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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선, 황제되신다-3화 (3/191)

제3화

챕터 3.

신음하며 버티고 있던 테스의 몸이 부르르 떨린다.

“하…….”

떨림은 오래가지 않고 멈췄다.

성공이다!

온몸에서 들끓던 기운은 사라지고. 서클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하단전에선 의생공의 기운이 도도히 흐르며, 쇠락해 버린 몸의 기운을 보하고 있었다.

서로를 잡아먹을 듯했던 서클의 마나와 의생공의 기운이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켰다.

상승 작용의 공능은 컸다.

서클에 마력이 채워지자 의생공은 곧장 단전으로 끌어들였다. 끌어들인 기운이 의생공과 조화를 이루면 자연지기가 빨려들어 왔다.

빨려들어 온 기운은 곧바로 의생공의 기운으로 화했다.

토대와 인과가 순환하며 쌓였다.

그렇게 쌓여 버린 내력의 양만 해도 벌써 칠 년!

‘미쳤네.’

의생공이 제아무리 상승 무공이라고 할지라도 작정하고 내력을 쌓아 봐야 일 년에 겨우 오 년이었다.

그런데 칠 년이라!

‘마공이야 칠 년 치 내력이 한 번에도 된다만, 그 대가가 미치는 걸 생각하면…… 하, 미쳤네.’

무공에 입문하자마자 주화입마의 위기를 이겨 내고 나니, 생각지도 못한 복이 들어왔다.

중요한 건 이게 끝이 아니란 거다.

‘의생공 기운이 서클의 마력 양을 다 따라잡을 때까지 계속 늘겠는데? 그 이후는 더 볼만해질지도.’

내력으로 치면, 20년은 됨 직한 서클의 마력이 계속해 상승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내력이 마력과 비슷해질 때까지 작용은 지속될 터.

‘수일 내로 최소 20년 내력은 확보다.’

그때 가서 하단전의 내력이 되레 중단전의 마력을 굳건히 도와줄지 모르니, 상승 작용은 더 커질 거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건가. 앞으로가 더 재밌어지겠어. 호사다마(好事多魔)라더니 제대로 액땜하고 시작하는구만.’

한 번의 운기행공으로 칠 년의 내력과 상승 작용이라.

그가 직접 만들어 낸 성과지만 놀라울 정도였다.

가슴이 벅차게 차오르는 기분을 만끽하자, 그의 눈꺼풀이 바르르 떨린다.

“으엑…… 냄새하고는. 설마?”

효능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온몸에서 검은 땀이 잔뜩 흘러나와 있었다.

벌모세수다!

이것 한 번에 벌모세수가 완전히 되었을 리는 없지만, 적어도 절반 정도의 벌모세수가 자동으로 진행되었다고 봐야 한다.

벌모세수. 몸이 절로 깨끗해지고, 기운의 소통이 몇 배는 빨라진다.

벌모세수를 한 자는 수련해서 얻는 공력 역시 다른 이보다 배는 빨랐다. 때문에 명문 대파에서는 어렸을 적부터 벌모세수를 꾸준히 시키고는 했다.

그 벌모세수가 절로 될 줄이야.

‘반절의 벌모세수에다가 육체 능력도 향상된 거 같은데? 감각이 예민해졌어.’

동시에 몸의 감각 역시 열렸다.

몸의 감각 자체가 달랐다. 몸이 시원했다.

본래 마법사란 인종 자체가 몸을 잘 안 쓰니 뒤떨어지는 육체 능력을 지닌 걸 생각하면, 생소하기 만한 감각이다.

‘근육과 혈도 사이사이에 진기가 스며든 건가. 외공의 효과를 본 거 같은데?’

애초에 처참한 육체를 지닌 그였다. 약하던 몸이 절로 강건해지니 느껴지는 차이가 극적이었다.

후웅-

슬쩍 팔을 휘저어 보니 속도가 전과 다르다. 몇 가지 시험을 해도 전에 할 수 없는 속도와 힘이 나왔다.

육체 능력이 최소 팔 할. 즉, 80%는 향상된 듯 했다.

“……미쳤다고밖에 달리 표현이 안 되는데.”

그는 마법사기에 근접전을 하는 용병들에 처지는 근력을 지닌 게 당연했다.

타고난 체격도 평범했다.

물론, 어지간한 일반인보다야 테스가 훨씬 더 낫다만. 딱 그 정도 수준.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렇지 않았다.

‘이 정도 수준이면…… 근력만 놓고 보면 어지간한 브론즈보다 나을지도?’

전생의 지식을 가진 지금. 근력만으로 모든 육체 싸움의 승패가 갈리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기는 하다만.

‘진기를 쓸 수 있는 거 까지 생각하면, 이야기가 확실히 달라지지.’

자신은 다른 용병들과 달리 내가진기를 사용해 육체를 강화시킬 수도 있었다. 순간적으로 초인에 가까운 육신을 쓸 수 있단 의미.

‘어지간한 녀석들은 정리가 가능하겠는데?’

한 번의 수련으로 너무도 많은 걸 가져버렸다.

* * *

달라진 제 몸을 한동안 체감하던 테스. 제 세상에 빠져있던 그. 한참이 지나서야 주변을 바라봤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으려나.”

눈을 떠서 바라본 창밖은 아직 낮이었다.

하루가 채 가지 않았을까?

‘내 그러면 손에 장을 지진다.’

제가 가진 기운과 사투를 벌인 지 오래였다. 몇 시간, 아니 적어도 하루는 더 지났을 거였다. 며칠이 흘렀을 수도 있었다.

어쩔 수 없나. 가서 물어볼 수밖에.

테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퀴퀴한 방을 둘러보았다.

“날짜 물어보는 김에 방 청소도 돈 주고 해야겠네.”

이 세계에서는 방 청소조차도 유료다.

* * *

일층 식당으로 내려와 날이 며칠인지 물었다. 여관 주인이 뚱한 얼굴로 말을 내뱉었다.

“두 시간만 있으면 숙박비 치러야 하는데 딴소리 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겠지?”

이 지역에 온 것은 얼마 안 된 테스지만, 이 여관 주인이 과거에 용병으로 나름 날렸었다는 이야기 정도는 제법 들었었다.

거기다가 이 지역을 연고지로 하는 용병들의 경우는 이 여관 주인과 제법 친하다던가?

굳이 척을 질 필요는 없었다.

“그럴 리가요.”

“후음…… 내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모르겠는데…… 씁.”

어딘가 뚱한 표정은 이어지는 테스의 말에 금방 풀렸다.

“꽤 오래 봐 놓고도 그런 소리를 하십니까. 그나저나, 장기 숙박을 좀 알아보려고 합니다만. 가능합니까?”

“가능하다마다!”

지금같이 시끄러운 시기에 장기 손님이라니!

‘허, 얼굴 환해지는 거 보게.’

여관 주인의 태도가 돌변했다. 두 손을 모으더니 싹싹 비빈다.

테스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경청하려는 자세였다.

“어, 얼마까지 알아보고 왔는가……. 아니, 오셨습니까, 손님!”

* * *

‘단전 만들고 약간의 깨달음까지 얻은 걸 정리하는 데 딱 이틀이라.’

여관 주인과 장기 투숙에 대해서 논의하고 돌아오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그랬다.

내공심법인 의생공을 처음 수련하면서 내공을 얻는 과정에서 이틀이나 소비된 것이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 여관 주인에게 돈을 주고 방을 깨끗이 치워줄 것을 부탁하고서. 테스 자신은 식당에 앉았다.

돈을 더 얹은 다음에 고기와 야채를 골고루 섞은 메뉴를 주문했다.

전생의 기억으로 먹는 것들 역시 몹시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본래는 화식을 피하고 생식 위주로 하면서 청량한 기를 모아야 되겠지만…… 이 세계에서 그랬다가는 순식간에 골로 가지.’

테스는 속으로 중얼 거리면서 식사를 기다렸다.

‘전생에 하지 못했던 우화등선. 여기서 해낸다. 그러기 위해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그리고 생각은 계속 이어진다.

‘뭘 하긴. 일단 살아남아야지. 도산검림의 강호 무림도 더러운 동네긴 했다만, 현생의 이 동네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도 않은걸.’

테스는 그러면서 이 세계에 대해서 떠올렸다.

세계는 여러 나라들이 난립하고 있고 중원과는 전혀 다른 봉건주의라는 정치 체계가 뿌리 깊게 박혀 있다.

거기에 더해서 신분제마저 존재해서 아예 계급간의 권한조차도 천지차이였다.

중원은 제국이라고 하는 단일 국가였고, 비록 부패했을지언정 신분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황족. 그 다음은 모두 평민이며 그 다음이 노비다. 귀족 계급에 해당하는 권문세가 같은 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법적으로 귀족이라는 계급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세계는 황족, 왕족, 귀족, 평민, 노예로 나뉘는데 더 골 때리는 건 귀족과 평민 사이에 준귀족이라는 계급도 있다는 점이다.

그뿐이 아니다.

전생에서는 인간의 주 적은 결국 인간뿐이었다. 그러나 이 세계에는 국가를 무너트릴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수 없이 많은 몬스터. 미쳐버린 나머지 언데드가 된 마법사. 사람을 유혹해서 재앙을 일으키는 악마. 뭔지 모를 이 세계에서 들어온 이계마물 등등…….

까딱 잘못하면 죽을 수 있는 세계가 여기였다.

그렇다 보니 전생처럼 선식(仙食)이라는 체계의 식사를 하면서 수행을 할 수는 없었다.

‘선식은 몸을 정결히 하고 내공을 모으는 데는 빠르지만, 육체 자체가 허해져서 외공 수련은 거의 안 되는 게 문제란 말이야…….’

그랬다. 풀때기를 생으로 먹는 게 선식이다 보니, 육체 단련에는 그야말로 쥐뿔도 도움이 안 됐다.

그래서 외공 수련자는 반드시 화식을 하고 육식을 병행한다.

강호에서는 육체를 최적으로 단련시키기 위한 식단까지 발전했을 정도다.

‘고기 반. 채소 반. 거기에 과일도 주기적으로 먹고 밥도 먹어야 하는데…… 이 세계에는 밥이 없잖아? 빵으로 되려나. 이건 실험해 봐야겠군.’

테스는 일단 식단을 생각하면서 머리를 굴렸다. 그 사이 식사가 나왔다.

우모라고 부르는 소 비슷한 생명체의 고기를 구운 것과 페신이라고 하는 배추 비슷한 것을 채 썬 다음 내 놓은 것이었다.

거기에 감자, 당근에 우모의 내장을 깨끗이 씻어 넣고 몇 가지 향신료를 넣은 스튜와 딱딱한 흑빵 한 덩이가 같이 나왔다.

가장 비싼 메뉴이고, 테스가 요구한 메뉴이기도 했다.

페신이라는 채소를 채 썰어서 내놓는 것은 본래 메뉴에 없었지만, 테스가 요청해서 나온 것이다.

이걸로 채소, 고기, 밥의 대용품인 빵이 다 나온 셈.

그걸 먹으면서 테스는 다시 생각 했다.

‘시간이 필요해.’

각성하여 가능성을 개화했으나 며칠 되지 않았다.

가능성을 피워 보기도 전에 죽는 건 사양. 그러니 시간이 필요했다. 가능성을 일정 이상 개화시킬 시간 말이다.

그래서 장기 투숙을 하기로 한 것이다.

전생의 기억을 토대로 수련하기 위해서다.

‘지식대로면…… 매일 이렇게 먹고 식사 시간도 통일해야 해. 거기에 수련도 꼬박꼬박 시간 맞춰서 해야 하고…… 돈이 많이 깨지겠는걸. 하지만 얼마가 들든 해야겠지. 그래야 강해질 테니까…….’

테스가 용병 중 희귀하다는 마법사로 구르면서 모은 돈은 용병치고 꽤 됐다.

그럼에도 그는 항상 돈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마법사로서 언제고 새로운 주문을 갈망했으니까. 귀하디귀한 주문서는 적당한 돈을 갖곤 구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구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2클래스인데, 고작해야 아는 주문이 여덟 개란 게 말이 되냐…….’

제대로 된 마법학파의 2클래스 마법사라면 1클래스와 2클래스의 주문을 적어도 서른 개는 배운다.

하지만 마법학파의 제자로 들어가 공부한 것이 아닌, 용병 마법사의 시종 노릇을 하면서 얻어 배운 마법은 정통의 마법학파 출신에 비해서 위력도 떨어지고 그 숫자도 적었다.

결국 그가 가진 마법 주문은 이제 겨우 여덟 개.

그가 가진 주문의 수는 너무도 적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가지고 있던 돈도 사실 아홉 번째 주문을 배울 중요한 자금이었다.

그걸 지금 쓴 것이다. 몇 달간 지낼 여관비와 균형 잡힌 특식을 먹는 데 소모하고 있었다.

생존형 수전노인 테스로서는 어마어마한 과소비!

그럼에도 그의 소비는 이것으로 끝이 난 게 아니었다. 가능성을 개화하는 덴 균형 잡힌 식단만으론 부족했으니까.

그래서 여관비와 특식비를 빼고서도 돈을 남겨 두었다.

스물이 넘어 버린 나이. 무공을 새로 시작하는 덴 한없이 비루한 몸뚱어리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많은 게 필요했다.

“후우, 다 투자라 생각해야겠지. 그나저나…… 남은 걸로 필요한 걸 다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최대한 발품을 팔아야겠는데. 가 볼까.”

각오를 마친 그는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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