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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선, 황제되신다-35화 (35/191)

제35화

챕터 10.

자신만의 준비를 위하여 테스가 들어선 곳은 마탑이었다.

베빈이 반기는 가운데, 그는 마법 주문서 카탈로그를 요청했다.

그의 목적을 이미 짐작했는지, 그녀는 방긋 웃으며 카탈로그를 가져다줬다.

‘요거 봐라?’

그녀가 건네준 카탈로그는 전과 달랐다.

[클래스 3]

오로지 3클래스의 마법만 적혀 있을 게 분명한 카탈로그를 꺼내서 건네줬다. 마치 그가 필요로 하는 걸 이미 알고 있는 거처럼.

미리 알지 않고선 이리 카탈로그가 준비될 리 없었다.

“내가 3클래스에 오른 걸 어떻게 알고 준비한 거지?”

“그리 화려하게 전투를 벌여 놓고, 무려 일주일을 집에만 있었잖아요. 무언가 정리할 게 있었겠죠. 그럼 뻔하지 않겠어요?”

“하 참.”

베빈이 아멀프 길드와 전투 결과를 아는 건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하지만 그 결과를 읽어 내고 그의 깨달음을 알아냈으리라는 것까지는 예측하지 못했다.

‘하여간 보통내기가 아냐.’

장난스레 혀를 내미는 그녀의 표정보다도, 그녀 눈에 깃든 총기가 테스의 주의를 끌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숨겨진 힘에 그도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처음 봤을 때 3클래스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조금 있다 보니 그보다 더 강해 보였고, 지금은 또 그 이상이군. 베빈, 당신 대체 어떻게 돼먹은 거야?”

“어머, 어떻게 돼먹다뇨? 보이는 그대로죠.”

“그 보이는 게 매번 달라지니 문제지.”

깨달음을 얻어 3클래스에 이른 지금.

그녀가 더 깊고 강하게 보였다.

전능감이 느껴질 정도로 강대한 힘을 가져다준 깨달음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최소 4클래스 이상이라고. 어쩌면 5클래스.

혹은 그 이상이란 듯 짙은 마력의 향이 그의 감각을 간질이고 있었다.

“제가 좀 변화무쌍한 편이랍니다?”

“퍽이나.”

“칫…….”

장난치는 꼴을 봐서는 더 설명해 줄 리 없어 보였다.

“어서 건네준 거나 보라고요. 무려 3클래스 주문서라니까요?”

“헹. 그래 봐야 전에 본 거가 좀 더 길게 쓰여 있어야……. 어?”

테스는 그녀의 말대로 주문서를 꺼내 살폈다.

살펴본 카탈로그의 내용 중 3클래스 마법은 전과 같아야 했다.

아니었다.

‘또 다른 주문들이 추가돼 있어? 마탑 전용 주문은 아니긴 한데……. 그렇다고 해도 또 새로운 거라고?’

예상보다 더 많은 주문 수.

그 수에 놀라 그녀를 쳐다보자, 베빈이 장난스레 윙크를 했다.

‘오늘 참…… 여러 번 놀라네.’

비욘 그리고 베빈.

몇 안 되는 인연들이 그를 꽤 많이 놀라게 한다고 생각하며, 그는 두꺼운 주문서 카탈로그에 시선을 던졌다.

카탈로그에 쓰여 있는 주문의 개수가 훨씬 많아졌다.

폭염구. 냉염구. 수중 호흡 부여. 수면 보행. 저속화. 화염 방패. 마나 막. 주박. 마법 부여. 번개의 화살. 마법 해제…….

당장 그의 눈에 보이는 가짓수만 하더라도 60개가 넘었다.

‘전보다 20개는 더 많아졌다.’

딱 한 가지를 고를 것도 없었다.

존재하는 마법 모두가 그의 시선을 끌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경지가 높아질수록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 마법이란 존재가 아니던가.

1클래스 때는 자기 존재를 왜곡하고.

2클래스에 들어서는 주변에 영향력을 약간이나마 끼칠 수 있다고 친다면.

3클래스부터는 그 영향력이 더욱 강화돼 간다.

고작해야 작은 영역일 뿐이지만, 조금이나마 현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건 때로 자신이 신이라도 된 듯한 전능감을 선사해 주곤 한다.

그러기에 마법사가 천형을 받아들이면서도 계속 경지를 올리는 것이고.

높은 경지에 올라서면서 뻗어 나가는 영향력에 미쳐 버리는 것이지 않은가.

‘마음 같아선 당장 다 갖고 싶은데.’

단지 목록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테스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욕망이 물씬 피어오름을 느꼈다.

하지만, 그 욕망에 잡아먹혀선 안 될 일.

테스는 고개를 가로로 크게 젓고는, 욕망을 저 아래로 묻어 두었다.

아직은 아니었다.

그런 그를 베빈은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때요? 꽤 괜찮지 않아요.”

“솔직히 이건 꽤 괜찮은 정도가 아냐. 하……. 이런 걸 잘도 꽁꽁 숨겨 두고 계셨네?”

“후후, 특별히 보여드리는 거예요. 감사해하라고요.”

“덕분에 좋은 구경을 하는 건 인정해. 고마워.”

테스는 욕망을 접었다.

당장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최상의 주문들을 가늠하기 시작했다.

오늘 벌어들인 804골드에, 일전에 보물 창고에서 얻은 골드가 총 6000골드가량이었다.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따로 있긴 한데…….’

크고 작은 보석, 큼지막한 금괴 3개, 얻은 아티팩트가 더 가치가 컸다.

이 셋을 팔면 다시 6천 골드 이상의 금액이 나올 수도 있었다. 아니, 분명히 나온다. 적어도 7천 골드 이상은 된다.

‘지금 쓸 수 없다는 게 문젠가.’

이 돈을 전부 소비하는 건 당장은 불가능하다.

따로 써야 할 곳이 있었으니까.

게다가 앞으로 있을 실험을 생각하면 보석이나 금괴는 되레 모자랄지도 모를 일이다. 고로 그가 쓸 수 있는 돈은 한정돼 있었다.

“어머, 설마 다 안 사실 거예요? 사실 줄 알고 특별히 보여 드린 건데.”

“누구를 거덜 내려고. 있어 봐. 잠시 고민 좀 해야겠으니.”

“후음, 게걸스레 가져갈 거라고 예상했는데, 이건 예상외네요?”

“…….”

테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 선택 하나에 앞으로의 미래가 달려 있으니까.

한참을 고심한 끝에 13개의 마법 주문을 선택할 수 있었다.

* * *

[폭염구] [마나 막] [강화된 마법 갑옷] [강화된 마력 방패] [광범위 탐색] [마법 해제] [마법 부여] [마비의 파동] [시간 가속] [비행] [강화된 재생력] [해독] [종속]

그가 건넨 마법 리스트를 본 베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고른 마법들이 그녀의 궁금증을 자아낸 듯했다.

“고른 종류가 뒤죽박죽이네요? 처음 리스트를 봐선 전투 위주인데……. 또 뒤를 보면 마법 부여인 거 같다가도. 후음……. 마지막은…….”

“종속이 마음에 걸리나?”

“맞아요. 의외니까요.”

특히 그녀가 마음에 걸려 하는 건 종속.

다른 마법과 달리 이 종속은 오로지 지배만을 위하여 만들어진 마법.

상대를 힘으로 제압하는 데 성공하면 종속 마법을 걸어 버림으로써 완벽하게 속박을 할 수 있었다.

종속할 수 있는 기간은 최소 삼 년. 어쩌면 평생.

상당한 수고를 들여야 하지만, 성공만 한다면 완벽한 지배를 할 수 있기에 꽤 많은 귀족들이 선호했다. 이 종속 마법은 특히 한 곳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바로 노예 시장.

그녀는 그걸 지적했다.

“노예 시장의 마법사나 익히는 마법이니까요. 내가 본 당신은 그런 쪽은 영 내켜하지 않는 거 같았는데……. 아니었나요?”

“노예를 내켜하지 않는 건 맞아.”

“그런데도 익힌다고요?”

“필요한 경우에는 그 이상의 손을 쓸 수도 있는 법이니까. 내 나름대로 시도해 볼 것도 있고.”

“필요에 따른 익힘이라……. 마법 주문을 단지 수단으로 본단 소리네요. 후응……. 다른 마법사들은 전혀 그러지 않다는 건 아시죠?”

“내 알 바 아냐.”

“하기는. 마법사는 하나하나가 독특한 족속들이죠.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테스의 시큰둥한 대답으로도 답이 되었는지 베빈은 더 캐묻지 않았다.

그저 그가 건네준 리스트에 맞는 마법 주문서를 하나씩 꺼낼 뿐이었다.

거대한 화염을 날리는 전투 특화 마법 폭염구.

주변 2km는 커버하고도 남을 만큼 탐색을 하는 광범위 탐색.

마도구를 만들 때 사용하는 마법의 부여와 해제.

방어 마법 세 종류.

비행과 재생력과 같은 비주류 마법들이 그녀 손에 들려 턱턱 그에게 건네졌다.

“해독이라……. 잠시만요. 이건 잘 안 찾다 보니 저 안에 있거든요.”

“얼마든지 기다려 줄 수 있어.”

“이런 때만 후한 척하지 마요. 후후.”

귀하게 구한 주문서들 중엔 그가 얼마 전 홀로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던 해독 마법도 포함돼 있었다.

‘나랑은 다른 방식으로 해독하는 게 신기하단 말이지.’

그가 해독 마법을 구한 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마탑에서 파는 해독 마법은 그가 고유로 만들어 낸 해독 마법과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같은 효능을 내는 데 다른 룬어가 섞였다고 할까.

‘연구하다 보면 여기서 또 얻을 게 있을 거야.’

이를 통해서 얻을 것이 기대돼 굳이 고른 게 바로 해독 마법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종속 주문서가 두툼한 주문서 위로 쿵 하고 던져졌다.

“자, 이게 마지막. 총 13개. 딱 맞죠?”

“맞네.”

주문서를 본 테스의 눈. 어느새 흥미로 물들어 있었다.

누군가에겐 고작 책이지만, 마법사인 테스에겐 의미가 남다른 것들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를 통해 얻을 지식과 지적 허영심은 생각만 해도 짜릿했다. 문제는 그 대가.

“그럼 총 가격은?”

“아시잖아요. 3클래스는 정가 400골드인 거. 총 5,200골드랍니다. 할인은 없어도 최선을 다했다고요.”

“후…….”

그 대가가 처참할 정도로 비싸다는 거지만. 어쩌겠는가.

“전부 지불하지.”

그는 지니고 있던 돈 중 다수를 그녀에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

* * *

3클래스 주문서는 그에게 새로운 카드 패였다.

무공과 조합되면 무한에 가까운 가짓수를 줄 수단이랄까.

때문에 그는 주문서를 저택에 들고 오자마자, 바로 주문 수련에 빠졌다.

‘이야, 이런 룬어 구동 방식이라니 흥미로운데.’

에나를 위한 수련 시간, 홀스 파워 판매.

이런 최소한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연구실 안에 들어가 있을 뿐이었다.

“후음……. 해독이 이런 의미가 있었나.”

“종속은 결국 지배 룬어의 강화판이었네.”

“보자, 방어 마법들을 활용하면…….”

그가 새로운 마법 주문들을 위하여 폐관 수련에 가까운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고.

시간이 멈춰 있는 듯한 그를 제외하고 그 주변은 쉼 없이 변하여 갔다.

저 멀리.

앙스와 휘슬 영지에서부터 발발한 영지전이 테스론까지 끼어듦으로써 더욱 격화되었다.

“테스론의 표범이다! 튀어!”

“어쭙잖은 것들이 감히 어딜 기어들어 와!”

전장은 새로운 영웅들을 탄생시켰고, 새로운 변화를 일으켰다.

이런 변화는 잠든 사자라고 불리는, 도시 지넬의 주인을 움직이게 하였다.

잠든 사자 데프. 영지에 똬리를 틀고 있던 데프 백작이 드디어 전장에 참가했다.

급격한 변화였다.

“앙스를 위하여!”

“휘슬의 잡것들이 어디를!”

다만 전장은 더욱 격화될 뿐 쉬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변경과 울픈 산맥 아래에 있는, 휘슬과 앙스 모두 강력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는 탓이었다.

그러다 변화는 테스론과 데프 사이에서 일어났다.

둘 사이에 어떤 암약이 있는지는 몰라도, 테스론 영지 일부를 데프 백작이 차지했다.

고작 장원 몇 곳일 뿐이지만 그건 예상치 못한 변화였다.

테스론의 세가 약한 것도 아니었다.

몇 곳의 정원을 넘기는 사이 그들은 앙스 일부를 차지하는 데 성공했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영지를 넘긴 걸 보면,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의미.

“대체 무슨 거래였을까?”

“알 수가 있나. 다들 입을 꾹 다물고 있다고.”

많은 자들이 궁금해하였으나, 이를 알려 줄 자들은 침묵했다.

조용하던 기사 이반이 슬슬 전면에 드러났으니, 그가 무언가 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더 가까이.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전장을 바로 옆에 둔 도시 지넬의 치한은 유독 좋아졌다.

경비대장이 목숨을 걸고 토벌을 한 덕이었다.

덕분에 경비대장이 승진한다는 이야기가 나돌았지만.

“백작 각하의 명이시오.”

“그게 정말 백작 각하의 명이 맞는가?”

“여기 그분의 인장이 찍혀 있지 않은가!?”

“허……. 그렇다면 따를 수밖에 없겠지.”

지위가 오르는 대신에 전장에 나갈 수도 있다니, 과연 승진일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었다.

그런 가운데 힘들어진 건 용병들이었다. 치안이 좋아지니 자연스레 일거리가 줄었다.

전장에 가면 일은 차고 넘치겠지만, 그건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일이었다.

때아닌 불황이랄까.

많은 용병들이 제 할 일을 찾지 못하고 시간만 죽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테스는 일주일마다 팔아넘기는 홀스 파워가 매번 매진되는 신기록을 세웠고.

약효를 반 정도 강화시키고 가격은 두 배 후려치는 새로운 홀스 파워도 출시됐다.

매번. 매 순간. 매 시간.

계속해서 시간이 흘러가고, 모두가 저마다 부지런히 삶을 살아가면서 움직이는 그 사이.

그의 저택에서는 또 다른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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