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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선, 황제되신다-44화 (44/191)

제44화

챕터 19.

그에게 필요한 것.

바로 힘.

일신의 무력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가 지금 가져야 할 건 그가 부릴 수 있을 외적인 힘이었다.

‘속내를 알고 처벌을 할 때 하더라도 우선 힘이 있어야 가능하지.’

언제까지고 그 홀로 장원을 지킬 수는 없는 터. 힘을 쓰겠다고 그가 바깥으로 나서면 장원의 전력은 순식간에 약해진다.

결국 그가 부릴 힘이 필요했다.

그게 바로 병사고, 병사를 구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품을 들여야 하는 게 당연했다.

‘괜히 영주 놈들이 병사를 대신해서 용병을 부리는 게 아니지.’

병사는 돈이 많이 들어갔다.

모으는 것도 돈이고 입고 무장을 시키는 것부터 훈련까지도 모조리 돈이다.

그럴싸한 무장만 시켜도 10골드는 족히 들어가는 데다 월봉으로 줘야 하는 돈도 제대로 주려면 1골드는 쳐줘야 했다.

1골드.

한 달간 용병을 고용해서 쓰는 거보다는 저렴하지만 일이 없을 평소에도 유지하고 두기엔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라.

병사 하나를 제대로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돈은 최소로 잡아도 15골드다.

열 명이면 150골드.

지휘관급이라도 두면 유지비는 더 올라간다.

스물만 상비군으로 쓴다고 해도 그 돈은 두 배로 올라간다.

여기에 기마병까지 추가하게 되면?

그때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기마 자체가 돈 잡아먹는 하마였다.

먹이는 비용도 상당하고 말을 무장시키자고 마갑을 구매하면 그 가격은 최소 수십 골드가 됐다.

“후음……. 이번에 말을 준 게 그저 선의로 준 게 아닐 수도 있겠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보통 장원주면 말을 먹이다가 파산한다는 이야기지. 뭐……. 꼭 그런 뜻으로 준 거는 아닌 거 같긴 한데.”

“저희 수익을 생각하면 파산은 안 할 거 같은데요.”

“우리야 특수하기는 하니까.”

“다, 테스 님 덕이죠.”

그나마 그의 장원은 사정이 낫긴 했다.

장원이 가져다주는 수익이야 아직 그의 성에 차지도 않는다만, 그에겐 비장의 무기인 홀스 파워가 있었다.

약효가 강화된 홀스 파워의 값은 20골드. 초기 버전의 홀스 파워가 10골드였다.

이 둘을 한 달 동안 주야장천 만들어 얻는 수익이 무려 한 달에 700골드가 넘었다.

특히 이번 거래처럼 600알을 대량으로 풀어 얻은 돈은 무려 900골드가 넘을 정도였다.

‘대장장이들이 슬슬 시설을 다 지으면……. 그때는 연단로도 확장할 수 있겠지. 생산량도 더 오를 테고.’

이번에 정착한 장인들이 연단로 확장만 해 준다면, 재료값을 제한다고 해도 족히 10000골드가 넘는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무려 10000골드!

작은 장원이 얻을 수 있는 수익이라 보기엔 큰돈이다.

하지만 언제나 모자랐다.

연단을 위한 재료를 보충해야 함은 물론이고, 연구를 위해서 꾸준히 마법 주문도 사 모아야 했다.

여기에 마나석 같은 귀한 마법 재료값을 생각하면 언제나 돈은 모자랄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병사라니.

돈 잡아먹는 하마를 스스로 들여야 하는 상황이 내킬 리가 없었다.

그래도 앞일을 생각하면 하기는 해야 했다.

“역시 낚시를 해야겠다.”

“예? 갑자기 낚시라뇨? 우리 해자에는 물 한 방울도 없잖아요.”

“허어이, 꼭 물고기만 낚는 게 낚시는 아니지.”

아무래도 사람 낚시를 해야 할 듯싶은 테스였다.

* * *

춘궁기나 다름없는 지금.

다른 장원들이 농사에 힘을 쏟고 있을 이때에, 테스는 손수 나서서 대장간을 만드는 데 힘을 썼다.

그는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마력 팔 생성. 다중.”

“오오오!”

“팔이 돋아난다!”

그는 마력을 이용해 두 개의 팔을 더 만들어 냈다.

마력으로 만들어 낸 팔이었다. 흔히 힘이 달리는 마법사가 간단한 일을 위해 만들어 내는 2클래스 마법인 마력 팔 생성.

테스는 이 마법을 본격적으로 활용했다.

처어억. 척.

두 개의 마력 팔을 이용해서 쉼 없이 자재를 날랐다.

마력으로 만들어진 팔이 길쭉길쭉 늘어나 물건을 옮길 때마다 주변에선 환호가 가득했다.

남은 두 팔로는 대장간을 꾸리기 위한 세밀한 작업을 도왔다.

그가 나선 덕분에 일은 금방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빨리 작업장을 완성할 줄이야…….”

“미리 준비를 해 놓았다고 해도 이 정도는 상상도 못 했는데…….”

가장 먼저 대장간이 세워졌다.

화로, 모루, 풀무, 집게, 망치…….

대장간에 필요한 온갖 것들이 마련되었다. 당장이라도 일을 시작할 수 있을 작업장이 만들어진 셈이었다.

“자네는 특기가 뭐지?”

“저는 방어구를 특기로 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자재는 만들 줄 알긴 합니다.”

“저, 저는 무기입니다! 특히 도검류에 특화돼 있습니다.”

새로 만든 대장간의 주인 대장장이들.

두 명의 대장장이는 서로 다른 특기를 지니고 있었다.

험상궂은 얼굴을 한 제비슨은 방어구였고 기사만 한 덩치를 지닌 위머프는 무기 만드는 걸 특기로 삼고 있었다.

그레놀이 신경을 써 준 덕분인지 다들 단순한 농기구 정도는 만들고 다듬을 줄 알았다.

“후음……. 병사가 오면 무구 만드는 값은 줄겠어.”

“일만 시켜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도 해내겠습니다!”

둘은 무슨 이유에선지 서로 경쟁하듯 제 능력을 어필해 왔다.

‘이건 신기한데.’

지배의 낙인이 찍혀 있다고 해도 노예가 적극적으로 일을 하려는 경우는 거의 드문 법.

무슨 이유에선지 이들은 꽤 적극적이었다.

‘가족이 그레놀한테 인질로라도 잡혀 있나. 이것도 나중에 한번 알아봐야겠어.’

이유를 떠나 이들이 적극적인 건 테스로선 썩 마음에 드는 태도였다.

“당장 농기구를 만들까요?”

“필요하시면 검도 하나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특히 전 롱소드가 특기입니다.”

“헛! 그럼 저는 흉갑이라도……. 사실, 흉갑보다는 편안한 부츠가 제 특기입니다만. 그거 하나는 죽이게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경쟁하듯 자신의 능력을 늘어놓는 둘.

옆에 있는 도제들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보였다.

둘을 보고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없이 철을 녹이고 풀무질을 하며 화로의 열을 올리고 있었다.

새로 완성된 대장간. 이 안에서 그럴싸한 물건을 만들겠다는 열망을 내비치고 있었다.

모두 꽤 기대를 하는 눈치.

테스는 이들의 기대에 걸맞지 않은 제안을 던졌다.

“간단하게 마차를 만들어 주게.”

“네!?”

“마차라굽쇼!?”

그의 주문을 들은 대장장이들의 눈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 * *

낚시를 하려면 미끼가 필요한 법.

테스가 사람을 낚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허름한 마차였다.

“잘 만들 필요는 없네. 꼭 허름해서 낡아 빠져야 해.”

괴이한 주문에 대장장이들은 더욱 당황해하며 답했다.

“……만들자마자 허름해야 한다는 거군요.”

“저희는 마차 만드는 게 특기가 절대 아닌지라……. 어떻게 만들든 허름해 보일 겁니다.”

“그거 좋은데!”

낡을수록 좋다니.

실력을 떠나 천생 장인인 둘로서는 도무지 이해를 못 하겠는 상황.

테스는 되레 신나 했다.

“이왕이면 얼기설기 겨우 이은 듯 만들게나.”

“구체적으로 어떤 식을 원하시는 건지……. 허 참…….”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어쭙잖은 행상인이 다룰 만한 싸구려 마차. 허름하고……. 겨우 중고로 구한 거 같은. 짐이 잔뜩 실려 삐걱대는 느낌의 마차 말일세.”

“대충 알 거 같습니다.”

“이해했습니다.”

열을 올리는 테스의 말을 경청한 둘의 머리엔 마차의 모습이 그림처럼 그려졌다.

돈 없는 싸구려 행상인. 그걸 모는 작은 말 한 마리.

말이 움직일 때마다 삐걱대는 마차의 소음.

어디 하나 정상적이지 않다. 자랑스럽기보다는 소위 쪽팔리다고 할 법한 그런 모습을 지닌 마차이지 않은가.

‘그걸 일부러 만들라고!?’

‘대체 첫 주문이 왜 이런 거야? 시험이라도 하시는 건가?’

이 알 수 없는 주문은 대체 뭔가.

그런 주문을 한 주제에 테스는 당당히 묻고 있었다.

“할 수 있지? 아무리 특기가 아니라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고 보는데?”

“물론 가능은 합니다만…….”

“대체 왜…….”

“그럼 믿지!”

연유를 설명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어서 만들어 내라는 눈빛만 보낼 뿐이었다.

‘에라, 만들면 어떻게든 되겠지.’

‘재료를 날렸다고……. 호되게 뭐라 하는 것만 아니면 다행이겠는데.’

참으로 괴팍한 주인을 만났다고 생각하며, 두 장인은 경쟁을 하다 말고 서로를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 * *

고작 3일.

두 장인들은 꾀를 내었다.

장원에 있는 전 장원주의 작은 마차를 가져다가 보수를 했다.

안 그래도 허름한 마차였다.

이걸 얼기설기 보수를 하니 딱 테스가 원하는 형태의 마차가 나왔다.

‘이야, 이것들 융통성 있네. 다행히 일머리가 있구만.’

테스는 그들이 마차를 가져오자마자 만족스러움을 느꼈다.

오죽하면 각기 10실버씩 포상금을 줄 정도다.

테스가 건네준 포상금을 받은 장인들. 그들은 생각지도 못한 포상금에 기뻐하면서도 영문을 몰라 하며 대장간으로 돌아갔다.

“이야, 정말 낡아 빠졌는데요? 벌써부터 마차 바퀴가 진창에 빠질 거 같지 않아요?”

“그게 포인트다. 딱 먹음직스러워 보이잖아?”

“예? 이런 마차가 먹음직스럽다고요!?”

“있다. 그런 게. 이게 우리 낚시를 도와줄 거야.”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테스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은 채로 마부석 옆을 탁탁 쳤다. 옆에 앉으라는 신호였다.

옆에 에나를 앉힌 채로, 테스는 마차를 몇 번 시험 운행을 했다.

‘겉은 낡았지만, 속은 멀쩡해. 생각보다 잘했는데?’

마차의 승차감은 의외로 안락했다.

겉은 신경 쓰지 않은 대신, 보수에는 꽤 신경을 쓴 게 분명하다.

튼튼하기까지 했다.

어지간한 진창은 쉽게 지나갈 듯싶었고 바퀴도 단단했다. 제대로 된 장인들이 손을 본 티가 났다.

* * *

“이 정도면 손에 익었다고 해도 되겠어.”

시험 가동을 통해서 마차 다루는 법을 깨달은 테스. 그는 하루의 시간을 소요해서 마차 안에 짐을 챙기고 장원 바깥을 나섰다.

“잘 지키고 있게나.”

“다녀오십쇼! 성문 꼭 닫고 장원주님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가 떠난 자리를 대신하여, 임시 장원주 자리는 게일이 맡았다.

마을의 베일리프이기도 한 게일은 꽤 믿음직스러운 자였다.

‘잘할 테지.’

테스에게 충성도가 넘치는 그다. 맡겨만 놓으면 제 몫은 다할 거였다.

저 멀리 떠나 온 장원이 보이고.

삐그덕- 삐그덕-.

아무도 없는 좁은 가도에 들어서자, 들리는 소리라곤 마차 바퀴가 돌며 내는 작은 소음뿐이었다.

소음을 방해한 건 에나였다.

오랜만에 단둘이 움직여서인지 에나의 표정은 작은 설렘이 엿보였다.

“이제 얼마나 떠나 있을 거예요?”

“떠나기는. 꽤 자주 장원을 왔다 갔다 해야 할 거다. 많이 낚으면, 그때 일이 끝나겠지.”

“그 낚시라는 말, 도무지 모르겠다니까요.”

에나의 설렘은 아주 잠시밖에 이어지지 않았다.

“후후, 보면 알 거다. 아, 저기 마침 오고 있잖나!”

“엑!?”

저 멀리 일단의 무리들이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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