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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선, 황제되신다-32화 (32/191)

제32화

챕터 7.

얼마나 걸음을 옮겨갔을까.

저 멀리 끝으로 간 두 명을 제외하고. 다른 자들의 인기척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들려오는 거라곤 쓰러져 끙끙거리는 자들의 신음 소리, 고통스레 내지르는 비명이었다.

그저 짙은 혈 향만 맡아진다.

“끝이네.”

애피타이저는 끝이 났으니, 이제는 그다음.

압도적 압살에 성공한 테스. 그는 마지막 마무리를 확실히 하고자 속도를 높였다.

마지막.

끝까지 도망치던 둘이 멈춰 있음을 확인한 테스는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그가 몸을 들이민 곳은 작은 암실이었다. 그 너머 금고로 보이는 두꺼운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푸화악-!

그가 작은 암실에 발을 내디기가 무섭게 독가스가 살포됐다.

‘우스운 짓.’

잿빛의 독은 그의 기감으로 느끼기에도 어마어마한 위력을 지닌 독이었다.

마지막 발악치고는 꽤 거창한 비장의 무기랄까.

이전의 테스였다면, 쉽게 넘기기 힘들 만큼 강력한 독.

피할 수 있음에도 피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독을 향해 더 다가갔다. 그러곤.

“모조리 삼켜 주마.”

적이 준비했을 마지막 선물에 피식 웃음을 지으며, 그 모든 독들을 흡수하며 삼키기 시작했다.

테스는 독을 일부러 제 몸에 끌어들였다.

“바람 조종. 밀실화.”

스스스-!

마법을 사용하여 가스 하나 남김없이 들이마셨다.

‘짙은 독이야. 되레 더 좋은데?’

도둑 길드장이 공들여 준비했을 독을 흡수하는 건 수월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의 내력은 상당히 차올라 있는 상태. 독력은 전부 의생공의 내력으로 전환하였지만, 상관없었다. 그간 쌓은 만독공의 경지가 어디로 간 건 아니니까.

독에 관해선 경험이 차올라 있다는 의미.

“후으읍.”

만독공으로 호흡을 들이쉬고 의생공으로 내쉬기를 한참.

그는 독의 맛을 음미하기까지 하며 독을 전환하고 흡수했다.

순조로웠다.

아니, 순조로운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변화가 일어났다.

‘하……! 다중으로 독을 걸어 놓은 거였나.’

안 그래도 이곳에 뿌려진 독의 종류는 많았다.

‘길드장 놈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이 독, 저 독 다 구해서 뿌려 대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처음엔 길드장이 강력한 독을 여러 개 억지로 섞어 놓았나 생각했다.

한 가지 독으로 효험을 보지 못하니 섞어서라도 사용하려는 일종의 발악인가 생각했다.

독에 관해 잘 모르는 머저리의 짓거리라고 여겼는데.

아니었다.

‘여기서 혼합 독이 나올 줄이야.’

수많은 독들 중 가장 지독한 게 혼합 독이었다.

하나가 아닌 여럿이 섞여 맹독이 되는 게 바로 혼합 독.

혼합 독은 단순히 강하기만 한 독이 아니었다.

때로 하나의 독으론 작용을 않고, 둘이 돼서야 비로소 작용하여 은밀히 상대를 죽이는 게 혼합 독의 숨은 묘용이기도 했다.

은밀하면서 강력했다.

이러한 혼합 독이 자주 쓰이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혼합 독을 배합하는 데 따른 난이도 때문이었다.

하나도 다루기 힘든 독을 조합하여 사용하는 게 절대 쉬울 리가 없었으니까.

한데 여기서 혼합 독이 튀어나올 줄이야.

‘무력은 약한 주제에……. 어찌 길드를 이끄나 했더니, 독에 재능이 있었나. 그도 아니면 어떤 도움을 받은 건데. 하기야 이게 중요한가.’

이곳의 독은 억지로 여럿을 뿌린 게 아니었다.

제 나름의 방식으로 독을 배합한 거다.

이 세계의 독을 여럿 섞었다. 차라리 그것만으로 끝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독 마법도 썼군.’

혼합 독도 모자라서 마법을 이용한 독도 섞어 냈다.

강력하다.

그도 전생에 겪어 보지 못했을 만큼의 위력이다.

백독불침에 이른 몸. 그간 쌓은 내공과 선천진기의 저항력, 이 둘이 아니었더라면 그도 벌써 한 줌의 독수로 녹아 버렸을 정도.

‘하, 참……. 독마야 새로운 독이라고 신나 했겠지만, 난 아니란 말이지.’

백독불침에 이르렀기에 어지간한 독으로는 중독도 되지 않을 거라고 여겼는데.

이런 식으로 당할 줄이야.

“크흐흐…….”

길드 하나를 압도적 무위로 부숴 놓고 중독이라니.

우스울 따름.

‘나 말고 다른 자들도 마법 독을 쓸 걸 예상했어야 했는데.’

당연한 걸 예상하지 못했다.

하기야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이 세계는 내공은 없어도 마법과 오러는 있었다.

이어지는 혈통에 따라 저만의 기운을 타고나는 자도 있었다.

강자와 초인이 넘쳐나는 세계다.

그런 세계에서 강자를 죽이기 위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역시 세상은 넓었다.

그간 테스가 약자를 상대하며 좁은 시야를 지니고 있었을 뿐이었다.

‘우물 안 개구리는 다름 아닌 나였군. 이 세계도 이 세계 나름의 방식으로 강해지는 게 당연하거늘…….’

절로 자조적인 비웃음이 흘러나오는 이 상황. 테스는 자조하며 동시에 생각했다.

‘혼합 독 자체는 어떻게든 처리가 가능해. 문제는 마법적 기운이야. 나 말고도 마법 독을 응용해 쓰는 자가 있을 줄이야……. 너무 지독한데.’

영 상태가 좋지 못했다.

내력은 저항하지만 계속해서 소모되었고, 백독불침의 저항력도 한계치에 다다랐다.

개중에 선천진기가 분투를 벌이고 있지만 역시 모자라다.

조금이나마 강자를 상대하니 이리 새로운 벽이 생겨난다.

‘우물 안을 나오자마자 죽을 수는 없지.’

벽에 치여 가만 죽어 줄 수는 없는 터.

스스스스-!

테스는 제 기운을 돌려 독에 저항하면서도, 이 거대한 기운을 지닌 마법적 독을 어찌 처리해야 할지 고심했다.

내공과 선천진기. 저항력으로도 안 되면, 새로운 수로 적의 수를 막아 내야 했다.

새로운 수라…….

버텨 내며 생각했다.

그가 가진 수들 중에 가장 괜찮은 수가 있는지를.

‘이 독 기운의 출처는 마력이고, 마력이라 함은 결국 주문인데……. 내가 지닌 마법들 중에 어울리는 게 있었나?’

무공은 버티는 게 한계.

답은 결국 마법이다. 마법 중에서도 그의 한계치를 뚫어 줄 주문이 필요했다.

온갖 속성에 대한 마법들이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독, 근력, 민첩, 흥분, 체력, 저항력, 정신 고양, 불, 물…….

마탑에서 얻고 배운 새로운 수단들이 그의 뇌를 간질인다.

온갖 수단을 계산한다.

머리로 결괏값을 만들어 낸다. 그 결괏값을 끝없이 예측하고, 예상하여 봤다.

이독제독이라 하니 독을 부여할까.

안 된다. 적의 준비에 비해 그가 지닌 독은 부족했다.

물로 씻어 낼까?

역시 마찬가지다. 고작 일부를 씻어 내다 독에 물들겠지. 변수만 키워질 터다.

몸에 근력과 민첩을 부여하여 강화를 시키는 건?

고작 몇 초의 시간을 더 벌 수 있을 뿐이다.

‘없어. 기존의 마법으로는 뚫을 수 있는 게 없다.’

답은 나오지 않았다.

무공이 안 되니 마법을 꺼내야 했고, 마법 중에서도 새로운 수를 또 꺼내야 했다.

‘결국 새로운 수를 꺼내야 하는데, 고작 2클래스에 새로운 수라……. 말도 안 되는 도박이 되겠다만…….’

이전에 없던 수가 필요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수많은 룬어들.

룬어에 대한 해석조차 상당히 부족했고. 그중에서 그가 꺼내 들 만한 것은 고작 몇 개다.

당장 2클래스에 머물러 있는 그가 단번에 조합할 수 있는 룬어는 고작 네 개.

그중 넷을 새롭게 조합하여, 수를 꺼내 봤다.

‘생명. 치유. 역류. 지배…….’

생명력을 강화하여 치유를 도모하고, 독의 기운을 역류시켜 결국 지배하에 두는 방식. 마나가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

일종의 해독 마법!

순식간에 룬어를 조합하는 데 성공했다. 이전의 모든 경험을 녹여 내어 만든 새로운 방식의 성공.

그럼에도 부족함을 느꼈다.

‘위력이 부실하다.’

일부만 해독되어 사라질 뿐, 전부가 해독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이걸론 안 돼.’

단 네 개의 룬어를 조합하는 것만으로는 이 독에 저항할 수 없었다.

결국, 하나를 더해야 했다.

여기에 해낼 수 있는 수가 있었던가.

남은 건 결국 도박이나 다름없는 무리수뿐이다.

‘어쩔 수 있나. 해내야지.’

당장에 하나의 서클을 더 만들어 낼 수는 없었다. 한계치까지 돌고 있는 서클의 마력을 억지로 더 돌려야 했다.

‘그게 결국……. 서클에 무리를 줘서 망가질지라도.’

하지만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과부화된 서클에 남은 선천진기를 몰아넣으며, 그는 룬어 하나를 더 되뇌었다.

강화!

마지막 다섯째 룬어가 부풀어 오른 네 개의 룬어에 깃들기 시작하며.

동시에 그의 몸이 환한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 * *

작은 암실. 거기서 안쪽.

비장의 독을 살포하고 숨은 둘은 작은 공간 안에 엉겨 붙은 채였다.

잔뜩 겁을 먹은 채 불편함도 못 느끼고 있는 둘은 같이 초를 셌다.

일 초, 이 초, 삼 초…… 백 초.

그간 모은 모든 독이 살포되고도 남을 시간이 지나갔다.

“이, 이 정도면 죽지 않았을까요?”

“그게 어떻게 구한 독인데……. 설사 기사라도 뒈질 거라고. 그러니 죽지 않았을까?”

“그, 그렇겠죠?”

이 정도 시간이라면 독이 씻기고도 남을 시간이다.

겨우 준비한 맹독이다. 중독됐다면 죽었을 터. 나가서 확인을 해 봐야 했다.

“네가 나가서 확인해 봐!”

“잠시, 잠시만요! 좀 더 기다려 봅시다! 조금만요!”

길드장 아멀프가 발로 밀어내지만, 아그멀드는 온 힘을 다해서 버텼다.

그렇게 다시 백 초가 흘렀다.

흘러간 시간이 이백 초가량. 여전히 밖은 조용했다.

“이 정도라면…….”

“죽었겠지!”

살아 있었다면 그들이 들어간 문을 열겠다고 부수고 있지 않겠는가.

“서, 성공이다!”

“후……. 해낸 겁니다!”

살았다. 저 미친 괴물로부터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아그멀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아멀프는 이제 길드를 어떻게 재건해야 하나 생각하면서 닫힌 문을 열기 시작했다.

“어서 열어 보죠! 하……. 이거 피해를 다 복구하려면 얼마나 걸릴지…….”

“그러길래 미친 마법사는 건드리지 말자니까. 어쨌거나 가서 집을 뒤지면 레시피라도 나오겠지. 열어 보자고.”

드르르륵. 드륵.

온갖 보안 장치로 떡칠해 놓은 금고 문이 안에서부터 열리기 시작했다.

상당한 돈을 들여 만든 금고문이 열리고.

겨우 비집고 바깥을 나와서 숨을 내쉬려는 그 순간, 그들은 죽어도 보기 싫은 사신과 마주했다.

온몸에 땀이 절어 있는 상태, 그러나 어딘가 개운한 표정을 짓고 있는 테스와 그들의 두 눈이 딱 마주쳤다.

“덕분에 좋은 선물을 받았으니, 이쪽도 보답은 해 줘야지?”

“아, 아니……. 그런 건 됐……. 컥!”

테스는 말을 길게 하지 않았다.

그저 검을 곧추세워 그들의 뇌를 꿰뚫어 버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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