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의선, 황제되신다-33화 (33/191)

제33화

챕터 8.

바닥에 처박힌 시체 둘을 테스는 내려다봤다.

“후우……. 끝인가.”

온몸이 땀에 푹 젖어 있는 상태.

이제 막 차오르기 시작한 내력도 그의 지친 몸을 일깨워 주진 못했다.

그럼에도 개운함을 느꼈다.

그의 가슴 어림에 생겨난, 새로운 조임 덕이다.

‘기운에 대한 인식이 깨달음을 줄 줄이야.’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두 줄기의 서클.

그 위로 하나의 서클이 새로 자리해 있었다.

세 개의 서클이 심장을 휘돌며, 이전보다 더한 압박이 천형처럼 그의 심장을 옥죄어 왔지만.

그는 답답함보다 만족스러움을 느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심장의 옥죔은 새로운 클래스의 탄생을 의미하고. 새로운 클래스는 곧 그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한 것이니까.

“급작스런 3클래스라……. 깨달음을 얻었으니 4클래스까지는 수월하게 갈 수 있겠어.”

새로운 길이 닦였다.

의기를 얻어 확실히 깨닫고 있다고 여겼던 주변의 마나가 더 오롯이 느껴졌다. 헐거웠던 기감이 더 단단하게 얽혀짐이 느껴진다.

가만있어도 거대한 정보들이 들어왔고, 아찔한 고양감이 자연스레 그를 감쌌다.

클래스 하나의 추가.

그에겐 의미가 남달랐다.

이제야 제대로 된 마법사의 길을 걷는 느낌이다. 새롭다. 전생에 의선도 걷지 못한 길이었으니까.

제 힘으로 얻은 깨달음에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너무 좋은데. 데브론도 이런 기분을 느꼈던 건가.”

의뢰를 통해 만났던 마탑의 마법사 데브론. 그와 자신이 같은 깨달음을 얻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래도 하나는 확실했다.

깨달음이 주는 이 강한 고양감!

그도 확실히 느꼈을 거다.

깨달음으로 얻은 감정은 일단 차치하고, 전략적 이유에서도 얻은 게 많았다.

‘수십, 수백의 수가 더 생겨난 셈이야.’

내력에 이어 새로운 강대한 힘을 얻었다.

마법과 내공.

이 둘을 조합하여 만들어 낼 가짓수가 당장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났다.

2클래스 주문도 전부 얻어 내지 못한 지금, 3클래스까지 얻어 내기만 한다면 그때 자신은 또 얼마나 강해질 것인가.

두 배, 세 배, 아니 가늠이 안 된다.

‘일류는 이미 넘어선 거고. 절정, 어쩌면 초절정 무인도 쉽게 상대할 수 있을지도.’

더 강대해질 가능성.

아니, 가능성 정도가 아니라 확신을 얻었다.

필요한 건 결국 능력이 개화될 시간뿐.

다행스럽게도 그 시간을 단축시켜 줄 만한 것들이 그의 눈앞에 넘쳐났다.

두 개의 쓰레기가 죽어서 남긴 시체 너머에 있는 곳.

그 안에 존재하는 것들이 그의 눈을 환하게 밝혀 주고 있었으니까.

* * *

금고 안으로 들어선 테스.

그는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미쳤네. 도대체 얼마나 해 먹은 거냐.”

멀리서 보았을 때도 느꼈지만, 안은 더 어마어마했다.

수북이 쌓인 보석, 골드, 은화.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아티팩트 여럿.

한 자루당 못해도 천 골드는 호가하는 공간 주머니만 다섯이 보였다.

“고작 도둑 길드의 수준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데? 이게 말이 되나…….”

공간 주머니 하나를 집어 보석들을 담으면서도 그의 감탄은 멈출 줄을 몰랐다.

홀스 파워로 큰돈을 벌어들여 눈이 높아진 그가 보기에도 이곳에 쌓인 재화의 양은 놀라울 정도였다.

“고작 도둑 길드 하나가 이 정도 자본을 가질 리는 없고. 아무래도 여긴 다른 곳을 뒷배로 둔 거 같은데.”

계속해서 담아도 남는 재화들의 수를 세면서.

그는 스스로 세웠던 가설 중 하나에 확신을 가졌다.

어쩌면 이 도둑 길드는 어떤 거대한 세력의 꼬리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은원을 만든 걸지도…….’

재화를 보아하니, 그 가설이 맞는 듯 보였다.

도시 지넬이 어마어마하게 크지만, 한낱 도둑 길드가 갖기 힘든 이 많은 재화들이 그 증거였다.

그 외에도 증거는 넘쳐났다.

‘암살자도 꺼림칙하긴 했어.’

암살 길드, 재화, 넘치는 도둑, 아지트, 혼합 독.

확실히 이들은 뭔가 있었다. 어쩌면 이제 막 개화를 해 버린 테스도 어쩌지 못할 강자들의 숨은 재산일지도 몰랐다.

그런다고 뭐 어쩌랴.

“이미 은원은 만들어 버렸고, 여기 두고 간다고 해서 끝날 일도 아니지. 그럼 더 어설퍼진다.”

물러날 수도, 물러날 일도 아니었다.

오만해서 이러한 결정을 내린 건 아니었다.

‘오만해선 안 돼.’

깨달음이 주는 힘에 취해서 내린 결정은 더더욱 아니었다. 움츠러들 수 없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이런, 이건 벌써 다 찬 건가.”

손에 쥐던 공간 주머니를 내려놓고, 그는 또 다른 공간 주머니에 보물들을 챙겨 넣으면서 생각을 이어 갔다.

적의 정체에 대한 파악.

그 이후에 여태까지 벌인 전투에 대한 복기였다.

‘……이번에도 압살은커녕 목숨이 위험할 뻔했다.’

어느 정도 힘을 갖췄다고 여겼는데, 아니었다.

자신은 우물 안 개구리였다.

이 세계에 없는 특별한 힘을 각성을 통해 얻었을 뿐, 전 세계를 놓고 보면 자신은 여전히 약자였다.

고작해야 약자 중 강자가 된 정도랄까.

그마저도 하류 인생에서는 대단하달 수 있는 수준이지만 역시 부족했다.

지금까지야 운이 좋았지만 앞으로는 아닐 수도 있었다.

“좀 더 조심스러워져야겠어. 방심을 해서도 안 되고……. 더 철저히 움직여야 할지도.”

제대로, 철저히 움직여야 했고 주변의 방비는 저택에 해 놓은 방비보다 더 지독히 해 놔야 했다.

‘때로 실수하더라도 변수를 막을 수 있을 정도는 준비해야겠지.’

오늘만 해도 보라.

단 한 번의 실수로 혼합 독에 한 줌의 재가 될 뻔하지 않았던가.

혼합 독에 마법 독까지 섞어 독을 강화할 거라곤 예상치 못한 자신의 패착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테스 자신은 이런 경우가 많았다.

의뢰도 그렇고 침입자를 상대하는 거나 적의 아지트를 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수를 사용하지 못했다.

미리 가지고 있던 수도 제대로 활용을 못 했다.

“오늘만 하더라도 전에 기사 둘 잡고 얻었던 마법 방어구를 썼으면…… 일이 더 쉬웠을 거야.”

전에 얻은 마도구 둘. 그중 하나만 소모했어도 마법으로 만든 혼합 독 따위 쉽게 지워 냈을 거다.

물론 위험의 대가를 얻기는 했다.

스스스스스-!

손에 쥔 공간 주머니에 실린 마력을 느끼고 있는 세 개의 서클. 3클래스에 오른 깨달음은 진짜고,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니까.

하지만, 언제까지고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요행을 바라며 살아남는 건 전생도 각성치 못한 하류 인생이 끝났을 때, 그때 같이 끝냈어야 했다.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흠……. 힘뿐만 아니라 정신도 제대로 무장해야 해. 이리 얕게 행동하고 다녀서야 금방 죽겠어.”

그리고 앞으로 움직일 방향을 제대로 설정해야 했다.

결국 생각해 보면 그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더 큰 영향력이 필요해.’

작은 저택에 만족할 게 아니라 더 큰 둥지를 얻어야 했다.

새로운 수단을 위하여 마법을 얻어야 했고, 천독불침에 다다라 있는 이 몸도 완전히 완성을 시켜야 할 터였다.

자세히 보면 지금까지 한 일과 같다고 할 수 있었다.

다만 달라진 건 그 영향력.

커진 규모와 함께 그가 지닌 힘이 주변에 뻗어 나가게 될 거다. 전에는 일을 크게 벌일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부터는 제대로 영향력을 펼쳐야 할 듯싶었다.

그때가 되면.

‘더 큰 적이 오겠지. 전생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또 더 큰 영향력을 지닌 자들이 찾아올 거다. 아군이라면 품으면 될 것이고, 적이라면 철저히 깨부수면 될 터.

그리하여 계속해서 위로 올라갈 생각이었다.

그간 철저히 준비한 모든 수를 다 던져서! 어떻게 해서라도!

“후음……. 결국 언제까지고 올 놈이 없어질 때까지 일을 벌여야 한단 건가.”

거대한 보물 방의 재화를 챙겨 들며.

그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의 복기, 해야 할 일, 계획에 대하여 정리하는 데 성공했다.

그사이가 길었던가.

어느새 그가 있는 주변은 거친 소음이 일고 있었다.

‘이리 거창하게 움직였으니 슬슬 올 때가 되긴 했지.’

그는 창고 안을 살펴 모든 것을 챙겼음을 꼼꼼히 확인했고.

“바람 그리고 물.”

스스스스-!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수를 이용하여 자신의 흔적을 지웠다.

내력을 돋워 주변에 남은 마나 향을 변질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쿠웅!

그가 모든 흔적을 지웠다 싶었을 때, 부적으로 막아 놓았던 길드의 아지트 문이 굉음을 내며 열렸다.

“여기! 여기다!”

문을 열고 들어온 자들이 안에서 벌어진 처참한 광경에 놀라 있을 때, 그의 모습은 이미 연기처럼 사라져 있었다.

* * *

안으로 들어선 경비병들은 아연실색했다.

안에 벌어진 처참한 광경. 제아무리 베테랑 경비대라고 하더라도 놀랄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었다.

사방이 온통 난장판이었다.

“하……. 이게 다 무슨…….”

“도둑 새끼들 잡으러 온 거 아니었어? 이건 그 수준이 아니잖아!”

정상인 자가 하나 없었다.

사지 중 하나가 죄다 으스러진 채 죽은 자들이 넘쳐났다.

살아 있는 자의 수는 적었다.

그나마 살아도 산 게 아닌 상태였다. 육체뿐 아니라 생기도 빠져나간 게 보였다. 생기와 함께 정신도 같이 나가 있었다.

“어이, 여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히힛, 히히히히.”

“몰라. 난 모른다고. 아무것도 몰라.”

뺨을 쳐 대며 물어도 그저 웃기만 할 뿐이다.

공포에 질러 벌벌 떠는 자들은 차라리 나아 보였다.

안은 더 처참했다.

온갖 흔적을 보고 구역질을 하는 경비대원도 있었다.

“우웩…….”

“자네는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게 낫겠군.”

그런 경비대를 뒤로 보내며, 앞으로 나서는 경비대장.

‘이걸 어떻게 보고를 올려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군.’

아멀프 도둑 길드.

길드장의 이름을 따 만든 이곳을 그는 전부터 노렸다.

수십의 도둑 길드가 있다지만, 그중 아멀프 길드가 가장 악독했기 때문.

하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윗선에서 도무지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으니까.

‘이참에 잘됐다고 여겼는데……. 뭔가 있는 게 분명하다.’

늦은 밤, 때마침 도둑 길드의 전투를 막으라는 명령이 떨어졌을 때.

그는 쾌재를 불렀다.

벼르고 있던 아멀프 도둑 길드를 없앨 기회라고 여겼으니까.

손수 수십의 병사를 챙겨서 데려왔다.

제아무리 도둑이라도 경비대에 덤벼들 용기는 없을 테지만, 혹시나 생길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한데 아무리 봐도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대장, 다 뒤졌습니다. 깔끔하게 치워 버렸는데요?”

“말 안 해도 그래 보이는군.”

“어떻게 할까요?”

“우선 시체들부터 치워. 살아남은 놈들은 취조를……. 아니, 해도 소용없을 거 같긴 하다만 하는 척이라도 해 봐.”

“넵!”

도시 지넬에서도 심지가 굳기로 소문난 경비대장이다.

범죄자는 사정에 상관없이 처분을 내리는 게 그의 신념.

그 신념 앞에서 그의 눈을 가득 채우는 잔혹한 광경은 단지 통쾌함만을 가져다줄 뿐이었다.

‘대체 누가 이리했을까……. 흐음…….’

탐정이라도 되는 듯, 한참 안을 살펴보던 그는 익숙한 모습들을 찾았다.

“끄흐으…….”

“흐억……. 헉……. 죽, 죽여 줘.”

생기가 잔뜩 빠져나가 죽은 듯 보이는 자들이 그의 시선에 잡혔다.

얼핏 보면 시체처럼 보이는 자들. 그들을 보고 그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설마…… 하……. 그자였나?’

경비대장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자가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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