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화
챕터 1.
사내는 테스보다 몸이 가늘어 보였다. 키는 멀쑥한데 몸에 붙어 있는 근육은 적었다. 그렇다고 테스는 무시하지 않았다.
‘단련한 몸이야. 속도에 치중한 타입인가.’
때로 이런 몸을 가진 자가 지닌 속도의 힘이란 걸 알았으니까.
보아하니 용병 나부랭이 중 하나로 보였다.
약을 받으러 왔다가 늦은 거겠지. 그의 경험상 수틀리면 진상을 부리는 용병들이 많았다.
‘이런 놈들이 한둘 나올 법하긴 하지.’
인상을 찡그리는 꼴을 보아하니 약을 달라고 진상을 부릴 터. 없는 약을 줄 수도 없을 뿐더러 줄 생각도 없었다.
테스는 작게 인상을 찌푸리곤 험하게 말했다.
“약은 더 없어. 꺼져. 필요하면 다음 주에 오든지.”
“나는 약을 사려고 온 게 아냐. 사업 이야기를 하자는 거다.”
허, 갑자기 사업 이야기라. 우습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벌써 시작된 건가.’
전생의 중원에서도 그러했다.
그는 건마환을 팔기 시작하기 전에도 꽤 많은 종류의 약을 팔았다.
외상에 특효약인 금창약부터 독에 효과적인 해독제도 판매했다.
그때마다 돈 냄새를 맡은 승냥이들이 찾아들곤 했다.
상인들이다.
투자랍시고 찾아오는 건 보통이고. 비전을 팔라고 찾아오는 자도 있었다. 심한 경우는 혼인도 제안했다.
흔한 일이다.
그때마다 상인들은 제 간이나 내줄 듯 굴었고. 마치 태어날 때부터 알던 친우처럼 살갑게 구는 자도 있었다.
‘근데 보아하니 이놈은 영 상재가 없어 보이네.’
속이라도 다 꺼내 줄 거처럼 굴어도 넘길까 말까다.
근데 이리 건방져서야.
이런 자에게 테스가 돌려줄 말은 오직 하나다.
“사업? 다시 말하지만 꺼져. 하더라도 너랑은 할 생각이 없으니까.”
“하, 너 그러다 큰일 날 텐데?”
테스가 거절하는데도 상대는 뻔뻔했다. 그리고 그 뻔뻔함은 테스의 예상 이상이었다.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밤손님들이 움직일 거라고.”
“뭐? 밤손님?”
* * *
밤손님. 도둑이다.
그는 도둑을 이야기했다.
우습게도 이 세계엔 도둑을 위한 길드도 여럿 있었다.
말이 길드고 사실은 조직.
수백 년간 뿌리를 내린 역사 깊은 조직도 존재했고. 고작해야 수년밖에 안 된 곳도 있었다.
밤손님이란 말에 테스가 놀랐다고 여긴 걸까.
상대는 비릿하게 웃었다.
“하, 이제 좀 이야기할 마음이 들어? 좋게, 좋게 이야기 한번 해 보자고. 꼭 더럽게 갈 거 없잖아?”
“미친 새끼네.”
껄렁껄렁함이 느껴져 진상이라고 여겼더니, 그보다 더 최악이었다.
도둑이라니. 밑바닥부터 뒹굴던 테스도 상대하지 않는 자이지 않은가. 썩어도 너무 썩은 놈이다.
‘랄프로 본보기 한 번 보였으니 이제 됐다 싶었는데……. 쯧. 돈이 돌기 시작하니 바로 부나방이 찾아오는구만.’
개차반, 아니 개X끼랄까. 사람이 아닌 게 왈왈 짖어 댔다.
“뭐 됐고. 앞으로 자주 볼 건데, 내 이름이나 알아 둬. 아그멀드다. 앞으로 네가 두고두고 돈을 상납할 형님이기도 하지.”
“……하, 참.”
보아하니 눈앞에서 왈왈대는 개는 버릇이 잘못 들었다.
때론 이런 버릇없는 개를 치료하는 데 특효약이 있다. 바로 매였다.
“본래 이런 건 4할은 가져가는데, 내 특별히 오늘 인연을 생각해서 3할로 하지. 어때? 꽤 괜찮은 거래……. 컥.”
테스는 대답 대신 손을 내질렀다.
허를 찌르는 기습.
아그멀드는 반응조차 할 새가 없었다.
“캬악.”
이미 몸이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모, 몸이 안 움직이잖아? 왜 안 되는 거야?’
테스의 손날이 그의 가슴팍을 스쳐 지나간 이후 몸이 굳었다.
목석처럼 굳은 몸은 더 이상 통제가 되지 않았다. 그의 장기인 빠른 속도 자체가 성립이 안 됐다.
이런 마법이 있을 줄이야.
경험이 많다고 자부하던 아그멀드로서도 놀랄 일이다.
‘이래서 마법사에게 틈을 주면 안 되는…….’
그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순간. 턱이 돌아갔다.
빠아악.
복날 개가 맞아 터지는 소리가 났다.
복부, 정강이, 허벅지, 울대. 테스는 가리지 않고 손을 내질렀다.
“케에엑…….”
“쯧. 어딜 날로 먹으려고 들어.”
빠아악. 빡.
수도로 손을 내질렀다. 순식간에 수십여 타.
키만 멀대 같은 그의 온몸을 두드리는 덴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캬아아악. 컥……. 케엑. 사, 살……. 컥.”
목석처럼 굳은 아그먼드는 쓰러질 수도 없었다.
쓰러지려고 하면 테스가 발로 그의 몸을 걷어차 올렸다. 억지로 몸을 띄워 재차 타격을 날렸다.
‘무, 무슨 마법사가……. 이리 몸을 잘 써.’
주먹이고 손날이고 가리지 않았다. 손으로 칠 수 있는 온갖 방식으로 그를 때렸다.
“크흐으으……. 그, 그만……. 제, 발…….”
할 수 있는 최선의 반항은 그저 입을 놀리는 것뿐.
‘이 망할 사술은 대체 왜 안 풀리는 거야!?’
그의 몸이 자신의 의지를 따르지 않았다. 그런다고 기절을 할 수도 없었다.
테스가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테스는 치밀했다.
아그멀드가 견딜 수 있을 만큼만 타격을 가했고, 기절을 할라치면 혈도를 자극해 정신을 일깨웠다.
“캬아아악, 캭…….”
이 시간은 아그멀드에겐 최악의 순간이 됐다.
온몸이 굳어진 채로 샌드백이 되는 느낌이라니.
‘무기만……. 무기만 꺼낼 수 있었어도……. 흐……. 이 몸이 대체 왜 이런…….’
단단한 몸을 지닌 그로서도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얼마나 많은 타격을 가했을까. 옆에서 지켜보던 에나도 입을 딱 벌릴 만큼 놀라운 타격의 향연.
그의 눈이 뒤집어질 때쯤 테스의 손이 멈췄다.
“후…….”
“커으으으…….”
테스가 손을 멈추는 순간, 그의 몸이 아래로 허물어진다.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진 아그멀드.
신음을 내뱉는 그의 몸은 온갖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커흐……. 흐으으…….”
“뭐 해? 안 일어나고. 딱 일어날 수 있을 만큼의 힘은 남아 있을 건데.”
“이…… 미친 마법사가……. 큽.”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신기하게도 그는 몸이 다시 움직여짐을 느꼈다.
수백여 타를 맞았지만, 그의 몸은 아직 기력이 남아 있었다.
‘쓰레기 새끼인데……. 단련은 착실히 했나 보네.’
그 잠깐 누워 있음으로 해서 몸이 회복된 거다.
몸이 풀린 아그멀드의 눈에 살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이내 안 된다고 여겼는지, 살기를 잠재웠지만. 테스는 그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왜, 이대로는 억울하냐? 억울하면 무기 꺼내. 그때는 정말 죽는 거니까. 실험해 볼래?”
“……미친 마법사 놈. 어디서 요상한 마법을 익히는 데 성공은 한 거 같다만, 네놈, 후회할 거다.”
“하, 후회라…….”
테스가 슬쩍 손을 올렸다. 그러자 아그멀드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정신은 반항해도 몸은 바로 전의 타격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푸훗, 허세하고는.”
“이이익!”
그 꼴을 보고 웃어 댔지만, 그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몸이 따라 주질 않았다. 뼛속까지 고통이 각인된 듯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반항은 결국 하나였다.
“두고 보자!”
“얼마든지.”
몇 마디 입을 놀리고 그 자리를 떠나는 것뿐이다.
당장은 혼자 달려들 용기도, 무기를 꺼내 들 용맹함도 사라져 있었다.
물러가는 아그멀드.
“흐음……. 벌써부터 부나방들이 날뛴다라. 돈 냄새 한번 기가 막히게 맡았다는 건데, 슬슬 준비를 해 놔야겠네.”
그런 그의 등 뒤를 테스는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 * *
두고 보자는 아그멀드의 외침과 다르게, 시간은 조용히 흘러갔다.
‘어째 조용하다.’
그사이, 그는 두 번 약을 더 팔았다.
한 번 판매를 할 때마다 70알씩, 총 140알을 단번에 매진시키는 기염을 토할 수 있었다.
오늘이 네 번째 판매를 하는 날.
몇 번의 제작으로 흐름이 붙었다.
얼마 전 연단을 위한 연단로도 완성한 그는 총 90알을 생산해 내는 데 성공했다.
90알. 수련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만들 수 있는 최선의 수였다.
“오늘은 90알. 한 사람당 3알이 제한이니 잘들 생각하고, 사.”
“오오.”
“자, 30명 뒤로는 다 가. 다음 기회를 노리라고.”
덕분에 신이 난 건 이른 아침부터 찾아온 고객들이었다.
“아우! 오늘 좀만 일찍 일어났어도!”
“젠장! 끝까지 줄을 섰어야 하는데.”
잠깐의 소란이 일었다.
하지만 이번에 소란을 일으킨 자는 꼭 기억해 두겠다는 에나의 말에 소란은 금세 잠잠해졌다.
처음엔 용병들을 보고 놀라던 에나였지만, 어느새 그녀는 용병들을 잘도 다루고 있었다.
‘짜식, 하여간에 적응 하나는 잘하네.’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던 테스는 순식간에 판매를 끝마쳤다.
“총 900골드! 딱 맞아요!”
그가 재료비로 사용한 돈은 고작 36골드. 순식간에 900골드로 돌아온 돈주머니는 무게가 묵직했다.
‘좋네. 어려운 의뢰를 갈 것도 없이 이 정도라니.’
만족스러웠다. 약을 몇 번 만들어 내는 것치곤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인 셈이니까.
듣기로 그의 수익을 보고 놀란 연금술사 길드에서 새로운 약 제조에 들어갔다는 소문도 있었다.
새로운 경쟁자가 생겨날 수도 있었지만, 테스는 자신이 있었다.
‘선천진기도 없이 잘 한번 만들어 보라지. 단가부터 절대 맞추지 못할 거다.’
어떤 경쟁자가 나오든 상관없었다.
의선의 지식과 선천진기의 힘으로 말미암아 고꾸라트릴 방법만 떠오르는 게 수십 가지다. 경쟁자가 나오면 그때 가서 박살을 내 주면 될 뿐이다.
다만 그는 아직 없는 경쟁자를 신경 쓰기보다도 다른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럼 생활비만 따로 10골드 빼놔. 나머지는 쓸데가 있으니까.”
“오늘도 다 쓰고 오시려고요? 이 돈을요?”
“응. 준비를 해야 하니까.”
준비. 언제고 쳐들어올 자들에 대한 준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