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챕터 7.
의뢰지를 들고 한참 이동한 그. 도달한 곳은 영지 외곽에 마련된 주둔지였다.
전부터 의뢰를 받은 용병들이 묵고 있는 듯 보이는 작은 막사가 여덟. 그 중앙에 짙은 회색을 띤 막사 두 개가 크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병사만 수십 명. 비슷한 수의 용병들도 막사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꽤 거창하네.’
주둔지를 살피고 있는 테스.
그의 눈에는 테스론 영지의 상징인 갈색 그리핀이 나는 듯 새겨진 게 보였다.
그 그리핀을 보고 테스는 피식 웃어 보였다.
‘꼴에 상징은 그리핀이란 말이야.’
의뢰 이유를 짐작하는 테스로선 그 상징이 우스워 보였다.
테스론 자작이 데프 백작에게 선물을 보내는 이유는 뻔했다. 위 영지들이 영지전으로 혼란스러우니 자신을 잘 봐 달라는 의미.
그러기에 저 웅장해 보이는 그리핀이 쥐새끼만도 못해 보였다.
재밌는 건 쥐새끼는 저 깃발 안의 그리핀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존재하는 듯 보인다는 점이었다.
우뚝.
의뢰를 받았다고 말하기 위해 막사에 들어가려는 테스.
그가 막사의 문을 막 열려고 하자 그와 동시에 막사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자가 있었다.
막사 안에서 막 나온 그. 펑퍼짐한 회색 로브를 입고 있었다.
‘마법사군. 서클은 두 갠가.’
느껴지는 마나로 보아하니, 테스와 같은 2클래스.
그리핀이 새겨진 로브로 보아 영지 마법사다.
상대는 테스가 같은 마법사임을 짐작할 수 있었을 텐데도 콧대가 꽤 높은 상태였다.
자신도 귀족이 아닐진대 테스를 내려다보는 눈은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
“흠? 새 용병인가. 막차인데 잘도 찾아왔군. 마법사라고 하기엔…… 몸을 보면 전산가? 쯧. 정통은 아니로구먼.”
“정통은 칼 맞으면 안 뒈지나?”
“뭐, 뭣?!”
테스가 받아칠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한 건가.
마법사는 수염을 부르르 떨었다.
‘새끼가. 자기 편하자고 날 한 방 먹이려고 하네?’
용병으로 구른 지 10년. 테스에겐 마법사의 심리야 훤히 들여다보였다.
영지 마법사로 거들먹거리며 의뢰를 위해 모인 용병들의 기강을 잡고자 한 거겠지.
당장 내일 의뢰를 위해 출발해야 하는 찰나에 테스가 딱 걸린 거다.
반대로 테스 입장에선 그가 딱 걸렸다.
‘안 그래도 의뢰 전에는 푸닥거리가 필요하긴 했지.’
오는 시비는 막지 않고 받아 주는 그였다.
경험도 많았다. 의뢰를 하다 보면 이런 식의 시비는 예삿일이다.
별 이유도 없었다.
그저 고하를 나누고자 하는 거다. 너는 아래, 나는 위. 이런 식으로.
쉽게 말해 주도권을 잡으려는 거다.
그럼 앞으로 일이 편해지니까. 웃기는 노릇이지만, 자신도 편하려면 그런 자들을 상대해야 했다.
‘짜식. 출발하기 전에 나 잡아먹고 편해지려고 했나 본데, 반대로 자기가 잡아먹힐 수도 있다는 걸 생각했었어야지.’
테스는 제 발로 걸어 들어온 희생양을 꽉 잡을 생각이었다.
“귓구멍이 마나로 막혔냐? 정통은 칼 맞고 안 뒈지냐고.”
“네, 네깟……. 그 무슨 개소리를……. 하! 하기야 정통도 아니니 마법이 아니라 몸으로 상대하는가 보군.”
“정통은 무슨. 너나 나나 정통이었으면 마탑에 있겠지, 이런 진창이 아니라.”
“……나는 마탑 출신이다!”
“됐고. 쓰잘머리 없는 개소리로 굴러먹을 거면 당장 때려치워. 무릎 꿇고 사과를 하든가.”
“사과는 무슨!”
“왜? 꼴에 정통 마법사라 사과는 못 하나. 아, 그럼 흰 장갑이라도 구해다가 얼굴에라도 던져 주랴?”
신랄하게 쏟아내는 테스.
그를 보는 마법사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테스는 목소리를 줄이기는커녕 더욱 키웠다. 일이 더 커지길 원했으니까.
소리를 들은 용병들이 몰려들었다.
내일 있을 의뢰 준비로 시간을 죽이던 그들로선 생각지도 못한 구경거리가 생긴 셈. 싸움 구경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그들이 주변을 뺑 둘러쌌다.
그들을 말려야 할 병사들도 신기한 듯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지 마법사가 당하니 실실 웃는 자도 몇 보였다.
‘평상 시 평판을 알 만하네.’
마법사가 평소에 어떻게 하고 다녔는지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이, 이익…….”
“이, 이이익? 할 줄 아는 게 그거뿐이냐? 엉? 나 모른 새 이이익 주문이라도 새로 생겼어?”
몇 번의 조롱. 사람들의 조롱 어린 시선.
거들먹거리던 마법사로선 눈이 홱 돌아가기에 충분했다.
씹어 삼키듯 말하는 마법사. 테스가 원하던 말을 던졌다.
“네깟…… 놈이 감히. 지, 지팡이를 걸어라.”
“햐, 못 걸 건 뭔데. 걸자고. 너나 나나 둘 다. 다 걸자고.”
대결 신청이었다.
기사가 하얀 장갑을 던지듯, 지팡이를 거는 방식. 마법 대결을 말하자 주변에서 기대 어린 환호성이 더욱 커졌다.
* * *
“흠. 이거 재밌는 소리가 들리던데?”
“……이반 님.”
마법사가 대결을 신청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막사 안에서 나오는 자가 있었다.
테스도 아는 유명한 자였다.
금발에 뚜렷한 이목구비, 흉 하나 없는 얼굴 아래로 딱 맞춰진 철갑. 이번 의뢰의 고용주인 기사이자 동시에 테스론 자작의 차남인 자다.
이름은 이반. 영지 내에서도 수위를 차지하는 실력자였다.
‘짜식, 일부러 늦게 나오는 거 보게. 안에서 다 듣고 있을 거 뻔한데 말야.’
거들먹거리는 마법사와 달리 막사 안을 지키고 있던 기사 이반은 말이 잘 통했다.
“하려면 제대로 해 보게나. 이왕이면 테스트도 겸하면 좋겠지.”
“이, 이반 님!”
평소 마법사를 벼르고 있었던 듯, 아예 일을 크게 벌였다.
“어차피 해야 할 일 아니오? 다른 용병들이야 전사니 내가 테스트를 했지만, 이쪽은 마법사잖소. 지팡이는 괜히 걸었던 거요?”
“……크흠. 아닙니다. 해야지요. 꼭 하려고 했습니다.”
하오체를 쓰지만, 명백히 상하가 나눠져 있었다. 이반이 위다.
그는 손짓까지 해 가며 어서 임시 연무장이라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그의 손짓에 맞춰 병사들은 공터를 금방 치워 냈다.
마련된 공터 안.
테스와 데브론이라는 이름의 마법사만이 자리했다.
“정통으로 깨지기엔 딱 좋은 장소로구먼.”
“그 입……. 더 놀리긴 힘들 거다. 영창도 못 하도록 아예 찢어 주마.”
이죽거리는 테스를 보며, 데브론은 마나부터 끌어올렸다.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그를 찢어발길 듯한 기세였다.
“시작하지!”
기다렸다는 듯 이반의 신호가 떨어진다.
* * *
세상을 언어로 쓴 룬어. 룬어를 조합하여 펼쳐지는 게 주문. 마법사와 마법사의 대결이라는 건 결국 주문의 수 싸움.
선수를 먼저 친 건 약이 바짝 오른 데브론이었다.
“냉기 화살!”
마나. 변형. 냉기. 구체화.
네 개의 룬어가 순식간에 조율돼 만들어진 냉기 화살이 쏘아진다.
쒜에에엑-!
빠르다.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마도구의 도움을 받은 건가. 경험은 없는데, 아이템은 준비됐다는 거로구먼. 그래도 어설퍼.’
테스는 쇄도하는 냉기 화살을 피하지 않았다.
그가 가진 주문은 고작 여덟 개. 본디 룬어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용병으로서의 경험도 있고 오행을 통해 룬어를 더 이해했다. 하단전의 내력까지 더하면, 그가 아는 여덟 주문은 더욱 특별해진다.
마나. 변형. 구체화.
그의 뇌리에 순간 연산이 끝났다.
“마나 방패!”
화아악-!
그의 손 위로 원통의 방패가 생성된다.
마나로 형상화한 마나 방패다. 방패 안에 내기를 쏟아 붓는 걸 테스는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손을 움직였다.
“허튼짓!”
마나 방패 마법을 본 데브론이 히죽 웃는다.
냉기 화살은 2클래스, 마나 방패 1클래스.
클래스의 차이로 누를 거라고 여기는 거다. 그러니 웃을 수밖에.
하지만, 데브론이 원하는 결과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파아아아앙-!
둘이 부딪친다.
테스가 만들어 낸 방패가 깨져 나간다. 마나 막들이 사방으로 비산하는 동시에 냉기 화살은 힘을 잃었다.
2클래스가 1클래스를 뚫어 내지 못했다.
“엇!”
“전투 마법은 클래스가 다가 아냐.”
데브론은 당황한다.
그의 생각대로라면 뚫고 지나갔어야 했는데, 방패와 함께 냉기 화살이 소멸한 거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내공을 실드에 추가로 불어넣은 덕분에 방패의 강도가 더욱 강력해졌으니까!
‘네놈은 죽었다 깨어나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를 거다.’
냉기 화살이 깨져 나가는 그 순간, 테스는 자신이 원하는 순간이 왔음을 알았다.
후우우욱-!
냉기 화살이 비산하며 주변에 냉기가 쏟아졌다.
그 냉기가 심상치 않았다. 가만히 있는 테스에게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
‘이게 너와 나의 차이다. 데브론.’
경험 많은 테스는 상대가 만든 냉기의 힘마저 이용하고자 했다.
데브론의 마법이 깨져 나가고 남은 냉기를!
테스는 연이어 마법 주문을 외웠다.
마나. 변형. 구체화.
“마나 화살! 다중!”
1클래스의 마법. 마나 화살이 두 개 생성된다. 생성된 화살은 짙은 냉기를 머금고 있었다.
“어떻게! 냉기가!”
“환경 이용이라는 거다. 이 머저리야.”
냉기를 잔뜩 머금음으로써 마나 화살의 파괴력은 대폭 상승했다!
“가랏!”
주변 냉기를 다 머금은 그 순간, 테스는 재빨리 마법을 날렸다.
샤아아아악-! 샤악-!
두 개의 마법이 데브론의 두개골을 쪼갤 듯이 세차게 나간다.
데브론도 쉽게 당하지만은 않았다.
“어딜! 마나 방패! 마나 갑옷!”
그의 주변으로 마나 막이 씌워지고, 그를 둘러싼 마나 갑옷이 만들어진다.
1클래스 마나 방패. 그보다 구체화 된 2클래스 마나 갑옷이었다.
두 개의 마법이 만들어지는 그 순간, 데브론의 로브 주변에 빛이 어렸다. 테스는 그 빛을 놓치지 않고 봤다.
‘역시나, 로브도 마도구였나. 완전무장을 했군.’
파아앙-! 팡!
두 개의 마법에 다른 두 개의 마법이 맞부딪친다.
첫 마나 화살이 방패를 뚫는다. 남은 힘으로 갑옷에 부딪치다가 사라졌다.
다른 남은 하나. 바로 마나 갑옷에 부딪쳤다.
파스스슥-!
갑옷을 이겨 내지 못하고, 남은 화살도 뒤이어 깨졌다.
하지만 타격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캭…….”
“물리 타격은 여전할걸.”
갑옷이 깨어져 나가며, 남은 물리력이 데브론을 때렸다. 고통을 느낀 그의 인상이 팍 찌푸려진다.
‘우습긴. 이제 시작일 뿐인데 말이야.’
겉으로는 데브론이 잘 막아 낸 듯 보이는 상황.
하나, 테스는 이 순간부터 자신 쪽으로 승기가 기울어졌음을 확실히 느꼈다.
지금까지의 승부는 용병 마법사로 뛰었던 경험을 이용한 방식. 이제부터는 그다음으로 가야 할 참이었다.
‘지금부터는 꽤 아플 거다.’
데브론이 당황하는 사이.
테스는 하단전의 내력을 잔뜩 끌어올리며, 자신이 가진 두 번째 이점을 살렸다.
“어디까지 막아 내나 보자고. 마나 화살, 다중. 이어서 화염 화살.”
그건 바로 하단전과 중단전의 시너지를 이용한 빠른 마법 캐스팅!
하나가 아닌 둘.
서로 시너지를 내는 둘의 힘이 있는 한, 같은 2클래스라도 그의 캐스팅 속도는 몇 배나 더 빨라진다.
마법사용으로 인한 서클의 순환을 단전의 내공이 계속해 보조해 얻는 효과였다.
사사삭-!
발동. 변환. 불. 냉기. 형상화. 변환…….
그가 아는 몇 개의 룬어들이 빠르게 조합된다.
주문이 만들어지는 족족 쏘아냈다.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였다.
데브론으로서는 감히 공격할 틈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허업! 마나 방패. 갑옷.”
로브에 부여한 방어 마법을 쉴 새 없이 사용하고, 그도 모자라 마법 지팡이의 힘을 빌려 만든 마법을 방어에 쏟아 부어야 했다.
막는 게 그로선 최선이었다.
퍼어엉! 펑!
쏟아지는 마법을 막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금세 데브론의 한계가 보였다.
“크악!”
파아앙-
때론 연속 공격을 방어 마법이 이겨 내지 못했다.
깨지는 방어막.
그 파편으로 인해 느껴지는 고통에 데브론은 신음했다.
‘대체 어떻게 돼먹은…… 마법사야?! 같은 2클래스가 아니었던 건가. 느껴지는 서클은 분명 같은 2클래스인데!’
그는 혼란스러웠다.
분명 같은 2클래스. 스승으로부터 받은 마도구로 자신이 더 유리해야 맞았다.
한데, 시종일관 밀리는 건 자신 쪽이었다.
룬의 연산. 캐스팅 속도. 마나의 조율.
어느 것 하나 테스보다 나은 게 없었다.
‘대체……. 이게 뭐야.’
테스는 그저 파괴만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데브론에게 다가오며 마법을 쉼 없이 영창했다.
“어이쿠…….”
“컥…….”
“크헥.”
마나 화살을 던지고, 거리가 좁혀지자 냉기를 부여하여 추위에 떨게 하고.
그그그긍-!
더 가까워지는 걸 피하려 하자 대지를 조종하여 그의 뒤를 막았다.
‘빠, 빠져나갈 수가 없어…….’
둘의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진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테스의 눈이 보인다. 데브론의 심장이 요동치듯 했다.
두근- 두근-
두려움, 공포, 압박감.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그를 감쌌다.
순간, 테스가 거인이라도 된 듯 느껴진다.
‘주, 죽는다…….’
자신이 시작한 대결이라는 사실을 그는 완전히 잊었다. 압박감에 죽을 거라는 생각만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울 뿐이었다.
“아아아…….”
다리에 힘이 빠진다. 저도 모르게 데브론은 주저앉으려 했다. 그때 테스가 마지막 타격을 날렸다. 이번은 마법이 아니었다.
“머저리. 여기까지 하자고. 그 높은 콧대는 내가 날려 주마.”
“……커윽!”
따아악-!
단련된 주먹으로 날려 버린 딱밤이었다. 그 딱밤이 그의 높은 콧대에 작렬하자, 느껴지는 고통에 데브론은 몸부림을 쳤다.
순간 정신을 잃을 듯한 크나큰 고통이었다.
저도 모르게 양손으로 욱신거리는 코를 부여잡았다. 테스는 그 모습을 보고 히죽 웃어 보이곤 뒤로 빠져 줬다.
‘……사, 살았다.’
그 순간, 데브론은 패배의 고통보다 안도감을 느꼈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안도감을.
동시에 저 멀리서 목소리가 들렸다.
“테스, 당신의 승리요!”
기사 이반이었다.
다 끝났음에 데브론은 주저앉듯 쓰러졌다. 일어나고 싶지만, 몸에 이미 힘이 풀어졌다.
이반은 그런 데브론을 무시하고 테스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사람 좋아 보이는 표정을 하고, 전에 비해 정중한 말투로 제안을 던졌다.
“그쯤이면 실력은 충분히 봤소. 내 제대로 대우를 해 줘야 하니 의뢰비도 두 배로 늘려 주지! 어떻소! 이만하면 제대로…….”
“흠. 아직 실력을 다 선보인 게 아닙니다마는?”
“무슨?”
그 표정은 테스의 뒷말에 굳어졌다.
“남은 다른 수도 보여 주겠다는 거죠. 이를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