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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선, 황제되신다-16화 (16/191)

제16화

챕터 16.

눈을 반개하고 있던 그. 다시 눈을 뜨는 데 한 시간이 소모됐다.

“후읍……. 됐다!”

눈을 뜬 그는 제 몸부터 살폈다.

내부를 관조하자, 전에 없던 짙은 생명력이 느껴진다. 상당한 기운이 안착해 있었다.

심장의 맥동은 전보다 커졌다.

동시에 그 아래로 흐르는 하단전의 기운은 활발하다. 버프 마법이라도 받은 듯 온몸이 활성화 된 상태.

내부가 아닌 외부도 변화가 있었다.

“이야, 이 옷도 금방 못 쓰게 되겠는데. 아직 탁기가 좀 남아 있었나.”

그의 몸에서 또 검은 액체가 흘러내려 옷을 짙게 물들이고 있었다.

탁기다.

약식 개정대법으로 다 씻어 내렸다 싶었던 탁기가 아직도 가득 남아 있었다. 진득한 냄새를 풍기며 코를 괴롭혔지만, 그는 더 짙게 미소 지었다.

“하긴 환골탈태라도 하지 않는 한, 계속 쌓이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그래도 좋군.”

내, 외부 어딜 관조해도 문제는 없었다. 아니, 전보다 더 좋았다.

“마법의 도움을 받으니 이리 쉽네.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키기 딱 좋단 말이지.”

한 번의 수련.

흡수하는 손길과 선천여의생공을 조합하여 사용하는 데 소모한 시간은 고작해야 1시간이 조금 넘었다.

“그런데도 선천진기가 벌써 한 달 치. 미친 효율이야.”

그 한 시간에 한 달의 선천진기라…….

전생에 한 달의 선천진기를 얻기 위해선 열흘은 족히 보냈어야 함을 생각하면 엄청난 성과다.

‘열 배다. 무려 열 배!’

열 배라니.

선천진기는 모으면 모을수록 더 진득하게 모인다. 초반에 극악한 수련 속도도 언젠가부터 더 빨라지는 주기가 있었다.

이대로라면 그 주기도 더 빨라질 터.

“크흐. 미쳤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성취였다. 큰 황홀감이 그를 뒤덮는다.

수련 때문에 겪었던 방금 전의 고통 따위 알 바 아니었다. 고통을 얼마나 느꼈든 성과만 확실하다면 될 뿐이다.

한데, 그의 내부에 생각지도 못한 효능이 하나 더 있었다.

“……이건 진짜 예상도 못 했는데?”

두근- 두근-!

그의 내부에서 맥동하는 심장의 고동이 심상치 않았다. 힘차게 뛰었다. 반년을 넘도록 수행했을 때보다도 더 강한 힘이었다.

‘설마, 이거. 그건가?’

* * *

테스는 기억을 되짚었다.

의선의 것이 아닌 테스 자신의 기억이다. 마법사인 그에겐 좋지 못한 정보. 그러기에 애써 묻어 두었던 기억 중 하나를 끄집어냈다.

인간이 마법사가 되기 위해선 서클에 마나를 쌓아야 했다.

서클의 위치는 심장.

경지가 오를수록 서클은 비대해진다. 비대해진 서클은 나약한 육신을 지닌 마법사의 심장을 옥죈다.

그럼으로써 마법사는 한 가지 피할 수 없는 벌을 받게 된다.

“……마법사의 천형.”

마법사의 천형!

클래스가 오를수록, 서클이 더해질수록 쌓이는 벌.

혹자는 인간이 감히 세상의 진리를 탐구하여 생겼다고 하고, 혹자는 탐하지 말아야 할 힘을 인간이 탐해서 얻게 됐다고 말하는 벌이었다.

서클이 존재하는 내내 지속적으로 심장을 옥죄인다.

심장이 조여짐으로써 인간은 과부하를 느낀다. 그러니 육체가 점차 쇠락해질 수밖에 없다. 약해져 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천형은 더욱 강력해진다.

‘계속해서 성장하니까.’

그렇다고 경지를 올리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인간이 마력을 다루는 건 마약과도 같아서 계속해서 더 높은 경지를 탐하게 돼 있다. 쇠락해짐을 뻔히 알면서도 더 나아갈 수밖에 없다.

알면서도 피할 수 없다. 아니, 피하지 않는다.

계속 나아갈 뿐.

그러기에 하늘이 내린 형벌이고 피할 수 없는 재앙이다.

피하고자 제아무리 단련을 해도, 초인 같은 육체를 뿜어내는 기사보다 약해짐에도 더욱 나아간다. 종래에는 허약한 몸이 노인처럼 쇠락해도 서클에 마나를 쌓곤 했다.

하단전의 내력을 쌓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전보다 강건해지긴 했지만……. 아직 부족하지.”

수련을 통해 전보다 강건해진 몸이긴 하다.

하나, 서클은 여전히 심장을 옥죄고 있었다. 내력을 북돋아 육체를 강건하게 만들지만,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그는 이 마법사의 천형을 벗어나려면 한참이 걸릴 거라고 여겼다.

아니었다.

“적어도 환골탈태를 하고 나서야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는데.”

환골탈태.

이전의 육신을 벗어던지고 무를 위한 육체 그 자체로 나아가는 일종의 진화. 화경의 경지에 이르러야 도달할 수 있을 신위.

그쯤은 돼야 마법사의 천형을 벗어던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 예상했다. 아니다. 예상이 기분 좋게 빗나갔다.

테스가 히죽 웃었다.

“내 예상이 제대로 틀렸네. 환골탈태까지 갈 것도 없었어. 선천여의생공으로 중단전만 단련해도 천형은 벗어날 수 있었던 거야.”

한 번의 단련. 한 달 분의 선천진기. 그것만으로도 이미 심장의 맥동이 달라졌다.

움튼 생명력이 서클의 부하를 막고 있었다.

효능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심장이 크게 맥동하는 만큼, 그에 걸쳐져 있는 서클도 같이 순환했고 기운을 키우고 있었다.

생각지 못한 상승효과들!

‘다 좋은 쪽으로만 일이 일어나니 이거 무서울 정돈데?’

몸에 붙은 더러운 탁기를 벗어 내면서도 그의 미소는 사라질 줄을 몰랐다. 예상보다 더 좋은 결과 덕분이었다.

좋은 결과가 그의 의지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어디 다 뒈질 때까지 해 보자. 흐흐.”

다시 연 문, 바깥.

저택을 뒤덮은 잡초들을 바라보면서 테스는 씨익- 웃으며 주문을 외웠다. 흡수하는 손길을.

* * *

테스가 선천여의생공을 익히기 시작하고, 열흘이 지난 지금.

그의 저택을 무성하게 둘러싸고 있던 식물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잡초들이 메말랐다. 울창함을 자랑하던 나무 한 그루도 검게 변했다.

흙마저 생명력이 사라져 버려 모든 생명체가 절멸해 버린 그곳.

“하…….”

먼지 낀 방 안에서 테스가 몸을 일으켰다.

* * *

일어나는 테스. 그의 몸은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잔여로 남아 있던 탁기가 씻긴 자리는 미끈했다.

스승이 죽었던 16살부터 용병으로 뛴 그의 흔적. 10년이 넘도록 용병으로 살면서 쌓인 훈장. 즉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던 흉터들이 깨끗이 사라져 있었다.

“이거 쥑이네. 가능하면 귀족 부인들한테 미용으로 팔아먹어도 될 정도야.”

아기 피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미끈해진 피부를 그는 쓸어내렸다.

만족스러웠다.

겉모습만 달라진 게 아녔다. 피부 아래에 자리 잡은 근육은 더욱 옹골차졌다. 단순 단련으로 만들어지는 수준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타고난 듯 근육이 단단해졌다.

‘전에 날 알던 녀석들이 보면 난리 나겠군.’

육체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전사들. 그들이 본다면 눈이 훼까닥 돌지도 모를 육체가 됐다.

그보다 더 안쪽. 진짜배기는 그 안에 있었다.

맥동하는 심장 안에 자리한, 선천진기의 기운이 상당해졌다.

“고작 열흘인데, 벌써 일 년 치 기운이라.”

강건해진 심장의 한구석을 선천진기가 가득 채웠다. 따로 생명력을 자극하지 않아도 느껴질 정도였다.

선천진기 1년!

이때부터는 맥동하는 생명력이 제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만있어도 육체를 스스로 강건하게 만들었고 힘은 강해졌다. 망가진 곳이 있으면 제 스스로 수복하기 위해 움직였다.

힘과 자가 재생 능력 말고도 더 강력한 공능은 따로 있었다.

“일종의 버프 기운이란 말이지.”

선천진기는 어느 기운이든 쉽게 섞였다.

내공에 섞이면 그 위력이 배가 되고 내공을 모으는 속도도 빠르게 만들어 줬다. 이를 이용해 전생엔 부족한 내력을 선천진기를 이용해 보충하곤 했다.

지금은 쓰일 곳이 더 많았다.

“마력.”

내공이 아닌 심장에 존재한 마력. 마력을 구성한 서클과 최상의 궁합을 자랑했다.

같은 중단전에 위치하며, 마력을 강화시켰다. 따로 조율할 필요도 없었다. 본래부터 두 힘은 하나인 듯 같이 움직였다.

“물이여.”

스스-!

그 덕택에 그의 마법은 위력이 강해졌다. 같은 2클래스가 감히 탐낼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한 마력이 그의 마법을 떠받쳤다.

선천진기를 얻고부터 답보 상태에 있었던 2클래스의 마력이 움트기 시작할 정도다.

자라는 마나가 하나의 서클을 더 이룩하면 그때는 더 상위로 올라설 수 있게 돼 있었다.

“이 정도면…… 금방 3클래스까지도 쉽게 넘볼 법한데.”

3클래스.

진짜 마법사로 불리는 경지에 오를 수 있게 되는 거다.

‘상상만 해도 짜릿해.’

고작해야 2클래스의 경지로 무공과 조합하여 나온 효과가 지금의 상태다.

그러니 3클래스에 이르게 되면 또 얼마나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을까. 그러니 상상만 해도 짜릿할 수밖에.

덕분에 그는 해야 할 일이 더 늘었다.

“무공과 마법을 조화시켜야 할 것도 있고, 흡수하는 손길도 잘만 개량해 보면……. 흡성대법처럼 더 강해질 수 있을 거 같은데. 흐음…….”

실험해 봐야 할 게 더 늘어났다.

마침 그가 가진 자금이 적지도 않았다.

주문서와 약초, 집을 구하느라 소모한 2000골드를 제하고도 100골드 넘게 남아 있었다.

홀로 살고 있는 그다.

이 정도 돈이라면, 아껴만 쓰면 몇 년을 버티는 것도 가능했다.

간간히 마탑의 퀘스트나 쉬운 의뢰를 수행하면 그 기간은 더욱 길어지겠지.

“좋아. 나쁘지 않네.”

가진 돈을 세어 보던 테스는 망설임을 버리고, 결정을 내렸다. 잠시간의 정착이었다.

“한동안은 여기서 지내 볼까나. 그러자면…… 우선 좀 치워야겠군.”

* * *

집을 치우는 덴 잠시면 충분했다.

새로 익힌 바람 조종 마법을 이용하여 먼지를 바깥으로 쓸어버리고, 물 마법을 이용해 바닥을 적셔서 치웠다.

혼자 옮기기 힘든 가구도 강건한 육체면 따로 사람을 부릴 필요도 없었다.

문제는 이다음.

“흠. 집이 꽤 크긴 한데, 망가진 게 너무 많아. 보안도 이 상태면 부족하니…… 따로 마법을 설치해야겠는데.”

부서진 곳의 수리와 보안 강화가 필요했다.

‘보안 마법은 당장 아는 게 적고, 이왕이면 진법으로 때워야겠네. 그러자면…… 우선 수리를 해야 하나?’

보안 강화야 쉽다. 겸사겸사 진법도 실험하면 나쁘지 않다 싶었다.

문제는 부서진 곳의 수리였다.

행정관이 뇌물을 받아 챙기고 판 이 집. 아무래도 부서진 곳이 너무 많았다.

“거의 공지나 다름없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하기야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산 내 잘못이지.”

보안을 철저히 하려면 집부터 수리해야 했다.

테스는 투덜거리면서도 몸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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