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챕터 20.
‘대체 뭔 환상에 빠진 건지. 시끌벅적하군.’
일곱의 남성들이 바닥에서 허우적거린다.
팔다리를 이리저리 비틀고 무서운 듯 몸을 웅크리기도 했다. 때론 신음하고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난장판이었다.
“이거 환영미리진이 예상 이상으로 강력하게 펼쳐진 거 같은데.”
진법이 제대로 먹혔다.
처음 설치한 진법인데, 생각 이상의 효과를 보였다. 환영미리진 자체의 위력이 그리 강하지 않은 걸 생각하면 이유는 하나다.
‘이 지형 자체가 딱 들어맞은 걸지도. 생각보다 효과가 더 뛰어나.’
그만큼 이 땅과 진법의 궁합이 잘 맞았단 소리다.
제 수법이 먹혔음에 긍지를 느끼며, 테스는 몸을 움직여 진법 안으로 들어섰다.
오로지 생문만을 통과하는 그에게 환영이 걸릴 리가 없다.
금방 목적지에 도달한 그는 허우적대는 사내들의 혈을 찍었다.
“켁!”
“커억.”
움직임이 굳는 마혈이었다. 활어처럼 버둥대던 사내들이 목석처럼 굳었다.
“으차.”
테스는 몸이 굳어진 사내들을 들어 올려서 진 바깥으로 던졌다. 쿵 소리가 나며 마당 안이 덩치들로 가득 찼다.
탁탁.
일곱 전부를 사정없이 패대기쳐 버린 테스는 손을 털었다. 그러곤 고심했다.
“일단 잡아는 왔는데, 이제 어쩐다?”
저들을 어찌 요리해 먹을지를.
* * *
안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에나가 나와서 물었다.
“밤도둑치고는 너무 요란하네요. 다른 데를 갔어도 다 걸렸겠는데요?”
“너, 농담치곤 뼈가 있는데?”
“별말씀을. 너무 한심해서 그러죠.”
에나는 목석이 된 도둑들을 무심하게 내려다봤다.
경멸의 눈빛이었다. 그 눈빛을 본 도둑들이 몸을 부르르 떨어댄다.
“어떻게 할 거예요? 보아하니 단순한 밤도둑이라고 하기엔 무장도 충실하잖아요?”
“그러게. 심하게 철저하네.”
“밤도둑이 아니라 강도라도 저지르려고 한 거 같은데요.”
“그럴지도.”
균형 잡힌 브로드 소드, 철퇴, 단검, 독병…….
나는 저들의 몸을 샅샅이 뒤져 모든 무장을 벗겨 냈다.
상당한 수의 무구가 내 발 아래에 쌓였다. 의외로 충실한 무장. 가져다 팔기만 해도 몇십 골드의 가치는 있었다.
“부수입치고는 쏠쏠하긴 한데.”
“고작 그 정도만 챙기고 봐주려고요?”
“그럴 리가. 너야 변덕으로 구했지만, 내가 보기보다 순진하진 않거든.”
저들. 척 봐도 내 목숨을 노리고 온 자들이다.
이에는 이, 목숨엔 목숨.
상대의 멱을 따러 왔으면, 제 멱도 각오해야 하는 법.
‘내가 진법 덕에 아무 피해는 안 입었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그녀의 물음에 대한 답은 이미 충분히 준비돼 있다.
“싹 다 벗겨 먹어야겠다.”
“……여기서 더 벗겨 먹을 게 있어요?”
“아무렴. 잘 지켜봐 봐.”
* * *
목숨을 노리고 온 자들이다. 죽이는 것도 거리낄 필요가 없다.
달리 이야기하면, 저들을 어찌 하든 그건 테스의 자유였다.
‘마침 잘됐어. 이런 식으로 쳐들어와 주면 나야 감사하지.’
저들을 둘러업은 테스는 신이 나서 수련실로 향했다. 에나는 테스 뒤를 졸졸 따르며, 흥미로운 눈빛을 보냈다.
“너는 이런 걸 보기에 좀……. 아니 뭐, 상관없나. 보려면 봐. 언제 또 보겠냐.”
“맞아요. 마법사가 하는 마법을 언제 또 보겠어요.”
“그런 거 아닌데?”
“그럼 뭔데요?”
“여하튼 재밌는 구경거리가 되긴 할 거다. 왜, 방법을 가르쳐 주랴?”
“봐서요.”
“푸훗, 신기할 거다.”
일곱의 사내를 나란히 눕혀 놓자, 수련실 안이 꽉 찼다.
테스는 그중에서 매부리코가 인상적인 사내를 가장 먼저 골랐다.
“흡수하는 손길.”
선천진기를 서클에 먹임과 동시에 마나를 일으켰다. 신성력처럼 환한 빛이 그의 심장에서 뻗어 나와 주문과 조합됐다.
검은 손길이 아닌, 신성해 보이는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런 겉모습과 다르게 빛이 만들어 내는 결과는 악독했다. 그의 손길이 사내에게 닿자, 사내는 비명을 터트렸다.
“크그그그그급.”
마혈이 잡혀 소리는 작았다.
하지만 그가 어떤 고통을 느끼는지 여실히 느껴졌다. 매부리코 사내를 본 다른 자들의 눈이 공포로 질린다.
아랑곳하지 않고 테스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선천진기로 강화된 흡수하는 손길. 마법을 타고 흘러들어 온 기운을 음미했다.
‘역시 인간인가. 고작해야 잡초의 기운하고 비교하기엔 너무나 큰데.’
기운이 상당했다.
일부를 빼 왔을 뿐임에도 그의 내부엔 진득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동시에 있어서 안 될 기운이 느껴졌다.
‘이런……. 독기잖아? 썩어 빠질 놈이…….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냐?’
생각지 못한 기운의 범람에 테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 * *
독기.
흔히 중독을 시키는 것만을 독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독의 종류는 넘친다 싶을 정도로 다양하다.
벌레, 금속, 곡물, 나무, 풀, 약초…….
어디나 독은 존재했다.
오죽하면 반찬으로 올리는 나물에도 독이 있을 정도다. 괜히 나물을 뜨거운 물에 데쳐 독을 없애는 게 아니다.
결국 독과 음식을 가르는 기준은 별게 아니었다.
버티느냐 버틸 수 없느냐와 해독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다.
그 차이 하나로 어떤 식물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고, 어떤 식물은 못 먹을 독이 되는 것뿐이다.
오죽하면 그에게 만독공을 넘긴 독마가 세상천지가 독이라고 말했을까.
‘망할 독마 놈, 전에 이야기한 것보다 인간이 지닌 독이 더 지독하잖아?’
작은 식물도 그럴진대, 인간이라고 다를까.
독마가 이야기한 것보다도 인간이 지닌 독은 더 지독했다.
하기야 당연했다. 식물에 비해 오랜 세월을 사는 게 인간이다. 살아오며 탁기 못지않은 독기를 제 몸에 축적하고 산다.
그러니 그 양이 상상 이상일 수밖에 없다.
특히, 저 아래서 몸을 벌벌 떠는 용병처럼 하류 인생을 살아온 자는 독기가 더 지독했다.
오랫동안 쌓았을 주독, 음식으로 쌓인 식물 독, 금지된 약물을 마시고 섞은 약독…….
썩은 인생을 살아온 대가. 용병이 쌓은 독은 흘러넘쳤다. 문제는 그 흘러넘치는 독이 테스의 손길을 타고 내부로 들어왔다는 것인데.
가만있어도 신음이 삐져나올 만큼 독이 상당하다.
“흐으…….”
“괜찮아요?”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중독이다.
“큽. 아니. 잠시 옆을 지켜. 아무런 말도 말고.”
“네!”
온몸이 무거워지고, 눈이 흐릿하다.
진득한 중독 현상이 그를 내리누르는 듯했다. 너무 강한 독기다. 하기야 순수하게 기운으로 뽑아냈으니 더 지독할 수밖에.
그래도 방법이 없는 건 아녔다.
‘이거 생각지 못한 일인데……. 뭐, 어떻게든 해결법은 보이니 상관없나.’
그가 그간 쌓은 방법들이 있었다.
해결법을 생각한 테스는 곧바로 가부좌를 틀었다.
그는 급히 의생공을 일으키고, 선천진기를 움직였다.
방법은 단순했다. 선천여의생공으로 의생공의 내력을 강화시키고 독기를 뽑아낼 생각이었다.
스스스-!
중단전과 하단전을 동시에 일으켜 몸 안을 파고든 독기를 조율했다.
이대로 독기를 뽑아내 버릴 참이다.
독기를 뽑아내는 사이, 같이 흡수한 생명력이 상당히 소모될 터.
‘아깝구만.’
어쩌겠는가. 독에 중독되는 것보다는 나을 터였다.
그는 정신을 집중했고, 천천히 독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악하듯 덤벼들던 독기가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그사이 흡수했던 생명력이 계속해서 빠져나갔지만, 우선 독기를 뱉어 내는 데 집중했다.
몇 분 후.
상당한 양의 독기를 한 곳으로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후으읍…….”
호흡하는 그. 중독 현상이 누그러들었다.
그제야 그는 조금 여유를 갖고 내부를 관조할 수 있었다.
내부를 살펴봤다.
하단전 끝에 몰아낸 독기가 자리해 있었고, 의생공의 기운은 계속해서 독기를 밀어내는 게 느껴졌다.
한창 뽑아냈는데도 독기의 양은 상당했다. 온갖 게 섞여 여전히 강력했다.
오죽하면 이런 생각이 들었을 정도.
‘독마 녀석이라면, 이 독기를 아깝다고 냅다 먹고 봤겠는데. 그놈한테 독은 영약이잖아?’
이 세계에 전생의 친우였던 독마가 있었더라면 이 힘을 아까워했을 거라고.
그에게 독은 곧 힘이니까.
이런 머저리 같은 삶을 산 도둑놈도 독마에겐 좋은 제물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던 찰나.
급작스레 재밌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근데 나한테는 독이 좋은 게 아니란 말……. 어? 가만? 생각해 보니 꼭 나쁜 것만도 아니잖아?’
생각해 보니 테스라고 해서 독을 꼭 버릴 필요는 없었다.
독마가 전해 주었던 만독공을 그는 이미 익히고 있었다.
적의 습격 당시, 독 안개를 만들기 위해서 억지로 익혔던 경험이 있었다. 이종의 진기이기에 주화입마의 위험이 있지만 견뎌 냈다.
의생공의 조화라는 묘용 덕분이었다.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 하단전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언제고 필요만 하다면 만독공을 일으킬 수 있다는 소리였다.
‘만독공이 있는데, 독기를 흡수 못 할 게 뭐야?’
만독공. 만독을 지배하는 독마의 진신 무공.
제아무리 강한 독이라도 쉽게 흡수하는 게 만독공의 묘리다.
문제라면 만독공을 사용해 독기를 흡수하면 몸 안에 이종의 진기를 만들어 낸다는 건데, 생각해 보면 큰 문제도 없었다.
전과 지금은 달랐다.
‘그땐 산성독 하나 집어삼키는 걸로도 문제가 있었다만, 지금은 선천여의생공도 익혔잖아?’
의생공보다 상위의 무공. 선천여의생공이 있는 한, 몸 안에 이종의 진기를 중화시키는 건 그에게 쉬운 일이었다.
결국 그가 새로 생각해 낸 방식은 단순했다.
만독공으로 독기를 흡수. 선천여의생공으로 중화. 중화된 기운을 다시 의생공의 내공으로 화하여 흡수시키면 된다.
‘즉석에서 뽑아낸 거치곤 꽤 그럴싸한 방식이야.’
이 이론대로만 되면 일은 몇 배 더 쉬워진다.
‘흡수한 생명력으론 선천진기를 늘리고 동시에 내력도 늘릴 수 있게 되겠어.’
한 번의 흡수로 내력과 선천진기의 상승이라.
일석이조. 아니, 앞으로 있을 효용을 생각하면 일석삼조는 됐다.
얻을 이득을 생각하면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바로 시도해 보자.’
순식간에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낸 테스. 그는 의생공과 선천여의생공에 이어 만독공의 기운을 일으켰다.
* * *
사십여 분이 지나고.
“쿨럭……. 퉷!”
테스가 번쩍 눈을 뜨자마자,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찌꺼기를 뱉었다.
“악! 괜찮아요?!”
“별거 아냐.”
“저게 별거가 아니라고요?! 다 녹고 있는데요?”
에나는 그가 뱉어 낸 액체를 가리켰다.
치이익-
액체는 주변을 녹이다 이내 사그라들었다. 강력한 산성력이었다.
“저런 걸 내뱉었는데, 속이 괜찮아요? 신관이라도 불러올까요?”
“별거 아니래도. 완전히 흡수했어. 걱정 말라고.”
에나의 걱정과 달리, 테스의 내부는 쌩쌩했다. 짙은 생명력과 내공을 동시에 늘린 덕분이다.
독기를 흡수해 내력으로 치환하는 새로운 방식이 완벽하게 성공했다.
때 아닌 보상도 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