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의선, 황제되신다-37화 (37/191)

제37화

챕터 12.

“덕분에 좋아졌지.”

눈을 빛내며 대답하는 행정관의 이름은 슈발.

“하하, 덕분이라뇨.”

“후음, 자세히는 모르나 뭐 상관없겠지.”

이전에 내게 폐허나 다름없던 저택을 넘겼던 게 바로 그였다.

다 늙은 노인. 황금만을 탐하던 그는 전보다 더 정정해 보였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걸지도.’

몇 달 전, 아멀프 도둑 길드가 사라짐과 동시에 행정관 몇도 사라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경비대에서 어떤 조사도 하지 않았다는 게 특이할 뿐.

그 뒤, 이 슈발은 더 높이 올라갔다.

행정관의 끝. 이제 행정관장이 되었으니까.

덕분에 꽤 여러 과정을 거치고서야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이전에 돈 몇 푼을 주면 만날 수 있었던 때와는 다르다는 소리다.

슈발은 곧바로 본론부터 꺼냈다.

“그나저나 자네가 전비(戰備) 지원을 하겠다고?”

“거창하게 전비 지원이라뇨. 도시 지넬에서 돈을 벌 수 있었으니 작은 기부를 하겠다는 거죠.”

“그 대신에 작은 장원 하나를 얻겠다, 이건가? 재밌는 발상이군.”

바로 치고 들어왔다.

“적당한 요령이라 생각해 주시죠.”

“요령이라, 요령……. 자네의 나이에 그런 요령을 부리는 게 신기하네만. 나쁘진 않은 방식이야.”

슈발은 제 앞의 책상을 손으로 툭툭 쳤다.

‘이미 다 조율이 끝났으면서, 생각하는 척은……. 쯧.’

내가 생각해 낸 편법. 별달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일종의 투자랄까.

도시 지넬의 주인인 데프 백작이 영지전에 참전한 지금, 돈 잡아먹는 하마와도 같은 전쟁에서 꽤 많은 돈이 소요되고 있었다.

가장 피해를 보는 건 전장 가까이에 위치한 지넬이었다.

휘청거릴 정도는 아니지만 도시의 상당한 돈이 전장에 흘러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당장 회수도 힘들었다.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는 그 어떤 자도 이득을 볼 수 없는 법이니까.

덕분에 틈이 벌어졌고.

테스는 그 틈을 노렸을 뿐이다.

‘전장에서 꼭 몸을 굴려서 공을 세울 필요가 있나. 돈으로도 얼마든지 공을 세울 수가 있는 거지.’

고민하는 척을 하는 슈발. 테스는 말을 이었다.

“큰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작은 장원이면 충분합니다.”

“외곽이어도 상관없겠는가?”

“후음……. 외곽이란 말이죠?”

“알다시피 이미 도시 가까이 있는 장원들은 죄다 주인이 있지 않은가. 허허.”

외곽이라.

보통이라면 절대 사절해야 할 게 외부의 장원이었다.

‘슈발……. 새끼, 거저먹으려고 드네.’

장원도 자체 징집령은 가능했다. 최대 50명까지도 보유하는 게 법으로 허락됐으니까.

하지만 조막만 한 장원에 징집을 해 봐야 몇 명이나 되겠는가.

전체 인원이 100도 안 되는 게 장원이다. 싸울 자를 모집해 봐야 나오는 수는 채 20명도 안 된다.

이 중 장원을 굴리기 위한 최소의 인원을 제외하면?

그 수는 더욱 줄어든다.

결국 자체적인 방어는 불가능하단 소리.

도시 중심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방어는 더욱 힘들어진다.

맛있는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용병대를 가장한 도적단, 산적, 전쟁으로 굶주린 영지군. 많은 자들이 작은 장원을 노리는 건 상식이었다.

‘외곽은 방랑 기사 놈들까지 노릴 정도니……. 쯧.’

결국 슈발은 장원에 대한 권리만 팔 테니 알아서 살아남으란 소리였다.

이러니 거저먹으려 든다고 욕할 수밖에.

하지만 테스로선 그의 제안이 반가웠다.

앞으로 온갖 실험을 해야 할 것을 생각하면 외곽이면 외곽일수록 더욱 좋았으니까. 때문에 테스는 슈발의 말을 역으로 치고 들어갔다.

“어디가 최고 외곽지입니까?”

“호오…….”

한번 떠봤는데, 이걸 받느냐는 의미로 슈발이 테스를 쳐다본다.

“말씀드렸다시피 작은 거면 됩니다. 작은 거면…….”

“허허, 기부가 진심이었구먼. 그렇다면야 이야기가 수월해지지. 자자, 여럿 후보를 줄 터이니 한번 보게나.”

늙은 여우가 제 품에 있던 것들 중 가장 가치 낮은 것을 꺼내 들었다.

저는 싼 걸 내놓고 더 많은 황금을 얻어 낼 거라고 여기는 표정.

가증스러웠다.

‘두고 봐라. 생각보다 가치 있는 걸 넘겨줬다고 후회할 테니까.’

테스는 그런 슈발의 내심을 비웃으며, 그가 펼친 지도 아래에 장원들을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 * *

9500골드.

외곽에 있는 장원들 중에서 가장 최하의 가치를 지닌 걸 구매하는 데 들인 금액이었다.

15가구에 인구만 68명이 살고 있지만, 그 위치가 최악인 곳.

위로는 테스론이요. 지켜 줄 지넬과는 멀고 그 가까이에는 울픈 산맥의 지류까지 있어 최악의 치안을 자랑하는 장원.

전쟁이 벌어지는 지금, 그 가치는 더욱 하락해 있었다.

“허허, 기부를 하고 득을 얻어 가니 자네는 마법사가 아니라 상인을 해도 되겠어.”

“……하하, 그런 소리를 꽤 듣긴 합니다.”

그가 직접 고른 장원이지만, 슈발의 저런 소리를 듣고 있자니 배알이 꼴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멍청하긴……. 그래도 이게 나와 줄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배알이 꼴리는 마음과 모순되게 테스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그는 철저히 계획 아래에서 움직이는 자이지, 충동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자가 아니었다.

테스는 이미 이 작은 장원을 알아봤었다.

그곳의 입지, 주변 환경, 장원의 상태. 이미 여러 부분을 직접 살피고, 그 가치를 매긴 지 오래였다.

그런 그가 보기에 9500골드는.

‘거저지. 써먹기 나름인 곳이야. 전 재산 12000골드는 다 써야 할 거라고 여겼는데, 이쯤이면 딱 좋다.’

앞으로 있을 수익으로 봐서는 푼돈이나 다름없었다.

테스가 결정을 내리니 몸이 달아오른 쪽은 슈발이었다.

그는 테스가 떠날세라 곧바로 거래를 끝마치고자 했다.

“자자, 그럼 오늘 바로 기부할 참인가? 내 그럼 바로 처리를 해 주지.”

“이미 다 준비해 왔습죠.”

“허허. 저번도 그렇지만, 자네는 일 처리가 참 빨라서 좋으이. 잠시만 기다리게.”

이번에는 작은 뇌물도 필요 없었다.

슈발은 얼마 가지 않아 서류를 정리해 왔고, 그 위에 영주의 대리 직인을 떡하니 찍어 주었다.

붉게 물든 인장 자국이 채 마르기도 전에 테스에게 서류를 건넸다.

“도시 지넬에 정식으로 합류한 걸 환영하네. 테스 장원주.”

“영광입니다.”

늙은 여우로부터 보물을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 * *

‘됐다!’

군부에 투신하지 않고도 그리고 공을 세우지 않고도 영지를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도시 지넬 휘하에 있으니 세금도 바쳐야 하겠지만, 그야 그건 어디 있든 해야 하는 일이지 않은가.

시간을 죽이지 않고 원하는 걸 바로 얻었다는 게 중요했다.

테스는 곧바로 채비를 했다.

‘정리해야 할 게 꽤 많겠어.’

마탑의 베빈을 만나 앞으로의 거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야 했고.

그가 준비한 몇 가지를 위하여 보지 않던 이들을 만나 봐야 했다.

용병 길드의 울란을 만나 적당히 기름칠도 쳐 두었다.

어지간한 일이야 그 홀로 처리하겠지만, 후에 용병의 손을 빌릴 수도 있기에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좋은 관계를 쌓아 둔 거였다.

그 며칠 사이.

그를 대신하여 집 정리를 끝마친 건 에나였다.

“짐은 다 쌌니?”

“하나도 빠짐 없이요. 연단로인가 하는 거도 공간 주머니에 다 넣어 놓았어요.”

“잘했다.”

“정말, 저도 같이 따라가도 되는 거죠?”

“물론이지.”

본래라면 테스 곁을 떠났어야 할 에나였다.

테스가 저택을 떠날 때 그녀와도 헤어지기로 하였으니까. 그게 처음 그와 그녀가 계약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같이 가기를 원했다.

이번에는 계약을 핑계 삼지도 않았다. 그녀는 말을 돌려 하는 대신에 같이 따라가고 싶다고 직설적으로 말을 했다.

‘자기 의견을 제대로 말할 수 있다는 것도 일종의 성장이나 다름없지. 좋은 일이야.’

그에 대한 테스의 대답은 긍정이었다.

같이할 수 있다는 테스의 말에 환히 웃던 그녀의 모습. 테스로서도 머리에 박힐 정도로 퍽이나 귀여웠다.

“자, 그럼 갈까?”

“넵!”

이제 지금껏 몸담고 있던 작은 영역을 떠날 때였다.

* * *

테스가 도시 지넬을 떠나 제 장원으로 향하는 여정은 순조로웠다.

그 흔한 도적 하나도 걸리지 않았다.

‘전쟁이 치열하긴 한가 보네.’

하기야 잘못하다가 잡히면 징집을 당해 그대로 전장에서 고기 방패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도시 주변을 눈에 불을 켠 병사들이 이리저리 다니고 있었다. 어지간한 멍청이가 아니고서야 도시 가까이서 일을 벌일 리 없었다.

잘해야 그의 정원 정도는 가야 일이 벌어질 터.

덕분에 테스는 평범한 일상을 깨지 않으며, 여정을 이어 갈 수 있었다.

그로부터 딱 3일 뒤.

그는 제 장원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생각보다 크네요?”

“그나마 이 장원에서 봐줄 만한 부분이지.”

고작 15가구밖에 없지만, 그보다 세 배는 많은 가구가 살기에 충분한 크기의 장원에 닿을 수 있었다.

겉으로 본 크기는 꽤 컸지만, 장원은 이미 한계 상황에 가까워 있었다.

‘수원이 워낙에 부족하니…….’

당장 이 영지 내에 수원지부터가 우물 하나뿐이었다.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우물 외에 그 어떤 수원지도 이곳엔 없었다.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인 물이 없다 보니 가구 수를 더 늘리는 건 한계일 수밖에 없었다.

우물의 물을 길어 농사를 짓는 거 자체도 힘든 상황이었으니까.

투자를 해도 더 크기를 키우기 힘든 곳이다 보니, 마을이 조성된 뒤로 그 어떤 확장도 하지 못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이 장원이었다.

그런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까.

그를 맞이하고자 나선 장원 사람들의 행색도 좋지 못했다.

“장원주님을……. 처음 뵙습니다. 영광입니다. 장원의 대리인이자 베일리프를 맡고 있던 게일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하네.”

새로운 장원주를 환영하겠답시고 준비한 상차림. 소박하다 못해 초라해 보일 지경이었다.

허여멀건 죽에 작은 새를 삶은 듯 보인 찜.

‘이들에겐 이게 최선이었겠지.’

투박하며 부족했다.

각성 이전에 머물던 여관이 생각나는 식단이었다.

환영 인사를 받기는커녕 되레 베풀어야 하는 상황.

의선으로서의 경험으로 사람을 어찌 다뤄야 할지 아는 테스다.

그는 미리 준비한 것들을 먼저 풀었다.

바로 식량이었다.

“오는 길에 적당히 먹을 곡물들을 사 왔으니 요기나 하게나. 아, 고기도 충분히 받도록 하고.”

“오오오! 감사합니다!”

이때를 대비하여 준비해 온 식량 일부.

아주 조금 푼 것만으로도 장원 주민들의 긴장은 한결 가신 듯 보였다.

“얼마 만에 보는 고기야!”

“고기라니!”

테스를 두렵게 바라보던 자들 중 일부의 눈에서 호감이 깃들었다. 동시에 작은 탐욕이 이는 것도 테스는 놓치지 않았다.

‘사람이란 게 원래 그런 법이지.’

눈빛의 의미가 그에게는 훤히 보였다.

욕망이고 욕심이다.

고작 여자애 하나만 데리고 온 로브 입은 장원주.

그러나 짐은 많아 보이는 이 장원주를 털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을 거다.

오자마자 음식을 푸는 걸 보아하니, 잘만 하면 벗겨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겠지.

예상했던 바다.

작은 욕망쯤 뒤집는 건 쉬웠다.

“후음, 그나저나 베일리프 자네는 몸 상태가 영 좋아 보이지 않는군?”

“예?”

“잠시 이리로 와 보게나. 회복.”

작은 힘을 적절히 보여 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꼭 전투용을 보일 필요도 없지. 위협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거든.’

마법의 빛이 베일리프에게 스미는 것. 그것만으로도 효과는 탁월했다.

작은 장원의 주민들에게 마법사는 경이적인 존재이니까.

“오오오! 마법이다! 마법!”

“자, 장원주가 마법사셨어!?”

신비한 힘을 다루는 자는 언제나 경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적절한 식량. 치유.

호의를 보여 사람들을 구슬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가 내놓은 식량들로 분위기는 부드럽게 무르익어 갔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를 우습게 보는 자는 없었다. 마법이 주는 효과다.

위엄도 세우고, 호의도 보여 주었다.

마련된 식사 자리는 장원의 작은 축제가 됐다.

너도 나도 신이 나서 떠들었고, 입에 부지런히 음식들을 넣었다.

‘이 정도면 됐겠어.’

적당히 베풀었다 싶었을 때.

테스는 은밀히 게일에게 눈짓했다. 한창 고기를 뜯던 게일이 조심스레 그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신지…….”

“간단히 이야기나 좀 하지.”

테스는 긴장한 그를 데리고, 마련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제가 가진 장원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으니 이제는 정확히 무얼 가졌는지 현황을 파악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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