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챕터 12.
“야, 너 치료 마법 쓸 줄 알지?”
“네, 넵!”
데브론이었다. 테스를 지켜보며, 뭐 하나 빼먹을 게 있나 하고 나왔던 그로선 괜한 횡액을 당한 셈.
“뭣 하냐! 당장 안 쓰고!”
“알겠습니다!”
“새끼, 멀리서 보지 말고 옆에서 봐. 그래도 배울 수 있으면 또 배우고. 근데 잘 안 될걸?”
“크흐음…….”
여기까지 제 발로 걸어 들어온 데브론이다. 뒤로 뺄 것도 없었다. 뻔뻔해지기로 작심한 데브론은 바로 옆에 붙었다.
‘대체 어떤 마법이지? 도통 모르겠는데……. 위력은 확실하고.’
헛기침하며 옆에 자리를 잡은 그. 테스가 지시를 할 때마다 없는 마나를 쥐어짜 치료 마법을 날렸다.
“자가 치유!”
“흐으으……. 감사합니다!”
화아아악-!
그의 손에 빛이 맺힐 때마다 치료에 도움이 됐다.
자가 치유.
자신의 체력을 이용한 방식으로, 본질적으로 약한 치유 능력밖에 없었다. 환자가 체력이 높을 리는 없었으니까.
그 부족한 체력을 테스의 내력이 대신했다.
“새끼, 타이밍 잘 맞추라니까. 내가 넣으면, 네가 쏜다? 알겠냐?”
“넵! 명심하겠습니다!”
자가 치유가 들어서기 바로 직전.
의생공의 기운이 환자에게로 스며들었다. 스며든 기운은 환자의 떨어진 체력을 일시적으로 보충해 주었고 보충된 체력은 치유에 사용되었다.
완벽한 마법과 내력의 조화 중 하나였다.
스스스스!
효과는 굉장했다. 순식간에 살이 아물었다.
“오오오오!”
“엄청나다! 사실 신관이신 거 아냐?”
“그게 말이 되냐?!”
그때마다 연신 감탄이 터져 나왔다. 기적과도 같은 치료 행위에 대한 감탄이었다.
데브론은 다른 의미로 감탄했다.
‘무슨 힘이지……. 어떤 비전인 거야? 대체 어디 학파지?’
테스가 가진 힘의 출처. 비전 마법. 그 어느 것 하나 탐이 나지 않은 게 없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경외심이 들었다.
‘……같은 2클래스인데, 너무도 다르구나. 달라도 너무 달라. 허허.’
우습게 보였던 테스. 고작해야 용병 마법사라고 여겼는데 마탑에서 마법을 수학한 자신보다 더 낫지 않은가.
저 멀리 있는 마탑. 개인 연구를 핑계로 바깥으로 나왔던 데브론이었다.
사실 그건 핑계였다.
마탑 안에 있는 자신보다 나은 천재들. 그들을 보며 느낀 열등감에 못 이겨 도망치듯 마탑을 나왔을 뿐이었다.
넘지 못할 벽을 매일 보고 괴로워하느니 차라리 도망쳤다. 작은 영지에 틀어박혀 작은 우물 안으로 스스로 기어 들어왔다.
근데 지금 보니 그들은 벽이 아니었다. 진짜는 따로 있었다.
‘테스, 이 사람. 언젠가는…….’
대단하다는 마탑의 그들도 이자를 보면 달리 생각해야 할 거였다.
진짜는 따로 있다는 걸. 마탑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그들이 정녕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알아야 할 거였다.
치료를 행하는 테스를 보며, 경외감을 느끼고 개안한 데브론.
‘이게 진짜야. 사실 마법이라 하는 건 마탑이란 본류가 정해진 게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야 하거늘. 허……. 본류와 창조라. 그런가? 그런 거였나?’
스스스스-!
그의 가슴 어림에 거대한 마나가 맺힌다.
“너는 당분간 조심을……. 허?”
치료한 병사에게 주의 사항을 알려 주던 테스.
마지막 남은 병사를 끝으로, 이제 제 할 일이 끝날 상황에서 그는 멍하니 옆을 바라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서 갑작스런 마나의 흔들림은 그도 예상치 못한 일이니까!
‘요거 보소?’
그가 바라본 데브론은 저만의 세계에 깊이 빠져 있었다.
“깨달음을 얻은 건가. 허 참, 평생을 살아도 안 오는 깨달음인데. 이거 제대로 복 터졌네.”
“아…….”
그 짧은 사이.
마나를 수습하는 데 성공한 데브론. 그는 정신을 수습하고 테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깨달음을 얻은 데브론의 눈은 전보다 더 침착해졌다.
생각지 않은 깨달음에 얻은 한 개의 서클. 3클래스가 되며 얻은 침착함이었다.
기실 하나의 서클이 오른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깨달음이 중요했다.
하나의 깨달음을 얻어 클래스가 상승했으니, 그 뒤는 더욱 빨라지게 돼 있다.
못해도 4클래스. 잘하면 4클래스 마스터까지도 쉽게 넘볼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그러니 그 가치가 대단할 수밖에 없다.
데브론이 연신 테스를 향해 감사 인사를 올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은 셈이니까.
그는 단순히 감사만으로 끝을 내려 하질 않았다.
“지금은 매인 몸이기에 어쩔 수 없으나……. 언제고 풀려난다면 꼭 따르고 싶습니다.”
“마음대로 하든가.”
아예 테스를 따르겠다며 들러붙었다.
‘이반은 자신을 따르라고 하더니만, 요놈은 제가 들러붙네. 쯧. 어차피 매여서 못 오잖아? 당장 감사의 뜻을 돈으로 표하든지.’
전생에도 제대로 된 깨달음을 얻지 못했던 테스. 그로서는 그의 깨달음이 부러웠다.
데브론의 눈에 보이는 쓸데없는 경외심보다도 당장 자신에게 깨달음이 주어지면 더 좋았을 그였다.
그래서 괜히 달라붙는 그를 연신 밀어내고 있는데.
깨달음의 덕인지 눈치가 빨라진 데브론은 그도 생각지 못한 걸 품에서 꺼냈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따르고 싶지만, 사정이 사정인지라……. 그래, 이건 어떻겠습니까? 이미 있으실지도 모르겠지만, 괜찮으시다면 당장 이거라도…….”
“뭔데? 감사 표현은 돈으로 하는……. 헛?!”
데브론이 품에서 꺼낸 두꺼운 책 한 권.
‘주문서!’
마법사에게는 목숨보다 귀하다는 주문서가 담긴 책이었다. 주문서를 본 테스의 눈이 크게 뜨였다.
* * *
‘횡재했다!’
데브론이 그에게 건네준 주문서는 ‘흡수하는 손길.’
상위의 마법은 아니다. 고작해야 1클래스 주문.
‘하지만 유용하지.’
흡수하는 손길의 효과는 상대의 생명력 갈취. 흑마법의 일종이지만, 유용성을 인정받아 마탑에서 판매하는 희귀 주문이었다.
‘마탑은 흑마법을 괄시하는 주제에 필요한 건 잘도 가져다 쓴단 말이지.’
희귀하다 보니 돈이 있다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주문은 아니었다. 매물이 자주 나오는 게 아니란 의미. 그걸 이런 식으로 구할 줄이야.
운이 좋았다.
데브론은 단순히 주는 것으로 끝을 내지 않았다.
“3클래스에 오르니 더 잘 보이더군요.”
“뭐가?”
“테스 님이 아직 2클래스에 머물러 있다는 거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 빠른 주문 사용, 마나 연계가 도무지 해석이 안 됩니다마는…….”
“내 비전이라고 생각해.”
“네. 그리 생각하려 합니다. 아니면 테스 님이 특별하시거나요. 어쨌든, 그 특별함에 한 수 얹어도 되겠습니까?”
“뭔데?”
“괜찮으시다면 제가 돕도록 하겠습니다. 그 주문의 이해를요.”
테스에게 주문을 가르쳐 주고자 했다.
그것은 일종의 비법 전수!
마법사의 비법 전수는 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데브론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거리낌이 없었다. 진정 테스를 가르치고자 했다.
지금 현재 데브론은 3클래스. 나아가 4클래스가 보이는 상황.
제 깨달음을 갈무리하기도 바쁠진대, 가르쳐 주겠다는 호의는 명백한 진심이었다.
뻔뻔한 성격의 테스조차 부담스러울 정도의 호의.
“크흠……. 괜찮겠어? 네 것도 챙겨야지.”
“너무 부담 가지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언제고 익히실 수 있을 걸 약간 단축시켜 드리는 것뿐이니까요. 덕분에 얻은 기회인데, 써 드려야지요.”
“그럼 고맙게 받을게. 다시 말하지만 고마워.”
“흘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이미 마음을 굳힌 듯했다.
‘씁. 이럴 거면 대결 때 콧대는 지켜 줄 걸 그랬나. 그나저나 깨달음이 대단하긴 하네. 사람이 이리 달라질 정도라면…….’
깨달음 이후, 완전히 사람이 변한 듯한 데브론이었다. 그 높던 콧대는 어디로 가고, 침착함만이 남아 있었다.
그런 그의 변화를 보며 전생에 없던 깨달음이 아쉽기만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기다리면 오겠지. 급하다고 찾아올 깨달음이었으면, 이미 전생에 왔을 테니까.’
깨달음이 다시 찾아올 때까지 그도 준비를 할 뿐이다.
“기실 이 흡수하는 손길은 일종의 변종입니다. 흑마법 중에서 생명 흡수의 열화판이죠. 일종의 부작용을 줄인 것인데…….”
“호오…….”
준비를 끝내는 그때까지 그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주문을 배우고 서클을 강화하고 내력을 더하면서.
작은 마차 안은 배우려는 테스와 가르치려는 데브론의 목소리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 * *
“흡수하는 손길!”
스스스스-!
테스의 손길에 검은빛이 맺힌다. 맺힌 빛이 미리 준비한 꽃에 도달하는 그 순간.
파스스슥-!
꽃이 순식간에 시든다. 시들어 버린 꽃잎이 힘을 잃고 아래로 떨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든 줄기가 가루가 되어 흩날린다.
마법의 완벽한 성공!
그 장면을 보고 있던 데브론이 짝- 하고 박수를 치며 감탄한다.
“오오! 고작해야 3일 만에 주문을 익히실 줄이야! 역시 대단하십니다!”
“큼큼……. 데브론의 설명이 더해진 덕분이지.”
옆에서 같이 주문을 배우고 있던, 데브론의 제자 하이런.
그는 부러운 눈으로 테스를 바라본다.
그도 흡수하는 손길을 사용했지만 마나가 맺히다 파삭- 하고 사라졌다. 완벽한 실패였다.
“와! 대체 어떻게 하신 거예요? 저는 아직……. 감도 못 잡겠는데.”
“너도 곧 할 수 있을 거다. 금방이야.”
하이런의 눈에 의기양양해진 테스.
“흡수하는 손길!”
그는 몇 번이고, 미리 준비한 꽃잎을 상대로 흡수하는 손길을 사용했다.
스스스스-!
그때마다 미약한 기운이 그의 손을 타고 들어왔다.
‘이거 생각보다 쓸 만한데?’
본디 꽃 자체가 지닌 생명력은 낮을 터.
그렇다고 해도 생물은 생물. 낮은 생명력이라도 상당한 힘이었다.
그 힘이 흡수하는 손길을 타고 들어오자, 어느 때보다 진한 생명력이 테스의 몸 전체에서 느껴졌다.
전신을 뻗어 나가는 생명력 그 자체!
테스는 이 기운을 놓치지 않고 잡아냈다.
이 기운, 낯선 기운이 아니다. 전생의 의선으로 있던 시절, 몇 번이고 겪었던 기운이니까.
‘선천진기야!’
선천진기!
생물이라면 누구든 지니고 태어나는 기운. 생명의 기반 그 자체이며 선천진기가 지닌 강대함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1년의 선천진기면 5년의 내공보다도 더 강력했으니까.
그러한 선천진기를 고작해야 1클래스의 흡수하는 손길로 얻을 수 있을 줄이야.
‘대단한데……. 역시 마법이라고 해서 무공보다 못한 게 아냐.’
의선의 기억을 얻은 뒤, 내심 마법의 힘을 무시하였던 테스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효용.
그걸로 테스는 확실히 하나는 알 수 있었다.
‘다른 용병들이 흡수하는 손길 자체를 잘못 쓰고 있었던 거야. 진짜 효용은 따로 있었어.’
흔히 알고 있는 흡수하는 손길의 사용 방법은 비상용.
기운이 다하거나 위기 시 힘이 쇠했을 때 사용하곤 했다. 긴급 상황 시 타인의 생명력을 갈취하여 제 한 몸 내빼고자 사용하는 방식이랄까.
‘멍청한 방식이야. 제대로 쓰는 건 그렇게 쓰는 게 아녔어.’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은 따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