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제카와의 약속
172. 제카와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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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여신, 테메르의 마지막 근원을 흡수하는 순간.
『생명의 여신, 테메르의 근원 중 일부를 흡수했습니다. (12/12)』
『신체 능력치 +50이 상승합니다.』
『생명의 여신, 테메르의 권능 소생을 얻습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단순히 능력치가 아닌, 권능을 얻었다는 알림이었다.
하지만 다른 건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강하온의 눈앞이 번쩍이며 환상이 보였다.
“과거의 테라인가?”
강하온의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아름다운 자연이었다.
활기찬 생물들이 자연을 벗 삼아 뛰노는 모습은 그림 같았다.
죽음의 땅이었던 테라의 모습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기는 테메르인가 하는 여신이겠군.”
강하온의 시선을 멀리 떨어진 동산 위, 거대한 나무에 앞에 앉아 있는 여인에게로 향했다.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존재감은 확실히 느껴졌다.
어둠의 신, 테스 보다도 강하게 느껴지는 생명력, 생명의 여신이 확실했다.
강하온은 여신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
여신이 있는 동산에 올라, 근처까지 다가간 강하온은 멈칫했다.
순간적으로 여신이 고개를 돌려서 자신이 있는 쪽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환상이 아니었나?”
강하온은 지금 상황이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명의 여신은 자신과 확실히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이러한 강하온의 궁금증에 대답을 해주는 존재가 있었다.
하지만 그 존재의 대답 때문에 강하온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환상이 맞아요, 정확히는 과거의 사념을 남겨놓은 거죠.”
그의 혼잣말에 대답한 것은 생명의 여신, 테메르였다.
강하온의 머릿속에 지금 상황을 설명해줄 상황이 하나 떠올랐다.
“미래를 본 건가?”
미래를 본다면 가능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아주 먼 미래를 봤다는 말인데, 사실 이것 자체는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것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잔류 사념을 남겨놓은 것인데, 그런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맞아요.”
“그게 가능한 건가? 모르긴 몰라도 수만 년은 훌쩍 넘은 미래일 텐데?”
강하온은 자기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테메르한테 들었지만, 믿기가 힘들었다.
그만큼 테메르가 있는 시기와 현재의 시간은 엄청난 시간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순히 이러한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렇게 선명한 미래를 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테메르는 자신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이 말은 지금 이 상황까지도 세세하게 전부 파악하고 말하고 있다는 거였다.
“일반적으로는 힘들지, 하지만 세상에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힘도 존재하지.”
테메르가 이렇게 미래를 볼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다, 우연히 태초신의 파편을 구했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힘이었지만, 그것만으로 먼 미래를 보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군.”
강하온은 그 힘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미래를 보는 힘.
그는 테메르가 말하는 힘이 태초신의 파편이라는 것을 얼추 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고 싶은 말이 뭐지?”
강하온은 테메르한테 물었다.
이렇게 먼 미래의 자신을 기다렸다는 것은 분명히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테스한테 죽는다는 것을 예상하면서까지 남기고 싶었을 정도로 중요한 말이게 분명했다.
“시간이 없으니까 본론부터 바로 말할게, 어둠과 빛이 사라진다고 모든 게 끝이 아니야.”
“이딴 뜬구름 잡은 개소리를 뱉는 것은 인과율 때문인가?”
강하온은 알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천기누설, 이것은 인과율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그렇기에 미래를 본 예언자들은 뜬구름 잡는 말로 예언을 남긴다.
실제로 라프 일족에게 내려오는 예언도 용사가 정확히 테스를 죽인다는 것이 아니었고, 이방인이 세상을 뒤덮은 어둠을 전부 몰아낸다는 말이었다.
“잘 아네, 그러니까 계속 들어.”
테메르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진정한 파멸은 빛과 어둠이 사라진 뒤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말이야.”
“생각보다 뜬구름 잡는 말은 아니네.”
강하온이 판게아에서 들었던 예언 중에는 진짜 이딴 식으로 돌려 말해? 하는 정도의 거지 같은 예언도 있었다.
빛과 어둠, 빛의 신 누스와 어둠의 신 테스를 말하는 게 분명했다.
‘결국에는 부딪히려나?’
강하온은 조금 전 예언으로 대교주와의 약속이 깨지게 될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미래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나저나 진정한 파멸이라면 그 존재를 말하는 건가?’
강하온은 진정한 파멸이라는 말에 차원의 틈새에 본 존재가 떠올랐다.
그가 태초신이라고 추측하는 존재였다.
“또 할 말은?”
“별로 놀라지 않는군, 알고 있었나?”
테메르는 강하온을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다.
“뭐, 조금은?”
강하온은 처음 태초신을 만났을 당시부터 느끼고 있었다.
언제가 부딪히게 되리라는 것을.
뭐, 예언이 틀릴 수도 있었지만, 지금 분위기를 보면 그럴 확률은 희박해 보였다.
“더 해줄 말은? 이제 시간이 없어 보이는데.”
강하온의 말대로 지금 보이는 환상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봐서 즐거웠어, 다시는 못 보는 줄 알았거든.”
“응? 우리가 본 적이 있어? 무슨 말이야?”
강하온은 당황스러웠다.
분명 본 적이 없는데, 테메르는 자신을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
하지만 테메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을 뿐, 아련한 미소로 강하온을 쳐다볼 뿐이었다.
그렇게 강하온은 환상에서 깨어났다.
“······.”
강하온의 표정은 복잡미묘했다.
분명 처음에는 나쁘지 않았는데, 마지막에 꼭 뒤처리를 안 하고 화장실을 나온 기분이다.
“뭐야? 표정이 왜 그래? 꼭 볼일 보고 그냥 나온 거 같네?”
그때 들려오는 한빛나의 목소리에 강하온은 피식 웃었다.
역시 한빛나를 속일 수는 없었다.
“그러게 뭔가 찝찝하네, 그나저나 이제 가자. 나래가 기다리고 있겠다.”
“······.”
나래를 언급하자 한빛나의 멈칫했다.
처음이 아니라, 이미 몇 번이나 있던 반응이었다.
한빛나가 이러는 이유는 바로 나래가 자신을 원망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시기에 나래를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게 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걱정하지 마, 나래는 빛나 너를 원망하고 있지 않으니까.”
강하온은 불안한 표정의 한빛나에게 다가가서 안으면서 말했다.
“진짜······?”
“그럼, 진짜지. 나래한테 빛나 너는 약속을 꼭 지키는 엄마니까, 나래는 엄마가 꼭 돌아올 거라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믿고 있으니까.”
“······.”
강하온의 말을 들은 한빛나는 감정이 북받쳐 올랐는지, 강하온의 품에 안겨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래 만나서 울지 말고, 미리 울어둬.”
강하온은 한빛나를 다독여주면서 기다렸다.
그는 오랜만에 세 가족이 모이는 날, 눈물이 아닌 웃음이 가득한 재회가 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이제 다 울었어?”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한빛나의 눈물이 멈췄다.
한빛나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대로 가는 건 안 되겠다.”
“응? 그건 무슨 말이야?”
한빛나는 이해가 안 되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눈이 너무 부어서 나래가 엄마를 못 알아보겠어.”
“야!”
강하온은 웃으면 말했고, 한빛나는 발끈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도 장난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게, 실제로 자기 눈은 엄청 부어 있었다.
강하온을 만나고부터 너무 운 탓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눈물이 나오는걸.
탁-!
강하온은 손가락을 튕겼다.
회복 마법이 발동되면서 순식간에 한빛나의 부었던 눈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응? 뭐야?”
한빛나는 멀쩡해진 눈두덩이를 보고는 놀라서 눈을 깜빡였다.
“뭐긴 뭐야, 마법이지.”
“아니! 그럴 거면 아까 더 일찍 해줬으면 됐잖아!”
강하온의 말을 들은 한빛나는 버럭버럭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회복할 수 있었으면서도 일부러 장난치려고 놔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땐 생각이 안 났어.”
“너 진짜!”
한빛나의 왼쪽 눈썹이 올라갔다.
‘장난이 너무 심했나?’
진짜 짜증이 났다는 뜻이었다.
이럴 땐 화가 풀릴 때까지 멀어지는 게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적당한 핑계가 없었다.
하지만 때마침 적당한 핑곗거리가 생겨났다.
『떠나신다고 들었습니다, 잠시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강하온이 구해낸 ‘테라’의 12명의 영웅 중 하나가 강하온을 찾아왔다.
“잠깐 얘기 좀 하자고 하는데 갔다 와도 될까?”
한빛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와.”
그럴 순 없지.
“금방 갔다 올게.”
강하온은 재빨리 자리에서 벗어났다.
『무슨 일이지?』
장소를 이동한 강하온은 자신에게 찾아온 ‘테라’의 영웅을 보고 말했다.
그의 앞에 있는 존재는 처음에 구했던 영웅, 가인트였다.
『테라의 모든 인류가 하온님을 믿고 있습니다, 이곳에 남아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가인트는 테라의 대표로서 정중하게 부탁했다.
강하온은 이미 몇 번이나 들었던 얘기였다.
그리고 매번 같은 대답을 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건 불가능해.』
강하온은 자신이 희생하면서까지 이곳에 남을 생각이 없었다.
대신 그들의 어려움은 도와줄 생각이었다.
이건 제카와의 약속이기도 했으니까.
『지금 내가 필요한 이유는 차원을 유지할 에너지 때문이겠지?』
『······.』
대답할 염치가 없는 가인트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게, 지금의 테라는 원래 생명력이 넘치던 때로 돌아온 거 같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오랜 시간 테스에게 잠식당하면서 차원의 코어가 망가져 있는 상황, 이대로 놔두면 시간이 지나면서 테라는 다시 죽음의 땅으로 변할 것이다.
물론, 그 시간이 최소 수백 년은 되겠지만.
이렇듯 지금의 테라는 테메르의 근원이 잡고 있던 마나가 퍼지면서 간단한 응급처치가 된 상황이다.
그런데 강하온에게 남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그 코어를 대신해달라는 말이었다.
테스를 물리치고 테라를 구해준 것도 고마운 일인데, 여기서 더 희생을 원하는 행동이니 염치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가인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부탁해야 했다.
안 그러면 테라의 인류는 예정된 죽음을 기다리며 살아가야 했으니까.
『그건 내가 도와주지, 굳이 내가 남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게 정말입니까?』
가인트는 자신의 커다란 덩치는 생각도 않고는 어린아이처럼 놀라서 되물었다.
『믿기 싫으면 말해, 그냥 가면 그만이니까.』
『아, 아닙니다! 어찌 하온님을 믿지 않겠습니까.』
가인트는 진짜 강하온이 그냥 떠날까 화들짝 놀라서 다급하게 말했다.
『그래 믿어라, 내가 뭐하러 거짓말을 하겠어.』
강하온은 아공간에서 푸른 구슬을 꺼냈다.
엄청난 생명력이 담긴 구슬, 그것은 테스를 죽이면서 얻은 힘의 결정체였다.
그동안 흡수한 테라의 코어에서 얻은 힘과 생명의 여신인 테메르의 힘을 모은 정수였다.
이미 여신의 근원을 완전히 흡수한 강하온에게는 큰 효과가 없는 물건이어서, 애초에 테라를 위해서 사용해줄 물건이었다.
저 엄청난 수의 테라 인류에게 원망을 받으면서 떠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쩌저적-! 탁-!
강하온의 손에 있던 힘의 정수가 깨지면서 테라 전체로 퍼져나갔다.
테라에는 순식간에 엄청난 생명력이 가득 찼다.
진정한 테라의 모습이었다.
『감, 감사합니다!』
가인트는 과거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테라로 변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며 감사했다.
『고마움은 라프 일족을 찾아가서 제카라는 노인네의 무덤에나 가서 해, 전부 그자와 약속 때문에 도와주는 거니까.』
강하온은 가인트한테 말하고, 한빛나에게 갔다.
“너!”
“빨리, 준비해! 빨리 지구로 가야 해.”
강하온은 도끼눈을 뜨고 기다리는 한빛나를 보고, 다급하게 움직였다.
“아, 알았어.”
그러자 한빛나는 놀라서 강하온의 옆에 찰싹 달라붙었고, 강하온은 그 모습에 씨익 웃었다.
‘나래는 통하는구나.’
강하온은 한빛나가 화났을 때 풀수 있는 방법 한 가지를 찾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