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챕터 2.
“크흐…….”
테스는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허리를 억지로 쭉 펴며, 다리를 꼬았다.
평소 하지 않던 자세를 취하니 고통은 더욱 컸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돼, 됐다.”
그가 새로 취한 자세는 전생에 지겹도록 한 가부좌.
“햐……. 전생의 나란 새끼, 두고 보자. 내가 꼭 뛰어넘어 주마.”
자세를 완성하는 그 순간, 그는 기억하고 있던 의생공의 구절부터 되뇌었다.
전생엔 널리 사람을 구하고자 시작했던 무공을 지금은 전생의 자신에게 지지 않고자 다시 익히려고 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어떤 이유로 시작하든 상관없었다.
오래 가지 않아 그는 금세 의생공의 구절에 따라, 의식이 침잠해 들어가고 있었으니까.
* * *
침잠해 들어가는 의식 속.
테스는 자신의 일생을 생각했다.
어렸을 적.
테스는 도시민이었다. 이 세계에서 도시라는 것은 성벽을 두르고 있는 곳을 뜻했다.
튼튼한 석재로 된 성벽을 두른 곳.
성도시라고 부르는 장소. 농사보다는 상행위가 주류이며, 그에 따라서 빈민들도 살아가는 그런 곳.
그러나 어느 날 전염병이 번졌고 테스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고 말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살아남기에는 이 세계는 전혀 상냥하지 않았지만, 테스는 나름 운이 좋았다.
마법사인 용병의 눈에 띄어서 제자 겸 하인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테스는 아등바등 살아남았다.
스승이자 주인인 용병 마법사가 전투로 죽을 때까지 마법을 훔쳐 배우고.
죽은 스승의 마법서를 들고 도망가 훔쳐 배운 마법 지식을 확실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러고 보니 그 당시에는 제법 필사적이긴 했네…….’
테스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혀를 천장에 붙이고 입술은 아주 작게 연 상태로 숨을 들이쉬었다.
호흡.
내공심법의 기본.
천지자연의 기운을 호흡을 통해 몸 안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육신 안에서 순환시킨다.
그럼으로써 기운은 몸에 깃든다.
이를 내가진기. 혹은 내공이라고 불렀다.
숨을 고르는 순간 테스의 기감이 일깨워졌다.
삐거덕대는 침대, 탁상과 의자, 벽.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흐르고 있는 걸 이 세계에서는 ‘마나’라고 불렀다. 전생의 중원에선 ‘기’였다.
‘전생에서는 기감 얻는 데 한 달이 넘었었는데…… 현생이 그래도 전생보다는 재능충이었네.’
테스는 호흡하는 와중에도 속으로 낄낄 웃었다.
기감.
그것은 문자 그대로 기를 느끼는 감각. 그런데 이 기감각이라는 것을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사람의 수는 지극히 희소했다.
기감각을 가진 어린 아이는 무림에서는 천재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그만큼 확고한 재능이다.
왜냐하면 기감각을 가진 인간은 기를 모아서 내공으로 만드는 데 있어서 다른 이들에 비해서 확고한 우위를 가진다.
남들이 열흘 수련해서 얻을 진기가 기감을 가진 이들에게는 하루에서 이틀이면 된다.
시작점이 다르단 의미.
그러한 기감을 현생의 테스는 타고나 있었다.
‘하…… 참. 전생에 비해서 너무 쉽네. 기…… 여기서는 마나지만.’
마법사로서 가진 마나 친화력 덕분이었다.
이 세계에서 마법사가 되기 위해선 마나를 다루는 친화력을 타고나야 했고. 마나를 의지로 다룰 수 있어야 했다.
즉, 마법사의 의지에 반응해 마나를 제어하는 게 마법의 요체다.
호흡으로 기를 제어한 전생의 무공과는 다르다. 하지만 기감을 사용한다는 면에선 너무도 닮아 있었다.
‘흠, 이미 기감이 있으니. 전생에 비해서 쉬운 건 당연한 걸지도. 마법사의 선천적인 능력이라는 건 현경에 이르렀던 때의 그것의 열화판 같은 것이니까.’
마법사에 대한 생각.
그리고 전생의 무위에 대한 생각.
그러다가 테스는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지금부터는 잡념을 버려야했다.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나중에 알아도 되겠지. 지금은…… 이것부터다.’
흐르는 마나를 제 몸에 머금는 일.
머리에 박힌 의생공의 구절에 따랐다. 숨을 들이쉬자, 뜨거운 기운들이 휘몰아치며 몸속으로 들어왔다.
온몸 구석구석으로 기운이 퍼진다. 수많은 혈관을 타고 그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순환은 갈수록 거세졌다.
“으음…….”
뜨거워져 가는 몸. 테스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신음 사이로 흘러나오는 열기가 심상치 않았다.
열기가 의미하는 바는 좋지 않았다.
* * *
마법사의 재능을 지녀 시작점부터 이득이라 여겼는데 아니었다.
기감이란 재능은 재능이고.
이미 심장 부근에 만들어져 있는 두 개의 서클이 말썽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망할, 이미 기감이 열려 있어서 쉽게 풀려 가나 싶었더니 미리 열린 중단전이 문제였던 거냐. 하, 제대로 꼬였군.’
운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득이 많다고 생각했다.
마법사로 기감이 이미 열려 있으니 딱히 기감을 열기 위해 노력을 할 필요도 없었으니까.
마법사로서 심장에 마나를 모아 놓기까지 했다. 마법을 부리는 마력을 위한 서클이었다.
서클의 위치는 중원으로 치면 중단전.
그 위치가 이미 뚫려 있으니 그보다 하위인 하단전은 금세 뚫어 내고도 남겠다고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 중원에서 이 셋을 괜히 천지인(天地人)에 비유하는 게 아니었다.
아래서부터 인과를 쌓고 그 위에 토대(土臺)를 쌓아 내야만 중단을 열 수 있게 돼 있다. 이후, 극에 이르러서 하늘을 열어야 상단전이 열리는 게 중원 무공의 순리.
그런데 테스 자신은 정반대, 아니 그보다 더 최악으로 일을 진행해 버렸다.
‘이건 생각지도 못한 패착인데, 좀 더 조심했어야 했어야 하나.’
인과도 제대로 쌓지 않은 채 억지로 토대를 쌓아 중단전을 열어 놓은 게 현 테스의 상태.
인과가 없음에도 서클을 억지로 꼬아 만들어서 버텨 내는 게 이 세계 마법사의 방식.
그게 문제가 됐다.
의생공으로 온몸에 기운을 들이부음으로써 위태롭게 중단전에 버티고 있는 서클을 자극시켜 버렸다.
‘모래 위에 성을 쌓는 정도가 아니라, 모래 자체가 없는데도 억지로 이를 뒤흔들었으니!’
자극을 받은 중단전의 기운은 지독한 반발을 하기 시작했다.
그그그그긍-!
중단전의 기운은 온몸에 퍼진 기운을 적으로 간주했다.
꼬아져 있던 두 개의 마력 서클이 몸에 안착하려 하는 자연지기를 방해했다.
미세 혈관에까지 뻗어 나간 기운을 쫓아내기 시작했다.
온몸의 혈류가 역류하는 듯했다. 혈관이 꼬이고, 근육이 뒤틀렸다.
급작스레 느껴지는 기운에 저도 모르게 몸을 튕기며 신음을 내뱉는 테스였다.
“큭……!”
한계다.
전생을 통틀어 느낀, 아니 그 어떤 고통보다도 더 큰 고통이 그의 몸을 엄습한다.
온몸이 땀으로 푹 젖었음은 물론이고, 몸에 뚫려 있는 모든 구멍에서 핏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그럼에도 그가 버티고자 하는 건 하나다.
‘이렇게 죽으라고?! 이 꼴로? 하, 이대로 핏덩이에 오물에 땀까지 흘린 채 뒈진다고?’
이대로 죽을 수가 없어서였다. 너무 억울하니까.
제기랄! 고아로 태어나서 고생만 잔뜩 하다가 이제 막 전생 각성을 해서 꿀 좀 빨아 보려고 하니까, 한 걸음도 못 가서 뒈지라니?
죽어서 환생하기는커녕, 죽자마자 억울해서 원귀로 각성할 기세다.
그럴 수는 없었다.
‘내 어떻게 전생의 의지가 비집어오는 것도 막아냈는데! 그렇게는 못 하지! 버틴다! 버텨!’
버티고, 또 버텨 냈다.
단순히 버텨 냄으로써 끝을 내고자 하는 게 아니다.
전생의 지식으로는 이대로 버텨 봤자 온몸의 혈류가 터지는 결과만 보여 주고 있었다.
일명 주화입마!
중원에서도 폐인 취급만 받는 불구가 되는 거다. 죽는 거보다는 낫지만 그 또한 절대로 사양이었다.
최악의 상황을 막아야 했다.
속속들이 박혀 있는 지식들을 뒤진다. 그런 지식들 중에서 쓸 만한 것들을 추린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다. 응용을 해야만 했다.
‘찾아야 한다. 찾아야 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갖고 오라고! 이 미친 지식들아! 내가 절맥을 어떻게 치료했더라? 천살성은 어떻게 뒤바꿨지? 냉인은?’
불구는? 주화입마는? 팔이 끊어진 자는? 벌모세수를 하다 말고 혈류가 막혔을 땐?
주제도 모르던 독마가 환골탈태를 하다가 몸이 뒤틀렸을 때, 어떻게 도와줬더라?
‘맞다!! 그걸 가지고 삼 년을 우려먹었는데……. 아! 그거였다! 찾았다!’
기운과 기운의 충돌. 이 둘을 아우를 때 중요한 건 결국 기를 다루는 방식.
기운을 조화시켜야 했다.
본디 조화와 합일을 중요시하는 게 의생공의 기본.
지금 자신이 버텨 내지 못하는 건 그 의생공이 지닌 기운이 서클에 비해 미약해서다.
의생공의 기운이 서클보다 컸다면 역류가 일어나지도 않았을 거다. 되레 안정시키고 조화시켰겠지.
서클의 기운이 압도적인 지금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꼭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기운이 적다고 하여 큰 기운을 상대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방법이 보였다.
‘다른 혈들은 우선 전부 포기. 충문혈, 관원혈, 중극혈에 집중하자. 대어를 잡으려면 큰 곳에서 놀아야지.’
테스는 단전의 부근, 다른 혈보다 더 큰 혈에 몸에 들끓던 자연지기들을 모았다.
의생공의 묘리로 조화력을 키워 내고 잠시의 시간이라도 공을 들여서 그 기운의 크기를 키웠다.
스스스스-.
기운이 먹음직스럽게 키워지자, 온몸을 뛰놀던 서클은 본능적으로 위기의식을 느꼈다.
멀리서 크기를 부풀리고 있는 기운이 자신을 잡아먹지 않을까 하는 위기의식이었다.
서클의 마력은 망설이지 않았다.
온몸으로 퍼졌던 제 기운들을 한곳으로 회수하기 시작했다.
단숨에 모인 서클의 기운은 아래로 향했다. 테스가 애써 모으고 있는 혈도들이 목표였다.
순식간에 쏘아진 서클의 기운은 목표에 도달했다.
와득-!
며칠 굶주린 늑대가 새 거대 혈의 기운을 잡아먹으려고 하는 그 순간.
‘그렇겐 안 되지!’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테스가 재간을 부렸다.
쑤욱-!
서클의 마력이 애써 모은 기운을 잡아먹기 전에 의생공의 기운을 응용해 옆으로 치웠다.
성난 소가 투우사의 붉은 천을 스쳐 가듯, 서클의 기운이 의생공의 기운을 스쳐 지나갔다.
본디 붉은 천을 스쳐 간 성난 소는 창에 찔려 죽기 전까지 몇 번의 기회가 있을 터.
하지만 서클의 기운은 아니었다.
서클이 기운을 스쳐 지나가 도달한 곳은, 여태 뚫린 적이 없었던 단전이란 벽이었다.
쿠우우웅-! 쿵! 쿠웅!
서클의 기운이 여태껏 막혀 있던 단전과 부딪쳤다.
뒤로 갈 수도 없었다. 그 뒤는 테스가 온 힘을 다해서 의생공의 기운으로 틀어막고 있었으니까.
그저 아래로 부딪칠 수밖에.
쩌억.
막혀 있었던 단전은 서클의 기운을 이기지 못했다. 막혀 있던 제 살갗을 열어젖혔다.
없던 공간이 생겨났다.
서클의 기운은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했다.
다시 여기서 돌아가면 자신을 몰아넣은 저 망할 기운을 잡아먹을 수 있을 거다. 그리하면 다시 이 몸은 서클의 기운만 존재하는 올바른 곳이 될 거라고.
‘그건 안 되지!’
하지만, 테스의 심계가 기운보다 더 우위에 있었다.
서클의 기운이 단전에 들어서는 그 순간을 기다렸다.
테스는 전심전력으로 의생공을 돌리고 있었다. 단전 안에 스스로 파고든 서클의 기운을 전부 의생공의 기운으로 물들이기 위한 순간을!
수년간 쌓아 온 서클의 마력을 변화시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 의생공의 위력을 이용하더라도 어렵고 지난한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시도했다.
‘해 보자. 아니, 해내야지. 안 하면 뒈지는 거잖아?’
그럼에도 테스는 각오를 다녔다.
“으음…….”
제 몸에서 날뛰는 모든 기운들을 다스리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