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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선, 황제되신다-28화 (28/191)

제28화

챕터 3.

룬 조각을 처음 볼 뿐, 그 개념에 대해선 이미 알고 있던 테스다.

몇 년 전 의뢰를 할 당시 룬 조각을 사용하는 베틀 메이지의 위력을 직접 옆에서 지켜보았으니까.

마력을 움직일 때마다 룬조각이 같이 환히 타올랐다. 그때마다 쏟아지는 비전 마법의 확산은 지금도 기억에 남을 정도다.

‘미친 위력이었지.’

그래서일까.

안 그래도 그는 최근의 연구 중 하나로 룬 조각을 구현하느라 애쓰고 있었다.

‘내건, 룬 조각과는 다르긴 해.’

룬 조각의 비전을 알아서 연구하는 게 아니었다.

아쉽게도, 용병 마법사인 그는 마탑이나 알고 있을 수백 년 쌓인 비전을 알지 못 한다.

대신 전생에서 영감을 얻었다.

진법과 부적이다.

룬 조각은 일종의 룬어를 특유의 비전으로 배열하여 만든 아티팩트.

부적은 술사의 주술력을 담아 만드는 비전이었다.

부적도 비전이긴 하나, 여러 경험을 했던 그는 간단한 주술 정도는 담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민간에서 사용하는 잡귀 쫓는 부적 정도의 수준이지만 작동은 한다.’

그 방식을 테스는 이용하고자 했다.

방식은 단순했다.

부적에 룬어를 담는 거였다. 실제 성과를 얻기도 했다.

화르륵-!

화염이라는 작은 룬어 하나. 룬어의 수많은 해석 중 하나를 담을 수 있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작은 부적 하나가 타오르며 룬어를 허공에 띄우는 게 바로 그 증거.

약한 마나지만, 분명 부적에 박힌 룬어는 발동에 성공했다.

이 부적을 이용하면 룬어 한 번을 대체할 수 있는 셈.

때와 시에 맞춰 제작을 해야 하지만, 종이에 담은 거치고는 최상의 결과였다.

문제는 있다.

“이게 일회용이란 건데.”

몇 번이고 사용할 수 있는 룬 조각과 달리 부적은 한 번이 다였다.

그래도 절망할 건 아니다.

보통 하급의 부적이 이러할 뿐. 상급의 기물들은 수십, 수백 번을 써도 망가지지 않았다.

하은조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유물이 의선으로 살던 그때까지도 작동을 할 정도. 발전만 시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면 될 뿐이다.

조급할 필요는 없었다.

마침 이게 생겼으니 일은 더 수월해질 터.

이 룬 조각을 바탕으로 연구를 한다면 일회용이 아니라 서너 번 사용할 수준도 가능할 듯 보였다.

“위력이 강화만 돼도 연구 속도는 꽤 빨라질 거야. 좋은데.”

룬 조각을 통해 약간의 발전만 돼도 그로선 만족스러웠다.

부족한 실마리와 영감을 잡아낼 수 있단 의미니까.

계속해서 발전해 나간다면 부적만의 조합으로 마법을 사용할 수도 있겠지.

때론 필요에 따라 결계를 쌓듯 만들어 놓아, 적을 압살하는 것도 가능할 거다. 더 나아가서 약에도 사용할 수 있다면?

“전생의 의선의 경지를 뛰어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냐.”

무궁무진한 활용법. 그에 따른 발전. 채워지는 지적 허영심.

생각만 해도 열의를 불태우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고도 남지 않은가.

우우웅- 우웅-

그는 제가 해야 할 수련들을 제쳐두고, 한참을 손에 룬 조각을 쥐고 발동하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가지고 연구하는 재미가 꽤 쏠쏠하였다.

“한 번에 하나가 발동하고, 세밀함은…… 꽤 높고. 필요한 마나는 조절하기 나름인가. 이걸 부적이랑 대입을 해 보면…….”

그는 밤을 새워서라도 연구를 할 기세였다.

그러다 쿵! 하는 거대한 소음이 저택 바깥마당에서 들려왔다. 침입자가 환영미리진 안에 들어왔단 의미!

그는 침입자가 금방 진에 갇혀 잡힐 거라고 여겼다.

“쯧, 한창 재미가 붙었는데, 왔나.”

그래도 처리는 해야 할 터. 그는 수련실을 나섰다.

그는 수련실을 나서자마자 에나와 마주쳤다.

그녀도 소리를 들었는지 손에는 목검이 쥐어져 있었다. 그가 얼마 전 쥐어 줬던 목검이었다.

그를 보는 그녀의 표정은 결연했다.

“적이에요!”

“걱정 마. 어차피 금방 진에 잡힐 거니까.”

“그래도 가 보긴 해야죠.”

“물론이지. 같이 갈래?”

“당연하죠. 저도 이 저택을 지킬 거니까요.”

테스는 에나를 보고 흐뭇하게 웃어 주고는, 저택 바깥으로 나왔다.

‘처음 걸리는 인기척이 넷. 어차피 진에 다 잡힐 테니 중요한 건 마무리인가. 흐음?’

저택 문을 나서자마자 익숙한 장면이 보였다.

“으어어어!”

“크흐으……. 살려 줘! 으아악! 떨어진다!”

검은 복면을 한 적 셋이 환영에 갇혀 버둥거리고 있었다.

강화된 환영미리진 덕인지, 셋 모두 강한 환상에 걸려 있었다.

“으아아아! 아냐! 아니라고!”

셋 중 하나는 자해까지 하고 있었다. 강화된 환상이 몰아붙이는 결과다.

그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는 장면.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경계 마법을 넘어서 들어온 건 넷. 그럼 하나는!?’

있어야 할 자가 없었다.

기감을 돋운 테스는 곧바로 느끼었다. 왜곡된 마나장이 그의 기감을 간질였다.

‘마도구?! 제대로 준비를 해 왔구나.’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그는 곧바로 기감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

쒜에엑.

속도를 올렸다.

적을 치려는 그 찰나!

상대도 움직였다.

침입자를 향해 달려가는 테스와 달리 상대는 다른 의도를 갖고 움직였다.

그가 노리는 건 테스가 아닌, 에나였다.

“빌어먹을! 에나, 어서 뒤로 빠져!”

“읏, 넵!”

마도구의 도움을 받는 듯 상대의 움직임은 빨랐다.

‘젠장.’

빠른 움직임으로 그녀에게 다가서는 침입자.

다행히 에나는 테스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간 훈련 받은 대로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거기에 한 수를 더 했다.

콰즈즈즉-!

에나가 목검을 휘둘렀다.

그녀가 있던 자리에 검이 스치고, 마주 휘두른 목검이 산산이 부서졌다.

조각들이 비산하며 사방으로 날렸다.

그녀가 있던 자리로 다가가는 가운데 테스는 생각했다.

‘오러인가? 아냐. 다르다. 저 기운은…….’

상대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특유의 기감은 상대의 기운을 놓치지 않았다. 마법사의 마력도, 전사의 오러도 아니었다. 기묘하게도 딱 그 가운데 있는 기운이었다.

음습하고 더러운 기운을 부리는 자다.

현생의 테스는 겪지 못했지만, 전생의 의선은 이와 비슷한 기운을 겪었었다.

‘혈기다!’

혈기. 제 몸의 기운이 아닌 상대의 기운을 쭉 뽑아 만들어 내는 기운. 단순히 생명력뿐만 아니라 그가 지닌 영조차 흡수한다고 알려진 최악의 힘 중 하나였다.

‘어느 쪽에서 나온 거지? 후, 확인해 보면 될 일.’

우선 테스는 궁금증을 뒤로했다. 침입자를 향해 마주 달렸고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1초식. 비류.’

검에 내공을 담은 그가 흐름에 몸을 맡겼다. 무한히 펼쳐지는 비류의 형이 뻗어 나감에 그는 의지를 보탤 뿐이다.

쑤욱 검기가 형상화되며, 비류와 함께 노닌다.

흐르며 휘둘러지는 비류가 상대의 움직임을 잡아냈다.

쩌어어엉-!

깨져 나가는 소리가 들리며, 동시에 마나 왜곡이 사라졌다.

그 뒤에 모습을 드러내는 침입자. 온몸을 검게 두른 그의 몸 사이사이에 짙은 마나가 흘렀다. 마도구였다.

그보다 놀라운 건 그 안이었다. 얼마나 많은 자들을 죽이고 얻었을지 모를 더러운 기운이 그의 몸을 잠식하고 있었다.

‘미쳐도 진작에 미쳤어야 할 텐데, 잘도 버텼네?’

이 세상의 오러와는 또 다른 힘. 흔히 흑마법을 사용하는 자들이 사용한다고 알려진 사마력과 비슷한 기운이었다. 테스가 알기로 혈기라 불리는 힘.

“하, 너 단순한 마법사가 아니었나?”

“너만큼 재미있을까. 넌 대체 어디서 온 놈이지?”

“의뢰자를 말할 리가. 더더군다나 내 힘을 파악한 놈에게 더 할 말은 없으니 이제 죽어랏!”

짧은 대화.

그사이 마도구를 발동시켰는지 상대가 또 눈앞에서 사라졌다.

‘단거리 이동! 어디냐?’

왼쪽.

상대의 기가 느껴지는 순간, 테스는 그쪽으로 검을 휘둘렀다. 비류의 흐름이 사납게 바뀌었다.

타아앙-!

검과 검이 맞부딪친다. 이번에는 한 번의 맞부딪침으로 끝나지 않았다.

순식간에 수십 합이 오갔다.

상대의 검은 뱀처럼 교묘히 움직였다. 이리저리 테스의 멱을 노리며 동시에 그의 검을 휘감으려 들었다.

그의 검으로부터 일어난 붉은빛의 요사스런 기운이 계속해 테스의 영역을 침범해 들어왔다.

‘마검사이자…… 암살자. 제대로 된 놈이잖아. 잘도 고용했는데?’

고작 도둑 길드에서 고용한 녀석이라고 하기엔 대단한 실력자였다. 아그멀드의 도둑 길드에서도 상당한 품을 들여 고용한 게 분명했다.

강하다.

이전의 테스라면 감히 상대조차 못 하고 금세 목숨을 잃을 만큼 강했다. 그렇다고 해서 테스가 물러날 이유가 되겠는가.

‘가진 힘이 꽤 재밌긴 하다만.’

오랜만의 격렬한 움직임. 테스는 상대의 호흡에 맞춰 같이 흥분했다.

츠츠츠츠-!

의생보의 보법에 형을 맞춰 상대의 요사스런 검을 피하고, 무한에 가깝게 뻗어 나가는 비류의 움직임을 접었다.

대신 다른 형태의 검을 취했다.

‘2초식 패도(霸道).’

비류가 쾌검이자 무한의 무리를 지녔다면, 패도는 오로지 하나만을 지녔다.

압도적인 힘!

그 무슨 힘이 오든, 어떤 요사스러움이 다가오든 간에 그보다 거대한 힘으로 상대를 부수는 힘이었다.

그의 검이 지닌 기기묘묘함이 사그라들었다.

움직임이 단순해지고, 대신 그의 검에 실린 내력이 무거워진다.

투둥. 퉁. 투웅.

한 번, 두 번. 그의 내력이 검과 순환하며 뻗어 나간다.

검이 더욱 묵직해진다.

바위를 쪼갤 듯한 거대한 힘이 일순간 산을 쪼갤 듯이 커진다. 공력이 계속해 순환하며 검에 힘을 더한다.

‘이 정도면 충분해.’

됐다. 그의 검이 뻗어 나간다.

“……!!”

투와아악!

급격하다고 할 수 있을 검의 변화.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을 그의 검은 패도가 됐고. 머리를 치켜든 뱀을 쪼갤 듯 상대의 검을 노려 뻗어 나갔다.

테스가 지닌 검의 힘이 깊어지며, 그의 영역도 넓게 퍼졌다.

상대는 피할 구석이 없었다.

작은 사마귀를 짓밟는 수레처럼, 테스의 거대한 힘이 그를 향해 뻗어 나간다.

그가 선택할 방법은 오로지 부딪치는 것뿐!

“이깟 힘 따위!”

상대는 우악스레 검을 쥐었다.

뱀처럼 머리를 치켜들고, 그가 지닌 모든 마도구들을 꺼내 들었다. 온몸에 걸친 마도구들이 사납게 울부짖는다.

힘이 빨라지고, 속도는 더해진다. 혈류는 이리저리 뻗어 나가 속도를 높이고. 내재된 혈기를 뿜어낸다.

부딪친다.

콰아아앙-!

거대한 폭음이 일었다. 한 번의 폭음. 그사이 거대한 힘이 산산이 비산하며, 암살자의 몸을 두드렸다.

“크야아아악!”

의선공의 내력과 선천진기가 짙게 밴 테스의 검이었다. 사특한 혈기를 지닌 자가 감히 견뎌 낼 수 있을 만한 기운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상성을 지닌 힘이 충돌하자 상대는 고통이 짙게 밴 비명을 내질렀다.

순간과 순간의 결착.

“크흐…….”

상대의 혈기가 사그라들고 그의 온몸을 둘러싸던 마도구가 빛을 잃었다.

암살자로선 고작 서 있는 게 최선.

검을 땅에 박고 겨우 버티고 선 상대를 향해 테스는 말없이 다가갔다. 그러곤.

“꽤 힘든 밤이 될 거다.”

“흐읏…….”

검 대신 손을 내질러 상대의 정신을 앗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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