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챕터 11.
이반은 상벌을 제대로 줄 줄 알았다.
이백에 가까운 적병들 중 3분의 2가 죽어 나간 상황. 도망친 소수를 제외하고 살아남은 적병의 수는 40명에 불과했다.
이반은 그 살아남은 적병 40명을 이번 전쟁의 포상으로 이용했다.
‘꽤 재밌는 방식이야.’
달리 포상을 준 게 아니었다.
전장에서 패배한 병사는 몸값을 지불할 수가 없었다. 기사나 귀족처럼 많은 재산을 지닌 게 아니니까.
그런 그들에게 패배는 곧 노예가 된다는 의미.
이반은 거저 얻은 노예들을 포상으로 이용했다.
“이걸로 자네들 특별 수당에 대한 지급은 끝이 난 걸로 알겠네.”
“흐흐, 감사합니다.”
“물론입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후후.”
무장을 싹 다 벗겨 먹은 병사, 아니 노예를 살아남은 용병들에게 넘겼다.
노예 한 명당 가격은 최소 10골드.
포로 병사처럼 팔팔한 젊은 남자는 20골드까지 나갔다. 가진 노동력이 상당하니까.
그들을 거저 넘김으로써 급작스런 기습으로 인한 용병들의 불만을 잠재웠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남은 용병의 수는 마흔셋 정도. 이들로선 노예 하나만 챙겨도 엄청난 가외 수입이 생기는 셈이었다.
그럼으로써 이반은 많은 이득을 얻었다.
‘한 번에 두 가지 이득을 얻은 셈인가.’
자신의 것이 아닌 걸 포상으로 줌으로써 용병들의 불만을 잠재웠고.
노예를 지키기 위하여 용병들이 불침번을 제대로 설 것이니 안전도 더욱 확보한 셈이었다.
이반에게 손해가 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남은 자들을 제대로 뒤지게나. 저, 테스 마법사의 몫도 제대로 쳐주고.”
“명!”
“병사들에겐 나중에 따로 포상이 주어질 테니 불만은 가지지 말라고 전하게나.”
“그 또한 전하겠습니다!”
죽어 버린 병사와 기사의 전리품. 전장이 끝나고 남은 모든 재물에 대한 소유권은 우선 그가 가지게 돼 있었다.
고용주니까.
그의 병사는 서른이 넘게 죽었지만, 전리품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그 손해를 벌충하고도 남을 터였다.
‘손해를 이득으로 메우고 있어. 저건 배울 만한 점이야.’
깔끔한 이반의 일 처리 방식. 그를 지켜보고 눈을 빛내는 테스. 그는 이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그 방식을 배워 갔다.
소영지의 차남이지만, 이반의 방식은 분명 쓸 만했다.
머저리로 소문난 장남과 달리 차남인 그가 테스론을 차지할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 이상도 보였다.
‘여기서 끝날 자가 아냐. 뭐……. 앞으로 꽤 대단한 자가 될지도 모르지.’
그러기에 그의 제안이 아쉽긴 하지만,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나도 그 이상으로 클 테니까.’
하긴 그게 중요하랴.
가만 이반의 움직임을 살피던 테스는 제 할 일을 하나 잊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차차! 생각해 보니 여기 교보재들이 넘쳐나잖아?’
단순히 이 상황에서 귀족의 방식을 배우는 걸로 끝낼 게 아녔다.
그는 따로 배울 게 있었다.
‘어디 보자. 다들 저기 있네.’
전쟁에서 나오는 자들. 부상자들을 찾아 테스가 눈동자를 굴렸다.
빠르게 부상자들을 찾은 테스. 부상자들이 한데 모여 있는 곳을 향해 곧장 나아갔다.
전생의 기억을 체득하고 체화하기 위해서는 실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의선이었던 전생의 의술을 다시 얻기 위한 과정!
그것을 위해서 부상자들에게 다가갔다.
* * *
맥스.
나이 서른아홉으로 이 세계에서는 이제 ‘늙었다.’라고 말을 들을 법한 나이였다.
기사 에슬의 장원 출신으로, 사병으로 일한 지가 이제 스무 해가 넘었다.
베테랑이기도 하고 기사 에슬에게 무술 한 자락을 얻어 배운 처지이기도 했기에 그의 직위는 십 인장으로 올랐다.
열 명의 부하를 둘 수 있는 직위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제법 큰 위치이다.
급여 역시 다른 이들의 세 배나 높고 당연하지만 전투 능력도 다른 병사들보다 뛰어났다.
“하…….”
그런 그였지만, 지금은 먹먹한 눈으로 들판에 들어 누워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어깨 죽지에서 가슴팍까지 길게 베어져서 피가 철철 흘러내린다.
폐가 찔린 것은 아니지만 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의 중상이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살기는 글렀다고 생각했다.
적인 붉은 기사와 격돌할 당시. 아군을 돕기 위해서 뛰어들었다가 생긴 부상이다.
치명상이다.
중급 회복 포션 정도가 아니면 살수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문제라면 중급 회복 포션이 지금 없다는 것 정도일까. 아니. 한 병 정도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귀한 물건을 아무리 오랜 시간 종군했던 자신이라고 해도, 일반 사병에게 쓸 리가 없다는 점이 문제다.
“로시…… 네 결혼식…… 못 가겠구나…….”
맥스 에게도 가족은 있다. 베테랑 십 인장으로서 자리를 잡았고, 결혼한 것이 십 년도 더 전의 일이다.
딸 하나. 아들 둘. 그리고 장녀의 결혼식이 얼마 후에 있을 예정이었다.
그 결혼식에 아비로서 참석은 하지 못하고 부고 소식을 알리게 되겠지.
회한.
애석함.
안타까움.
그 감정 속에서 그는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로시…… 행복하거라…….”
“에헤이. 그런 소리는 아직 이르지.”
그때 불쑥 하고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가물거리는 시선으로 바라보니, 엄청난 실력을 보였던 마법사였다.
“자자. 바쁘니까. 빨리 하자고.”
해? 뭘 해?
그렇게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생각하던 맥스는 곧 이어지는 행동에 눈이 커졌다.
상대가 기다란 바늘을 꺼낸 것이다.
파파팟!
마법사의 손이 흐릿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의 몸에 바늘이 몇 개나 꽂혀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끄아아악! 무슨 짓이야 이 미친 마법사 새끼야!”
자기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만다.
“목청도 좋구먼. 그나저나. 어때? 고통은?”
“무슨 개…… 어…… 어라…….”
맥스는 방금 전 까지 이어지던 고통이 씻은 듯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덤으로 목을 제외하고는 전신을 조금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도.
뭐지 이게?
“흠…… 점혈이 잘 먹혔구먼…… 좋아, 좋아. 고통 마비. 거기에 출혈도 잡았고…… 하지만 상처를 이대로 두면 죽겠지.”
마법사가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바늘을 하나 더 꺼내 든다. 그러고는 맥스의 머리카락을 떼어내서 바늘에 실처럼 연결하는 게 아닌가?
“명주실이 있으면 좋은데…… 뭐 별수 없지.”
“뭐, 뭐 하려는 거냐!”
“상처 치료 하려고.”
“근데 왜 바늘을 내 몸에, 으아아아!”
맥스는 소리를 질렀다. 미친 마법사가 자기 몸에 바늘을 꼽더니 벌어진 상처를 누더기 깁듯이 꿰매 버렸으니까!
“어허. 치료해 주는 거야.”
“이게 무슨 치…… 어어?”
맥스는 피가 멎은 것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상처가 꿰매지자 들어났던 뼈도 이제 보이지 않게 됐다.
마법사는 그러고서는 품에서 포션 병을 꺼내든다.
“어디보자…….”
그러고는 방금 꿰맨 자리에 몇 방울을 똑똑 떨어트리는 게 아닌가?
“옳지.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구먼. 대충 살 꿰맨 다음이면 최하급 포션으로도 효과적이야.”
놀랍게도. 그 큰 상처가 아물어 있었다.
“이…… 이게 대체.”
“운 좋은 줄 알라고. 이런 치료 어디서도 못 받으니까.”
“당…… 당신은 신관이었습니까?”
“아니. 마법사야.”
“이런 마법은 듣도 보도 못했는데…….”
“네가 마법을 알어? 이거 다 비전이라고. 당연히 듣도 보도 못하지.”
“아…….”
“그러면 몸조리 잘하라고. 로시가 딸내미 맞지? 딸내미 결혼식에도 가야지. 안 그래?”
그러면서 마법사가 몸에 꽂혔던 바늘을 전부 회수했다. 그러자 몸에 감각이 돌아오고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나…… 살은 건가?”
“그래. 살았어. 하지만 조심하라고. 완치는 아니니까.”
그러더니 마법사는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다른 부상병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뭐야. 저 마법사는…….
이렇게 쉽게.
중급 포션이 아니면 내가 살수 없었을 텐데.
맥스는 왈칵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 * *
감사해하는 맥스를 보며, 테스도 느끼는 바가 있었던 걸까.
그가 이곳에서 처음 침을 든 이유는 단순했다.
신관도 없으니 냉큼 치료 실습을 해 보자는 이유였다.
분명 제 욕심이었다.
한데, 치료를 하니 웬걸. 감사해하는 맥스를 보며 저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지는 테스였다.
‘……쯧. 이러니 전생에 나도 의원 노릇을 했던 건가. 좀 이해가 가는데.’
기억이 없는 건 아니다.
의선의 기억 속에 수많은 치료의 기억이 있었다.
감사해하던 환자들의 기억도 분명히 존재했다. 기껏 살려 놨더니 제 목숨을 바쳐 대신 죽는 자도 있었다.
수백, 수천을 살렸고 수만의 감사를 받았다.
다만 머리로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기억이 아닌 실제로 느꼈다.
‘영……. 호구 노릇이 아닌가 싶었는데. 씁. 이거 나쁜 기분은 아니구먼.’
가슴 어림에서 느껴지는 간질간질함에 테스는 저도 모르게 슬쩍 고개를 돌렸다. 부끄러워서일지도.
테스는 그런 기묘한 감정 속에서 다른 부상병들에게 다가갔다.
현재 이 집단에는 신관이 없고 포션을 가진 녀석들도 별로 없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중상자는 전부 사망이 확실하다.
“자. 다들 중상자 이쪽으로 모은다. 실시.”
맥스를 살리던 모습을 보던 병사, 그리고 용병들이 후다닥 움직이기 시작 했다.
* * *
이미 맥스를 치유한 신기한 기예를 본 병사들이었다.
빛 한 번 번쩍이며 치료를 하는 신관과는 달랐다. 하지만 그 안에 알 수 없는 깊이가 있음을 병사들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병사에게 부상은 치명적.
저마다 사정을 지닌 병사들에게 그는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많은 자들이 몰려들었고, 서로 먼저 해 달라고 떼를 썼다.
“마, 마법사님! 저도 팔이!”
“새꺄. 너는 딱 봐도 찰과상이잖아. 그 정도는 흉터가 아니라 훈장이야, 인마.”
“어떻게!”
“다 수가 있다.”
그는 대단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병사의 상태를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야, 너! 너는 먼저 이리 와 봐라. 치료해야겠네. 맥스, 저놈은 뒤로 넘겨!”
“감사합니다!”
“억? 너는 뭐 하냐? 어서 이리 와!”
“예?”
“새끼……. 긴장해 가지고 자기 몸 아픈 것도 몰랐구먼. 배에 피 다 차면 뒈지는 거야. 함 버텨 봐. 쫙 빼 줄 테니까.”
환자 본인보다도 테스가 몸의 이상을 더 빨리 눈치채고 사람을 나눴다.
치료하면서 방식도 실시간으로 발전했다.
‘나 꽤 재능이 있는지도?’
의료 행위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손이 금방 적응을 했다.
스스스슷-!
사람을 죽이고자 익힌 금나술의 수법이 의술로 펼쳐졌다.
세심하고, 세밀하다. 그럼에도 속도가 느리지 않았다.
그는 매 순간 계속 성장했다.
‘얘는 됐고. 얘는 제쳐야겠네. 으음…… 얘는……. 쯧, 어떻게 되려나. 탕약이 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군.’
진료와 진찰이 동시에 이뤄졌다.
당장 치료해야 할 자와 조금 버텨도 될 자를 나누자 치료 속도는 배나 더 빨라졌다.
스스스슥-!
그의 손길에 죽어야 할 자들이 살았다.
복부에 피가 맺혀 내부 출혈로 죽을 자, 창상, 과다 출혈, 관통상…….
온갖 치료가 순식간에 행해졌다.
부족한 준비는 마법으로 때웠다. 마법엔 테스가 아닌 다른 자가 동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