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챕터 22.
마침 이 세계는 독마가 탐할 만큼 독기를 지닌 것들로 넘쳐났다.
바로 몬스터다.
고블린이 본능적으로 만드는 독. 고블린 독만 해도 귀한 마비 독이고, 하급의 슬라임도 산성 독으로 이뤄진 존재였다.
‘독마가 여기 오면 눈이 홱 돌아갔을 거야. 천하제일인도 금방 됐을지도.’
그만이 아니다.
몬스터 시체는 존재만으로 독기를 뿜어낸다. 오죽하면 그저 존재함으로써 주변을 황폐화시키는 몬스터도 있을 정도다.
그런 몬스터의 사체를 구할 곳이 있었다.
바로 마탑 지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전에 만났던 그녀가 보였다. 따로 가진 정보통으로 소식을 들은 듯, 그녀는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어머, 아침부터 소동을 일으키더니 바로 여기로 왔네요. 왜요? 여기서 설명이라도 더해 주려고요?”
“이야기꾼을 하는 취미 같은 건 없어서 말이지. 물건을 구하러 왔어.”
“후후. 영상 저장구도 하나 더 드려야 할 거고, 그 외에 또 뭐 있나요?”
“슬라임, 고블린 독, 웨어울프의 타액, 트롤 피 일부……. 아, 이건 비싸려나. 음……. 아주 소량만 줘. 그 외에 또 독기를 품은 것들이 필요한데.”
테스는 제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쉼 없이 읊었다.
그의 말이 끝날 때마다, 그녀는 카운터 위에 물건을 턱턱 올려놓았다.
‘신기하군. 아공간이라도 있나.’
카운터 위로 꽤 많은 양이 쌓였다.
“얼마지? 시세는 이미 알고 있으니 거짓말은 말고.”
“총 120골드예요. 그렇지만, 오늘은 제 권한으로 20골드는 빼 줄게요.”
“음?”
급작스런 할인이라니.
‘의미 모를 호의라.’
테스는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자 작게 눈짓을 했다. 말을 하란 의미였다.
카운터의 그녀는 샐쭉한 표정을 짓고 말을 이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어요. 당신이 데려간 범죄자들 중 하나에게 내가 아는 마법사가 당했을 뿐이에요.”
“마탑의 마법사를? 고작 그런 용병들이?”
“……꼭 마탑의 마법사만 마법사가 아니죠.”
“허.”
콧대 높은 마탑의 마법사로부터 이런 말을 들을 줄이야.
‘이건 놀라운데.’
테스는 생각지도 못한 말에 놀람을 표하면서도, 그녀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여기 100골드. 고맙군.”
“저야말로 고마워요. 마탑에 묶여 움직이지 못했지만, 이 뒤의 복수는 제가 나서서 해도 되겠죠.”
웃음 짓는 그녀는 당장 경비대에 가서 도둑들을 노예로 사 올 태세였다. 그 뒤는 어찌 될지 훤히 보였다.
테스보다 더 가혹하겠지.
‘뭐, 내가 상관할 필요가 있나.’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든 테스는 괘념치 않았다.
그녀가 챙겨 준 주머니에 재료들을 욱여넣을 뿐이다. 에나와 함께 돌아 나가려고 하는 그의 귀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음에 올 때는 베빈이라고 불러요. 베빈 아너스. 그게 제 이름이니까요.”
“그렇게 하지, 베빈. 다음에 보자고.”
그의 등 뒤로 그녀의 미소가 전해지는 듯했다.
* * *
‘이걸로 또 한동안 바빠지겠네.’
독기를 이용해 내공을 키운다. 전생엔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 만독공을 전한 독마도 상상하지 못할 일이었다.
‘알면 눈이 돌아갔겠지. 그때는 왜 이런 걸 몰랐나. 하기야……. 그때는 이미 반쯤 완성됐으니 이런 걸 할 필요도 없었나.’
이 새로운 방식을 적용하고, 실험을 통해 최대의 효율을 찾아야 했다.
그러기만 하면 그의 내공은 금방 올라가겠지.
“으차.”
빠르게 쌓고 있지만, 내공은 언제나 부족했다. 그 내공을 채울 기회다. 덤으로 만독불침 수련도 될 터.
‘어서 하자.’
곧 이어질 실험에 흥미를 품고 움직이는 그. 그런 그의 뒤로 에나가 생각지 못한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저 뻔뻔한 궤변 하나 늘어놓아도 될까요?”
“응? 뭐라고?”
쭈뼛거리는 그녀가 말을 이었다.
* * *
그녀의 말을 들은 테스는 흥미가 생겼다.
‘재밌네.’
사실, 테스는 그녀가 돈을 달라고 할 줄 알았다. 100골드가 넘는 돈이 오가는 걸 봤으니, 노예이던 그녀의 눈이 돌아가기 충분했으니까.
전혀 아니었다.
그녀는 전혀 생각지 못한 제안을 해 왔다.
“그러니까 내 무공, 아니 무술을 가르쳐 달라고?”
“네. 마법이야 재능을 타고난다고 하지만, 무술은 좀 다르다고 들었어요.”
“후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입문은 가능하지.”
테스로부터 무공을 배우길 원했다.
‘못 가르칠 건 없긴 해.’
전생에 의선으로 문파를 열었던 그다.
제 별호를 따 만든 문파의 이름은 의선문. 꽤 거대한 집단을 이룩하는 데 성공했었다.
의선으로 쌓은 인연으로 정사마에 발을 걸치고 있었고, 동시에 수많은 자들이 호법이 되길 마다하지 않았으니까.
그때 많은 자들을 가르쳤다.
재능이 있든 없든, 의선의 힘을 사용하면 무공을 가르치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이미 몇 번이나 해 왔던 일.
전에 없는 마법이 있는 지금은 더 빠르게 경지를 끌어올리는 것도 가능하다.
“무술이라도 익히면 더 잘 살 수 있을 거 같아요.”
“무술이 없다고 해도 잘 사는 사람은 많은데?”
“에이, 그거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죠. 이미 오늘 일로 흉가 마법사의 사람으로 소문이 났을 걸요. 그럼 저를 노리지 않을까요?”
제가 하는 말이 궤변인 걸 아는 듯.
그녀는 말을 이어 가면서도 볼이 붉어졌다. 부끄러워하면서도 계속해 말을 이었다.
‘짜식, 차라리 돈을 달라 했으면 딱 잘라 거절했을 텐데……. 제법 재밌는 생각을 한단 말이지.’
진지한 그녀의 모습이 꽤 귀여운 터.
테스는 저도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을 뻔하다가 손을 내렸다.
가르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녔다. 그가 육체 단련을 할 때, 조금 손보면 될 정도다.
테스도 흥미가 생기긴 했다. 이미 반쯤 넘어갔지만, 괜히 튕겨 보았다.
“후음……. 이런 무술이 비전이란 건 알고 있냐? 함부로 전수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러자 그녀가 잠시 잊고 있던 기억을 꺼내 들었다.
“이미 어제도 한 번 제안하셨잖아요. 가르쳐 줄까 하고요!”
“어? 으음? 아아…….”
바로 어제 농담으로 그녀에게 말했었다. 생명을 흡수하기 전에 가르쳐 주랴, 하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지나간 듯 말했는데, 그걸 기억할 줄이야.
“반쯤 억지인 거 알아요. 어떻게 안 될까요?”
“푸흐흐. 정말 궤변은 궤변이야.”
“그 궤변이 저로선 최선이고요.”
하는 건 헛소리인데, 눈빛이 진지했다. 인정을 하기까지 하니, 차라리 나쁘지 않다.
‘뭐, 따라오지 못하면 어쩔 수 없지.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볼까나. 뭘 해도 전보단 낫잖아?’
에나를 보면 전생의 그녀가 떠오르곤 했다.
애써 살렸던 이화. 그때도 무공을 가르쳤지만, 그녀는 결국 그와 다른 선택을 했다. 죽음이었다.
그녀와 에나는 달랐다. 정확히는 눈이 달랐다.
살고자 하는 눈이다.
그녀를 거둔 것 자체가 작은 변덕에서 시작한 일. 여기서 또 변덕을 부린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
“가르침에 대한 대가는 나중에 철저히 받을 거다?”
“그럼 허락해 주시는 건가요?”
테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와!”
그녀의 얼굴이 기쁨으로 물든다.
에나의 기쁜 표정은 작은 변덕에 대한 대가치고 꽤 가치가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변해 가는 모습에 테스가 작은 미소를 지을 정도는 됐으니까.
“당장 시작하자구나.”
“예! 얼마든지!”
* * *
기쁨은 기쁨이고, 수련은 수련이었다.
지난 경험을 살린 테스. 그는 순식간에 그녀를 위한 최단기 수련 방법을 마련했다.
곧바로 시작한 수련에 그녀가 곡소리를 낸다.
“흐으윽…….”
“어허, 발을 더 빠르게 놀려야지.”
전이라면 쉬도록 했겠지만, 테스는 더 엄하게 굴렸다.
‘이런 타입은 머리로만 움직이려 한단 말이지. 우선 굴려서 힘을 빼놔야 그때부터 시작이다.’
영특한 에나. 그녀를 상대로 어떻게 굴려야 할지 테스는 아주 잘 알기에 하는 조치였다.
달리기와 마보.
얼마 전까지 다리를 절던 그녀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근육이 빠진 왼다리는 걷기조차 힘든 게 당연했다.
“흐으으…….”
신음하면서도 그녀는 훈련 방식을 묵묵히 따랐다.
제 몸이 어떻게 되든 테스가 해결해 줄 거란 믿음 때문이겠지.
테스의 가르침 아래서 그녀의 몸은 점차 단련되어 갔다.
* * *
이른 오전에 시작되었던 수련은 땅거미가 어스름하게 내려앉을 때야 끝이 났다.
“끝!”
“하아아악…….”
“완전히 풀어져 퍼져 있지 마라. 쉬는 것도 제대로 쉬어야 하니 따라오고.”
“……알겠습니다!”
완전히 무너져 버린 에나. 그런 그녀를 데리고 육체의 치료를 마저 한다.
“으으윽.”
동시에 평소 하지 않던 몸놀림에 굳어져 버린 몸을 풀어 준다. 아직 추궁과혈까지 시킬 순 없었다. 그도 내력이 달렸으니까.
‘대신 다른 방법이 있지.’
그는 침을 꺼내서 그녀의 육체에 찔러 넣었다. 그거로 끝이 아니었다.
“활력 부여!”
화아아악-!
마탑 지부에서 얻은 마법. 몸에 활력을 돋는 마법을 그녀의 몸에 사용했다. 박힌 침을 타고 마나가 깃든다.
효과는 확실했다.
“하으……. 몸이 녹는 거 같아요.”
그녀의 몸이 회복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물론 완전한 회복을 시키진 않았다. 일부러 근육이 계속 조이도록 두었다.
‘딱 견딜 만큼만 회복시켜 놔야지.’
근육에 적당한 부하가 주어져야만 근육이 성장하니까.
근육의 고통은 곧 근육의 성장. 의선으로서의 경험을 지닌 그는 이 사실을 아주 잘 알았다. 그러기에 내린 조치다.
“흐으, 감사합니다! 살 거 같아요.”
다행히 그녀는 만족했다.
“수련은 수련이고! 제 할 일은 다 할게요!”
“오냐. 잘 생각했다.”
근육통이 남아 있을 텐데도, 그녀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남은 집안일을 하겠다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머리뿐만 아니라 근성도 있군. 빨리 배우겠어.’
부산스레 움직이는 그녀를 두고, 테스는 따로 움직였다.
오늘 하루, 그가 끝낸 건 육체의 수련뿐이니. 그도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었다. 마법 수련과 내력 단련을 위한 실험들이다.
끼이익-!
실험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짙은 미소와 함께 그만의 수련에 빠져들어 갔다.
‘자, 이제 나만의 해피한 시간을 가져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