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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선, 황제되신다-14화 (14/191)

제14화

챕터 14.

성문을 지나자마자, 이반은 의뢰비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가 가장 먼저 챙긴 건 테스였다.

테스의 손에 묵직한 꾸러미가 들렸다.

테스는 체면 따위 생각하지 않고 주머니를 바로 열어 보았다. 안에서 금화와 보석이 반짝인다.

‘이게 다 얼마냐. 미쳤다.’

선급으로 60골드. 의뢰 완료비로 60골드를 얹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죽인 기사 둘의 가격만 1300골드가량이 들어왔다. 플레이트 두 벌과 검 값이다.

‘옳지. 마법 방어 장비도 안 빼고 담아 놨구나.’

부적처럼 보이는 마법 방어구 값은 아직 포함도 되지 않았다.

여기에 병사들의 방어구 값이 650골드.

이외에 그들이 움직이며 벌인 전투만 열세 번이다.

한 전투마다 육 골드씩은 벌어들였다. 그 값만 80골드였다.

한 번의 의뢰로 총 2150골드가 들어왔다.

개인이 갖기엔 차고 넘치는 액수!

“한 번에 주려니 힘이 들더구려. 내 저들한테 따로 빌려 오기까지 했네. 내가 자네한테는 제대로 쳐줘야 하지 않겠는가.”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워낙에 액수가 큰지라 이반은 따로 돈을 융통해 와야 했을 정도였다.

미리 연락해 놓은 상인과 공물을 받으러 온 귀족이 없었더라면, 이반도 꽤나 고생을 했을 거였다.

“다시 봐도 대단한 액수인데, 이제 뭘 할 생각이신가?”

“차차 생각해 봐야지요.”

“내 제안은 여전히, 아니 앞으로도 유효하다는 것만 기억해주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돈주머니를 건넨 이반. 그는 아쉬운 눈을 하고는, 테스를 두고 물러났다. 미리 해 놓은 선약만 없었더라면 테스를 잡았을 터였다.

그가 물러나는 사이.

그 묵직한 돈주머니를 본 용병과 병사들의 눈은 부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히야……. 미쳤구먼. 저거면 팔자 완전히 편 거 아냐?”

“몇 년 치 액수냐. 아니……. 우리는 십 년은 더 뛰어야 되겠는데?”

“멍청아! 십 년 갖고 되겠냐. 뒈질 때까지 못 벌어 볼 돈일 거다. 크흐. 쥑이네. 한번 손에 들어나 보고 싶다.”

“아서라. 괜히 욕심도 내지 말고.”

부러움 대신 탐욕을 부리는 눈은 없었다.

본래라면 큰돈을 든 테스를 노리겠지만, 감히 그럴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그들도 봐서 아는 것이다. 테스가 보인 무공과 마법의 위력을!

제아무리 목숨을 내놓고 사는 용병이라도 감히 그의 돈을 노리기는 어려웠다.

“우리 거나 챙기자. 그래도 저 마법사 덕분에 우리도 꽤 챙겼잖아?”

“목숨을 챙겼는데, 여부가 있나. 가자고.”

“뭣 허냐. 구경났냐. 퍼뜩 움직여!”

한참 테스의 돈주머니를 바라보며 부러움을 삼키던 용병들.

그들도 자기 돈을 챙기자, 하나둘씩 떠나갔다.

그때까지도 테스는 가만 그들을 바라봤다.

‘다른 맘을 먹은 놈은 안 보이는데? 하긴 다들 한탕 거하게 해 먹었으니 배부르겠지.’

혹여나 딴마음을 먹은 자가 있을까 그도 탐색을 하는 거였다.

그사이, 이반은 미리 온 상인들과 사체 거래를 끝마쳤다. 보아하니 그도 꽤 많은 돈을 챙겼다. 그에게도 손해는 아닌 의뢰였던 거다.

미리 온 귀족과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는 이반.

‘어휴, 진득해라.’

그는 공물을 갖고 움직이는 마지막까지도 테스를 바라보며 아쉬움을 삼켰다.

손을 흔드는 이반. 그에게 테스도 마주 손을 흔들었다.

그러면서 이반이 안 들리게 연신 입을 움직였다.

“가라. 어서 가. 제발 가라고. 내가 거기 들어갈 일은 없으니……. 응?”

어색하게 손을 흔드는 사이, 이반 일행에 껴 움직이던 하이런이 데브론으로부터 뭔가 받아서 급히 테스에게로 뛰어왔다.

“뭐냐? 뭐 두고 간 거 있어?”

“허억. 헉……. 사, 사부님이 이걸 건네 드리래요!”

“응?”

하이런은 손에 있던 종이 꾸러미를 바로 테스에게 건넸다.

“뭐야? 편지? 나는 남자끼리 연서를 날리는 취미는 없는데.”

“에이, 그런 거 아니에요. 필요하시면 날려도 되기는 하는데. 어쨌든, 이게 있으면 도움이 될 거라고 하셨어요. 엄청요!”

“허 참.”

도움이라. 데브론이 또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준비한 건가.

‘깨달음 한 번에 사람이 이리 변할 수가 있나. 사람이 이리 변하면 죽을 때라는데……. 에잉, 아니겠지.’

테스는 손을 내리고, 재촉하는 하이런에게서 종이 꾸러미를 받아들었다.

“잘 쓰세요! 아,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감사는 무슨. 가 봐. 다들 멀리 가고 있잖아.”

“옙! 꼭 또 봬요!”

악연으로 시작했던 인연이 이렇게 바뀔 줄이야.

‘세상사 알 수 없다지만……. 신기하군.’

평생 저 혼자 떠돌 거라고 여겼던 테스. 그로서는 처음 겪는 따스함이었다.

그래서인가. 테스는 일행이 떠날 때까지 한참 동안 그들의 뒤를 바라봤다.

종이 꾸러미를 받는 걸 보고 고개를 끄덕이는 데브론. 뭐가 신났는지 연신 종알대는 하이런의 모습도 보였다.

좋은 사제지간의 모습이다.

‘나도 언제 저런 제자를 하나 가질 수 있으려나. 쯧, 우선은 됐다. 내 코가 석 자인데 제자는 무슨…….’

그들이 사라졌다. 테스는 아직까지 온기가 남아 있는 종이 꾸러미를 펼쳤다.

“그나저나 이건 뭐지. 마차에서 혼자 뭘 잔뜩 쓰더니만, 편지면 답하기 귀찮은……. 헛?!”

종이 안의 내용은 편지 따위가 아니었다. 그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거였다.

“보증서다!”

* * *

마탑 마법사의 보증서.

안에는 데브론의 이름과 그가 박아 넣은 직인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그의 마나 일부가 녹아들어 그의 마나 향이 났다.

오직 마탑의 마법사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귀한 보증서였다.

‘데브론이 정말 마탑 출신이긴 했네. 이거면 일이 편해지겠어.’

쉽게 만들 수도, 쉽게 누군가에게도 주지 않는 게 마법사의 보증서였다.

떠돌이 마법사인 테스는 만들 수도 없었다. 오로지 마탑 출신만이 그 비전을 갖고 만들 줄 알았다.

정통 마법사만이 지닐 수 있는 징표!

이 보증서를 가지면 테스의 일은 한결 수월해진다.

“크흐. 정말 아낌없이 주는구만. 이거면 바로 움직여도 되겠는데.”

보증서를 품에 소중히 집어넣는 테스. 그는 목적지를 향해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금방 목적지에 도착했다.

길을 잃을 이유는 없었다. 몇 년 전 보았던 곳이니까. 설사 몰랐더라도, 이 높은 탑을 보면 자연스레 찾을 수 있었다.

[마탑 지부 - 지넬]

현판이 새겨져 있는 곳. 이곳이 그의 목적지다.

“여긴 여전히 높네. 들어가 볼까.”

전에는 발도 디디지 못했던 곳. 테스는 보증서를 꺼내 들고 가볍게 몸을 들이밀었다.

스스스스-!

그가 안으로 들어서자, 마나가 유동했다.

전 같았으면 큰 소리가 울려 퍼졌을 것이다. 보증서가 없는 그로서는 오지 말아야 할 곳에 들어온 셈이었으니까.

지금은 아니었다.

차악-!

유동하던 마나는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그저 침묵했다.

통과했다는 의미.

‘신기해. 대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 마법진이려나. 진법하고는 또 다르단 말이지.’

테스가 한참 마나의 유동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미쳤다. 돈을 발라 놨잖아?’

높은 천장을 지닌 내부에는 곳곳에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마나가 끊임없이 유동했고, 그 안에 마도구로 짐작되는 것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천장에는 마석이 잔뜩 있었다.

최소 중급 몬스터를 잡아야 나오는 게 마석이다. 그마저도 낮은 확률.

마석을 얻으면 복권에 당첨됐다고 할 정도로 희귀한 마석이 천장에 잔뜩 박혀 빛을 뿌리고 있었다.

‘향이 진득해.’

덕분에 느껴지는 마나의 향이 진했다. 이 안에서 심법만 돌려도 효율이 몇 배는 됨 직해 보였다.

한창 안을 구경하고 있으려니 인기척이 느껴졌다.

“언제까지 구경만 하고 계실 거예요?”

“아아, 신기해서. 여기 처음 방문했거든.”

인기척의 주인은 카운터에 빼꼼 모습을 드러냈다.

헝클어진 붉은 머리 아래로, 안 어울리게 큰 로브를 입고 있는 그녀는 나름의 개성을 뽐내고 있었다.

느껴지는 마나의 유동이 상당한 걸로 봐서 최소 3클래스는 돼 보였다.

‘저 나이에 3클래스라……. 천재군. 그런 애가 왜 이런 데 나와 있나? 하기야 내가 뭔 상관이야.’

그녀와 테스의 눈이 마주쳤다.

순간이지만, 둘의 마나가 교류하듯 스쳐 지나갔다. 서로를 탐색했다. 탐색은 길지 않았고, 침묵은 그녀가 먼저 깼다.

“흐으응. 느끼기로 보증서도 지닌 분이신데, 설마 훔치신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 그런 짓을 했다가 마탑에 무슨 짓을 당할 줄 알고? 쓸데없는 의심은 버려.”

“하긴 요즘에는 그런 자가 드물긴 하죠. 그럼 무슨 일로 오셨으려나?”

“주문을 구입하고 싶어서 말이야.”

“주문이라……. 이야, 요즘 주문 구하는 분들이 드물긴 한데 잘됐네요. 자아, 우선 이거부터 보세요.”

그녀는 주섬주섬 물건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금방 책자 하나를 찾아 꺼내 들었다. 보유한 마법 주문 목록이 적힌 카탈로그였다.

차르르륵-!

카탈로그를 펼친 테스의 눈이 홱 돌아갔다.

“후음…….”

그리고 그런 그를 그녀는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 * *

‘미쳤다.’

1클래스에서부터 5클래스에 이르기까지.

수백 종이 넘는 마법들이 카탈로그에 잔뜩 쓰여 있었다. 하나같이 정통 마법들이다.

물론, 마탑에서 특별히 개량했다는 특화 마법들은 적혀 있지도 않았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이걸로도 그의 눈이 돌아가기에는 충분했다.

1~3클래스만 해도 수십 종이 적혀 있었다. 4클래스는 스물. 5클래스는 열 정도가 적혀 있었다. 하나같이 뛰어난 마법들이다.

“크흐…….”

“설명도 같이 적혀 있으니, 찬찬히 보세요.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이라 시간도 남으니까요.”

카탈로그를 보며 테스는 진한 아쉬움과 함께 허전함을 느꼈다.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금화 보따리. 총 2150골드가 들어가 있는 주머니의 묵직함이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부족하다! 너무 돈이 부족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얇은 카탈로그 앞에 있는 그의 주머니는 깃털보다 가벼웠다.

“큽……. 왜 이리 비싸냐.”

“알잖아요? 정가라고요.”

마법서는 시세 자체가 달랐다.

1클래스 마법서가 정가 100골드.

2클래스가 200골드.

3클래스만 해도 400골드로 치솟는다.

그럼 4클래스는? 800골드가 아니라 하나에 1000골드다!

5클래스는 다섯 배로 뛴다. 정가 5000골드에 육박한다.

이마저도 초기 마탑주 덕분에 가능한 금액이었다. 널리 마법을 퍼트리라고 했던가. 그의 유지를 받들었기에 5클래스까지 판매라도 하는 거였다.

‘큭……. 널리 퍼트릴 거면 공짜로 주든가. 애당초 보증서도 없으면 못 들어오게 해 놓고, 무슨 마법을 널리 퍼트리란 거야. 정말 웃기는 소리지.’

갈수록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판매하는 게 어딘가. 마탑 출신이 아닌 테스와 같은 마법사는 카탈로그 안 마법이라도 소중했다.

‘이 기회를 잘 살려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뽕을 뽑을 수 있으려나.’

1클래스만 50가지. 전부 살 수도 없다. 무리다.

2클래스까지 생각하면 구할 수 있는 수는 더욱 한정된다.

‘탕약을 끓이려면 약초도 구해야 해. 이론적으로 실험할 걸 생각하면……. 큽, 쓸 수 있는 게 더 적어지네.’

최소의 돈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야 했다.

그는 유심히 카탈로그를 살폈다.

그런 그를 카운터의 주인은 흥미로운 눈으로 계속 바라볼 뿐이었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결국 테스는 결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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