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화
챕터 24.
“후후…….”
광기 어린 눈을 한 테스는 손에 든 솥을 휘휘 젖고 있었다.
검은빛을 띠던 이전의 독약은 사라졌다. 대신 맑은 액체가 솥 안을 떠다녔다.
‘나한텐 쉬운 일이었어.’
떠다니는 액체가 그에겐 황금빛으로 보였다. 돈 더미다.
“이 세계고 저 세계고, 이건 먹힌다. 암, 무조건 먹히지.”
그가 돈을 벌기 위해 만든 건 다름 아닌 탕약.
정확히는 이 탕약을 조려 단약을 만들 생각이다.
이 세계의 약초로 몇 가지 배합을 하여 만든 단약의 중원 이름은 건마환.
건마환(健馬丸)!
건강한 말이라는 뜻을 지닌 의미였다.
“여기 식으로 말하면, 홀스 파워(horse power)인가!”
강대한 체력 하면 말. 그런 말이 건강하다면, 과연 어디가 가장 건강하겠는가.
말 하면 탁 하고 떠오르는 한 가지가 있지 않은가.
그래! 그가 만들어 내는 건 그럴싸하게 말하면, 쇠하고 부족한 양기를 보충하여 주는 약이고.
쉽게 말해 정력제였다.
“크흐, 의선일 적에도 의선문에 돈이 부족하면 자주 만들곤 했는데. 이 짓을 여기서 또 해 먹을 줄은 몰랐군.”
효과는 확실하다.
전생에도 이미 여러 차례 만들었던 정력제이고, 그 효능은 상상을 불허한다는 것을 이미 증명했다.
‘이번은 더 강력해. 무려 파격 첨가라고.’
여기에 그는 한 가지를 더 첨가했다. 진득한 생명력. 무려 선천진기를 첨가했다.
고작해야 정력제에 선천진기라니!
중원의 무림인들이 보았더라면, 이 무슨 짓이냐고 기겁을 했겠지만 내 알 바 아니었다.
고작 해야 10골드의 자금으로 최고의 효능을 내기 위해선 이 방법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호오.”
가만 보기만 해도 강력한 약력이 느껴지는 단약을 오십 개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테스는 먹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건 확실하다. 먹힌다. 하나만 먹어도 가히 한 남자가 말(馬)로 전직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물건이다!
“쓰읍. 내가 먹을……. 아니지. 내가 뭐 이게 부족하다고. 하나라도 더 만들어서 팔아야지. 암, 암.”
직접 만들어 낸 그로서도 탐이 날 만큼 강한 약력!
완성품의 품질을 보고 흥이 더욱 오른 그는 미리 준비했던 은박을 꺼내 들어서 약을 감싸기 시작했다. 꽤 그럴싸한 완성품이 그의 손에 50알 쥐어졌다.
“후, 내가 이런 명약을 여기에서 또 만들다니. 전생에서처럼 이거 먹겠다고 칼부림이라도 안 나면 좋겠는데.”
말은 걱정하고 있지만, 그의 표정은 째지도록 옆으로 호선을 그렸다.
차고도 넘칠 완벽한 완성.
“자, 가 볼까.”
단 몇 시간.
홀스 파워로 불리며, 이 세계의 많은 남자들을 울고 웃길 약을 품에 넣은 그는 곧바로 연구실을 나왔다.
“어? 나가시려고요? 장이라면 미리 봤는데요?”
“아주 중요한 일이라서 말이지.”
“헤에? 뭔데요?”
“……쉿. 아직 어린 네가 알 만한 게 아냐.”
“예?!”
“후후, 알면 다친다. 오늘 저녁은 고기로 미리 준비해 놔라. 잔뜩 벌어서 올 테니까.”
중간에 마주친 에나. 수련을 하다 말고 어리둥절해하는 그녀를 두고, 테스는 목적지를 향했다.
‘목표는 역시 거기야. 거기가 잘 팔려.’
* * *
정력제.
이거라면 아주 사족을 못 쓸 만한 놈들이 가득 모인 장소가 하나 있었다. 바로 용병 길드다.
‘여기 있군.’
몇 년 전 들렀지만 위치를 잊을 일은 없었다.
달라진 건 용병 길드 건물의 외형뿐이었다. 수많은 용병들이 오가며 사고를 친 듯 온갖 곳이 부서져 수선한 것이 보였다.
하긴 어딜 가나 사고치는 놈들이 용병이니, 이만큼이라도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게 어쩌면 대단한 일일지도.
낡은 문을 열고 들어선 테스는 직행했다.
의뢰를 받지 못한 자, 기다리는 자, 동료를 구하는 자까지 온갖 인간 군상들이 모여 있는 용병 길드 안은 꽤 시끌벅적했다.
그 가운데 서서 테스는 목소리를 높였다.
“아아.”
마나를 일으킨 덕에 큰 소리가 났다. 사람들 모두가 그를 힐끔 쳐다봤다.
웬 미친놈인가 하는 눈빛들이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약간의 시선으론 부족하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아! 아무 때나 오는 마법사가 아니니 잘들 들으라고. 여기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게 왔으니까.”
화르륵.
그는 말하며 동시에 영창을 했고, 양팔 가득 불을 만들어 뿜어냈다.
선명하게 타오르는 불이 그를 감싸며 아래로 내려앉았다. 흡사 불의 망토가 그를 둘러싼 듯 보였다. 그 화려한 모습에 시선이 한데 모인다.
“뭐지, 저 마법사?”
“흠……. 모르겠는데. 웬 미친 마법산가.”
“또 미친놈이야?! 아오, 그제도 나오더니만…….”
“아냐. 아냐. 저기 저자, 흉가의 마법사잖아? 내가 전에 아침나절부터 일 구하러 왔다가 봤다고.”
“뭐?! 흉가의 마법사? 허……. 왔으면 조용히 의뢰나 받지, 저게 뭔 쇼래.”
“모르지. 뭘 하려는 거지, 대체?”
이 정도면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을 터.
그를 알아보는 자가 나오기 시작하며, 웅성거리는 소리는 더욱 커졌다.
후욱. 테스는 바람을 불어 불을 끄는 시늉을 하곤 몸에 둘렀던 불의 망토를 사그라트렸다. 그러면서 품에 있던 약을 꺼냈다.
“자자, 다른 것보다 이거에 집중 해 봐. 지금 이게 가장 중요하니까.”
“그게 뭔데? 말로만 듣던 흉가 제조기냐?”
“쯧. 그걸 농담이라고 한 거면, 영 구린데. 그래도 처음 호응했으니까 봐준다. 이건 이름하야 홀스 파워! 고작 한 알 10골드에 미친 힘을 선물해 줄 물건이지!”
그가 바짝 손을 위로 들자, 모두의 시선이 알약으로 향한다.
반응은 뜨거웠다.
“미친, 10골드가 고작이라고?!”
“정력제야 그렇다 치고, 뭔 정력제가 10골드나 해?!”
“허미…….”
“정력제? 하, 난 그런 거 필요 없어!”
그가 원하던 분위기는 아니었다. 중원에서처럼 건마환이 출시됨과 동시에 매진되는 일은 벌어질 리 없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해. 충분히 이해한다.’
첫 출시니까.
그때도 그랬다. 고작 정력제에 웬 금원보 하나를 내야 하느냐고 발악을 하는 자들도 수두룩했다.
은원보로도 사고 싶지 않다던 자들이 더 많았다.
딱히 적의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위력을 모르니까 그런 거다.
고로 위력을 보여 주면 다 해결된다는 이야기. 보여 주는 방법은 간단했다.
“진정들 해. 뭐……. 이렇게 말하면 사는 놈이 없을 건 이미 예상했다. 그래서 5명 선착순으로 공짜로 준다. 공짜로 쓰면, 약효를 알 수 있을 거 아냐?”
“공짜!”
“그래. 공짜다. 선착순 딱 5명! 먹을 놈?”
효과만 확실한 정력제라면 의뢰금을 다 써도 아깝지 않아 하는 게 바로 용병. 공짜인데 마다할 리가.
드디어 반응이 터졌다.
용병들의 굼뜬 엉덩이가 바로 의자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달려왔다.
“오오오! 다 비켜! 내가 먹는다!”
“야, 이 새끼야! 방금 전만 해도 정력제 따윈 필요 없다며!”
“아씁, 늦었다.”
바로 다섯이 모였다. 그들 눈엔 본능적인 탐욕이 엿보였다.
‘걸렸다! 한번 먹으면 사족을 못 쓸 거다.’
새로운 고객님들이다. 테스는 웃는 낯으로 단약 다섯 개를 꺼냈다.
“자자, 다섯 모였으니 바로 나눠 주지. 이거 먹으면 아주 힘이 넘칠 거다! 가서 잘들 쓰……. 음?”
“흠. 그게 부작용이 없다고 누가 장담하지? 그리고 여기서 장사를 하라고 누가 허락한 건데?”
테스가 약효를 보여 주기 위해서 알약 다섯 개를 막 나눠 주려는 찰나. 그가 만들어 내는 한 편의 쇼에 끼어드는 자가 있었다.
‘뭐야, 이건?’
테스는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울퉁불퉁한 근육을 가진 자가 목 뒤로 도끼를 교차해 걸치고 있었다. 사나운 흉터가 가득한 얼굴 아래로 두꺼운 목걸이가 보였다.
테스에겐 상대의 정체보다 소속된 곳이 더 중요했다.
‘야만인의 피가 섞였나. 희귀한데. 그리고…….’
* * *
강하다.
카운터에서 걸어 나온 사내의 목걸이에는 용병 길드의 상징이 박혀 있었다. 용병 길드에 직속으로 고용된 자란 의미.
덩치로 봐서는 길드 내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자를 상대하고자 고용한 자일 터. 느껴지는 기운도 상당했다.
‘흠. 50초. 길어야 100초면 처리 가능하겠어…….’
그래 봐야 테스의 눈엔 상대의 실력이 훤히 보였다.
상대는 테스가 주눅 들기를 원하겠지만, 그는 되레 더 당당해졌다. 길드에서 고용한 실력자를 쉽게 상대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장사를 허락받아야 한다고? 여기서 간단한 거래는 할 수 있지 않나?”
“맞아. 그래도 댁처럼 소란을 일으키는 경우는 드물지.”
크게 갈등을 일으킬 생각은 없었다. 용병 길드에서 막 나가다가 불이익을 받으면 테스만 손해였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쉽게 물러날 생각은 없다.
“그래도 금지는 아니잖아? 정 뭐 하면 나가서 할까?”
“어디서?”
“바로 문 앞에서.”
“어이쿠야.”
문 앞에서 장사를 한다는 말에 덩치는 자기 이마를 손으로 탁 쳤다.
“이거, 마법사들 중 워낙 미친놈이 많다는 건 알았다만……. 생각보다 더하네.”
“야만인한테 그런 소리 들으니 좀 신선한데.”
“야만인이라고 하지 말고, 울란이라고 해라. 뭐, 그래. 어차피 문 앞이나 여기나 마찬가지이니 소란만 더 안 일으킨다면 장사는 괜찮아.”
“오오, 내가 아는 누구랑 다르게 융통성은 있네.”
“이런 데서 일하다 보면 없던 것도 자연스레 생기는 법이지.”
울란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야기가 잘 풀리는 듯싶었다.
“마음에 드는데. 너도 한 알 챙겨 줄까? 이거 꽤 괜찮은 거야.”
“아아, 장사를 허락하긴 했지만, 한 가지는 대답 안 했잖아?”
하지만 착각이었다.
“뭔데?”
“그거 정말 부작용 없는 거 맞나?”
“허어.”
상대는 곱게 물러난 게 아니었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랄까. 장사 허락이 아닌 약의 부작용으로 테스를 물고 늘어지고 있었다.
‘이 녀석, 머리 쓰네?’
장사는 허락한다고 했지만, 물건에 태클을 걸지 않는다고는 하지 않았다.
여기서 부작용을 이야기하는 건 뻔했다. 제대로 된 물건이 아니면 꺼지라는 의미.
‘내가 이걸 예상 못 한 게 아니지.’
태클이 들어왔다면 돌진해 무너트리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