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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선, 황제되신다-19화 (19/191)

제19화

챕터 19.

브론즈 2등급 용병 랄프.

어두운 주점 안에 자리 잡은 그. 그보다 덩치가 큰 용병들이 그의 주변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랄프는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야, 마법사 별거 아니라니까. 주문 외울 시간만 안 주면 돼!”

“그러다 주문 외우면?”

“그때는 다 뒈지는 거지. 근데 그게 어디 쉽겠냐? 주문 외는 게 쉬우면 마법사가 호위병 안 두지.”

“씁. 그래도 마법 한 방이면 골로 가긴 하던데.”

“야야. 몇 명이 한꺼번에 몰려가서 멱을 따면 다 뒈져. 허약해서 별것도 없다고?”

“거, 허세하고는!”

“어허이, 허세라니! 안 그럼, 내가 살아 있었겠냐? 그리고 이런 것도 갖고 있었겠냐고. 흐흐.”

랄프는 조심스레 품에 있던 지팡이 조각을 꺼냈다.

고풍스런 나무로 깎여 있는 지팡이에는 윤기가 흘렀다. 척 봐도 보통 물건이 아녔다.

“설마……. 그거 마법사 거냐?”

“왜 아니겠냐. 위에 있는 마석은 이미 넘겼지만, 덕분에 이것들을 얻었지.”

뒤이어 랄프는 제 몸에 있는 장비들을 슬쩍 자랑했다.

잘 갈린 브론즈 소드, 흉갑과 정강이 받이, 부분을 감싼 가죽 갑옷. 브론즈 등급의 용병이 갖고 있기엔 고가의 장비들이었다.

장비를 본 동료 용병들의 눈에 탐욕이 스쳐 지나갔다.

‘새끼들, 거의 다 넘어왔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돼.’

탐욕의 대상이 자신이 되어선 안 된다.

이때가 중요했다. 랄프는 은밀하게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니까 잘 생각해 보라고. 내가 재밌는 소문 하나 들었거든?”

“뭔 소문?”

“저기 외곽 지대에 웬 마법사 놈이 들어왔더라고. 한, 한 달 됐나.”

“아, 그거 나도 들었다! 떠돌이 용병이라며? 별거 없는 곳에 자리 잡았다던데?”

랄프의 말에 매부리코를 한 용병 하나가 끼어들며 추임새를 넣었다.

‘옳지! 잘했네. 이 타이밍이지.’

미리 약속된 추임새였다.

랄프는 매부리코 용병에게 잘했다는 듯 눈을 찡긋했다.

그것을 본 매부리코 사내도 어깨를 으쓱이곤 계속해서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야, 이거 슬슬 소문이 번지나 보구먼. 그럼 경쟁자가 생기는데……. 어쨌든 듣기로 이 마법사 놈이 꽤 큰돈을 갖고 있다더라고. 듣기로 노예도 구했다지?”

“허, 노예? 그 정도면 대단한 거 아냐?”

“대단한 마법사가 거기 그러고 있겠냐. 영지 마법사로 들어가지. 잘해 봐야 떠돌이거나 은퇴한 놈이라고. 뭐 서클인가? 거 그런 거에 문제가 있었겠지.”

“그래서? 걔를 어떻게 해 보자고?”

“그거야. 어렵지도 않아. 잘 들어 보라니까.”

계속해 목소리를 낮추는 랄프 곁으로 용병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 * *

랄프가 짠 계획은 단순했다.

용병 출신 마법사가 한 달 전에 정착했다. 노련한 마법사라도 아직 도시에 적응은 못 했을 거고 뒤를 봐주는 자도 없을 거다. 그러니 몰래 가서 뒤를 치자.

방법도 쉬웠다.

주문을 외기 전에 뒤통수를 내리치면 될 뿐이었다.

설사 주문을 왼다고 해도, 상관없다. 잘해야 한둘 정도 다치는 걸로 끝이 아니겠나. 나만 아니면 되는 거 아니냐는 식이다.

허술하면서 별거 없는 계획.

그럼에도 술이 거나하게 들어간 용병들 귀엔 제법 그럴싸하게 들렸다.

“흐음……. 마법사라.”

“왜? 다 듣고 안 하려고?”

“아니. 하면 얼마나 건질까 해서 고민하는 거지. 흐흐.”

“그치. 안 하면 손해지!”

“나도 찬성! 까짓, 잘못 돼야 뒈지기밖에 더하겠어? 함 해 봐야지.”

테이블을 가득 채운 여섯의 용병 모두가 참여 의사를 밝혔다. 랄프까지 일곱이다.

그런 그들을 보고, 매부리코와 랄프는 눈을 마주치고 은밀히 웃었다.

‘됐다!’

‘성공이다. 멍청이들. 네놈들이 희생해 주면 나야 좋지. 흐흐.’

그들 계획에 필요한 희생자들이 모두 모였기 때문이었다.

“그럼 나는 미리 준비하러 들어가지.”

“수고하라고!”

사람들을 모은 랄프는 곧바로 자리를 파했다. 범죄를 모의하는 이런 자리가 길게 이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 * *

사실 랄프가 이리 바삐 움직이는 건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녔다.

‘흐흐. 지금이 제대로 한탕 할 때야.’

용병왕을 꿈꾸고 용병 길드에 들어간 지 5년. 그의 등급은 여전히 최하급이었다.

그라고 발악을 안 한 건 아녔다.

힘겹게 모은 돈으로 검술 길드에 들어가 배움을 요청했다. 결과는 최악. 재능이 없다는 소리와 함께 쫓겨났다. 낸 돈은 돌려받지도 못했다.

‘더러운 새끼들…… 눈이 삐어서 나 같은 진짜를 못 알아보는 거지.’

그때부터 랄프는 뒷골목을 전전하기 시작했다.

더러운 짓도 마다하지 않았고. 때론 이런 식으로 소문이 돌면 패거리를 모아 범죄를 저질렀다.

그만 특별히 더러운 건 아녔다.

뒷골목에는 이런 놈들이 수두룩했다.

그가 아니더라도, 흉가의 마법사 소문을 들으면 찾아올 자들은 넘치도록 많았다.

‘어차피 나 아니어도 다른 놈들이 친다고. 차라리 깔끔하게 보내 주는 내가 훨 낫지. 후후.’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자기 합리화를 하며, 랄프는 계속해서 이런 짓을 벌여 왔다.

자리를 파하고 나온 랄프.

그는 주점 뒷골목에서 매부리코 용병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얼마 가지 않아 그 사내가 나왔다.

“여어! 매부리 헤서. 이야기 잘 끝났냐?”

“씁.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뭐, 이야기는 잘됐다. 따로 튈 놈도 없어 보여. 다들 의욕만만이더라고.”

“흐흐. 좋네. 역시 헤서가 일을 잘해?”

“한두 번 해 먹냐.”

랄프는 일부러 매부리코 헤서를 안에 남겨 놨다.

그가 나간 뒤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헤서의 미소로 보아하니, 일은 잘 풀린 듯했다.

“그나저나 제라드 패거리도 흉가 마법사 소문을 들었으려나?”

“슬슬 들었겠지. 그러니까 먼저 가서 쳐야 해. 안 그럼 남는 거도 없다고?”

제라드 패거리.

뒷골목을 꽉 잡고 있는 패거리 중 하나. 큰 도둑 길드 하나를 끈으로 잡고 있어서 세를 불려가고 있는 곳이었다.

랄프와 몇 번 같이 일을 했던 사이였다.

제라드가 적당히만 남겨 먹었더라면, 그도 계속 그들과 일을 같이했을 거다.

하지만, 그가 워낙에 독식을 하는지라 랄프는 슬쩍 패거리에서 빠져나왔다.

계획도 짰고 사람도 모였다.

둘은 흉가 마법사의 멱이 이미 제 손에 들어온 듯 굴고 있었다.

“흐흐. 그것도 그래. 듣기로 고작 2클래스라더군. 그럴 거면 우리 둘이 가는 게 낫지 않겠냐?”

“야야,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그 새끼들을 고기 방패로 세워 놔야 우리가 편해진다고!”

“그러다 전리품 분배할 때 싸움이라도 나면?”

“그때는 알잖아? 쓱- 삭이지. 흐흐.”

한걸음 더 나가, 같이한 동료들까지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최악.

“하여간에 사악한 새끼.”

“너는 아니고?”

“흐흐흐. 왜 아니겠냐?”

주점 안을 나선 몇몇 용병들이 이들을 보고 인상을 찡그린다.

하지만 나서서 저들의 계획을 막고자 하는 자는 없었다. 도와 봐야 남는 것이 없는 걸 알고 있으니까.

많은 자들의 묵인 아래, 둘은 저들 딴에는 거창한 계획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 * *

바로 다음 날 저녁.

‘새끼들 늦네.’

낮부터 미리 잠을 자 둔 랄프. 그는 골목길 어귀에 서서 제 동료들이 오길 기다렸다.

성벽 위 망루의 불이 타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제 보았던 용병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흐흐. 새끼들. 요즘 다들 배고팠나 보네? 어째 한 놈도 안 빠지고 왔어?”

“제일 먼저 온 네놈이 가장 배고픈 거겠지. 어디냐? 바로 가자.”

“새끼들. 따라와.”

매부리코 헤서가 랄프의 말을 받았다.

서로 적당히 분위기를 맞춰 가며, 걸음을 옮겼다. 애당초 거리가 멀지 않았기에 일곱은 금방 마법사가 있다는 흉가에 도착했다.

얼마 전 보수했다는 담벼락 너머로 불이 켜진 저택이 보였다.

“이야……. 정말 소문대로 풀 한 포기 안 남았잖아? 왠지 으스스한데?”

“새로 정착하려고 정리라도 했나 보지. 뭐, 별거 있겠냐?”

“그래도 마법사잖냐.”

“겁먹었어? 왜 이리 혀가 길어.”

“겁은 무슨!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오, 그래? 그럼 가장 선두는 너다?”

“씁. 새끼. 알았다!”

랄프는 슬쩍 선두를 다른 자에게 넘겼다.

일행 중 가장 덩치가 큰 자였는데 조금만 도발해도 쉽게 넘어오는 단순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멍청한 놈. 이런 놈은 조금만 찔러도 이리 움직인다니까.’

랄프가 그를 비웃는 사이, 그는 곧바로 담벼락을 넘었다.

“오오, 빠른데!”

“새끼, 덩치치곤 빠르네?”

몇 초 뒤 신호가 와야 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신호 따위는 없었다. 그저 사방이 고요했다.

“뭐지? 뭐가 잘못됐나?”

“……이 새끼, 설마 혼자 해 먹으려고 그러나?”

“벌써 뒤통수친 거 아냐?”

설마 일이 잘못됐다는 생각은 랄프 머릿속에 전혀 없었다.

그의 머릿속엔 덩치가 홀로 들어가 마법사 돈을 먼저 훔쳐 먹지 않나 하는 의심만 들 뿐이었다. 남은 여섯도 마찬가지.

“쓰X! 다 독식하기 전에 들어가!”

“야야, 당장 넘어!”

랄프와 헤서의 신호가 있기도 전에 다들 담벼락을 서둘러 넘기 시작했다.

가장 마지막에 랄프가 담벼락을 넘었다.

담벼락을 넘는 그 순간.

“이 새끼야, 같이 해먹……. 어어억?! 커어어엉?!”

랄프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이변이 느껴졌다.

감각이 비틀렸다.

분명 담장을 넘었건만, 어째서 자신은 천 길 낭떠러지 위에 서 있단 말인가??

“뭐야, 이건! 으아아악!”

바람이 불어와 그의 몸을 흔든다.

아래에 떨어져 내리며 스친 나뭇가지에 피부가 쓸렸다. 고통스러웠다.

“대체 이게 뭐야!”

같이 넘어온 매부리코 헤서가 갑자기 사라졌다. 주변에는 오직 그 혼자뿐이었다. 공포가 그를 잡아먹었다.

“크어억.”

계속해서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뿐이었다.

* * *

‘어, 이거 뭐야?’

늦은 저녁, 에나의 치료를 마무리하고 있던 테스는 예상외의 기척을 느꼈다. 생소한 기척들이었다.

“왜 그래요?”

“밤도둑이 든 거 같은데.”

그의 말을 들은 에나의 표정이 굳어진다. 밤도둑이란 말에 긴장한 게 느껴졌다.

“어떻게 해요?”

“그리 긴장할 거 없어. 말했잖아. 보안을 위한 마법진을 해 뒀다고.”

“그래도요. 뚫리면 어떻게 하죠?”

“쓸데없는 걱정이야.”

테스는 괜한 긴장을 느끼는 에나가 귀여운 터라 슬쩍 머리를 쓰다듬었다.

‘짜식, 성인식이 한참 지났는데도 애 같네.’

에나는 애라고 부르기엔 완벽한 성년. 하지만 각성을 하여 전생까지 기억하는 테스의 눈에는 아직 애였다.

전생의 나이를 다 더하면 백 살이 넘은 그로선 어지간해선 그리 보일 수밖에 없었다.

전생의 인격까지 가져온 건 아니지만, 그 기억의 영향을 받고 있는 테스였다.

그 기묘한 각성 덕에 성격이 조금씩 뒤틀리곤 있지만 테스는 상관하지 않았다.

잃을 것도 없는데 알 게 뭔가.

에나는 머리를 쓰다듬는 테스의 손길을 피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현 상황을 잊을세라 급하게 채근했다.

“도둑 들어왔는데, 뭐 해요!”

“긴장하지 말라니까. 어쨌건 안에 있어 봐.”

에나를 두고 테스는 바로 바깥으로 나왔다.

마당 앞에 선 테스. 그는 바깥에서 펼쳐지는 진풍경을 보고 폭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푸핫. 월척들이 걸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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