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챕터 13.
흡수하는 손길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식.
‘흡수를 통한 선천진기의 확보. 그래, 이 방법만 쓰면……. 의생공 바로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을지도.’
본디 늘릴 수 없는 선천진기를 늘리는 데 있었다.
애써 흡수한 걸 단순히 쓰고 버리는 건 너무 멍청한 짓이다. 흡수한 걸 제 것으로 삼아야만 제대로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대다수의 마법사는 이걸 몰라서 애써 흡수한 걸 버린다지만, 그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나는 다른 방식이 있어.’
안 그래도 그를 위한 방식이 의생공의 다음 단계로 존재하고 있다.
‘선천여의생공. 이거만 쓰면 바로 갈 수 있다.’
의생공의 상위 심법이자 의선을 천하 10대 고수로 발돋움하게 했던 최고의 심법 중 하나!
선천진기를 단련하는 수법이기에 그 난이도는 극악. 효율도 최하인 방식.
하지만 이 흡수하는 손길을 사용한다면.
‘전생에 수십 년 걸리던 걸 십 년……. 아니, 고작 몇 년으로 바꿀 수 있을지도!’
자신이 짠 처음의 수련 계획이 몇 십 년 단축될 수도 있었다.
그의 계획 달성은 수십 배 빨라질 것이다.
‘그리만 된다면……. 뭐든 못 할까. 본래라면 몇 년은 더 의뢰를 다녀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계획을 변경해야겠어.’
흡수하는 손길의 진정한 효용을 알게 된 그의 눈이 빛난다.
머리가 팽팽 돌아간다.
미리 짜 놓은 계획을 변경하고, 그에 걸맞게 바꾸고 속도를 더할 방법들을 추가로 더한다.
‘좋군……. 아주 좋아.’
단순히 머리를 굴리는 거만으로도 그는 내심 뿌듯함을 느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던 예전이 아닌, 미래를 도모한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그는 몇 걸음 더 나아간 셈이었다.
그런 그를 보고 느끼는 바가 있는 걸까.
“흘흘…….”
가만 그를 바라보던 데브론은 작게 웃음 지었다.
그 뒤 저만의 명상에 빠져들어 갔다. 테스가 머리를 정리하는 사이, 제 깨달음을 갈무리하려는 게다.
스스스스-!
하이런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둘을 가만히 보다 얻은 바가 있는 듯했다. 적은 마나를 끊임없이 순환하며 흡수하는 손길을 시도했다.
때 아닌 마법 수련 삼매경이 마차 안에서 펼쳐졌다.
* * *
“…….”
휘오오오오-!
인위적인 마나의 흐름이 차올라 있는 마차 안.
밤낮을 떠나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수련. 이 수련이 항시 반복될 수는 없었다.
어쨌건, 이들이 타고 있는 마차는 수련을 위한 장소가 아닌 의뢰 수행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었으니까.
‘이런……. 또, 적이다.’
심법을 돌리며 기감을 키운 테스. 그의 기감에 적들이 몰려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인간이 아닌 존재, 바로 몬스터였다.
그가 적을 느끼기 무섭게 이반의 목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진다.
“적이다! 홉고블린이야. 다들 준비해라! 에슬, 자네는 저 왼쪽 홉고블린을 막게나!”
“명! 십 부장 셋은 나를 따르라!”
“또 인가? 이거 질리지도 않네.”
-끼웨에엑!
사방이 소란스러워진다.
병사들은 병장기를 들었다. 사방에서 고블린들의 비명이 울려 퍼진다. 용병들은 침을 뱉으며 손에 쥔 검을 더욱 꽉 쥐었다.
이런 소란 속에서 수련을 더할 수 있을 리가.
“저희도 갈까요?”
“가야지, 그럼. 빨리 끝내고, 마저 마법 이야기나 하자고.”
“그래야지요.”
명상에 빠져 있던 마법사 셋은 동시에 마차의 지붕 위로 올라갔다.
터억.
그들 셋이 마차 위로 올라서자, 병사와 용병들의 환호부터 날아들었다.
“오! 나왔다!”
“흐흐, 마법사인데 도무지 내빼는 법이 없다니까. 덕분에 또 쉬워지겠구먼.”
“테스! 왼쪽의 홉고블린을 맡아 주게나!”
환호의 중심에 테스가 있었다.
일 차 기습에서 맹활약을 했던 그였다.
병사고 용병이고 가릴 것도 없었다. 누가 되든 그의 활약상은 인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전투만을 수행한 게 아녔다. 그의 손에 목숨을 구한 자가 수십이다.
그 뒤로 그는 매번 전투가 있을 때마다 나섰다.
마차 위.
그가 올라서 마법을 작렬시킬 때면 적들이 쓰러졌다. 마나를 쏟아 붓듯 던지고 난 그는 다시 내려와 마치 기사처럼 전투를 벌이곤 했다.
그런 그가 나왔다. 자연히 사기가 올라갈 수밖에.
-끼웩!
-끼웨에엑!
고블린들이 더욱 가까이 다가옴에도 사기는 되레 높아진다.
“어이! 믿고 있었다고!”
“한 방 날려 줘!”
높아지는 그들의 기대. 테스는 그 기대를 배신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기대 이상을 보여 줄 뿐.
고오오오-!
그는 자기 단전의 힘을 끌어올리며, 데브론을 슬쩍 바라봤다.
“다들 신났네. 지난번의 안개. 더 크게 한번 해 볼까?”
“저야 좋죠. 흘. 준비하겠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뒤로, 완벽한 우군이 된 데브론. 그는 이미 말하지 않아도 발맞춰 움직이는 테스의 우직한 손발이 되어 있었다.
스스스스-!
테스의 내력이 사방을 지배한다. 그 주변에 데브론의 마나가 사방을 휘돌며 바람을 일으켰다.
“독 안개!”
화아아악-!
내력을 돋운 테스가 비장의 무기 하나를 꺼내 드는 순간.
“윈드!”
“저도 보태겠습니다! 윈드!”
후우우웅-!
데브론이 만든 거대한 돌풍이 발맞춰 일어난다.
돌풍이 홉고블린들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이백은 넘어 보이는 홉고블린들이 완전히 집어삼켜지는 데 걸린 시간은 단 몇 초.
-끼에엑…….
-켁…….
살기를 띠고 달려오던 홉고블린. 그들의 비명이 바뀐다. 살기가 아닌 절망으로.
스스스스-!
얼마 가지 않아 독 안개가 흩어질 땐.
“이 미친…….”
“이야, 우리가 할 게 없는 거 같은데.”
이백이 넘던 고블린이 쓰러졌다.
테스가 기감으로 느끼기에 완전히 꺼진 생명력은 수십. 백이 넘는 고블린들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고작해야 몇 안 되는 그 빈곤한 수만이 살아남아 두 다리를 지탱하고 서 있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키히이…….
-켁…….
숨을 내뱉을 때마다 고통스러워했다. 중독 상태다.
살아 있으나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다. 얼마 가지 않아 살아남은 저들도 죽을 거다.
“과연 압도적이군…….”
“이게 어찌 마법사 둘이 해낸 거라고 봐야 할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마법 한 방에 고블린 부락 하나가 사라진 셈.
그 압도적인 위력에 다들 놀라는 사이, 나지막한 테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뭐 해? 가서 아직 살아 있는 새끼들 죽이지 않고. 밥값들은 해야 하지 않겠어?”
“아! 가즈아아아!”
“돌겨어억!”
그제야 모두가 정신을 차렸다. 병사와 용병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 * *
압도적인 전투였다.
“죽여! 마지막 발악이다. 무리하지 마! 다치면 네 손해라고!”
“알았어!”
아니, 압도적일 수밖에 없었다.
애당초 기사가 포함된 전력. 홉고블린 부락이 당해 낼 턱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 테스가 마법까지 후려갈겼으니, 압도적이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할 정도.
순식간에 고블린 부락 하나가 사라졌다.
이미 이런 전투가 몇 번은 반복됐다.
그때마다 이반은 제가 먼저 나서서 전장을 수습했고, 테스의 몫을 알아서 챙겨 줬다.
“총 백 마리를 처리한 걸로 쳐주겠소. 그 이상의 전력을 깎았으나, 다른 자들의 몫들도 챙겨 주기는 해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인지라…….”
“그걸로도 충분합니다. 직격타로 죽인 건 고작 수십 마린데요, 뭐.”
“후후, 이해해 줘서 고맙소.”
“당연한 겁니다.”
갈수록 호의가 짙어져 가는 이반. 그는 항상 테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그의 몫을 챙겨 줬다.
‘이게 다 얼마냐.’
하위 몬스터인 홉고블린이라고 해도 주는 돈은 상당했다.
작은 몬스터라도 남는 게 있었으니까.
고블린 손, 발톱. 주술사 지팡이, 홉고블린 검과 체액. 뭐 하나 버릴 게 없었다.
한 마리당 5실버씩만 셈을 쳐도 백 마리면 5골드.
결코 적은 돈이 아녔다. 고작 마법 한 번 써 대고, 한 가정의 한 달 생활비를 훌쩍 넘는 돈을 번 셈이니까.
만족스러웠다.
테스가 만족스러워하는 만큼, 이반은 아쉬워했다.
고작 몇 골드를 아쉬워하는 게 아니었다. 테스를 자기 사람으로 둘 수 없음을 아쉬워했다.
“이번에도 돈으로 챙겨 줌세. 아, 그리고 지난번의 제안은 아직 유효하다는 걸 기억하고 있는가? 이제 슬슬 의뢰도 끝이 다가오는데…….”
“큼! 아직 생각을 좀 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제 욕심도 있는지라.”
그는 몇 번이고 테스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했고, 그때마다 테스는 얼버무리듯 거절했다.
이쯤 되면 테스의 뜻을 모를 수 없을 터였다.
‘이 양반도 바보가 아니니 잘 알 텐데, 참 끈질기네.’
딱 봐도 체면을 중시하는 이반. 그런데도 그는 끈질기게 여지를 남겼다.
“흠. 한번 잘 생각해 보게나. 내 어떻게든 자네의 요구에 맞춰 줄 테니.”
“예이. 꼭 기억하겠습니다.”
“그럼……. 난 마무리를 지으러 가 보지.”
그만큼 그는 테스가 탐이 나는 게 분명했다.
‘이자만 있어도…… 내 계획은 더욱 빨라질 터인데. 쯧. 아쉽군.’
내심 생각하고 있는 바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테스만 한 패가 또 없는 것이겠지.
그러나 테스는 제 뜻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안 그래도 안 갈 생각이었는데, 흡수하는 손길 덕에 계획이 변경됐단 말이지.’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그의 계획은 더욱 견고해져 가고 있었으니까.
‘아쉽다.’
‘제발, 그만 좀 들러붙어라!’
때때로 이반의 설득이 있었고, 그걸 또 거절하고.
스스스-!
대다수의 시간을 마법 삼매경에 빠지고.
“어서 마법을!”
“기다리고 있었수다!”
또 때때로 쳐들어오는 멍청한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움직이기를 한참.
몇 번의 전투를 반복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이.
목적지가 점차 가까워져 왔다.
백작 데프의 영지. 세 개 있는 그의 도시 중 하나인 지넬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 *
‘다시 봐도 더럽게 크네…….’
영지 테스론에 닿기 몇 년 전, 지넬을 스쳐 지나간 적이 있는 테스였다.
그때보다도 성은 더 옹골차게 변해 있었다.
5미터는 됨 직한 단단한 성벽.
보수 작업을 해 놓은 듯 더욱 두꺼워 보였다. 성벽 사이에 나 있는 가시 벽. 그 위에 있는 활 받이들은 마치 고슴도치를 연상케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이사이에 세워져 있는 망루에서 마나가 흘러나왔다.
‘마법사로군. 1~2클래스들인가. 용케도 데려왔네.’
망루마다 마법사가 한둘씩 존재했다.
저클래스 마법사라도 망루 위에 있으면 무시할 게 못 된다. 저들이 서 있는 망루는 필시 마법 장치가 설치돼 있을 테니까.
마법 주문을 외는 대신에 장치를 사용하는 마법사의 화력은 무시무시하다.
눈에 보이는 망루만 셋. 사방을 더하면 총 열둘.
‘대단한데.’
그가 몇 년 간 머물렀던 테스론 영지에 비하면 대단한 전력이다.
그 거대한 성벽이 점차 가까워져 갔다.
얼마 가지 않아, 성의 경비들이 일행을 봤다. 헐레벌떡 달려오는 일단의 경비병.
“정지! 정지해 주십쇼!”
다가오는 경비병들은 정중했다. 용병을 상대할 때와 사뭇 다른 모습.
‘캬, 깃발을 봤다 이거지.’
그리핀이 새겨져 있는 깃발을 본 게 분명했다. 테스론 영지의 상징을 달았으니 알아서 기는 거다.
이반은 선두에 서서 말을 탄 채 그들을 맞이했다.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미리 약속된 선물을 전하러 왔다. 소식을 들었을 텐데.”
“넵. 미리 들었습니다! 한데, 저리 많은 사체들은 대체…….”
“오는 길이 험하더군. 알잖나. 요즘 토벌이 영 없었다는 것을. 오는 김에 싹 다 토벌하였네.”
“아아, 대단하십니다!”
경비들의 눈에 감탄이 어린다.
몬스터 토벌은 해마다 있는 행사.
이들이 토벌하지 않았다면, 자신들이 토벌을 감당해야 했다. 저들로선 목숨의 위협이 사라진 셈. 자연스레 눈에 호감이 어렸다.
이반은 세심한 부분도 놓치지 않았다.
“저 용병들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걸세. 제대로 된 자들이야.”
“오오, 검증된 용병들이로군요. 바로 위에 보고하겠습니다. 들으시면 아주 좋아하실 겁니다.”
“잘됐군.”
이반은 제가 데려 온 용병들을 챙겼다.
뒤에서 말을 들은 용병들의 입에 흐뭇함이 걸렸다. 몸값이 상승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니까.
“그럼 바로 통과해도 되겠는가?”
“여부가 있겠습니까! 통과입니다!”
“자, 다들 가지!”
이반의 말이 투레질을 하며 발을 굴렸다. 그리고 멈췄던 행렬이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갔다.
얼마 가지 않아 성문을 통과하는 일행. 머잖아 의뢰의 끝이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