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챕터 8.
막사 안.
내일 있을 출발로 인하여 이른 저녁부터 막사 안은 분주했다. 그중 가장 분주한 곳은 의뢰주를 맡고 있는 이반의 막사였다.
거대한 막사 안으로 종자들이 연신 오가며 마지막 짐을 꾸리고 있었다.
그사이, 이반을 보좌하러 나온 기사 에슬. 그는 작게 얼굴을 찌푸려 주름을 그렸다.
그가 조심스레 이반에게 말을 올렸다.
“테스 그자에게 한 번 의뢰에 60골드는 너무 많은 거 같습니다. 그래 봤자 실버 등급 아닙니까?”
“이미 그리 정하지 않았나. 게다가 그 실력은 진짜였어. 게다가 등급은…… 언제든 올릴 수 있겠더군.”
그로선 테스에게 주는 의뢰금이 불만스러운 게다.
‘이해는 간다만.’
그런 에슬의 심정을 모르는 이반이 아니었다.
테스론 가문에 20년을 봉사한 에슬의 녹봉이 300골드가 조금 모자랐다.
장비와 종자들을 부리는 돈까지 더하면 그 액수는 한없이 적어진다. 작은 장원 하나를 대가로 줬다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런 에슬의 눈에 테스에게 주는 60골드는.
크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 심정을 이해하는 이반이었다.
하지만, 그는 책임자로서 이해보다 설득을 해야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작게 신음하는 에슬에게 이반은 첨언했다.
“흐음…….”
“자네도 알지 않나. 그 검술은 진짜였어. 풋내기의 것이 아니었다고.”
“……기술이 대단하기는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육체도 마법사의 것이라고 하기엔…….”
“기사의 것이었지.”
“맞습니다.”
에슬의 말을 끊고 답하는 이반이다.
둘 모두 낮에 보였던 테스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완력보다는 기술로, 전에 없는 검술을 선보이는 테스의 모습.
‘진짜였어. 원류가 어디일까.’
‘대체 어디서 그런 걸 배운 거지? 용병의 것이라고 하기엔 깊이가 있었다.’
우악스럽게 휘두르는 용병의 검은 결코 아녔다.
휘두를 때마다 그려지는 검의 궤적은 이반이 가진 검의 궤적보다 아름답고 힘이 있었다. 유려한 선을 그려낼 때마다 저도 모르게 감탄을 할 정도.
실전성이 떨어지는 검도 아니었다.
아름다우나 당장 실전에 사용할 수 있는 검술이었다.
“자네는 그 검을 상대할 수 있겠는가?”
“대결이 아닌 실전이라면 이기는 건 저일 겁니다.”
“그렇다면 그 검 위에 오러가 들어간다면? 그때는 막을 수 있나?”
“…….”
기사 에슬이 침묵했다.
테스론 가문의 종자 생활부터 시작하여 이십 년 동안 검술을 닦은 에슬. 그로서도 그 검에 오러가 실린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거 보게. 나라고 해도 그건 힘든 검이었어.”
“그래도 오러가 실리지 못한 검이었지 않습니까? 대단한 검술일지라도 오러가 없다면 기사를 상대로는…….”
“그자는 검사가 아닌 마검사였어. 그 이전에 용병이기도 하지. 과연 제 실력을 보였을 거 같나?”
“…….”
다시금 에슬은 침묵한다.
아니라고 하기엔 테스의 눈에 어려 있던 날카로움이 마음에 걸렸다. 그 눈은 경험 많은 기사나 가질 법한 눈이었다.
‘대체 마법사란 족속이……. 정말 제대로 된 마검사였나?’
그러기에 에슬은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몰라도…… 클래스를 숨겼어. 내가 예상하기에 그의 클래스는 최소 3클래스였네.”
“예? 데브론이 확인하기로는 2클래스라고…….”
“과연 그러겠는가? 그때 데브론을 압도하던 그 주문들을 생각해 보게.”
대지 조종. 마나 화살. 마나 방패. 불화살. 냉기 부여.
테스가 대결에서 사용한 마법은 고작 다섯 개였다.
“고작 다섯이야. 다섯. 그 주문으로 마도구를 두 개 지닌 데브론을 가지고 놀았지.”
“……일부러 가지고 논 거군요.”
“데브론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고 싶었던 거겠지. 실제로 납작하게 만들어 줬고.”
납작이란 말에 저도 모르게 피식 웃는 에슬이었다. 이반도 마주 웃으며 말을 이었다.
둘 모두 오해하고 있었지만, 이걸 알려 줄 테스는 이 장소에 없었다.
그저 오해는 깊어질 뿐이었다.
“분명 주문을 더 알 거야. 수십이 될지도 모르지. 마도구도 있을 수도 있고. 그런데도 수를 아낀 자였어. 그런 자에게 60골드가 아까운가?”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그제야 에슬은 완전히 인정했다.
“아니야. 나도 잠시 흔들리긴 했어. 하지만 분명 돈값을 할 걸세. 우리가 운반해야 하는 ‘그것’을 생각하면 말이지.”
“이해했습니다. 그걸 잃느니 차라리 돈을 지불하는 게 더 낫겠죠.”
“자자, 그러니 우린 잃어버린 돈보다 그것을 어찌 제대로 운반할지부터 한번 점검해 보자고. 우선 내 생각은…….”
에슬의 이해 뒤에, 이반은 제 계획을 점검해 나갔다.
영지전이 걸려 있는 이상, 지금의 공물은 안전하게 전달돼야만 했다. 그러기에 계획을 점검하는 그의 태도는 사뭇 진지했다.
* * *
그런 둘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는 자가 있었다.
“쯧. 이거 아쉽네. 끝까지 공물이 뭔지 말을 안 하는군. 아주 궁금한데.”
테스였다.
제게 주어진 거대한 막사 안. 그는 내력을 돋워 얻은 예민한 청력으로 저 안의 이야기를 몰래 듣고 있었다.
딱히 이유가 있어선 아니었다.
그로선 단순한 이유에서 엿들었다. 이 의뢰에 숨겨진 무언가가 있는지 알고 싶다는 궁금증에서였다.
‘주변 영지전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보내는 공물이라면 대단한 게 분명할 텐데.’
보아하니 공물은 꽤 귀중한 것인 듯싶었다. 알 수 있는 건 딱 그 정도다.
‘그래도 의뢰 자체는 깔끔해. 그건 다행인가.’
때론 운반 의뢰랍시고 속이고 토벌을 겸하는 고용주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닌 듯했다. 나쁜 의뢰는 분명 아니다.
그래도 궁금증을 풀지 못하니 아쉽기는 한데.
“왜, 왜 그리 보십니까?”
“아냐.”
같이 막사 안에 있으며 덜덜 떨고 있는 데브론이 가르쳐 줄 리는 없어 보였다.
‘2클래스라도 꼴에 영지 마법사에 속했으니 뭔가 조치를 취했겠지.’
마법사의 충성? 그런 게 있을 리가.
고용되었으니 말할 수 없는 거다. 어떤 식으로든 족쇄를 만들어 놨을 거다.
그러니 데브론이 저리 떨고 있어도 의뢰에 대한 내용을 말해 줄 리 없었다.
옆에 제자랍시고 데리고 있는 마법사 하나도 고작 1클래스.
‘저 녀석도 알 리가 없지. 쯧.’
제자란 놈은 더더욱 의뢰물이 뭔지 모를 터였다.
결국 이 막사 안에 있는 마법사 둘은 그에게 전혀 쓸모가 없다는 이야기.
자신을 보며 덜덜 떠는 모습을 보는 재미는 쏠쏠하긴 하다만. 더 괴롭힐 이유가 테스에겐 없었다.
“나 그만 보고 볼일이나 봐. 거기 제자한테 가르칠 게 산더미 아냐?”
“커흠. 그럼 수업을 하려면 비전을 이야기해야 하니 좀 나가 주시면…….”
“뭐? 누구보고 나가라고?”
“아, 아니 제가 나가겠습니다. 가, 가자.”
잠깐의 잡도리. 테스의 존재감에 눌린 데브론은 제자를 데리고 끝내 막사를 나섰다.
“쯧……. 멍청하긴.”
둘이 도망치듯 막사를 나가자, 테스는 눈을 감았다.
스스스스-!
금세 자연지기가 솟구치며 그를 향해 쏘아졌다. 얼마 가지 않아 완전히 침잠하는 테스였다.
* * *
60골드.
한 가정의 한 달 생활비가 고작 몇 골드가 안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돈.
하지만, 용병 의뢰로 따지면 그리 대단한 돈은 아니었다. 의뢰비란 곧 목숨값이니까.
의뢰를 수행하다 죽으면 보상금도 없거니와 그것으로 끝.
설사 살아남아 수행해 내도, 받은 의뢰비 중 다수는 결국 다음 의뢰를 위한 준비금이 된다.
부서진 장비를 수선하고 맞추고, 다음을 위해 길드에 가 기술을 익히면 받은 의뢰금은 금세 바닥이 난다.
차라리 장비나 기술은 남기라도 하지.
‘망가지는 경우가 문제지.’
더욱 최악은 의뢰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이겨 내지 못하는 경우다.
언제고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용병은 어디 하나가 슬쩍 망가진다.
정신이 부서진단 소리다.
그렇게 성격이 파탄 나기 시작하고 점차 온갖 것에 빠져든다.
도박, 투기, 술, 유흥…….
정신이 망가진 용병의 돈을 뜯고자 하는 거머리는 차고 넘쳤다. 작은 액수부터 큰 금액까지 노리는 자들은 많다.
그걸 알면서도 빠져들고, 빠져든 돈을 만회하고자 다시 의뢰를 가고 또 그 돈을 쓰고, 더 망가진다.
최악의 악순환이 생성된다.
그러기에 용병 노릇을 오래 해 먹으면 어디 하나 망가지는 건 예사요.
의뢰를 수행하는 매 순간, 긴장되는 게 당연했다.
한데 지금 테스가 느끼는 기분은 정반대였다.
의뢰에 대한 압박감은커녕, 육체적인 압박 자체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거……. 너무 거저먹는 거 같은데. 이래서 다들 등급부터 올리려고 하나.”
당장 출발한 지 3일째.
그 3일간 테스는 걸은 적이 없었다. 출발할 때부터 이반이 마차 하나를 내준 덕분이었다.
“으음. 거 잠시 명상을 좀 해야 하니…….”
“그런 건 알아서 해야지.”
“……예.”
덤으로 데브론과 그 제자가 같이 있기는 하지만, 무슨 상관이겠는가.
마법사 마차랍시고 제공된 게 중요했다.
‘호사로구먼.’
매 의뢰 때마다 마차는커녕 없는 길도 만들면서 걸어야 했었다.
그때에 비하면, 움직일 때마다 꿀렁거리는 마차의 승차감은 구름 위에 앉아 있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덕분에 테스는 지난 3일간의 시간을 알차게 활용할 수 있었다.
활용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나는 위로 올라간다?”
“네, 넵! 다녀오십쇼!”
낮 시간. 의뢰를 위해 움직이는 그 시간에 테스는 마차 위로 올라섰다.
마차 지붕 위에 올라선 그가 선택한 건 육체 단련.
‘좁긴 좁아.’
마차 지붕 위가 넓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로선 이 좁은 공간 안에서도 수련할 거리가 많았다.
마보 자세를 취하고 의생보의 보법 스텝을 쉼 없이 밟는다.
내력을 이용해서 몸에 압박을 더하기도 했다. 때론 서클의 마력을 이용해 그 정도를 키우기도 했다.
모든 순간이 그에겐 수련의 시간이 됐다.
부작용이 전혀 없는 건 아녔다.
“어휴, 저 마법사 또 시작인 거 같은데?”
“냅둬. 마법사가 본래 좀 미쳤다고 하잖아.”
“그런가? 그래도 싸우는 건 장난 아니긴 하더구먼. 뭐 그래도 든든은 하네.”
같이 움직이는 병사와 용병들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이크, 또 보네.’
때때로 기사 이반이 그의 움직임을 유심히 볼 때도 있었다. 테스의 움직임으로부터 뭔가 배울 게 있는가 싶은 거다.
‘봐야 뭐 하나 주워 먹을 것도 없을 텐데. 하여간 열심이라니깐.’
심법, 그리고 무공이라 하는 건 단순히 본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닌 터.
세심하게 가르쳐 줘도 모를 것을 그냥 본다고 알 수는 없었다.
이반이 본다고 알 수 있을 정도라면, 고작 여기서 기사 노릇이 아니라 어디 가서 황제라도 됐을 거다. 아니면 정체를 숨긴 드래곤이거나.
테스로서는 그가 자신에게서 뭔가를 배울까 봐 두려운 게 아니었다. 그저 진지한 그의 눈빛이 부담스러울 뿐이다.
‘어째 갈수록 보는 눈이 진득해. 쯧.’
저 부담스러운 자가 행동에 나서면, 테스도 곤란했다.
귀족은 본디 욕심이 많은 자. 이반이야 그 정도가 좀 덜한 듯 보이지만 언제 욕심을 낼지 몰랐다. 테스 자신을 옭아매려 들지도 몰랐다.
그러니 저 진지한 눈빛이 곤란할 수밖에.
그럼에도 수련은 계속돼야 했다. 그는 계속해 개화를 해야 했으니까!
스스스스-!
‘다 떨어졌나.’
마차 지붕 위에서 원맨쇼를 하던 테스. 그는 제 마나와 내력이 어느 정도 떨어짐을 느끼자, 그제야 마차 아래로 내려왔다.
육체 수련이 끝났으니 다음으로 내력을 더해야 할 때였다.
“으차!”
다시 들어온 마차 안. 마나 수련의 명목으로 명상을 하는 걸 방해할 사람은 없었다.
그가 명상에 빠져들었다.
데브론과 그 제자도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더욱 명상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마나 양을 늘리기 위해서다.
“…….”
“…….”
때 아닌 명상의 삼매경.
“젠장!!”
그 삼매경을 처음 깨는 건 테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