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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선, 황제되신다-42화 (42/191)

제42화

챕터 17.

두꺼운 성벽.

지넬의 반만 따라 한다고 해도 그가 홀로 해내는 건 무리였다.

지름 4km. 무려 둘레가 12km가 넘는 대장벽을 건설하는 건 7클래스 대마법사 정도는 돼야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반대는 가능하다. 바로 성벽을 거꾸로 뒤집는 것.

“그게 해자지.”

그건 그도 할 만했다.

해자는 벽을 쌓기 위한 토대 공사도 할 필요가 없거니와, 위로 올릴 석재를 모을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거대한 구덩이를 파내면 될 뿐이다.

그조차도 홀로 도전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후음……. 짧으면 두 달, 길면 세 달 정도면 되려나.”

극한에 이른 대지 조종술을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진법과 마법을 섞어 버리면 그 위력은 충분하니까.

“파면서 나오는 흙들은 아까우니까……. 장원 사람들을 불러다 다듬어서 토성이라도 쌓으라고 해야겠네.”

계산상 일은 쉬웠다.

겨울 동안, 간간이 내려오는 몬스터를 상대하긴 해야겠지만 지금처럼 끝도 없이 계속 상대해야 하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처음부터 이럴 걸 그랬어. 하기는 아무리 의선의 경험이 있더라도 몬스터를 상대로 한 경험은 없었으니……. 이건 어쩔 수 없었나.”

그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해자를 팔지를 완벽히 가늠했고.

주변에 있던 에나를 불러다가 사람들을 데려오도록 시켰다.

때는 겨울.

딱히 할 일이 없는 장원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그가 부른 곳으로 다들 모여들었다.

모든 준비가 끝난 셈.

“자, 지금부터 일 좀 하자고.”

곧바로 마력을 마나에 공명시켰다.

* * *

처음 장원주가 불렀을 때.

바울은 올 게 왔다고 생각했다.

“이 겨울에 무슨 일을 시키려고 그러는 걸까?”

“다른 장원들처럼 해괴한 일을 시키겠나? 알잖나. 이번 장원주님은 특별한 거. 자네도 덕분에 치료를 받았잖나? 좀 억지스러운 일이라도 시키면 해 드려야지.”

평소라면 바울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 줄 게일.

그는 되레 바울에게 핀잔을 주고 있었다.

“흠흠……. 뭐 내가 안 한다고 했나. 골병도 고쳐 주셨는데, 당연히 해야지.”

“고럼. 그분의 말 아닌가. 자자, 에나 님이 빨리 오라고 하셨으니, 어서 가자고! 어서 속도를 안 올리고 뭐 하나?”

“허어 참, 가네. 가.”

완벽히 광신도가 되어 버린 제 친우였다.

하기야 이번에 온 장원주는 특별하긴 했다.

순식간에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았고. 아픈 사람 모두를 치료해 주기까지 했다.

어디 그뿐인가.

낡기만 한 시설들을 죄다 고쳐 주고, 그도 모자라 주변 몬스터들을 홀로 토벌하는 기염까지 토했다.

대단한 구경도 여러 번 했다.

장원주가 사람 몸통만 한 거대한 화염구를 몬스터에게 때려 박았을 때, 그때 일어났던 폭발의 위력은 지금도 잊히질 않는다.

‘게일이 허풍을 친 줄 알았는데 말이야.’

게일이 병사였던 시절, 그때 봤던 마법에 대해서 떠들 때만 해도 그게 다 허풍인 줄 알았다. 사람이 마법이란 걸 부려 봐야 얼마나 강하겠냐고 내심 생각했더랬다.

지금은 아니었다.

그때 그 위력은 게일이 말한 폭발의 위력 그 이상이었다.

화염구뿐만이 아니었다.

‘마법사인지…… 기사인지도 영 헷갈린단 말이지.’

불을 뿜고, 물을 뿜고.

그도 모자라 몸을 날려 몬스터의 대가리를 깨는 장면도 여러 번 봤다. 기사도 아닌데, 맨손으로 몬스터 대가리를 터트려 댄다.

겉이 아닌 속만! 바싹!

온갖 몬스터가 장원주의 손에서 뇌가 곤죽이 됐다.

특히, 마을 중앙에 걸어 놓은 아울베어의 사체는 지금 봐도 두려울 정도였다.

섬뜩한 이, 거대한 발톱, 그 원한 서린 눈빛이라니…….

저녁에 보면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장원주 말고도 놀라운 존재는 하나 더 있었다.

“어서 오세요. 속도를 좀 높일게요.”

“그, 그럽시다!”

이들을 이끌고 있는 에나.

그녀도 보통 여인은 아니었다. 검을 들고 있어도 자신보다 덩치가 작아서 약할 거라고 여겼는데, 웬걸.

장원주가 나간 사이, 먹이를 노리고 온 떠돌이 고블린이 들어왔을 때.

에나는 고작해야 검 세 번을 휘두르고 고블린 넷을 죽였다.

둘, 셋만 잘못 들어와도 사람이 죽어 나가게 만드는 게 몬스터의 힘이다. 그런 고블린을 상대로 보였던 에나의 무위란.

‘괴물들이 장원에 들어온 게야…….’

장원주나 그가 데려온 에나나 참으로 무서운 인물들이지 싶었다.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몬스터를 잡아주고. 장원 주민을 치료해 주고 하는 모든 일들이 이 좁은 장원에는 득이 되었으니까.

그가 무슨 일을 벌이든 나쁘지는 않으니.

앞으로는 설레발을 치기보단, 침착하게 지켜볼 거라고 다짐까지 했다.

침착하자는 그 다짐.

방금 전까지만 해도 꼭 지킬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 왔군. 이제부터 자네들이 할 일은 하나네. 흙더미가 생겨나면 그걸 다듬는 거야.”

“흙 말입니까? 그게 어디서 갑자기 생겨납니까?”

“바로 지금 생겨날 걸세.”

투우웅.

장원주가 가만 서 있던 땅에 발을 굴리자 거대한 울림이 생겼다.

그 울림에 디디고 선 땅이 흔들렸다.

흔들리는 땅 위. 침착하자던 그의 다짐이 깨지는 건 불과 몇 초면 충분했다.

“으어어어억!?”

“이, 이게 뭐야.”

“지진인가!”

쪽팔린 일은 아니었다.

언제나 침착하던 게일도 덜덜 떨고 있었으니까.

투우웅. 퉁.

그들의 떨림에 상관없이 테스는 연신 발을 굴렸다.

그때마다 울림은 계속해서 커졌다. 땅과 장원주가 공명하는 듯 보이는 건 착각이었을까.

“흐, 흙이 올라온다!”

“저긴 꺼지고 있어!”

지형지물이 순식간에 바뀌고 있었다.

오우거가 들어갈 법한 거대한 구덩이가 펑펑 파이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흙이 위로 솟구쳤다.

그뿐이랴.

조금씩 파이던 흙들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물처럼 제 살들을 내주고 연결됐다. 전설 속 토룡이 움직이며 흔적을 만들어 내는 듯했다.

거대한 궤적. 파이고 이어지는 땅.

“미, 미친…….”

“오오오, 진짜 흙이 솟아나온다.”

“에설, 이 미친놈아. 그게 중요하냐. 땅이 살아 움직인다고! 움직여!”

“으어…….”

이건 전설 속 토룡 따위가 벌이는 일이 아니었다.

그의 눈앞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궤적이고, 기적이었다.

‘대체 이게 뭐야!’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자 바울은 방금 제가 했던 다짐 따윈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순식간에 마을을 잡아먹고도 남을 만한 구덩이가 파였다.

그 어마어마한 일을 해 놓고도 괴물 같은 장원주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었다.

바로 이전처럼 굳건한 눈을 하고 그들을 바라볼 뿐이다.

“자아, 이쯤 쌓아 놓았으면 그 뒤는 할 줄 알겠지? 튼튼하게도 바라지 않아. 그냥 잘만 다듬어 놓으라고. 알겠나?”

“……며, 명대로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꼭 해낼게요!”

괴물 같은 장원주의 명령에 그들이 답할 수 있는 건 하나.

오로지 긍정뿐.

그들의 적극적인 모습을 본 장원주 테스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웃어 보였다.

그러곤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마법을 하나 더 부렸다.

“오늘 일이 끝나면 품삯을 쳐주지.”

“오오오오!”

바로 일에 대한 대가였다.

* * *

장원주가 기적을 일으킨 지가 어언 두 달.

겨울이 점점 더 깊어감에도 영지 주변은 시끌벅적했다.

이른 아침이면 장원주가 나서서 종이 더미를 뿌렸다.

“햐, 또 날아간다.”

“오오, 아름답구먼.”

그가 날린 종이 더미는 하나둘씩 흩어져 나비처럼 아름답게 날았다.

제자리를 찾아서 날아간 나비들은 스스로 불타오른 뒤 사라졌다.

그 나비를 장원주는 부적이라고 칭했다.

그 부적들이 자리를 잡고,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자리 잡는 그 순간.

“대지 조종. 역전.”

그그그그긍-!

장원주는 땅을 조종했다.

다시금 거대한 궤적들이 만들어졌다.

그때마다 게일의 자식 중 하나인 셀리움은 몸을 떨곤 했다.

“또, 왜 그러냐? 몸이 안 좋아?”

“아, 아니에요. 왠지 무서워서…….”

“후음……. 저거 장원주님이 벌이는 마법이라고 했잖아. 우리한테 해가 되는 거도 아닌데 너무 걱정 말라고.”

“아, 알고 있어요. 그런데도 어쩐지 몸이 떨려서…….”

“언제 한번 장원주님한테 가서 이야기해 보자고. 우선 앉아 있어. 내가 네 몫은 도와줄 터이니.”

“가, 감사합니다!”

유독 셀리움만이 몸을 떨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서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당장 품삯을 챙겨야 하는 바울로서는 셀리움을 대신해 일을 좀 더 하는 게 당장 최선의 선의였다.

다시 한 달의 시간이 더 흘렀다.

그사이, 셀리움은 장원주로부터 진찰을 받을 수 있었다.

장원주가 마법을 부릴 때마다 몸을 떠니 몸이 허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웬걸.

“아저씨! 저, 저…….”

“왜? 죽을병에 걸렸다고 하시든!? 그럼 어서 가서 빌어 봐라. 혹시 아냐, 장원주님이 치료를 해 주실지!”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럼 뭔데!? 허어이……. 정신이 돌아 삔 건가? 어쩐다…….”

다짐을 잊은 바울이 이번에도 설레발을 치는데, 답은 전혀 예상치 못한 거였다.

“저 마법에 재능이 있대요! 몸을 떠는 게 마나를 느껴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하시는데요!? 앞으로 더 가까이 와서 느껴 보래요!”

“……뭣? 네가!?”

“네, 넵! 저 잘하면 마법사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요!”

“허……. 추, 축하한다!”

알고 보니 게일의 자식이 마법에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단다.

‘대체 어떻게? 게일이 얘를 뭘 먹이고 키웠더라?’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 그를 지켜보는 바울은 얼떨떨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도 친우의 자식이 재능을 가졌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몇 번이고 셀리움에게 축하를 하고 같이 기뻐해 줬다.

그날, 오래도록 모은 품삯 일부를 이용해 전에 없던 식사 자리까지 마련했을 정도였다.

그사이에도 시간이 흘러갔다.

그그그그그긍-!

땅은 매번 흔들리며 속살을 내주었고.

깊이 파인 해자가 길게 이어져 가면 갈수록 점차 몬스터들의 침입은 사라져 갔다.

간간이 달려드는 겁 모르는 몬스터들이 있긴 했다.

그러나 그쯤이야 장원주까지 나설 것도 없었다.

“감히 어딜!”

날카로운 검을 지닌 에나의 손속을 못 이기고 베어졌다.

완벽한 안전 속에서 작업을 이어 가기를 어언 넉 달.

매섭던 겨울 추위도 슬슬 풀리어 갔다.

그사이 해자는 완전히 파이고 그들이 다듬는 토성도 그럴듯한 모습이 돼 갔다.

공성 병기도 없이 공략할 정도로 야트막한 토성이었다.

그나마도 해자의 문이 있을 곳에 만들어 놓은 높은 목책이 없었으면 성 기능도 못 할 수준이었다.

그래도 장원 주민들에겐 자랑스러운 성이었다.

“이야, 우리가 이걸 완성할 줄이야.”

“장원주님이 아니었으면…… 생각도 못 할 일이지.”

완벽하게 그들을 보호해 주는 방벽이었고.

“우리를 지켜 주신다고 하는 건데……. 이걸 한다고 돈까지 쥐어 주실 줄은 몰랐으니.”

“흐흐. 행운이지, 행운!”

“덕분에 살 만하구먼. 몬스터 침입도 없는 겨울이라니. 최고라고!”

그들에게는 갑작스럽게 주어진 행운이었다. 그것도.

“옆 장원의 헨슨네가 얼마 전 와서 부러워하는 거 봤나?”

“봤지! 전에 자기 장원주님은 기사라고 어깨에 잔뜩 힘주더니만. 너네 장원주님은 이런 거 못 하지 않느냐고 한참을 놀렸네.”

“크크큭……. 거 잘했어.”

주변 장원의 주민들이 부러워할 법한 거대한 행운!

“이게 다 장원주님 덕분이지.”

“암암, 내 평생 그분 말씀이라면 죽으래도 죽지!”

“정말로?”

“허이, 말이 그렇다는 거 아닌가. 말이! 흐흐. 그래도, 뭔 일이든 말씀하시면 돕기는 할 거야.”

어느새.

장원주 테스에 대한 그들의 충성도는 최고조를 찍고 있었다.

* * *

슬슬 봄이 올 때쯤이었다.

“모두 고생했다! 자, 이것으로 끝을 고하도록 하자.”

“와아아아!”

동서남북. 네 개의 두꺼운 나무문이 완성되는 것으로 장원 최대의 토목 사업은 막을 내렸다.

마을에서는 작은 축제가 열렸다.

안전이 확보된 것을 축하하는 축제였다.

다들 왁자지껄하였고, 기뻐했다.

안전이 확보된 이곳 장원의 주민들은 다음에 있을 일을 기대했다.

축제가 끝난 그다음.

슬슬 본업으로 돌아가서 장원 주민들이 봄 농사 준비를 하기 시작했을 때, 겨울 동안 그들의 장원주가 기다리던 자가 찾아왔다.

“허어……. 이 무슨 해괴한 일이랍니까?”

“왔나? 예상보다도 더 걸렸군, 그레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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