무너져 갔다.

열심히 갈아 냈던 낫도 뾰족하니 깎아 냈던 창날도 테스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무기든 사람이든 육중한 몸뚱어리든!

상관 없었다.

그저 닿는 족족, 그 거대한 어떤 흐름에 몸이 막히는 듯했다. 두꺼운 벽이 그들을 막는 듯한 느낌이었다.

단순히 손을 휘저을 뿐임에도 그는 벽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다 그 거대한 벽이 그들의 몸을 툭 쳐 내는 순간.

“켁…….”

온몸의 힘이 쑥 빠진다.

그들의 정신이 한순간에 암전이 되듯 쑥 꺼져 버렸다.

닿는 족족 기절하고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자들이 생겨났다.

“저, 저주인가…….”

“설마 마법사!?”

“뭔 미친 마법사가……. 저리 마법을 써!”

테스. 그자는 도적들이 지금껏 상대했던 자들과는 달랐다.

그의 손길을 마주하고 그에 대응하려 하면 할수록 격차가 더 크게 느껴졌다.

단순히 한 인간.

작은 인간 하나와 마주 서 있을 뿐인데도 사방이 벽으로 가로막힌 느낌이었다.

사방의 모든 영역이 테스의 것이 되어 있었다.

땅을 디디고 서 있는 발은 마치 늪으로 빠져드는 듯했고, 가만있어도 거대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대체…….’

‘우, 우리가 누구한테 덤벼든 거야…….’

도무지 한 인간이 해낼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한 무위.

그리고 힘!

대단한 무위를 선보임에도 테스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였다.

무표정했다.

되레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더 안으로 침잠해 갈 뿐이었다.

* * *

그의 침잠.

외부가 아닌 내부였다.

자기 자신을 향한 침잠이었다.

그는 연이어 흐름을 만들고, 도적들을 제압해 나가며 생각했다.

‘이리 흐름을 보이는 것도 재밌군……. 연이어지는 흐름이라……. 하긴 이 흐름이란 것도 결국 언젠가는 끊어지기 마련인데.’

처음 그가 검 없이 나선 이유는 도적들을 완벽히 제압하기 위함이었으며.

굳이 연류검을 손수 펼친 것은 노력하는 에나를 어여삐 여겨, 한 수를 가르쳐 주기 위함이었다.

이 한 수를 보고 그녀가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가벼이 펼쳐 내는 그만의 한 자락이었다.

한데 펼쳐 내면 펼쳐 낼수록 그에게 와 닿는 바가 있었다.

‘흐름이라……. 결국 이 흐름을 연류검에 담았던 것도 이화, 그 아이를 위해서였지. 에나에게 이걸 넘긴 건 결국 그때의 아쉬움을 풀어내고자 전수해 줬던 거고. 그거도 일종의 집착이었을까?’

그건 자기 자신에 대한 앎이었다.

일종의 작은 깨달음이랄까.

저도 모르게 이화의 흔적을 에나에게서 찾으려 했던 것.

작은 변덕이라고 여러 번 되뇌었지만, 실은 에나에게서 이화의 흔적을 찾으려 애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이번만은 전과 다른 결과를 만들겠다고 생각하며 집착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건 일종의 아쉬움이나 변덕 따위가 아니었다.

다른 거였다.

‘……집착이었다. 맞네. 그거였어.’

의선으로서의 기억과 테스로서의 기억이 혼재되며 만들어지는 혼돈.

그 안에서 부린 집착이었을 따름이다.

의선이었던 그때와 테스로서의 지금이 다를진대.

쓸데없이 집착을 부려 중원에서 끊어졌던 이화의 흐름을 이 세계에까지 이어 왔을 뿐이었다.

그 집착 덕에 에나는 살아났고, 그 마음이 선의였다지만.

과연 그게 선의로만 이루어졌던 일이었을까?

그럴 리가 없다.

단순히 집착이 낳은 결과물일 뿐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내 알 바냐. 결국 그 집착도 내 선택인데, 쯧.’

이 집착을 깨닫게 됐다는 게 중요했다.

집착을 알게 되며 얻은 깨달음.

자신의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알게 되었다는 게 중요했다.

그건 테스 자신이 저도 모르게 미뤄 두었던, 자기 본질에 대한 파악과도 같은 의미였으니까.

의선으로서의 그.

테스로서의 그.

두 개의 기억이 혼재된 가운데 계속해서 오염되어 가는 정신.

그 정신 상태를 제삼자처럼 가만 지켜만 보다 보니 만들어진 삐뚤어진 마음이었음을 이제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내재된 정신적 어긋남도 읽어 낼 수 있게 됐다.

처음 옳다고 본 자신의 심상은 비틀려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내 내부가 어긋나고 있었구나……. 멍청했네.’

그 삐뚤어짐을 깨닫는 순간.

테스는 작게 혀를 찼다.

세상의 본질을 깨닫고, 기적을 부린다고 하는 마법사인 자신이다. 고작 3클래스밖에 되지 못했어도 깨달음을 얻기까지 했다.

그런 주제에 세상은커녕, 자기 자신의 마음의 상태도 모른 채 여기까지 올 줄이야.

이 작은 비틀림을 깨닫지 못한 채로 계속 이 상태에서 있었다면 자신은 어찌 되었을까.

결국 무너졌을 거다.

‘내부 심상의 틈이 계속해서 커져 가다가…… 못내 완전히 비틀어졌겠지. 그리고 그게 결국 주화입마로 오는 거고.’

주화입마라. 위험한 일이었다.

육체보다도 심상이 무너졌을 때, 주화입마가 가져다주는 폐해는 더욱 컸다.

그 커다란 재앙의 씨앗이 내부에서 자라는지도 모르고 살아 왔다.

‘……앞으로는 주의해야겠어.’

계속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 파악하는 걸 미루다 보니 만들어진 틈이었다.

스스슷-!

비틀린 틈을 완전히 깨닫는 그 순간, 벌어졌던 틈이 점차 좁아지는 게 느껴졌다.

이 틈은 얼마 안 가 사라질 터.

그럼에도 테스는 제 자신이 주의해야 할 걸 확실히 깨달았다.

‘무엇이든 더 깊이 파고들되, 언제나 잡아먹히지 않게 조심해야지.’

마법과 무공.

하나만 있어도 감히 한 인간이 조율하기 어려운 힘.

그 힘을 두 가지나 가지고 휘두르는 주제에 자신은 너무도 안일했다.

힘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신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함을 깨달았다.

그러지 않는다면.

“커어어억.”

“끝이군.”

도망치다 잡힌 마지막 도적처럼.

그 자신의 의지로 이어 가던 흐름이 순식간에 끊기고, 자기 자신을 잡아먹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후…….”

그가 자신을 깨닫는 사이.

그가 상대하고 있던 도적들은 모두 무너져 내렸다.

테스는 제 손으로 계속해 이어 가고 있던 연류검의 흐름을 끊어 냈다.

그리고 동시에 제 내부를 관조했다. 내부 심상에 있던 작은 집착들이 완전히 사라졌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 * *

관조는 금방이었다.

그가 심상을 관조하는 그 사이, 감탄의 눈으로 지켜보던 에나가 그를 향해 외쳤다.

“테스 님!”

“잘 본 거냐?”

“아주 조금은 엿본 거 같아요.”

“좋아. 잘했다.”

테스는 실마리를 잡은 듯 보이는 그녀를 향해 히죽 웃어 줬다.

에나의 얼굴을 마주 보는 테스의 눈엔 전에는 항상 보이던 이화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제대로 바라봐 주는 셈인가.’

집착이 사라짐으로써 이화가 아닌 에나를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별거 아닌 차이일지 모르겠으나, 그로서는 큰 깨달음이나 다름없다.

‘좋네. 이제 전에 있던 집착은 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지.’

집착을 깨닫고 버림으로써 테스는 자신이 잡고 있던 전생의 집착 중 하나를 시원스레 떠나보냈음을 알게 되었다.

속이 시원했다.

동시에 알 수 없는 섭섭함이 느껴졌지만, 그뿐이다.

이제는 저 자신이 더는 이화를 찾지 않을 것도 그때 만들어진 결과물에 아쉬워하지도 않을 거란 걸 깨달았다.

전생을 격하고서야 얻은 집착의 버림이었지만, 또 어떠랴.

새로이 깨달았다는 게 중요했다.

이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전생의 자신과 테스로서 지금의 자신이 더욱 가까워졌음을 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후우……. 이게 전생과 일체화돼 가는 걸지도.’

테스로서의 정신이 유지되는 채로 전생의 의선으로서 기억에 성큼 더 다가가는 느낌이었다.

일체화라…….

무구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어쭙잖은 도적들을 잡은 거치고 상당한 성과를 얻었다.

열아홉의 도적을 전부 제압해 실성시킨 그.

그런 그가 무섭지도 않은지 에나는 빠르게 다가왔다.

“저도 언젠가 그런 흐름을 담아낼 수 있을까요?”

“너라면 충분히. 가능성은 차고 넘치지.”

“열심히 해 볼게요! 꼭요!”

“기대할게.”

“넵!”

테스는 올곧게 보게 된 에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에나와 그의 따뜻한 분위기는 잠시였다.

지금은 그가 만든 미끼에 파닥파닥 걸려 버린 도적들을 향해서 대가를 받아 낼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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