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챕터 2.
테스는 도둑이 했던 협박을 아직 잊지 않고 있었다.
슬슬 그의 주변을 조여 오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용병 길드, 마력이 있는 자 등 종류는 다양했다. 그중 가장 음습한 시선이 느껴졌다.
‘조용하다 싶었는데, 슬슬 때가 된 걸지도.’
언젠가 있을 침입. 그때를 위해서 그가 미리 준비한 건 많았다.
저택에 있는 환영미리진의 진법을 강화했고.
그 자신도 수련에 매진했다.
아직 약한 에나에게는 적이 쳐들어왔을 때를 대비한 대응 훈련을 여러 번 반복시켰다. 당장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했다.
‘그걸론 부족하지.’
그것만으로 밤도둑을 완전히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은밀히 알아보기로, 이 작은 도시에만 도둑 길드가 다섯.
길드 규모도 되지 않는 조직은 수십 개가 난립해 있었다.
그중 아그멀드가 속해 있는 길드의 순위는 2위 정도.
‘의외로 규모가 컸어.’
조직원 수만 해도 백이 넘는다고 알려진 그들을 상대하기엔 상당한 준비가 필요했다.
‘치고 빠지면서 죽이면 못 할 것도 없다만, 그건 성미에 안 맞고. 내 예상대로면 그것으로 끝도 아닐 것이야. 치려면 제대로 쳐야 한다.’
적을 단번에 쳐 죽일 무기. 그들이 생각지도 못할 새로운 수.
한 마디로 여러 패가 그에겐 필요했다.
그를 위해 방문한 곳이 바로 마탑이었다.
* * *
스스스스-!
마탑을 방문하자마자, 마나와 함께 베빈이 그를 반겼다.
테스는 마탑에 설치된 마나 스캔보다도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베빈에서 느껴지는 짙은 마나향이다.
‘또 마나가 더 짙어졌네. 처음 보인 건 가짜고, 원래 강한 건가. 아니면 빠르게 강해지고 있는 건가. 도무지 모르겠는데.’
짙은 마나 향을 풍기고 있는 베빈. 그녀는 그를 보자마자 환히 미소 짓고 있었다.
“어머, 오늘도 크게 한 건 하고 온 거예요?”
“덕분에. 전에 말한 재료들은 미리 구비해 놨지?”
“물론이죠.”
그녀는 카운터 위에 미리 준비한 재료 주머니를 꺼내 놓았다.
상당한 크기를 자랑했지만, 그녀는 잘도 무게를 감내했다.
‘순간적으로 힘 부여 마법을 쓴 건데. 캐스팅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라. 대체 저 방식은 뭐지?’
매 순간, 강해지고 있는 테스다.
심장의 클래스는 두터워져 가고. 내력은 선천진기와 상승효과를 일으키며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자본도 충분히 들였다.
홀스 파워를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내력만 일 갑자에 다다르고 있는 지금.
슬슬 초인의 반열에 들어서고 있는 테스의 눈에도 베빈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존재였다.
따라잡았다 싶으면, 언제나 그 이상을 보인다.
일주일에 한 번 볼 뿐인 존재이지만, 가장 경계를 하고 있을 정도다.
테스의 속내를 전혀 모르는 걸까.
그녀는 여전히 환한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기억해요? 전에 말한 마탑의 의뢰는 아직 유효해요.”
“알잖아. 지금에 와서 의뢰를 받기엔 내가 벌이가 부족하진 않아서 말이야.”
“흐으응……. 돈이 아니라 다른 것도 줄 수 있다니까요?”
은근한 눈빛을 보내는 그녀의 눈은 농염하다.
스스-
동시에 작은 마나의 유동이 있었다.
“이를테면 마법사로서 과외? 그도 아니면……. 후후.”
“자자, 쓸데없는 장난은 여기까지. 나는 의미 모를 호의를 받을 생각도, 얻을 생각도 없어.”
“칫.”
혀를 차는 그녀.
테스는 그사이 가벼이 손을 쓸었다. 은밀한 마나 파동을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갑자기 유혹 마법인가.’
마나의 남은 잔향이 그의 코를 간질인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유혹의 힘이 있었다.
‘이건 좀 선을 넘었는데.’
어지간하면 넘어올 법도 하지만, 테스의 정신은 굳건했다.
의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강대해지고 있는 지금.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력이 더욱 강화되고 있었다.
덕분에 그는 베빈의 마법을 쉽게 물리칠 수 있었다.
허나 넘긴 건 넘긴 거고, 이 일에 대한 항의는 확실히 해야 했다.
테스는 경고했다.
“이번은 장난치고 선을 넘은 거 알지? 더는 그만하라고. 거래를 끊을지도 모르니까.”
“후, 조그마한 호감을 사려고 한 건데, 괜한 짓이었나 보네요.”
“쓸데없다 못 해 어리석은 짓이었어.”
장난질은 그만하라는 경고. 그의 목소리엔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
“이번 일은 기억하고, 빚으로 달아 두지.”
“그 기억 지워 주면 안 될까요? 대신에 꽤 흥미로울 만한 정보가 있거든요.”
“무슨 정보?”
물어오는 테스를 가만히 바라보는 그녀다.
이 마녀, 지금 이 상황도 예상한 걸까. 알 수 없다.
빙긋 호선을 그리는 그녀의 미소는 여전히 치명적이다.
보통의 사내라면 넘어갈 법도 했다. 하지만, 마법에도 넘어가지 않는 테스가 그 미소에 넘어갈 리 없었다.
“들었어요? 요즘 밤 분위기가 흉흉하더라고요. 특히 오늘 밤은 더 심할 거예요.”
“밤과 흉흉함이라…….”
밤. 흉흉함. 그 두 단어면 테스가 해석하기에 충분했다.
‘드디어 시작인가.’
웃는 낯인 그녀를 보며, 테스는 빙긋 웃음을 지었다.
“밤손님이 온다는 거군. 예정된 날이 오늘이고.”
“맞아요.”
그녀가 단언했다.
정확성은 말할 것도 없었다.
마탑에만 머무르는 그녀지만 이 도시의 모든 곳에 그녀의 눈이 있었다.
아침에 일을 벌이고 찾아와도 이미 알고 있는 게 그녀다.
‘출처가 베빈이니 정보의 정확도를 의심할 필욘 없겠네.’
도둑 길드의 정보를 얻는 거 따위 그녀에겐 하찮은 일이었다. 정보의 신빙성은 말할 것도 없었다.
문제는 그에게도 이런 정보는 하찮다는 거였다.
“알려 주는 건 고맙다만, 이걸로 정보가 된다고 하기엔 어려운데. 이미 예상하고 있던 거거든.”
“그래도 미리 방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이미 방비는 충분해. 놈들이 언제 오든 잡는 쪽은 나야.”
아그멀드가 다녀간 후, 테스는 치밀한 준비를 해 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강자라도 에나는 약자이고, 설사 그라고 하더라도 준비를 하지 않으면 당할 수도 있으니까.
자만을 부리다가 뒤통수를 맞는 일 따위 그의 성격에는 맞지 않았다.
‘중원에서도 그런 놈들이 많았지.’
전생에도 그는 그러했다.
명문 대파 출신이란 것들이 자만심으로 출정했다가 깨져 나가는 걸 수도 없이 지켜봤다.
그때마다 테스는 많은 대가를 받고 치료를 해 주며 동시에 그들을 비웃었다.
자만심을 갖은 대가로 십몇 년을 준비한 무림행을 제대로 펼쳐 보기도 전에 무너지는 꼴이 우스웠으니까.
자신은 그런 우스운 꼴이 되고 싶지도, 될 생각도 없었다.
미친 듯 준비를 했다.
진법을 펼치고 호위를 구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의 몸도 강하게 단련했다.
언제나 준비를 하는 자신이었고, 그 효과는 톡톡히 발휘됐다.
수많은 적들이 그에게 달려들었을 때도 그는 홀로 남아 적들을 베는 데 성공했었다.
경험은 차고 넘쳤다.
그러니 그에 걸맞은 준비를 했다. 자신감이 넘칠 수밖에.
그 자신감이 베빈에겐 다르게 읽히는 듯했다.
“오만한데요.”
“퍽이나 그럴까.”
지금 그의 발언은 오만한 게 아니다. 정확한 자기 판단일 뿐.
“오만은 눈이 먼 머저리한테나 통용되는 말이지. 베빈, 당신은 내 집의 방비를 충분히 알고 있잖아?”
“후음, 아니라곤 못 하겠네요. 작은 저택치곤 대단한 방비긴 하죠.”
“차라리 제대로 된 정보를 달라고. 이 이상은 돼야 하지 않겠어?”
그녀 정도면 더 많은 정보를 줄 수 있었다.
이를테면 아그멀드가 속한 길드의 조직도, 그들이 숨은 아지트, 장물을 챙겨 넣은 보물창고의 위치 정도…….
정확할 필요도 없다. 대략적이기만 하더라도 테스는 스스로 알아낼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를 요구했으나, 아쉽게도 답은 거절이었다.
“에이, 그건 무리예요. 약속된 선을 넘거든요.”
“이미 선을 넘은 주제에, 이게 선을 넘는 이야기라니. 영 마음에 안 드는데.”
웃고 있는 그녀는 그런 정보는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이런 식으로 후려쳐서야 쓰나. 좋다가 말았군.’
내심 질 좋은 정보를 기대하고 있던 테스였다. 영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에 그만 혀를 찼다.
“그렇다면 이걸로 이번 빚을 탕감해 줄 생각은 없어. 내 손해니까.”
“설마 마탑의 카운터를 맡고 있는 제가 셈을 제대로 못 치르겠어요? 대신 다른 걸로 지불하면 되는 거죠.”
“흐음?”
“이거 정도면 넘어가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생긋 웃은 그녀. 카운터 아래에서 작은 물건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건…….”
“받아 가세요. 꽤 유용할 거니까요.”
그녀가 생각지도 못한 걸 넘겨줬다.
* * *
마탑에서 돌아온 테스는 말없이 연구실로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그가 품에서 꺼낸 건 룬어가 작게 새겨진 판이었다.
“룬 조각을 여기서 얻을 줄이야…….”
통칭 룬 조각.
세상을 해석하는 언어, 룬어.
마법사는 이 룬어를 사용해 마법을 부렸다. 즉, 마법을 부릴 때마다 룬어를 시전하는 게 먼저라는 이야기.
마탑의 마법사들은 이때 테스의 손에 쥐어진 룬 조각을 사용했다.
“한참은 뒤에 얻을 거라고 여겼는데, 예상보다 빨랐네.”
그가 지닌 룬 조각 위에 새겨진 룬어는 [발동].
발동은 전투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필수라고 할 수 있는 룬어였다.
마탑의 마법사는 이 발동의 룬 조각을 전투 때마다 이용했다.
룬 조각을 활성화하여 마법의 캐스팅 속도를 높임은 기본이고. 동시에 마법의 안정화를 이뤘다.
우우웅-
때로 지금 테스가 마나를 주입하듯, 미리 마나를 불어넣어 충전도 해 뒀다.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준비였다.
단순히 마나를 불어넣는 거지만, 그 효용은 많았다.
남은 여유 마나를 미리 집어넣음으로써 전투에 더 많은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준다.
더 많은 마법은 곧 전투력 강화. 생존율이 상승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용량으로 봐선 저장 수는 총 다섯. 최소 중하급 수준은 되겠어.”
이 룬 조각을 이용해서 마탑의 마법사들은 강한 전투력을 선보였다.
부족한 실전 경험 따위 이 룬 조각으로 채울 수 있을 정도다.
쉽게 구할 물건은 분명 아니었다.
“생각보다 더 세밀하고…… 교묘하군. 과연 마탑의 비기란 건가.”
테스가 지닌 특유의 기감은 룬 조각 아래에 박혀 있는 마법진의 형태를 읽을 수 있게 해 줬다.
겉으로야 [발동]이라는 룬어 하나가 새겨져 있을 뿐이지만, 그 안은 복잡했다. 그도 아직 해석하기 힘든 온갖 마법진들이 미세하게 얽혀 있었다.
‘보안 마법까지 걸어 놓은 건가.’
함부로 뜯어보려 했다가는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나겠지.
만들기도 힘들뿐더러 잘 만들지도 않는다. 이 룬 조각의 가치를 말하자면 족히 1000골드에 육박할 터다.
“데브론도 갖고 있지 못하던 건데. 후음…….”
이전에 보았던 마탑의 마법사. 정통 마법사임을 자부하는 데브론도 구경하기 힘든 물건을 얻었다.
이 룬 조각만 이용해도 마법사로서 그의 능력은 더할 나위 없이 크게 상승한다. 그것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었으나, 그는 이미 그 너머를 보고 있었다.
“꽤 고마운걸. 이거라면 도움이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