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챕터 21.
‘좋은데? 독기를 흡수하면서 독에 대한 내성도 상당히 상승했어.’
독기를 흡수해 치환하면 할수록 내성이 생겼다. 만독불침까지는 아직 멀었지만, 적어도 십독불침 수준은 돼 보였다.
‘거저네. 거저야.’
십독불침. 열 개의 독을 막는다는 수준.
말이 쉽지 결코 쉬운 일이 아녔다.
독을 먹고 버텨 내는 게 쉬울 리 없으니까.
독의 비전을 전부 지녔다는 당가에서도 십 독의 내성을 지니려면 상당한 수련을 거쳐야만 했다.
전생의 의선도 만독불침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을 정도다.
화경에 올라서 환골탈태를 해야 했고 의선 노릇을 하며 얻은 비전들을 몸에 처바르고 나서야 가능했다. 그땐 겨우겨우 버텨 내었다.
‘지랄 맞게 힘들었지.’
무인으로서 독을 다루는 자들을 상대하고자 했던 고된 수련이었다. 다시 하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어야 할 정도.
그때에 비해 지금의 방식은 얼마나 쉬운가.
‘이거 거의 거저잖아?’
고통스러울 것도 없다.
만독공, 의생공, 선천여의생공, 이 셋을 조화시키면 될 뿐이다.
그리고 그를 위한 제물들은 차고 넘쳤다. 저 아래, 아직 여섯이 누워 있지 않은가.
“왜, 저 도둑놈들을 그리 빤하게 보고 계시는 거예요? 대체 또 무슨 짓을 벌이려고요?”
“흐흐. 무슨 짓이라니. 좋은 일 하는 거야. 좋은 일. 알고 보니 저놈들이 독에 중독돼서 저러고 다니더라고? 내가 치유해 줘야지.”
“도무지 치유하는 눈빛이 아니신데…….”
“자자, 가만 지켜만 보라고. 꽤 재밌는 장면이 될 테니까 말이야.”
테스는 곧바로 남은 여섯을 향해 다가갔다. 부르르 떠는 여섯. 그중 눈에 들어오는 건 일을 도모한 랄프였다.
선택의 이유는 하나. 느껴지는 독기가 가장 지독해서다.
‘요놈이 가장 더럽구나!’
그가 떨든 말든 테스는 망설임 없이 흡수하는 손길을 가져다 댔다.
생명력과 독기를 흡수하고,선천진기와 내력을 동시에 늘렸다.
경이적이라고 할 수 있는 두 내력의 상승은 남은 여섯의 독기가 전부 사그라질 때까지 이어졌다.
* * *
특별한 일 없이는 결코 열리는 법이 없던 테스의 저택 문.
그 문이 이른 아침부터 열렸다.
거주 지구에 있던 시민들은 그러려니 했다.
흉가의 마법사라는 무시무시한 소문과 달리 그들에게 피해를 준 적은 없었으니까.
그저 자주 볼 수 없는 마법사란 인종이 밖으로 나온 게 신기했을 따름이어서 슬쩍 시선을 줬을 뿐이었다.
그러다 생각지도 못한 구경을 하게 됐다.
“어? 저기 저놈들 뭐야?”
“용병 아냐? 그런 거치곤…… 상태가 영 비리해 보이는데? 죄다 밧줄로 엮여 있네?”
저택을 나선 테스의 바로 뒤.
덩치 큰 사내들이 마치 굴비 엮듯 밧줄에 묶여 졸졸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험한 일을 당한 듯 다들 얼굴들이 초췌해져 있었다.
마법사와 그 뒤에 묶여 있는 덩치들이라.
약해 빠진 육체를 지닌 마법사는 쌩쌩해 보였고, 반대로 덩치들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서로 정반대. 보기 드문 구경거리.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의 흥미가 동했다.
“죄인? 아니면 마법사가 실험이라도 했나?”
“설마 흑마법사인가?”
“에이, 마탑 지부가 여기 있는데 설마 그러려고. 말도 안 되지.”
“그런가. 그럼 저건 대체 뭐지.”
다른 도시와 다르게, 도시 지넬에는 마법사 수가 꽤 됐다.
마탑 지부와 연계를 하였기 때문. 망루를 지키는 마법사만 해도 수십 명. 그들은 매일 도시를 오갔다.
두려움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마법사가 꼭 공포의 대상은 아녔다.
“모르지. 한데, 저들 가는 방향이…… 경비대 쪽 아닌가?”
“오. 뭔가 일어났다!”
흥미가 동한 거주민들 일부가 테스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 * *
움직이는 테스의 뒤로 많은 자들이 따르기 시작했다.
별다른 놀 거리도 없는 그들에겐 테스의 행위는 좋은 구경거리가 되었다.
‘잘들 따라오는군. 덕분에 소란이 커지겠어. 생각대로야.’
테스는 그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의도대로 상황이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다만 문제는 바로 옆에 있는 에나였다. 호기심 어린 사람들의 시선이 부끄러운지 볼을 붉히고 있었다.
“으으……. 차라리 경비대를 직접 부르자니까요.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요.”
“왜? 부끄러워?”
“그럼, 안 부끄러워요?! 대체 왜 이렇게 거창하게 일을 벌이는 건데요?”
“보란 듯이 보여 줘야 하니까.”
“네? 뭘요? 누구한테요?”
“나를 노리는 자들. 그리고 노릴 자들. 그들에게 대놓고 보여 주는 거야. 이 저택, 마법사의 영역에 침략하면 어떤 꼴이 되는지. 그래야 효과적이니까.”
“아……. 이해했어요.”
영특한 에나는 그의 말을 금방 알아들었다.
그가 이리 소란을 벌이며 움직이는 이유는 그의 말대로였다.
적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다. 혹시 모를 적까지 포함해서 모두에게 일부러 보여 준다.
그의 저택, 마법사의 영역에 침범하면 어떻게 되는지.
어찌 벌하는지를 대놓고 보여야 했다.
덜덜 떠는 저 밤도둑들은 그를 위한 본보기.
‘저택 안에서만 조용히 보내니 우스워 보였을지도 모르지. 하여간 재밌다니까.’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마법사가 육체적으로 약한 건 상식. 그 약점을 아는 자는 마법사의 뒤를 노리곤 했다.
전에도 몇 번 있었던 일이다.
그때마다 테스는 몇 배의 복수를 해 줬다.
그를 더 이상 먹잇감으로 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안 그래도 어찌 겁을 주나 싶었는데, 마침 저들이 쳐들어왔다.
‘머저리들 같으니라고.’
딱 좋다. 저들을 본보기로 삼는다.
사실 자신을 노릴 자들은 많다. 그 사실을 테스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벌써부터 멀리서 그를 바라보는 자들 중 몇몇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제가 희생자가 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는 거겠지.
반면 일부의 눈빛은 사나웠다. 테스의 뒤를 여전히 노릴지도 몰랐다.
‘쯧. 눈빛들 보게. 네놈들은 내가 얼굴 다 기억해 놨다.’
슬쩍 보이는 흉악한 눈이 그 증거다.
그런 그들에게 테스는 행동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이들이 어찌 처리되는지, 단 하룻밤 사이에 강한 생명력이 어찌 꺼졌는지를 대놓고 보여 주고 있었다.
안 그래도 테스의 뒤를 따르는 일곱의 사내들은 척 봐도 정상이 아닌 상태.
“으으으…….”
“크흡. 제발, 제발 살려 주십쇼.”
“허억. 헉……. 조금만 쉬면…… 안 되겠습니까?”
조금 걷는 거만으로도 얼굴이 검게 변했다. 숨을 헉헉거린다. 눈엔 공포가 가득 차 있고, 이성은 없어 보였다.
테스는 그들에게 가혹하게 굴었다. 더 가차 없이 줄을 조였다.
“어억.”
줄을 당길 때마다 고통의 신음을 터뜨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안쓰러울 정도다.
테스가 저들에게 주는 벌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제대로 처리해야 해. 그래야 다시는 뒤를 노리는 자들이 없지.’
한참 저들을 끌고 간 테스의 발길이 닿은 곳.
경비 초소.
이른 아침부터 줄줄이 사람을 엮어 오는 테스의 모습. 그를 보고 놀란 경비대 중 하나가 튀어나왔다.
“이게 다 뭔……. 대체 무, 무슨 일이십니까?”
“밤도둑들을 잡아 왔습니다만, 안에서 이야기 좀 나눌까요?”
“그, 그럽시다.”
* * *
초주검이 된 도둑들의 모습에 경비들도 겁을 집어먹은 상태. 덕분에 테스와 경비대의 대화는 순조로이 진행됐다.
이른 아침부터 불려 나온 경비대장이 그를 맞이했다.
“아침부터 거하게 일을 벌이셨구려?”
“뭐, 그리됐습니다. 자, 여기 이들은…….”
테스는 사정을 설명하고, 미리 저장된 영상 저장구를 보였다.
‘실험용으로 사 놓은 건데, 미리 준비하길 잘했지.’
마탑에서 사 놓았던 영상 저장구는 제 역할을 충실히 해 줬다.
밤도둑인 랄프가 어떤 연유로 그의 저택을 쳐들어왔는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여 줬다.
사실 영상 저장구까지 필요 없었을지도 몰랐다.
겁에 질린 도둑들. 그들은 제 입으로 어서 자신들을 데려가 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사, 살려 주십쇼!”
“차라리 감옥에! 감옥에 데려가 주십쇼!”
하나같이 공포에 질린 목소리.
하기야 저들은 저럴 수밖에 없었다.
저들은 밤새 시달렸다. 테스로부터 생명력을 잔뜩 뜯겼다. 겉으로 보기에 덩치는 여전했지만 속은 완전히 엉망진창이 돼 있었다.
흡수하는 손길의 힘 때문이다.
의지는 그대로인 상태로 생명력을 잔뜩 뺏기는 고통이란 산 채로 죽음을 경험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제아무리 험한 일을 하는 용병이라고 할지라도, 겁에 질려 이성을 잃기에 충분했다.
‘성능 확실하구만.’
테스의 마수에서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그들은 무슨 짓이든 할 태세였다.
일곱 중 둘은 경비대가 취조도 하지 않았는데, 제가 전에 했던 범죄까지 다 실토했다.
보기 힘든 모습. 경비대장이 놀란 눈을 했다.
“허…….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혹시 자백 마법 같은 거라도 있소?”
“그런 게 있으면 진작 썼지요.”
“허 참……. 그런데도 자수라. 신기하군.”
증거도, 자백도 있다. 범인은 잡아왔고, 그에 따른 처우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거,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생경한 일에 놀란 경비대장. 그는 안으로 들어가서 확인 작업을 끝마쳤고, 금방 일처리를 해 줬다.
“뒷일은 우리에게 맡기면 되겠소.”
“어떻게 됩니까?”
“죄를 확인했으니 노예가 되겠지. 거기다 확인해 보니, 저들에게 걸려 있는 현상금도 꽤 있더구려?”
“호오, 좋군요.”
“지넬 도시법에 의거하면, 범인을 잡아 온 자의 몸값은 그자에게 지불하는 게 맞고, 현상금도 당신의 것이니 꽤 큰돈이 되겠더군.”
경비대장은 미리 준비해 온 돈주머니를 테스에게 넘겼다.
주머니를 연 테스의 눈에는 백이 넘는 금화가 보였다. 테스는 체면을 생각하지 않고 금화를 다 셌다.
‘160골드. 생각보다 많은데. 현상금이 꽤 됐나 보네.’
저들 한 사람당 몸값은 20골드가량. 일곱이니 140골드. 그런데도 받은 건 160골드라. 20골드나 되는 현상금이라니.
대체 뭔 짓을 벌이고 다녔을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하기야 그게 무슨 상관이랴.
“더 볼일이 없으면 이만 가 봐도 되오. 이왕이면…… 다음엔 또 이런 식으로 보지 않는 게 좋겠지. 치안이 좋지 않다는 거니까.”
“후후, 마찬가지 심정입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볼일을 마친 테스는 떠나면 그만일 뿐이었다.
* * *
적에 대한 좋은 본보기. 그 대가로 예상보다 더 많은 수확을 얻었다.
‘새로 실험하려면 돈이 더 필요했는데, 마침 잘됐어.’
적을 제물 삼아 얻은 돈. 그 돈에 대한 사용처는 이미 정해져 있다.
“이제 어쩔 거예요?”
“한탕 해 먹었으니 쓰러 가야지.”
“이상한 짓이라도 하려고요?”
“어허, 다 실험을 위한 돈이라고.”
실험 비용이다.
독기를 내력으로 치환하는 방법을 알았으니 제대로 써먹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