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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선, 황제되신다-18화 (18/191)

제18화

챕터 18.

부서지는 문을 보고 놀란 노예상. 그를 다독이는 덴 약간의 수고면 충분했다.

“이러면 2, 20골드로는 부족한…….”

“어차피 곧 죽을 아이였잖아? 철창 가격에 이 정도면 충분해 보이는데……. 어째, 비슷하게 만들어 줄까?”

“크흠. 괘, 괜찮습니다.”

상인은 부서진 문과 테스를 연신 번갈아 봤다. 20골드 정도면 수지가 맞는다고 생각한 건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데려왔다.

* * *

목수들이 사라지고 둘밖에 남지 않은 저녁.

에나라고 제 이름을 밝힌 그녀는 따로 성이 없었다. 테스는 그녀가 몸을 누이도록 놔두고 그만의 준비를 했다.

‘이 정도면 되겠어.’

침과 뜸을 뜨기 위한 약초. 깨끗한 천.

준비는 금세 끝이 났다.

“이리 와.”

“이상한 짓 하려는 건 아니죠?”

“뭔 개소리야. 그럴 취미도 없고, 그럴 거였음 널 데려오겠냐?”

“……묘하게 납득되는 게 더 짜증나네요.”

테스가 손짓하는 곳으로 그녀가 다가왔다.

테스가 몇 번이고 도와주려 했지만, 그녀는 억척스럽게 제 발로 걸었다.

한참이 걸려서 다시 눕는 데 성공한 그녀. 테스가 해코지라도 하면, 반항할 듯 이를 악물고 있었다.

‘독기가 있네. 그러면 되레 더 좋지.’

테스는 그런 그녀를 보며 피식 웃곤 제 할 일을 시작했다.

“물이여.”

생성된 깨끗한 물이 천을 적신다.

“힘이 세던데, 마법사였어요?”

“그게 중요한 게 아냐.”

테스는 룬어를 조합하여 천을 금세 따뜻하게 만들어 냈다. 그러곤 에나의 아픈 다리를 정성스레 닦았다.

“이상한 취향이 있는 건 아니죠?”

“씁. 헛소리 좀 집어치우래도.”

정성스레 닦아 주는 그의 손길.

몸이 닦이는 기분이 나쁘진 않은지, 그녀는 저도 모르게 찌푸리던 인상을 약간 풀었다. 몸의 긴장이 풀린 걸지도.

그러다 눈치가 보였는지 다시 이를 앙다무는 그녀였다.

‘의외로 단순하기는.’

테스는 그녀의 표정 변화를 모른 척했다.

환부인 다리를 깨끗이 닦았으니, 이제는 치료를 해야 할 차례였다.

‘살리려면 우선 살고 싶게 만들어야지. 그러자면 가장 좋은 건 역시 희망이고. 이게 무슨 짓인가 싶지만…….’

수련을 하는 동안 잡일을 해 줄 노예를 구했는데, 치료부터 시작해야 하다니.

테스 자신의 변덕 때문이지만 상황이 퍽이나 우습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어쩌랴. 제가 선택했으니 끝까지 감내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는 손끝의 감각을 다지며, 한쪽에 마련된 침을 꺼내 들었다.

“히익! 그, 그게 뭐예요?”

“아아, 이건 침이라고 하는 거다.”

테스는 손에 든 침을 그녀가 절고 있는 다리를 향해서 꽂아 넣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혈해. 양궁. 응릉천. 족삼…….

수많은 혈들에 그가 꽂은 침들이 들어갔다. 총 81개의 침이 그녀의 혈들을 꽉 채웠다. 몇 분이면 충분했다.

“아, 아프지 않아?”

“아플 리가. 그래도 이제부턴 좀 아플 거다.”

“아읏…….”

에나의 상태는 심각했다. 침만으로 치료가 될 리 없었다.

테스는 제 단전에 선천진기를 더하고 의생공의 기운을 일으켰다. 강화된 기운이 일어나며 그의 손을 타고 흘러내린다.

박혀 있는 침을 진기로 자극했다.

찌르르- 한 아픔이 느껴지는 듯 그녀는 작게 몸을 떨었다.

“으으읏…….”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은 듯, 그녀는 신음을 참았다.

‘참을성은 최상이네.’

그녀가 더 고통스러워하면 혈도를 짚을 생각을 하고 있었던 테스.

그로서는 용케 참는 그녀가 대견했다.

이러면 치유가 더 빨라진다. 혈도를 짚어 치유를 하는 거보단 제정신일 때 치유하는 게 혈액 순환이 더 빠른 게 당연하니까.

이십 분.

의생공의 기운을 전부 소모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괜찮아요?”

“그럴 리가 있겠냐.”

그사이, 테스의 온몸은 땀에 푹 절어 있었다.

그래도 그만둘 순 없었다. 마지막 단계가 남아 있었다.

남은 힘을 다해서 침을 뽑아낸 테스. 그는 짓이긴 약재로 만든 뜸을 가져다 붙였다.

“이건 좀 참을 만할 거다.”

“으으.”

“불이여.”

가져다 붙인 뜸을 마력을 이용해 불을 붙였다. 실패 없이, 순식간에 100개에 가까운 뜸들이 불타올랐다.

작은 방 안에 약초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그러고도 다시 삼십 분.

타닥, 소리를 내며 타던 뜸들이 전부 재가 됐다.

재를 치우고 그 자리에 남은 건 진득한 진물이었다. 진물에서 흐르는 냄새는 금방 약초 향을 지웠다.

“크흐, 냄새…….”

“이, 이건 제가 만든 게 아니에요!”

“아냐. 그거 네 몸에서 나온 거야. 일종의 탁기랄까. 하긴, 네가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냐.”

“…….”

쑥스러운 듯 침묵하는 에나.

그런 그녀를 무시하고 테스는 남은 천으로 그녀의 몸을 정성스레 닦았다.

“자, 끝.”

끝냄과 동시에 그녀의 정강이를 찰싹 때리는 테스. 피부에서 느껴지는 급작스런 따가움에 그녀가 소리친다.

“악! 이게 무슨 짓……. 어어? 왜 아프지?”

그러다 멍한 눈을 했다. 제 다리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영 어색한 거다.

‘무리도 아니지. 잃어버렸던 감각이 되돌아왔을 테니까. 1차 치료는 제대로 됐군.’

그녀는 멍한 눈을 하고, 제 다리를 쓸었다.

“으음…….”

피부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반가운 듯 꼬집기까지 했다. 신기하겠지.

테스로서는 원하는 반응이었다.

“어때? 우선 감각이 돌아온 느낌은? 아, 그리고 또 다른 변화도 있을걸?”

“뭔데요?”

테스는 별거 아닌 듯 말하며, 가볍게 두 음을 던졌다.

“서 봐.”

서 보다.

다른 사람에게는 쉬운 일이지만, 그녀에겐 너무도 어려운 일.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느끼는 고통은 컸다.

그녀 특유의 독기가 없다면, 서는 것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서 보라고 말했다.

‘대체…….’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알기로 괴롭히는 자는 저런 흐뭇한 눈을 하지 않는다.

그녀는 의심스런 표정을 지으며, 애써 누였던 몸을 다시 일으켰다.

그리고 기적을 보고, 느꼈다.

“아……. 아아아? 어떻게!”

* * *

절어야 할 다리를 더는 절지 않았다.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땅을 디디고 선 왼발의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아…….”

제대로 발을 디디고 선 이 감각.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보는 감각이었다.

‘서, 섰어! 제대로 섰다고!’

그녀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제 발을 디디고 서는 일. 누군가에겐 정말 쉬운 일이지만, 그녀에게는 그동안 잃었던 감각을 되찾은 일이었다. 그러니 기쁠 수밖에.

하지만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아, 왜? 보기 좋던데.”

“……그쪽 보라고 웃은 거 아닌데요.”

“짜식, 부끄러움이 생각보다 많네?”

괜한 심술이다.

‘심술이라니…….’

한데 심술이라니.

얼마 전까지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던 자신으로선 심술도 사치였다. 아니, 감정 표현 자체가 사치였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감정 변화가 영 생소했다. 그녀는 애써 감정의 변화를 얼굴에서 지웠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테스.

‘짜식, 뭐 부끄러울 만도 하겠지. 그래도 좋은 반응이야.’

그녀의 반응을 예상한 듯 테스는 피식 웃고, 미리 준비했던 말을 내뱉었다.

“지금은 일시적인 거야. 앞으로 몇 번의 치료를 더해야 할 거다. 그럼 완전히 걷는 것도 가능하겠지. 전처럼 돌아온다는 이야기야.”

“대체 왜요? 왜, 이렇게까지 해 주는 건데요?”

“뭐……. 그건 그냥 내 변덕이야.”

부끄러운 듯 볼을 긁적이는 테스. 그는 전생에 있던 기억을 말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에나는 금방 그 기색을 읽었다.

“……변덕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이제부터 제대로 부려먹을 거야. 사실 내가 노예, 아니 사람을 구하러 간 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거든. 일을 좀 해 줄 사람이 필요해. 아, 물론 긴장하지 말라고. 심하게 대하진 않을 거니까. 너는 그저 네 할 일만 하면 돼.”

“…….”

“일종의 계약 관계인 거지. 이해했어?”

“계약이라는 거군요.”

“그런 거지.”

몇 번이고 계약을 되뇌던 에나. 그녀는 빤히 테스를 바라봤다.

그러다 물었다.

“무슨 일인데요? 노예로서가 아니라 은혜를 입었으니까 할 일은 해야죠. 저 그리 염치없진 않아요.”

“짜식, 역시 마음에 든다니까.”

뭔가 결심한 듯 보이는 에나를 향해 테스는 할 일들을 설명해 줬다.

어렵진 않은 일들이었다. 애당초 그녀를 데려온 이유는 그가 수련을 하는 사이, 밀릴 집안일을 돕게 하기 위해서니까.

영특한 그녀는 그의 말을 다 이해했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집안일을 돕는 거 정도는 이 세계의 어린아이도 할 수 있을 일이니까.

“몇 달 정도만 고생해. 언제고 떠나게 될 때면 그때는 풀어 줄 테니까.”

“풀어…… 준다고요?”

“어. 일종의 거래니까. 나는 이 몇 달 너로부터 편의를 얻고, 너는 치유 받고. 이게 20골드란 가치가 있을지 모르겠다만. 그건 내 변덕 때문이니 그냥 넘어가. 그사이, 네가 살고 싶어지면 더 좋고. 어쨌건 이해했어?”

“네. 이해했어요.”

역시 거래라는 건가. 그녀가 다시 푹 고개를 숙인다.

‘이번엔 또 왜 저런데? 알 수가 없군.’

지금 보이는 행동의 의미까지는 알 수가 없는 테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마련해 뒀던 치유 도구들을 치웠다. 내일 다시 치료를 하기 위해선 물품들을 다시 소독할 필요가 있었다.

“제가 도울게요.”

“고맙다.”

그사이 에나는 뭔지 모를 제 심정을 정리했고, 도구들을 치우고 있는 테스의 옆에 다가와 돕기 시작했다.

금방 정리가 끝났고.

미뤘던 수련을 하는 테스를 가만히 바라보던 그녀는 홀로 남아 집 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변덕. 또 한 사람의 오기.

낡은 저택에서 이 둘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 * *

시간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에나가 들어오고 2주가 지나 목수들은 제 할 일을 끝마쳤다.

부엌, 방 두 개, 욕실 하나, 작은 창고.

테스와 에나가 살기에 충분한 공간이 완성되었다.

그 위에 마련된 작은 마당.

생명력이 말라버려, 2주가 지나도 풀 한 포기 다시 자라지 않는 그곳. 테스는 진법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여긴 환영미리진이 딱 좋겠네.”

인위로 마나를 뿌리는 마법진과 달리 진법은 자연의 법칙을 비트는 식. 조건만 맞는다면 적은 수고로도 강력한 진법을 설치할 수 있었다.

흡수하는 손길 덕에 생명력이 메마른 마당.

중급의 진법 환영미리진을 설치하기에 딱 좋은 장소였다.

중급이라지만 강력한 진법은 아녔다.

인간처럼 강한 생명력을 지닌 자를 가두고,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게 하는 정도다. 덤으로 진법에 빠져든 자는 미약한 생명력을 계속 빼앗긴다.

생명력이 없는 장소에 설치하기 손쉬운 진법이랄까.

테스는 곧바로 움직였다.

“뭐 하는 거예요?”

“진법. 아니, 마법진을 설치한다고 생각하면 편해. 너도 조심해야 할 테니 잘 봐 둬라. 주의할 점도 기억해 놓고.”

이 집안의 생활에 익숙해진 에나. 그녀가 진법에 휘말리지 않도록 주의할 점과 빠져나가는 방법도 따로 설명해 줬다.

그녀는 생각보다 영특했다.

테스가 알려 준 방법들을 기억하는 덴 짧은 시간이면 충분했다.

“에이, 간단하네요. 그럼 전 요리 준비하러 갈게요.”

“오냐. 부탁하지.”

진법이 설치된 날, 테스는 불안했던 보안을 확보했음에 보람을 느꼈다.

‘이거면 맘 놓고 수련해도 되겠군.’

에나도 이 생활에 적응을 마쳤으니, 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은 실험과 수련뿐. 흐뭇한 눈으로 집을 바라본 그가 수련에 매진하는 사이.

이 도시 지넬에서 기이한 마법사가 왔다는 소문을 들은 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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