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챕터 10.
펑!
의선보를 펼치며 그대로 마차 아래로 뛰어 내렸다.
후우욱-!
새처럼 내려앉은 그가 직행한 곳은 기사들이 싸우고 있는 방향!
‘그대로 간다.’
테스는 검을 뽑아 그대로 습격자인 붉은 기사의 뒤를 노렸다.
검을 찔렀다.
찔러 들어 오는 검. 적 기사는 알고 있으나, 피하지 않았다.
기사가 입은 갑옷은 마법이 부여된 것이었고 판금 자체의 방어력에 마법까지 더해져 일반적인 무기나 용병들 수준으로는 흠집조차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감!
그 때문에 반응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눈앞의 기사를 몰아 붙였다.
‘마법사 새끼가 무슨 칼질을 하고 지랄이야? 우선 이 기사 놈 부…….’
서컹!
푸욱.
“커흑?!”
그리고 그 방심의 대가로 그는 그대로 등판을 통해서 폐까지 검이 관통 당했다.
“무…… 무슨…….”
“새꺄. 방심 하다가 훅 가는 거야.”
“어…… 어떻…… 오…… 오러?!”
검은 기사는 자신의 가슴을 뚫고 나온 검이 희미한 오러로 둘러싸인 것을 그제야 볼수 있었다.
“영류비검 일 초식, 비류(飛流). 알아들을지는 모르겠지만, 저승 가면 이거에 당했다고 해라.”
검을 빼내자, 검은 기사가 그대로 무너졌다.
“끄륵…….”
털썩.
붉은 기사의 신형이 그대로 쓰러진다.
방금 전까지 전장에서 살아 날뛰던, 붉은 기사는 그대로 절명 했다.
첫 기사의 죽음이었다.
“번스!”
“어어…….”
급작스런 죽음. 주변은 경악한 목소리로 수놓아졌다.
* * *
기사 이반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차아아악-!
번스라 외치며 놀란 기사의 가슴팍에 검을 찔러 넣었다. 두꺼운 철제 갑옷이 오러를 머금은 검에 뚫렸다.
“켁…….”
심정지가 되는 순간, 기사가 풀썩 쓰러졌다.
남은 기사는 이제 단 하나.
“시X…….”
패색이 짙어짐을 느낀 그는 욕지거리를 날리며, 뒤로 내빼기 시작했다.
이반과 에슬이 그 뒤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적 기사의 속도는 빨랐다. 둘이 놓칠 수도 있을 만큼 빠른 발놀림에 점차 거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때, 테스가 나섰다.
후욱!
말이 달리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테스가 달려 나갔다.
“저, 저거 뭐야!”
“시간 가속 마법?!”
“아냐! 저건…… 저건 다른 거 같은데?!”
한 걸음에 거의 삼 미터를 뛴다.
그 속도는 바람 같아서 단번에 테스는 도주하는 기사의 뒤를 따라잡았다.
의선보를 극성으로 발휘하고 내공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거기에 외공과 버프 마법들의 효과로 지금의 테스는 말의 두 배 속도로 내달릴 수 있었던 것이다.
도주하던 기사는 그런 테스의 접근을 알아차렸는지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합!”
그러고는 검으로 오러 블레이드를 줄기줄기 뿜어내며 검을 횡으로 그었다.
탕!
그 순간 테스는 땅을 박차고 하늘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뒤집으면서 검을 뻗어냈다.
영류비검 사 초식, 낙류(落流).
그냥 내리치는 검이 아니다. 기묘한 각도와 흔들림을 가지고 내리친 검은 상상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쩌어어어엉!
검과 검이 충돌했으나 그 소리는 귀가 아플 정도로 컸다.
“크으윽!”
동시에 붉은 기사는 두 걸음 물러서며 팔을 부르르 떨었다.
‘이 무슨 괴물 같은 힘이냐! 트롤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오…… 지금 내 힘, 엄청 난데?’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면서 테스는 땅에 내려섰다. 내공을 사용하여 증폭한 근력. 외공의 효과. 마법의 버프들.
그것들이 합해져 지금. 테스는 트롤에 버금가는 괴력을 부여 했다.
‘그나저나. 내공이 별로 안 남았으니 빨리 처리해야겠는걸.’
본래 십 년도 안 되는 내공을 가졌던 테스다. 검기를 만들고 거기에 의선보를 이용해서 전력 질주까지 했으며 내력을 사영한 검격도 사용했다.
내공이 후달린 것은 사실. 그렇기에 테스는 바로 덤벼들었다.
영류비검 팔 초식, 격류(激流).
그의 검에 막대한 힘이 실린 채로 찔러간다. 그것은 마치 파도가 몰아치는 것 같은 신묘함을 가졌다.
붉은 기사는 방금 전의 일격에 팔에 경련이 일어나던 중이었기에 제대로 된 반응을 하지 못하고 말았다.
콰직.
테스의 검이 투구를 부수고 두개골에 틀어박힌다.
“컥…….”
작은 단말마의 비명을 끝으로 상대는 그대로 죽었다.
‘흠. 역시…… 기사들의 수준이 전생의 무인들에 비하면 한수 아래야. 내공에 해당하는 오러의 양은 전생의 무인들보다 많은 것 같지만 기술적으로 부족한걸. 환경이 이래서 그런 거겠지만…….’
테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자, 모두가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절대적인 고요.
경악스러운 모습에 모두가 시간 정지에 걸린 것처럼 멈추고 만 것이다.
“뭐합니까? 정리해야죠?”
테스가 내력을 담아 웅웅거리게 소리를 쳤다. 그러자 시간 정지가 깨어지면서 난리가 났다.
“도, 도망쳐!”
“안 돼!”
살아남은 적병들이 아우성을 쳐 댄다. 도망을 치는 자, 끝까지 반항을 해 보는 자.
“사, 살려 주십쇼!”
대뜸 항복을 하고 무릎을 꿇는 자까지.
전장의 승패가 정해지면 어딜 가나 있는 순간들이 그려진다.
그들을 다독여야 하는 걸 이반은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목을 벤 검을 손에 쥔 채로 한 인물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테스였다.
‘어이쿠야, 저 눈빛은 꽤 부담스러운데.’
테스는 피식 웃어 버리고 말았다.
* * *
이반은 바로 테스에게로 다가왔다.
그가 다가오는 사이, 테스는 호흡을 골랐다. 의생공의 묘리로 그의 몸은 금세 활력을 되찾았다.
“아직 뒷정리를 하셔야 할 텐데요?”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정리는 그대와의 일인 것 같아서 그렇소.”
이반의 말투가 공손해 졌다. 하대를 하는 형태의 깔보는 목소리가 싹 사라졌다.
‘역시 힘을 보여주면 대우 받는 건 전생이나, 현생이나 마찬가지구먼. 크…… 태세 전환 끝내 주네.’
“이야, 뭘 그렇게까지 생각을 다 해 주십니까.”
“상벌을 제대로 내려야 하는 게 내 할 일이지 않겠소. 당연히 그대부터 찾아야지.”
테스는 아무렇지 않은 척 그를 맞이했다.
그런 테스를 이반은 이채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과한 전투를 했는데도, 그사이 호흡이 정돈됐군. 그게 전력이 아니었던 건가. 역시 이자는…….’
‘대우해 주는 건 대우해 주는 거다만 전장 정리나 어서 하지. 슬쩍 몇 개 해 먹으려고 했는데, 이거 무리였나.’
테스는 그런 이반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고용주 몰래 한바탕 해 먹으려다 걸리면, 되레 당당하게 나가는 게 그의 노하우 중 하나였으니까.
사실, 이건 현생의 노하우였다.
하지만 사실 이번에는 그럴 필요도 없어 보였다.
이전과 달리 강자로 인정받고 있는 테스다. 몰래 챙겨 먹을 이유가 없었다. 이반은 바로 보상부터 이야기했다.
“전리품을 따로 챙겨야 하지 않겠소? 원한다면 내가 제대로 챙겨 주겠소.”
“이야,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습니까?”
“그대는 말 한번 참 재밌게 하는군. 흠……. 역시 가장 큰 거부터 정리해야겠지? 저 기사 둘의 전리품 모두 그대 것이오. 그리고 저들을 처리한 수당으로 두당 400골드씩 드리리다.”
이반의 눈은 죽은 기사 둘을 가리키고 있었다.
가장 처음 죽은 기사와 도주하다 죽은 마지막 기사의 시체였다.
테스는 그 말에 피식 웃었다. 기사 둘에 대한 권리는 당연히 줘야 하는 것이었으니까. 거기에 추가로 두당 400골드라면 상당히 적절한 가격이었다.
상대는 오러 익스퍼트. 혹은 오러 유저로 보이는 기사. 기사의 목을 쳐서 얻은 돈이면 400골드면 적당한 가격이긴 했다.
‘적절하구만. 그나저나. 저것들 다 하면 돈이 얼마냐?’
둘 모두 풀 플레이트 메일로 무장을 했고.
검도 상급은 됐다. 품을 뒤지면 마법 방어구도 나올 터.
풀 플레이트 메일만 해도 시세가 500골드. 보아하니 저들이 가진 건 상등품. 아마 그보다 높으면 높았지 더 낮지는 않을 거다.
상급의 검도 못해도 수십 골드는 될 터.
‘잘 안 팔리면 내가 쓰면 되지 뭐. 마도구는…… 크흐, 따로 연구를 좀 해 봐야겠네.’
두 기사의 시체를 벗겨 먹는 것만으로도 그가 얻는 금액은 1천 골드를 넘어가게 돼 있었다.
몇 년 치 수익을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액수!
‘다 팔면 주문만 몇 개 더 살 수 있겠는데?’
그에게 부족한 마법 주문을 얻을 수 있을 절호의 기회였다.
남은 돈으론 탕약을 만들어 내력 상승도 가능하겠지. 잘하면 상승 무공으로의 속도도 더 빨라질 것이다.
한 번의 전투치고는 상당히 남은 금액.
만족스러움에 테스의 입이 가로로 길게 호선을 그린다.
한데, 이반의 보상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쓸 때 제대로 쓸 줄 아는 자였다.
“자네가 죽인 병사는 대략 80명. 내 90으로 쳐주지. 그들의 전리품을 전부 챙겨 가게나. 아니지. 혼자 들기엔 버거울 테니 돈으로 쳐줌세. 어떤가?”
“오오, 거절할 리가 있겠습니까?”
“잘됐군.”
병사 90명의 무장. 망가진 게 다수 있을 터. 그렇다고 해도 무시할 게 못 됐다.
통상 병사 하나를 제대로 무장시키는 데 드는 금액은 10골드가량.
낡디 낡은 창에 흉갑을 가죽 갑옷으로 만들어 입혀도 그 정도 액수는 나온다.
때문에 대다수의 영지 병사는 기본 장비도 못 갖추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그런데 지금 죽어 있는 병사들은 아니었다.
‘다들 얼치기가 아녔어.’
기습을 위해서 적들은 제대로 준비를 해 뒀다. 기본 장비가 돼 있단 소리다.
싸우느라 장비가 상한 자들이 있겠지만, 상관없다. 벗겨 먹으면 최하 7골드씩은 나오게 돼 있다. 중고품이라도 장비는 언제나 고가니까.
저것만 다 벗겨 먹어도 600골드는 넘게 나올 거였다.
‘미친! 미친! 캬……. 이거, 이거 위로 올라오고 보니까 얻는 액수가 다르구먼. 크흐.’
아닌 척을 하려고 해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마주 보고 있는 이반도 같이 미소를 지었다. 후하게 품을 쳐준 그는 슬쩍 제 마음에 있던 본론을 꺼내 들었다.
“그나저나, 자네에게 내 긴히 할 말이 있네만…….”
“흐흐. 무슨 일입니까? 저와 이반 님 사이에 못 할 말이 뭐 있겠습니까? 우선 말씀해 보시지요.”
“큼큼, 그럼 내 거두절미하고 말함세.”
다음 이반의 말은 테스의 가슴에 훅 들어왔다.
“……우리 가문과 함께할 생각이 혹시 없소?”
* * *
그의 질문에 테스는 우선 생각해 보겠다며 얼버무렸다.
‘이제 발전을 시작하는데 여기서 묶일 순 없지.’
체면 따위는 던졌는지 몇 번이고 제안을 하는 이반.
그의 끈질김은 지독했다.
기사 에슬이 뒷정리를 해야 한다고 부르지 않았더라면, 제안은 계속됐을 터.
테스를 두고 떠나는 그의 눈빛은 흡사 자신을 떠나는 애인을 바라보는 애절한 눈빛이었다.
그 눈빛을 다시 생각하면 몸이 부르르 떨리는 테스였다.
“……씁. 전이라면 좋다고 받아들였겠지만 지금은 아니란 말이지. 뭐 심정은 알겠다만.”
이해는 했다.
당장 앙스와 휘슬의 영지전이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 지켜보고 있던 테스론 영지도 슬슬 중립이 아닌 어느 한쪽 편을 들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테스 같은 새로운 강자의 등장은 그들로선 호재였다. 어디를 도와도 더 많은 이득을 얻을 테니까.
이반의 입장에선 적절한 계산이었다.
문제는 그 계산이 테스에게는 맞지 않다는 것.
‘난 이제 시작이니까.’
개화하려는 그의 능력은 이제부터 시작이요, 꽃봉오리를 맺고 있는 지금부터 벌써 강력함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지금 제 몸값을 계산해 팔기엔 자기 자신이 너무 아까웠다.
그거만 아니었더라면 이반에게 의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귀족치고 꽤 쓸 만한 일 처리이긴 한데…….”
전혀 아쉽지 않은 건 아녔다. 당장만 해도 이반의 전장 뒤처리는 남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