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챕터 4.
테스는 곧바로 길을 나섰다.
그가 나선 곳은 영지에서도 알아주는 바슨 대장간.
주문 제작품을 취급하는 곳이기에 가격은 상당했지만, 여기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게 있었다.
따앙! 따앙! 따앙!
망치질 소리가 안에서 울려 퍼진다.
영지에서도 알아주는 곳이라 그런지 제법 규모가 있다. 안에서 울리는 망치질 소리와 별개로, 대장간의 입구에는 따로 가판대와 무기를 파는 점원이 있었다.
물론 점원이라고 해서 일반적인 판매원은 아니다.
대장장이의 도제로 보이는 근육이 잘 발달된 청년이 먼저 온 손님을 상대하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다가 먼저 온 손님이 방패를 사서 가는 것을 보고서 테스에게 말을 걸었다.
“어서오슈. 뭘 찾으슈?”
말투가 걸쭉하다.
하기야, 저 근육만 봐도 어지간한 용병은 깝치지 못할 것 같았다.
“주문 제작을 하려고 하는데.”
“주문 제작은 값이 좀 더 나가는 거 알고는 있으십니까?”
돈이 된다는 말에 말투가 조금 더 정중해진다.
“알고 있지. 좀 뵐 수 있나? 특별한 걸 주문하고 싶어서.”
“어디 보자…… 지금 될 것 같군요. 슬슬 끝나가고 있어서.”
안쪽을 슬쩍 보던 청년의 말에 테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노인 한 명이 걸어 나왔다.
역시 근육이 잘 발달한 그는 노인임에도 피부가 팽팽했다. 고된 노동에 생긴 근육이 그의 건강을 지켜 주는 것일 것이다.
“특별 주문을 하고 싶으시다고?”
“그렇습니다.”
“들어와 보시구려.”
노인의 말에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작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노인이 목탄 하나에 나무판을 들고 물었다.
“어떤 걸 원하슈?”
“무기가 아니고, 바늘을 좀 주문하고 싶습니다만…….”
“바늘? 그런 건 이미 있는데?”
“끝이 완전히 뾰족하면 안 됩니다.”
“엥?”
뭔 그런 희안한 소리를 하냐는 듯이 바라보는 대장장이. 하지만 본래 그랬다.
그가 주문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침(針)이니까.
‘이 세계엔 존재치가 않지.’
의원이 사용하는 침은 바늘과는 다르게 좁은 면적을 가지고 있지만 둥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찔렸음에도 피가 흐르지 않는 것이 특징인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런 개념은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침술도 없는데, 침술을 위한 침이 존재할 리가 있나.
그래서 테스는 상세하게 설명을 하면서 대장장이에게 주문을 해야 했다.
“뭐어…… 되게 독특한 것을 주문하긴 하는구려. 값은…… 음. 그리 어려울 것 같지는 않군. 그래도 검 한 자루 값은 주셔야 겠수만.”
“드리죠. 우선은 계약금으로 반입니다.”
“거, 시원해서 좋군.”
테스는 바로 돈을 내밀었다.
대장장이 노인은 두 눈을 잠시 꿈벅거리다가 돈을 받아들었다.
“내일 점심 때까지는 끝내 드리리다.”
대장장이의 태도는 제법 신뢰가 갔다. 이래서 영지에서 가장 유명한 대장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테스는 대장간을 나섰다.
“개정대법을 할 준비는 끝났으니…… 이제 남은 돈으로 약재를 구해야겠는걸.”
대장간을 나서는데 해는 아직 중천에 떠 있다.
침을 받기까지 하루의 시간이 아직 남았다.
그래도 이 남은 시간도 허투루 보낼 생각은 없었다. 약재를 구하러 갈 생각이었으니까.
전생의 기억에 의거해서 만드는 비전의 탕약.
감히 영약이라고 부를 수야 없지만, 장기적으로 마시면 몸에 이로움을 주고 수련을 돕는 것.
문제는 이 세계의 약재 중에 과연 전생의 약재와 같은 게 있느냐는 것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테스는 휘적휘적 걸으며 약재를 취급할 약재상을 향해 걸었다.
* * *
다음 날.
테스는 주문했던 침을 받을 수 있었다.
참, 원, 봉, 피, 장, 대, 원리, 시, 호.
각각의 이름을 지닌 아홉 개의 침이 다시 세 개씩. 천지인을 따와 총 아홉의 수를 가진 중원의 침.
‘이 세계에 와서 생각해 보니, 중원은 참 천지인(天地人)을 좋아한단 말이지.’
이 중원의 방식에 테스는 다시 아홉을 곱했고, 총 81개의 크고 작은 침이 완성됐다.
테스가 원하는 최소의 침이 완성된 거다.
손으로 집어 봐야 한 줌도 되지 않은 침. 원하는 형태를 얻기까지 꽤 많은 금액을 대장간에 지불하기까지 했지만, 상관없었다.
그가 이 세계에서 처음 얻은 침이니까.
그는 만족스레 아래의 침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원을 격해도 침을 보고 좋아하는 걸 보면 나도 여전하긴 하구먼. 아니면 전생한테 배운 게 있는 건가.’
펼쳐 놓은 침의 바로 앞, 그는 가부좌를 틀었다.
본래라면 바로 호흡에 들어야 하지만, 그는 그리하지 않았다.
“시작은 장침부터.”
의기를 일으켰다.
소위 의지로 기를 일으킨다고 말하는 의기의 기본은 기로 주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중원의 무인이라면 중단전을 열고나서야 의기의 기본을 사용할 수 있지만, 테스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이 가능했다.
마법사니까. 마나를 다뤄 마법을 일으키는 마법사에게 있어 의기는 기초 중 기초다.
덕분에 테스는 중원인들이라면 기함할 묘기가 지금도 가능했다.
스스스스-!
의기를 받아 든 거대한 침이 둥실 떠오른다. 침이 향하는 곳은 그의 가슴 부근.
푸욱.
단중 혈을 뚫고 들어가는 장침은 망설임이 없었다.
장침 하나는 시작일 뿐이다.
‘재밌네.’
본격적으로 의기를 일으키는 그의 주변으로 여러 개의 침이 떠올랐다. 떠오른 침들은 그가 원하는 모든 혈들에 쏘듯 날아갔다.
중완, 황유, 읍교, 중부, 기사…….
온갖 혈들을 81개의 침이 뚫고 들어가는 데는 고작 몇 초.
하나같이 쉬이 건드려서는 안 되는 혈들. 그럼에도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성공적이었으니까!
“으음…….”
쉬이 건들기 힘들 혈들을 뚫어 내는 데 성공했다.
혈이 뚫리며, 자연지기와의 교류가 더 깊어졌다.
가만있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기의 흐름이 느껴진다.
황홀할 정도의 흐름에 정신이 멍해져 간다.
그는 정신을 더 집중해야 했다. 지금부터 그가 넘어야 할 능선이 차고 넘쳤으니까.
‘이제 시작일 뿐. 여기서부터가 중요해.’
* * *
재차 의기를 일으킨 그는 81개의 침을 재빨리 재배치했다.
침을 뽑아내고, 뽑아낸 침을 다시금 혈도에 박아 넣는다.
그만이 아는 규칙과 시간에 맞춰 침을 찔러야 했다.
단순히 규칙만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의 몸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해 조율을 해야 했다. 심력이 강하게 소모되는 일이다.
땀이 뻘뻘 흘러내려 온다. 그는 멈춤이 없이 대법을 지속했다.
“흐으…….”
순식간에 흐른 한 시간.
고작 한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의 온몸은 이미 벌겋게 변한 지 오래였다.
온몸의 혈들이 맥동하고, 동시에 그의 혈에 묵은 탁기가 씻기며 흘러내렸다. 흘러내리는 거뭇한 땀. 쌓인 탁기의 흔적이었다.
“크흐으. 해냈다!”
거뭇한 탁기. 인상을 찌푸릴 법도 하지만, 테스는 되레 미소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첫 성공이었으니까!
“약식 개정대법이라……. 전생에 꽤 대단한 방식을 생각했단 말이지.”
약식 개정대법.
본디 명가의 자제들에게 주어지는 개정대법을 의선이던 시절 개량한 대법 중 하나.
개정대법의 효능은 벌모세수.
첫 심법 운용에서 반은 얻어 낸 그 효능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탁기를 씻어 내고, 기운의 소통이 몇 배는 빨라진다.
의생공의 상승 작용을 해내며 얻어 낸 공능으로 이미 반은 씻어 낸 테스다. 그럼에도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나머지 반의 탁기를 씻어 내길 원했다.
완벽한 벌모세수를 위함이었다.
지금 행한 대법이 완벽을 위한 방법이었다.
“이걸로 3개월만 반복하면, 완벽한 벌모세수의 성공이려나. 아슬아슬한데.”
대가가 없진 않다. 위험은 존재 한다.
3개월간 단 한 번이라도 삐끗하는 순간, 대법은 깨져 버린다.
탁기가 쌓이는 일 따위는 없지만 다시 대법을 시전하기 위해선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진행해야 했다.
‘너무 늦었으니까.’
그의 각성 자체가 스물이 넘어 이뤄진 상황. 열 살이 되기 전부터 무공을 익히는 중원 무인의 기준으로 보면 한참 늦은 나이다.
그런 상황에서 개화할 시간도 부족하다.
이를 단축하기 위해서는 약식 개정대법이라도 끝없이 펼쳐야 했다.
그의 준비는 이 대법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크흐, 저기도 냄새 한번 지독하구먼.”
방 안의 한구석. 그가 준비한 두 번째 비기가 진득한 향을 뿜어내고 있었다.
* * *
그가 준비한 두 번째 비기. 바로 탕약이었다.
“제대로 조려졌네.”
연금술을 위한 도구 안.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약재들을 섞어 넣었다.
해넌신, 마르브, 로인, 피나트, 베런…….
허브 혹은 잡초 취급을 받는 약재들이 그가 준비한 비장의 무기였다.
지난 며칠간 효능을 알아냈다. 그 효능을 배합하여 만드는 데 성공한 탕약이 그의 눈앞에 있었다.
‘여기까진 운이 좋았어.’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가 아는 종류와 비슷한 약재들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기에 제조가 가능했다.
그럼에도 이 약탕은 여전히 위험하다.
비슷하긴 하나, 그가 기억하는 약재와 정확히 같은 약재들은 아니었으니까.
조금이라도 비율이 달라지면 약은 독이 된다.
그가 가진 노하우를 잔뜩 이용했다지만, 눈앞의 것도 약이 아닌 독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조려진 약재는 진흙같이 거뭇했고 괴이한 향은 몬스터라도 피할 정도.
얼핏 봐선 실패작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약이다.
“결국 내 노하우를 믿고 먹어 보는 수밖에 없나.”
테스는 그 약재를 숟가락으로 퍼냈다. 반쯤 손을 떨며 입으로 향했고, 그는 꿀꺽 약재를 삼켰다.
특식을 먹을 때와 달리 시큼한 향이 입 안에 가득하다.
“우욱!”
구역질이 치밀어 올라 왔으나, 참고 삼켰다.
약재가 다 떨어질 때까지 앞의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됐다. 약재를 박박 긁어먹은 그 순간.
후우우웅-!
명치 부근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따뜻함이 느껴진다. 벌모세수를 할 때와 비슷한 기운이다. 듬뿍 올라오고 있었다.
바로 그가 원하던 느낌이다.
‘탕약도 성공! 이렇게 되면 바로 가야지.’
탕약의 기운이 당장에라도 흘러내릴세라 그는 재빨리 가부좌를 틀었다. 시작된 의생공의 연공. 그는 깊이 침잠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스스스-.
깊숙이 빠져든 그의 주변으로 자연지기가 끊임없이 휘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