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화
챕터 6.
쥐새끼도 궁지에 몰리면 발악하는 법.
그들은 포기를 몰랐다.
밤도둑 특유의 독기를 이용해 분투를 벌이고자 했다.
“이잇! 어차피 강자인 건 이미 알고 있었잖아! 무슨 수든 쓰라고! 잡히면 뒈진단 말이다!”
“붙지 마! 철저히 거리를 벌리고 화살을 쏴서 죽이라고! 좀!”
미리 준비한 함정을 발동시켰다.
쒜에엑! 테스가 발을 디딘 곳에 날이 불쑥 튀어나오고. 천장을 뚫으며 화살이 쏟아졌다. 때로 작은 독무가 그의 코를 타고 들어왔다.
‘꽤 괜찮지만, 다 허튼 짓이야.’
손으로 금나술을 펼치는데, 발이라고 다른 일을 못 할까.
그는 다리에 내력을 돋워 길게 뻗었다. 발경의 묘리가 작용하며 함정이 설치된 아래를 때렸다.
콰드드드득-!
그들이 준비해 놓은 바닥 함정이 단번에 깨져 나간다.
테스는 하나를 깨부수고도 만족하지 않았다.
발경으로 발아래 뻗어 나간 기운을 놓치지 않았다. 계속해서 그 기운을 의기로 조종하였다.
조종되고 있는 기운의 목표는 함정의 발동!
땅 아래 그의 기운이 스쳐 지나가며, 아직 발동되지 않은 함정들을 미리부터 발동시키기 시작했다.
그가 없는, 그 대신 적들이 디디고 선 땅에 함정들이 발동한다.
“크야아아아악!”
“캭, 이게 왜 지금 발동을…….”
테스를 집어삼키고자 만든 함정이 되레 그들을 집어삼킨다.
사방이 난리가 난 상황.
그 가운데서도 저들은 버텨 냈다.
독기를 발동시키는 자들은 제 품에 품고 있던 비장의 무기 하나씩을 꺼내 들었다.
‘스크롤?! 돈이 썩어나나.’
마법을 내재시키도록 만들어 낸 게 스크롤.
저들은 방비를 위해서 온 힘을 쏟아 부었는지, 순식간에 여러 개의 스크롤을 꺼내서 찢어 댔다.
‘길드장이 미친놈이라더니 그 정보가 사실이었을지도. 헛소리가 아니었어.’
고문당한 침입자에게 듣기로.
이 길드의 길드장은 방비에 미친 녀석이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다른 도둑에게 털릴까 봐 그 누구보다 방비를 철저히 한다고 들었다.
그렇다 해도 마법 스크롤까지 준비할 줄이야.
“날려!”
돈지랄이라고 할 수 있는 스크롤이 찢어지며, 화염구 세 개와 수를 세기 힘들 만큼 많은 불화살들이 그에게 쏟아져 내린다.
쏘아 낸 자신마저도 죽을 수 있을 듯한 공격들이 마구 퍼부어졌다.
사람의 몸을 집어삼킬 만한 거대한 불덩이. 그리고 불의 세례.
‘제아무리 괴물이라도!’
‘타격이 컸지만……. 어떻게든 처리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함정이 부서질 때 절망으로 물들던 도둑들의 눈에 환희의 감정이 떠오른다.
최악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테스를 마법이라면 무너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였다.
제아무리 괴물이라도 한계가 있지 않겠는가.
물리적 공격인 화살이야 막았다지만, 마법을 단번에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찢은 스크롤만 일곱.
저 불의 세례는 4클래스 마법사라도 막기 힘들 정도의 화력이었다.
“마나 방패, 복수 시전.”
“허튼짓이야!”
확실했다.
테스가 네 줄기 마나를 뻗으며 마나 방패를 만들었을 때.
저들은 확신했다.
‘고작 마나 방패로 어찌 화염구를 막아?’
‘화염구는 막더라도 불화살은 절대 못 막지.’
‘우선 맞기만 하면…… 끝이다!’
1클래스의 마법, 마나 방패.
마나를 형상화해 만든 마나 방패는 적의 마법을 분쇄하는 데 특화돼 있었다. 마나끼리 부딪치며 서로 터져 나가는 성질을 이용해 만든 마법이었다.
한계는 있었다.
마나 방패를 만들어 내면 뭐 하겠는가.
마법사는 도둑보다도 못한 허약한 개체. 마나 방패를 만든다고 해도 마법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면, 마나 방패는 제 할 일을 하지 못한다.
요는 제대로 적중시키지 못하면 필요 없다는 의미.
물리적 화살이야 사술로 대응했다지만, 이 거대한 마법들을 작은 방패로 대응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한 번은 맞혀도, 두 번은 안 될 것이다.
저들은 불가능하다고 여기며 마구 희망 회로를 돌렸다.
그리고 동시에 테스를 죽일 확률을 더욱 높이고자 소리를 내질렀다.
“화살 남았으면 어서 쏴! 죄다 내질러!”
“화살이 안 먹히면, 다른 거라도 던지라고! 단검! 단검도 던지란 말이다!”
“감히 손을 못 놀리게 하라고! 방해해야 해!”
쒜에에엑-!
테스가 절대 막지 못하도록, 조금이라도 그의 신경이 분산되도록 미친 듯이 공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번만은 꼭 먹힐 것이라고 생각하고!
쏟아지는 공격 세례. 누구라도 겁을 먹고 움츠러들기에 충분한 화력.
“쯧, 아까운데.”
하지만, 테스는 공포보다 아쉬움을 느꼈다.
저들이 보인 압도적 화력보다도 허망하게 찢겨 나간 스크롤이 아까웠으니까.
그도 구하기 힘든 스크롤을 저들이 쓸 줄이야.
연구용으로라도 쓰면 충분한 값어치를 할 터인데, 아쉽게 터져 나가고 있었다.
어쩌랴. 이미 터져 나간 마법이거늘.
‘하나라도 남길 바라야 하나.’
마법사의 팔과 마나 방패를 세운 그대로, 그는 계속해서 전진을 택했다.
콰아아아앙-! 쾅!
전진하며 그는 날아드는 모든 화력을 분쇄하기 시작했다.
부딪치는 마법을 족족 부숴 내고, 날아드는 화살을 잡아 그 주인에게 되돌려 줬다.
“캭…….”
“크엑!”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더욱 대범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받아 주다가는 날 새겠어.’
시간을 끌어 봐야 남는 게 없어 보였다.
방금도 스크롤만 날아가지 않았나.
적이 스크롤을 쓸 사이도 없이 압도적으로 몰아쳤다면, 자신이 스크롤 몇 개는 챙겼을 수도 있었을 텐데.
연구에 어마어마한 도움이 되었겠지.
‘아깝다.’
때문에 테스는 속도를 더욱 높였다. 의생보에 쓰는 내력을 돋우고, 선천진기를 아끼지 않고 사용하기 시작했다.
방어보다는 공격으로.
순식간에 공세를 전환한 그는 누구보다 잔혹하게 적을 부숴 갔다.
“사, 살려……. 켁!”
손을 내지르다 손이 잡힌 자는 그 두 손을 잡아 부쉈다.
손가락뼈 하나하나가 곤죽이 되며 뭉개진다.
발을 내지르려다 잡힌 자, 반대로 꺾어 줬다. 우드득 소리가 나며, 꺾이지 않을 반대 방향으로 발을 꺾어 냈다.
“켁…….”
“꼴에 좋은 걸 쓰는구나.”
뒤에서 단검을 내지르는 자는 금나술의 수법으로 검을 뺏어 들었다.
마법사 팔로 검을 쥐곤 그 주인에게 돌려줬다.
정확히 심장으로.
“커윽…….”
심장이 꿰뚫려 쓰러지는 도둑. 그의 가슴에서 다시 단검을 뽑아드는 걸 그는 잊지 않았다.
테스는 적의 육체만을 부수지 않았다.
“너는 몸이 썩어 있구나. 흡수하는 손길!”
온몸이 썩어 있는 자들은 닿는 족족, 흡수하는 손길을 사용했다.
‘크흐……. 좋다.’
진득한 생명력과 함께 독기가 차오르고. 차오르는 독기를 내력으로 치환한다. 움직이는 그는 금세 그간 사용한 힘을 다시 보충했다.
단순히 보충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일부는 그의 무기가 되어 다시 손으로 뻗어 나갔다.
촤아아악-!
흡수한 독기가 하나의 흐름이 되어 주변을 뒤덮었다.
“켁……. 독이다!”
“커으으윽.”
독이 퍼져 나가자, 순식간에 여럿이 쓰러졌다. 독기를 뽑힌 자들이라고 정상일 리가 없었다.
“크르르륵…….”
“컥…….”
온몸의 생기를 빨린 그들은 미라처럼 메말라 갔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죽지는 않았지만, 몸이 망가졌음을 여기 있는 자들 모두가 알았다.
정신은 그보다 더 엉망이었다. 생기를 빨린다는 그 자체에서 실시간으로 죽음을 경험하였으니까.
단 몇 초.
그 몇 초에 도둑들이 쓰러졌다.
백 명 가까운 인원이 이곳을 지키고 섰을 때는 자신감에 넘쳤을 텐데, 그런 자들은 전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적은 사신이다.
자신들을 잡아먹을수록 더욱 강력해지는 사신!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도 생명력을 진득하게 빨아먹은 지금이 더 두려웠다.
그는 점차 강대해지고 커져 가고 있었다.
패닉이라는 감정이 그들을 온통 뒤덮었다.
“이, 이건 못 이겨…….”
“괴물…….”
압도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경이로운 실력. 그 위력을 본 자들 모두 크나큰 공포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도, 도망쳐야…….”
“어디로!”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도망칠 곳도, 갈 곳도 없었다.
“감히 어디를 가려고.”
끝을 내고자 하는 테스는 제가 들어온 문에 부적의 세례를 날리었다.
제각기 다른 룬어가 새겨진 부적들은 금방 그가 원하는 마법으로 탈바꿈했다.
경계. 억압. 방어. 독. 저지…….
몇 개의 마법들이 부적으로 펼쳐진다.
그의 손에 유일한 탈출구조차 사라졌다.
그를 지나쳐 녹빛의 독이 흐르는 저곳을 뚫을 수 있을 거라고 여기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사, 살려…….”
“허으읏!”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는 그들을 향해서 테스가 사신처럼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아수라장.
하나뿐인 탈출구는 사라졌고, 그 안에 맹수가 풀어졌다.
다들 뒤로, 뒤로 내뺄 뿐이었다.
* * *
길드장 아멀프는 정신이 나가는 듯했다.
“허어억, 허억…….”
그에게 테스는 맛있는 먹잇감도, 그렇다고 아그멀드가 말한 대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냥 마법사라며!”
“빌어먹을! 저런 자일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괴물이었다. 닿는 족족 잡아먹는 괴물!
공포에 질려 있는 상태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움직였다.
그곳으로 가야 했다!
여기에 있는 대다수의 길드원들은 모르지만, 숨겨져 있는 비밀 장소가 있었다.
‘그곳이라면……. 놈을 죽이는 것도 가능해!’
그곳. 만들던 당시 길드의 간부였던 아그멀드도 반대했던 곳이었다.
스크롤보다 더 많은 돈을 들여 만들어야 하는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곳이 유일한 동아줄이 됐다.
‘오지 마라. 오지 마……. 아니, 와야 하나!? 빌어먹을…….’
아멀프는 제발 자신의 수가 먹히길 바라며, 계속해서 뒤로 내뺐다.
그 뒤를 아그멀드가 정신없이 따르고 있었다.
* * *
도망치는 저들. 테스의 기감은 놓치지 않고 그들을 추적했다.
‘길드장이 저놈이로군. 어차피 도망칠 곳도 없잖아?’
그로선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테스는 느긋하니 적들을 잡아먹으며 계속 전진해 갔다.
더 이상 반항하는 자는 없었다.
처음 반항하던 자들은 이미 쓰러진 지 오래. 남아 있는 자들은 대세가 기울자 겁을 먹은 승냥이들이었다.
“사, 살려 줘…….”
“죗값은 치러야 하지 않겠어?”
겁을 먹어 움츠러든 잔챙이들.
테스는 냉혹하게 손을 썼다.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뒤를 노릴 쓰레기들이야.’
지금이야 겁을 먹었지만, 저들은 태생이 쓰레기였다.
저들에 비하면 용병이 차라리 낫다.
용병은 하급이라고 해도 노력해서 일을 하는 자들이니까. 이들은 노력을 하기는커녕, 노력하는 자들의 것을 뜯어 가는 쓰레기다.
어쩔 수 없는 사정?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그런 게 있을 턱이 있나.
‘다 핑계.’
고작 범죄를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저들의 인성을 말해 주고 있었다. 쓰레기는 쓰레기답게 대해 주는 게 맞았다.
우드드득. 우득.
테스는 거침없이 손을 내질렀다.
그때마다 도둑들이 쓰러져 갔다.
어차피 부적들이 수십 개 붙은 문은 완벽하게 막힌 상황. 그는 이 순간을 철저한 징벌의 시간으로 이용했다.
‘급할 건 없으니까.’
테스는 특유의 기감을 주변에 계속해서 흩뿌렸고. 기어이 몰래 숨어든 적들까지 찾아냈다.
저들이 머물렀을 숙소, 도박장으로 쓰인 테이블 아래, 천장에 있는 비밀 장소, 찬장…….
“으아아악!”
“어떻게 여기까지!”
숨어든 많은 곳을 하나하나 기감으로 뒤져 쥐새끼들을 처단했다.
‘저기가 가장 짙은데, 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냐?’
하기야 이들은 애피타이저밖에 되질 못했다.
진짜는 그의 기감 끄트머리에 있었다.
아그멀드와 길드장이다.
테스는 저들이 공포에 질려 미친 듯이 뛰는 걸 아까부터 알고 있었다.
도망칠 곳도 없는 쥐새끼들이 난리치는 꼴이란.
그들의 모습을 즐기며 느긋하게 뒤를 쫓을 뿐이다.
한편, 이곳까지 온 김에 그도 바라는 것이 하나 있었다.
‘제 보물을 지키자고 스크롤도 사는 놈인데, 어디 얼마나 숨겨 놨으려나?’
저들이 그간 숨겨 놓았을 재화들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어쩔 수 없는 기대랄까.
징벌은 징벌이고 그에 따른 보상은 보상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