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챕터 17.
그가 목표로 삼은 곳은 행정구역 아래에 있는 상업 지구.
얼마 가지 않아, 톱날은 간판으로 삼은 목수 길드를 찾아냈다. 안으로 들어간 목수 길드는 한가로워 보였다.
테스는 가장 믿음직해 보이는 자를 찾아, 의뢰를 넣었다.
“이 정도 견적이면 50골드는 주셔야겠는데요.”
“아, 뭐 그리 비쌉니까? 까짓, 힘든 건 내가 도와줄 테니까 좀 싸게 갑시다. 보아하니 일도 없어 보이는구만.”
“커흠…….”
“운영비는 나올 만한 일거리이니 40골드로 합시다.”
“알겠소이다.”
아주 약간의 흥정 과정이 있었지만, 그쯤이야 일이랄 것도 없잖은가. 즐기듯 흥정을 끝마친 그는 금방 일거리를 맡겼다.
따아앙-! 따앙-!
정말로 일거리가 없었는지, 목수들이 떼로 몰려왔다. 금방 일을 시작했다.
‘잘하네.’
서로 몇 번은 같이 작업을 한 듯 보였다. 손발이 착착 맞았다. 이대로라면 수선 기간을 그리 오래 잡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만족스레 작업을 이어 나가는 걸 지켜보던 테스는 곧바로 다음 목적지를 향했다.
* * *
‘씁……. 내가 여길 올 줄은 몰랐는데.’
목수 길드에 일을 맡긴 그가 다시 찾아온 곳은 상업 지구. 그중 가장 화려한 중심가에 위치해 잇는 곳이었다.
4층은 될 법한 높은 건물 아래로 길게 이어져 있는 단층의 건물들. 그 사이에 존재하는 자들을 보며 테스는 고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의 바로 앞에 존재하고 있는 장소. 바로 노예 시장이었으니까.
“후……. 참자, 참아. 과거의 일에 더 얽매일 수는 없잖아.”
과거, 그는 노예가 아니었다. 하지만 노예가 ‘될’ 뻔은 했었다.
그것도 몇 번이나.
딱히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스승을 잃고 홀로 남은 그. 그가 쉬운 먹잇감이었을 뿐이다.
각박한 세상은 쉬운 먹잇감을 가만 두는 법이 없었다.
동료라고 환심을 산 용병이 그를 팔아넘기려는 시도는 우습지도 않았다.
의뢰를 하다 말고 마주친 노예상이 덤벼든 기억도 몇 번은 됐다.
때로는 상행을 위한 고용주란 게 노예상인 적도 있었다. 다 속아서 넘어갔다가 겨우 빠져나왔다.
이외에도 관련된 다양한 경험이 있었다.
안 그래도 전생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터. 그러니 그는 인상이 더욱 찌푸려졌다.
‘쯧. 어쩔 수 없지.’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이었다.
그렇다고 이 현실을 바꿀 힘도 없고 그럴 이상(理想)은 더더욱 없었다.
무공과 마법의 조화. 그 강대한 힘을 얻지 않는 한, 이 현실을 뒤바꿀 수는 없었다. 그럴 열의도 그에겐 없다.
“마음에 안 들면 이다음에라도 바꿀 일. 우선은…….”
얄팍해 보이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쓴웃음을 삼키며 그는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당장 그에겐 그를 보조해 줄 사람 하나가 필요했으니까.
* * *
“헤헷. 어서 오십쇼.”
강퍅한 인상의 사내가 테스를 맞이했다.
손님이 인상을 팍 찌푸리고 있는 모습이 익숙한 듯, 그는 연신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이 퍽이나 마음에 안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려면 일을 빠르게 처리해야 했다.
“어떤 노예를 원하십니까? 힘쓰는 장정이 필요하십니까? 아님 검투사? 흐흐, 그도 아니면 은밀한……. 흐흐.”
“됐고. 최대한 값싼 노예를 원하는데. 어느 정도 하자가 있어도 상관없어.”
퉁명스런 테스의 목소리. 그의 목소리보다도 싼 노예를 원한다는 그 말에 상인의 인상이 찌푸려진다.
“에잉……. 대낮부터 온 손님이 대목이 아니었구먼요. 이건 좀 그런데. 거, 하자 있는 노예를 들여서야 쓸데도 거의 없으실 건데요?”
“그거야 내가 알아서 판단할 일이고.”
“커흠. 뭐, 알겠습니다. 가서 같이 보시죠. 이리로.”
상인은 그를 안으로 안내했다. 전보다 더 음습하고 더러운 장소를 향해서였다.
* * *
들어선 안은 바깥보다 더 했다.
‘최악이네.’
당장 목숨이 붙어 있을 뿐, 곧 죽음이 내려앉을 자들이 많았다. 의선의 지식을 활용한다고 해도 살리기 힘든 자들이 대다수였다.
그런 자들 앞에 데려와 놓고도, 상인은 뻔뻔했다.
“이자는 어떻습니까?”
“곧 죽을 자잖아. 잘해야 몇 시간 정도네. 아무리 하자 있는 자를 구한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큼.”
하기야 아무리 시대가 시대라지만 사람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자다. 제대로 된 인성이 박힌 자일 리가 없었다.
테스는 상인을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디로 가십니까?”
“내가 알아서 보려고.”
테스는 안으로 더 몸을 들이밀며 답하고 있었다. 그 뒤를 노예상이 따라붙어왔다.
“거 본다고 뭘 아실…….”
“시끄러. 있어 봐.”
“으음……!”
따라붙는 노예상의 손을 탁 쳐 낸 테스. 그는 기운을 슬쩍 일으켜 사내를 압박했다.
당황한 노예상이 더 따라붙지 못하는 사이.
테스는 안력을 돋워 안에 있는 자들을 살폈다. 하나같이 곧 죽을 자들. 그들 가운데서 괜찮아 보이는 이가 딱 하나 있었다.
‘……하, 참. 이제 막 성인이 됐으려나. 아니, 제대로 케어를 받지 못해서 그리 보이는 거네. 쯧.’
그 한 명을 향해서 테스는 다가갔다.
한 사람이 겨우 몸을 뉘기에도 좁은 감옥. 그곳에 테스가 가까이 다가가자, 안에 있는 이가 그를 텅 빈 눈으로 바라봤다.
“…….”
“…….”
침묵 속에, 둘의 눈이 마주쳤다.
계속되는 침묵을 깬 건 노예상이었다.
“흠, 이 애가 마음에 드셨습니까?”
“그나마 곧 죽을 아이가 아니니까.”
“곧 죽을 아이는 아니긴 합니다만……. 그 외에는 문제가 많습니다요. 우선 외모만 봐도 그렇고, 다리도 잘 보시지요.”
노예상의 말대로였다.
감옥에 갇혀 있는 이는 여인. 이제 막 성인이 된 듯 보이는 그녀의 얼굴 반은 화상 자국으로 뒤덮여 있었다.
차라리 얼굴만 문제가 있다면 다행이었다.
노예상이 진짜 하자라고 말한 쪽은 다리였다. 가만있는데도 그녀의 다리는 연신 떨렸다. 절고 있는 거다. 서지 않아도 어떨지 보였다.
“쯧……. 이미 파악했어. 그래서?”
“뭐 이미 파악을 하셨다면야 더 길게 말할 게 뭐 있겠습니까. 그래서 원하시는 겁니까, 저 아이를?”
“흠……. 글쎄.”
노예상의 눈이 탐욕스레 빛난다. 그런 상인의 눈을 무시하고, 테스는 창살에 얼굴을 더 가까이 가져다 대고 손을 뻗었다.
피하려는 그녀의 손을 잡아 순식간에 진맥을 했다.
‘가능성은……. 다행히 있군. 확실히 치유할 수 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진맥을 하고 느낀 그녀에게서 테스는 가능성을 읽었다. 몸을 정상으로 돌릴 수 있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한참 둘의 눈이 마주 보고 있는 사이, 먼저 침묵을 깬 건 그녀였다.
“대체 뭐예요? 저를 사 가시려고요? 쓸모가 없을 건데요.”
“쓸모는 내가 판단하는 거지.”
“과연 제가 말을 들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쉽게요? 그러자면 이 자리까지 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다리도 이 상태가 안 됐을 거고요.”
텅 빈 눈에 어느새 제 의지가 차올라 있는 그녀.
그녀는 지금의 상황을 제가 선택한 듯 했다. 테스에게 자신은 쓸모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짧은 대화. 그 대화를 듣고 테스는 지금의 상황이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끝끝내 굴복하지를 않은 거군.’
노예 각인. 소위 노예를 위한 마법은 그 비용이 비쌌다.
상등품이라고 말하는 노예를 위해서야 몇 번이고 마법을 쓰겠지만, 어디 마법이 보통 가격인가. 하급품이라 칭하는 노예에게 마법을 쓰는 건 사치였다.
그렇다고 하급품을 다루지 않을 수도 없는 터. 이때 노예상들은 지독한 방법을 써서 노예를 굴복시키곤 했다.
정신부터 굴복시켜 진정 노예가 되도록 만드는 거다.
눈앞의 그녀는 그런 굴복을 하지 않았다.
제 의지로 버텨 냈다. 그 대가로 얼굴은 흉측해지고, 다리를 절게 됐겠지.
그도 모자라 곧 죽을 자리에 버려졌다.
이곳에 있으면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죽을 거다. 식사를 제때 주지 않든 어떤 치욕을 당하든 간에 말이다.
그게 그녀 스스로의 선택이다.
굴복하느니 제 의지대로 살겠다는 선택.
“글쎄다. 그러니까 더 마음에 드는데?”
“……미친 사람이네요.”
“커흠. 거 선택을 했으면, 어서 사 가시든가 하시는 게…….”
테스는 재촉하는 노예상의 말을 무시했다.
그러곤 평상시 하지도 않을 변덕이 생겼다.
굴복하지 않는 그녀가 제 스스로 자신을 따랐으면 했다. 아니, 살았으면 했다.
그에겐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이화와 닮았어.’
의선이던 시절, 이와 비슷한 눈을 한 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노예, 아니 시종이 강제로 될 상황이었고, 아이는 이를 거부했다.
그 대가로 곧 죽을 그 아이를 의선인 그가 살렸다. 모진 목숨을 잇게 만들었다.
다만, 아이의 선택은 그와 갈렸다.
이미 한 번 죽음에 가까이 다가갔던 아이. 살기보다는 죽기를 원했다.
살렸음에도 고마워하지 않았고, 결국 아이는 다시 같은 선택을 했다. 죽음이었다.
스스로 선택한 최악의 죽음.
‘어쩌면……. 그때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르지.’
그때의 눈을 봐서일까. 되지도 않는 변덕을 부려 버렸다.
“우리 거래 한번 할래?”
“그게 무슨 미친 소리죠?”
경계하는 그녀를 향해 테스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살게 해 줄게. 아니, 살고 싶게 해 줄게.”
“무슨 근거로요?”
“모르지. 차차 찾아야겠지. 그래도, 그때 가서도 살고 싶지 않으면 그땐 네 선택대로 하든가. 어때? 넌 손해 볼 게 없잖아?”
“아무리 들어봐도 궤변이네요. 그래도…….”
그녀가 흘끗 테스를 바라본다. 이어 노예상을 바라봤다.
그러더니, 무언가 결심을 한 듯 스스로 제 몸을 일으켰다.
단순히 몸을 일으키는 행동에도 그녀의 왼발은 덜덜 떨렸다. 서 있는 그 자체로도 고통이 엄습해 왔지만 그녀는 다시 주저앉지 않았다. 억지로 버티고 섰다.
스스로 일어서는 게 그녀가 테스에게 주는 답이었다.
“뭐 해요? 어서 열어 주지 않고?”
“푸핫.”
오고 싶지도 않았던 곳. 그런 곳에 와서 참으로 걸작이다 싶은 그녀를 얻었다고 생각하며, 테스는 닫힌 문을 강제로 열어젖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