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챕터 9.
‘착각인가? 아냐……. 이건 진짜다. 어쩐지 쉽게 간다 했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명상을 핑계로 심법을 돋운 그 순간, 테스의 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해진다. 주변의 자연지기를 빨아들이기 위함이니 당연한 일.
스스스스-!
거미줄처럼 길게 그의 기감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 순간, 테스는 있지 말아야 할 기척을 기감으로 느꼈다.
‘적이다. 수는…… 많군. 200명 정도는 되겠는데. 보아하니 기사만 셋인가? 흠, 이거는 큰데. 당장 알려야 한다.’
명상을 깨고 일어난 테스. 내력을 돋워 소리부터 질렀다.
“습격이다!”
* * *
“이런! 모두 습격에 대비하라!”
습격이란 말을 들은 이반의 반응은 재빨랐다. 신속히 준비를 외치며, 자신도 무기부터 꺼내 들었다.
‘습격을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지?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아……. 우선 준비해야 한다.’
테스가 습격을 어찌 알아냈는지는 묻지 않았다. 우선 믿음을 주면, 그에 맞는 대우를 하는 게 그의 장점이었으니. 그저 믿을 뿐이었다.
어느새 테스도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디 가냐?!”
“바, 바깥에서 마법을!”
“등신아, 마차 지붕 위로 올라와! 마법사가 시야를 확보해야지!”
머저리 같은 행동을 하려는 데브론을 마차 위로 끌어올렸다.
마차 위로 올라선 데브론. 그는 다리를 후들거리면서도 주변을 바라봤다.
“너, 너무 많은데…….”
“그만 더듬어. 말 안 해도 알고 있으니까.”
테스의 기감은 정확했다. 적의 수는 물경 200명. 이쪽은 용병을 포함해 수가 154명이다.
이쪽 수가 적었다.
더 큰 문제는 비대칭 전력!
저쪽은 기사만 셋이다. 이쪽은 기사가 둘.
기사나 마법사는 비대칭 전력. 비대칭 전력의 차이는 어느 전장이나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하나가 적은 건 치명적이다.
‘적당히 실전을 겪을 생각이라 받은 의뢰였다만, 이건 최악인데…….’
기사 하나가 모자라다. 결국 누군가가 두 사람의 몫을 해 줘야 한다는 이야기.
혹은 같은 비대칭 전력인 마법사가 제대로 대응해 줘야 한다는 건데.
“으으. 어쩝니까.”
“등신아, 주문부터 외워.”
데브론의 상태가 가히 좋지 못해 보였다. 그가 이런데, 그 제자의 상태는 두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이건 좋지 못하다.
그럼에도 가만 멈춰 서 있을 순 없었다.
적도 이쪽이 눈치챘다는 걸 느꼈는지, 속도를 더욱 올리기 시작했다.
적이 더 가까이 다가오기 전에 수를 최대한 줄여야 했다.
그게 마법사로서 최선이다.
“마나 화살!”
“그래. 그거라도 외워라. 후읍…….”
데브론이 마법을 날려 대는 사이, 테스도 미리 준비한 마나를 끌어올렸다.
동시에 선택을 해야 했다.
‘무슨 마법을 써야 하나. 대량 학살용 마법은 없는데. 역시…… 그걸 써야 하나?’
그가 가진 여덟 개의 마법 중에서 무엇이 쓸 만한지 찾아야 했다.
대지 조종, 마법 화살, 실드, 불화살, 냉기 부여, 힘 강화, 안개 형성, 바람 조종.
그가 아는 모든 마법.
총 여덟 개의 마법 중 그가 원하는 대량 학살용 마법은 없다.
죽어라 불화살을 날려 봐야 적을 죽일 수 있는 수는 고작 열 명 내외.
그 정도 줄여 봤자 부족하다.
결국 기존의 수는 효율적이지 못하다.
새로운 수를 써야 했다.
‘이런 식으로 쓰고 싶진 않았는데, 어쩔 수 없나. 한번 해 보자.’
그는 마력을 끌어올림과 동시에 서클에 룬어를 새기기 시작했다.
마나. 변형. 분사.
룬어 셋을 외움으로써 그가 만들어 낸 마법은 안개 형성.
스스스스-!
대규모의 안개를 형성하여 시야를 저해시키는 게 안개 형성의 효과였다.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여기서 만족했다면 애초에 쓰지도 않았지.’
그는 자신이 형성하는 안개에 하나를 보태었다.
내력이었다.
지난 반년 동안 몸을 단련하는 사이, 무공뿐만 아니라 마법에 대한 활용도 연구했다.
그중 하나를 지금 꺼내야 할 참이다.
아직 불안정하나 상관없다. 죽는 거보단 나으니까.
‘지금 이 수 말고 다른 건 없어.’
고오오오-!
내부에서 내력이 끓어오른다.
‘의생공을 믿고 갈 수밖에.’
무슨 기운이든 조화롭게 하며 그 힘을 강하게 끌어올리는 건 의생공의 묘리 중 하나.
약재에 의생공의 기운을 끌어올려 부여하면 약효가 강해지는 식. 그런 방식으로 약효를 끌어올려 단약을 만들어 먹기도 했던 테스다.
이 묘리는 사용하기에 따라 이종의 진기도 조화롭게 만들 수 있었다.
이를테면.
‘만독공도 결코 쉬운 건 아닌데……. 해 봐야지.’
의생공의 공력을 독공의 기운으로 변환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위험하다. 어디까지나 가능성만 있을 뿐, 이종의 진기를 심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크흐…….”
주화입마의 위협도 있거니와 후에 이종의 진기가 몸을 쇠하게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해내야 했다.
‘뒤는 나중에 걱정하고, 일단 살고 봐야지.’
그는 고통을 감내했다. 그러면서 마력을 계속 끌어올리는 거도 늦추지 않았다.
그 상태 그대로 품에 있던 약초 하나를 집어삼켰다.
‘약과 독은 한 끗 차…….’
까드드득.
피나트 허브였다.
쓰다. 본디 강한 산성을 내포한 약초. 다른 허브를 녹여 약효를 추출하는 데 쓰였다.
테스가 원하는 효과는 추출이 아닌 강한 산성.
이 산성을 끌어 올리고자 테스는 허브를 스스로 집어삼켰고 스스로에게 고통을 줬다.
“우욱…….”
“뭐 하는 겁니까.”
“……닥치고 캐스팅이나 해.”
뜨거운 열기가 올라온다. 정제되지 않은 약초는 독이 되어 그의 내부를 치려고 했다.
테스는 고통을 무시했다.
전생의 인연이 닿았던 독마의 무공. 만독공의 구절을 외웠다. 전체를 다 숙지할 필요도 없었다. 만독을 조종하는 만독공의 일부만 차용하면 될 뿐이다.
우웅-
반응이 왔다.
강하게 느껴지는 산성력. 기다렸다는 듯 의생공의 기운을 더했다.
독의 기운이 커진다. 커지는 기운이 상당하다. 사람 여럿은 쉽게 녹일 정도의 산성. 이 정도면 충분했다.
츠으으-!
정제된 독기가 테스 자신을 잡아먹으려 한다.
‘그건 안 되지.’
테스는 미리 준비했던 안개 형성 마법에 독기를 담았고, 외쳤다.
“독 안개!”
룬어로 만들어진 주문에 무공의 힘을 싣는다. 처음 시도하는 마법과 무공의 조화.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츠으으-.
저 멀리 희뿌연 안개를 대신하여 녹빛을 띤 안개가 넓게 내려앉는다.
거대한 안개가 적 선두를 집어삼키는 덴 몇 초면 충분했다.
* * *
좁아지는 시야. 뛰어오던 적군의 웅성거림이 커진다.
“안개다!”
“색이 이상하잖아? 녹빛이야!”
“뭐, 뭐지?”
놀라는 가운데, 적 지휘관은 냉정했다. 마법의 효과를 읽고, 주의를 줬다.
“당황하지 마라! 마법 안개다! 그래 봤자 안개는 별 상관도 없다! 색만 이상한 것뿐이야!”
괜히 마법에 놀라지 말라는 적절한 충고였다.
마법에 대해서 무지한 병사가 넘쳐난다. 보통 때였다면 꽤 시의적절한 충고였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보통이 아니었다.
“시야만 가리는 정도…… 컥.”
“케엑…….”
“수, 숨이 안 쉬어져…….”
그들이 맞이하는 안개는 단순한 안개가 아니었으니까.
전장에 독 구름이 내려앉았다.
독 구름의 위력은 예상 외로 꽤 강력했다.
가장 앞서 달리던 병사 스물이 무너져 내렸다.
‘확실히 죽었다. 생기가 사라졌어.’
테스는 넓게 펼친 기감을 통해 적의 죽음을 느꼈다. 그 뒤로 있던 서른이 몸을 비틀거렸다. 확실한 전력 감소다.
다시 스물이 비틀거렸다. 어지럼증 정도를 느끼겠지. 약간의 전력 감소다.
‘순식간 칠십 정도라……. 미쳤군.’
아쉽게도 기사 같은 비대칭 전력에는 먹히지도 않았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순식간에 칠십이 사라졌고, 남은 안개는 여전히 적 병사들을 뒤덮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수십은 더 중독시킨다. 이걸로 됐어!’
안개는 흐트러지면서도 적을 충실히 잡아먹었다.
실시간으로 적의 전력이 깎인다.
순식간에 적의 반수가 전력을 상실했다. 전쟁은 단순히 수만으로 하는 게 아니었다.
독 안개는 다른 효과도 가져다줬다. 마법의 폭발적인 위력에 적이 겁을 먹었다.
“으으으…….”
“대, 대마법사가 있다!”
사기가 급감했다. 급감하는 전력에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는 병사들도 있을 정도.
이때 적의 기사가 나섰다.
“시끄럽다! 고작 미리 준비한 마법을 썼을 뿐이야!”
“달려!”
“우리가 앞으로 나선다!”
떨어지는 사기를 끌어올리고자, 기사들이 선두에 섰다.
후방에 있던 기사 셋이 전력을 다해 뛰기 시작한다.
‘이걸로 내가 할 몫은 다했다. 그래도 여전히 불안한데? 젠장.’
이반도 가만있었던 건 아니다. 기사 에슬을 이끌고 앞을 지켰다.
차아아앙-!
기사 다섯이 서로에게 칼을 겨눴다.
* * *
처음 검을 겨눴을 때.
“막아라!”
“종자들은 뭣 하나!”
이쪽이 수가 부족하지만, 종자까지 붙이자 어찌어찌 버티긴 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반이 밀리기 시작했다.
“컥……. 기사님…….”
종자가 하나둘씩 죽기 시작했다. 여기서 더 죽으면, 이쪽이 꺾여 나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망할, 내 이럴 줄 알았지.’
분투를 벌이고 있지만, 기사 하나의 차이는 컸다.
“마법이라도 더 날려 봐.”
“이미 날리고는 있습니다만……. 효과가 없습니다!”
사라져 버린 마나와 내력을 채우고자 테스가 심법을 끌어올리는 사이.
스스스스-!
데브론은 꾸준히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효과가 없었다.
마법이 기사에게 적중하는 순간, 환한 빛이 어렸다가 이내 마법이 사라졌다.
‘젠장, 마법을 미리 대비해 왔어. 이거, 단단히 준비했구먼.’
마법에 대비한 아이템을 미리 준비해 온 게 분명하다.
마법 방호 장비라…….
통상적으로 3클래스까지는 방어가 가능했다. 즉, 이쪽이 가진 마법 수법은 전부 무용지물이란 소리.
안 그래도 비대칭 전력이 부족했는데, 마법사는 전부 쓸모가 없게 됐다.
‘어쩐지 마법사가 있는 걸 느꼈을 텐데도, 잘도 달려온다 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아쉽게도 그가 가진 마법 중에서 지금 먹힐 수 있는 건 없었다. 내력을 섞어 새로운 수를 쥐어짜 봐야 효율적인 건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방법은 하나다.
‘내 이번 몫은 톡톡히 받아 내야겠는데. 후…….’
결국 자신이 다시 나서야 할 때임을 느끼고, 테스는 주문을 외웠다.
스스스스-!
마나의 유동을 느낀 데브론이 그를 쳐다본다. 쓸데없이 왜 마법을 사용하느냐는 표정이다.
“마법을 날려 봐야 소용은 없는……. 음?”
마법의 대상은 적의 기사가 아니었다. 테스 자신이었다.
“시끄러. 이건 내게 쓰는 거야. 힘 강화.”
화아악-
마법의 빛이 어린 것만으로, 그는 힘이 강해짐을 느꼈다.
부족한 완력이 가득 채워짐을 느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만족해선 안 됐다.
“어이, 너 강화 마법 충분히 알고 있지?”
“아, 알고는 있습니다만……. 대체 왜?”
“시끄럽고 당장 나한테 다 써! 어서!”
화아아악- 화아악-
힘 강화. 민첩 강화. 체력 재생 강화. 속도 상승. 아머. 활력 강화.
빨라지고 강대해지며, 활력이 솟는다.
마력이 몸에 깃들며 외공과 결합되었다. 상상 이상의 증폭 효과를 만들어냈다.
‘지금이라면 오크 전사 이상의 신체 능력인 것 같은데?’
그에게 여러 힘이 부여된다. 몸속에서 충만함이 느껴진다. 테스는 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