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마지막 근원.
171. 마지막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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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온은 폭주하는 테스와 거리를 벌렸다.
“꼭 블랙홀 같네.”
주변의 지형은 물론, 암인까지 모조리 빨아들이는 테스의 모습은 블랙홀 같았다.
시간마저 삼켜 버린다는 블랙홀, 실제로 테스가 있는 중심으로 시공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냥 지켜볼 것인가? 저대로 놔두면 위험해질 수도 있다.』
그때, 상황을 같이 지켜보던 영혼석 속 대교주가 말했다.
그의 말대로 테스에게 느껴지는 힘은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지고 있었다.
어느새 홀은 일대 지역을 빠르게 먹어치우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지금 있는 ‘테라’ 전체를 집어삼킬 게 분명했다.
“그럴 순 없지, 여기에는 아직 얻지 못한 보물이 남았는데.”
아직 남은 신전에는 강하온이 얻지 못한 생명의 여신, 테메르의 근원이 남아 있었다.
앞으로 상대할지도 모르는 누스, 그리고 차원의 틈새에서 본 정체불명의 존재를 생각한다면 강하온한테 꼭 필요한 힘이었다.
『크크큭, 네놈은 그대로 차원과 함께 집어 삼켜주마.』
“덩치만 키울 줄 아는 겁쟁이 새끼가 말이 많네.”
강하온은 모든 게 끝났다는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테스를 보고 피식 웃었다.
주변 지형은 물론, 시공간까지 집어삼켜 버리는 블랙홀이 강력한 힘이기는 하지만, 강하온에게는 자신의 상대하는 것을 피하고 자폭을 하고 싶은 겁쟁이처럼 보였다.
게다가 지금 상황이 고마웠다.
강하온은 애초에 테스는 물론, 암인의 존재를 세상에 남기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알아서 모든 암인을 테스가 흡수해준 것이다.
굳이, 귀찮게 일일이 처리할 필요가 없었다.
『······네놈은 쉽게 죽이지 않으마, 약속하지.』
강하온은 정확히 테스의 심리를 꿰뚫었고, 한낱 인간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들킨 테스는 그 어느 때보다 분노했다.
구오오오-!
블랙홀은 훨씬 더 빠르게 주변을 집어삼켰고, 이제는 빛까지 삼키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놈······.』
그 모습에 대교주를 질린다는 듯 말했다.
빛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의 힘에 공포를 느낀 것이다.
『인간, 저 무식한 놈을 빨리 죽여버려라.』
“아, 시끄러워.”
『자, 잠깐······.』
강하온은 옆에서 재촉하는 대교주의 영혼석을 그대로 아공간에 넣어버렸다.
이제 한빛나도 구했고, 테스도 눈앞에 떡하니 있었다.
굳이 지금 상황에서는 대교주가 필요 없었다.
“이제야 조용하네.”
옆에서 촉새처럼 떠들 던 대교주가 없어지자, 한결 조용해졌다.
모든 것을 무식하게 빨아들이는 블랙홀의 소리가 시끄럽기는 했지만, 이제 곧 사라질 소리이니 상관없었다.
『이봐.』
『······.』
강하온은 의념을 사용해서 테스에게 말했다.
『나도 내 육체로 처음 사용해 보는 힘이니까.』
테스의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지만, 강하온은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애초에 대답을 원하고 한 물음이 아니었다.
『죽기 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는 광경일 테니까.』
『건방진 인간 놈······.』
강하온의 도발에 분노한 테스였지만, 이어지는 상황에 말을 이어갈 수는 없었다.
쿵-!
강하온이 아공간으로 검을 넣고, 양팔을 넓게 벌리는 순간 세상이 달라졌다.
대기에는 진홍빛의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강하온의 마나가 유형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의지에 마나가 동조하면서 순간적으로 강하온의 마나로 성질이 바뀐 것이다.
『이 무슨······.』
테스는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당황스러웠다.
일대의 모든 마나가 강하온의 마나로 바뀌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저렇게 마나를 바꿀 수 있다고? 그러면 왜 자신의 사도들이 어둠의 커튼을 펼치기 위해서 암인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겠는가.
사실 이러한 것보다 그를 더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테스는 당황하며 소리쳤다.
블랙홀이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블랙홀의 가장자리는 붉게 물들고 있었다.
“생각보다 힘드네, 한 번에 끝내려고 했는데.”
강하온은 씨익 웃었다.
과거에 한빛나를 만난 꿈의 공간에서 사용한, 일대의 마나를 의지에 동조하는 힘이다.
지금까지는 육체의 부담 때문에 사용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빨리 끝내야겠군.’
확실히 육체가 강해졌다고 하지만, 방대한 범위의 마나를 의지와 동조시켜서 유지하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네가 만든 힘에 직접 삼켜져라.』
강하온은 의지를 강화했다.
태초의 12신답게 테스의 의지가 생각보다 강해서 힘들기는 했지만, 이미 압도적인 힘 앞에서 정신이 무너진 탓에 테스한테서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었다.
구오오-!
블랙홀이 빠른 속도로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지 마라!』
뒤늦게 정신을 차린 테스가 저항했지만, 이미 블랙홀을 잠식하기 시작한 강하온의 마나를 막아낼 수 없었다.
결국, 테스가 만든 블랙홀은 완전히 진홍빛으로 변했고, 테스마저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이, 이럴 순 없어······.』
테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과 함께, 강하온이 통제하는 진홍빛 홀로 빨려 들어가며 사라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강하온의 눈앞은 테스의 최후를 알리는 알림창이 수없이 많이 나타났다.
태초의 12신, 누구보다 지고했던 어둠의 신 테스는 자신이 만든 블랙홀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팡-!
강하온은 블랙홀을 터트리자, 블랙홀은 흩어지며 사라지면서 사방에 진홍빛 꽃잎을 흩날리는 것처럼 흩어졌다.
주르륵-!
모든 일이 끝나고, 긴장이 풀리자 강하온의 코에서는 코피가 쏟아졌다.
“후······, 위험할 뻔했네.”
강하온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확실히 지금의 육체로는 감당하기 힘든 힘이었다.
“이럴 시간이 없지, 빛나 깨나기 전에 빨리 움직여야지.”
강하온은 힘든 몸을 다시 일으켰다.
창백한 얼굴, 한눈에 봐도 자신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이런 모습을 한빛나가 본다면 화를 내는 것은 기정사실, 강하온은 그 전까지 생명의 여신, 테메르의 근원을 전부 흡수할 생각이다.
“약속도 지켜야지.”
이건 라프 일족의 족장이었던 제카와 약속이기도 했다.
강하온은 곧바로 아직 여신의 근원이 남은 신전을 향해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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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온이 여신의 근원을 얻고 떠난 자리에는 마나가 퍼지면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생명 에너지가 충만했던 테라였기에 생명이 자라나는 속도는 엄청났다.
죽음의 땅은 어느새 생명이 가득한 푸른 땅으로 바뀌어 갔다.
죽음을 기다리던 모든 생명은 활기가 생겼고, 자연도 되살아났다.
이것이 전부 여신의 근원을 감당할 수 있는 강하온 덕분이었다.
『하온 님이시여!』
어느새 테라의 원주민들은 강하온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뿌리 깊은 곳에 박혀 있던 생명의 여신보다, 현재를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준 강하온을 신으로 추앙하며 따르기 시작한 것이다.
“저 사람들 봐, 너를 신처럼 대하는데? 여기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마지막 신전으로 이동하고 있는 강하온의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에서 깨어난 한빛나였다.
그녀는 아주 못마땅한 얼굴로 강하온을 뒤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을 보며 말했다.
“그런가?”
한빛나의 질투 어린 모습에 강하온은 웃을 뿐이었다.
“왜 웃어!”
대꾸도 제대로 안 하고 웃기만 하는 강하온의 태도에 한빛나는 버럭 말했다.
“그야······.”
“그야?”
강하온이 뜸을 들이자, 한빛나는 궁금한지 눈을 깜빡이며 기다렸다.
“비밀이야.”
강하온은 여전히 웃으며 뒷말을 아꼈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탱탱 부은 모습이 꼭 나래가 울고 나서 모습 같아서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또 한바탕 화를 낼 거였다.
“비밀? 우리 사이에 비밀이 어딨어! 당장 말해!”
“비밀인데 어떻게 말해?”
한빛나는 어릴 때처럼 강하온한테 업혀서 협박 아닌 협박을 했지만, 이제 강하온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가족 사이에 비밀이 어디 있어!”
“있던데?”
“응?”
예상하지 못한 답이 나왔는지, 등에 업힌 한빛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나래는 비밀 상자도 있던데? 그거 네가 만들어 준거 아니야?”
“아니 그건······.”
한빛나는 할 말이 없었다.
강하온의 말대로 나래한테 비밀 상자라는 걸 만들어준 건 한빛나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아, 몰라! 그냥 말해줘! 그건 나래만 할 수 있는 거야!”
한빛나는 배 째라는 식으로 말했고, 그 모습에 강하온은 웃음이 자꾸 나왔다.
이러한 모습도 나래랑 비슷했다.
역시 성격이나 외모나 모녀가 붕어빵처럼 닮았다.
“이거 때문에?”
강하온은 마법으로 거울을 만들어서 한빛나의 얼굴을 보여줬다.
“아악!”
한빛나는 그제야 자신의 얼굴을 확인했는지, 퉁퉁 부은 눈을 보고는 손으로 가렸다.
강하온은 그 모습에 웃으면서 조용해진 한빛나를 엎고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진짜 그냥 떠나도 되는 거야? 저 사람들은 너만 보고 있는데?”
마지막 신전에 도착할 때 즈음, 한빛나가 넌지시 물었다.
“그러면 나만 여기에 남을까? 아니면 우리 전부 지구를 떠나서 여기서 살까?”
“아니.”
한빛나는 고개를 저었다.
강하온과 헤어지는 것도 싫었고, 지구를 떠나 이곳에서 살기도 싫었다.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리고 저들이 진정 나를 신으로 생각한다면 오히려 내가 없는 게 좋을지도 모르지.”
“응? 그건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야, 신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그저 믿음의 대상으로만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
강하온은 50년간 판게아에서 지내면서 겪은 것이다.
신이 실존한다는 것은 그리 좋지 않았다.
모든 신이 그러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신이라고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권력에 취해서 인간의 믿음을 이용하는 존재들도 많았고, 오히려 실존하는 신이기에 새로운 욕망을 자극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강하온은 굳이 신이 실존해서 좋을 건 없다고 생각했다.
“너 뭔가 어색해.”
“응?”
한빛나의 말에 강하온은 고개를 갸웃했다.
“강하온 맞아?”
강하온은 이제야 한빛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과거의 강하온은 찌질한 남자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못 미더운 남자와 왜 결혼했는지까지 궁금할 정도로 말이다.
“왜? 네가 알던 찌질이가 아니라서?”
“아니······, 그런 말이 아니고······.”
한빛나는 움찔 놀라더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강하온은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감히 서방님을 진짜 그렇게 생각했단 말이야?”
“꺄악!”
강하온은 박력 있게 한빛나를 앞으로 들쳐메면서 말했다.
“이거 혼 좀 나야겠는데?”
“······.”
평소였으면 이런 말에 화냈을 한빛나였지만, 지금 한빛나는 완전히 달라진 강하온의 모습에 심장이 터질 거 같아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런 반응에 오히려 강하온이 더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뭐, 그냥 나도 이제 아빠니까 달라져야지.”
강하온은 괜히 이상해진 분위기에 화제를 돌렸다.
“멋있네.”
한빛나는 강하온의 마음을 느꼈는지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제 도착했네, 집으로 가보자.”
강하온은 마지막 여신의 근원이 있는 신전에 도착했다.
그는 곧바로 마지막 여신의 근원에 손을 얹었고, 지금까지 하고는 다르게 초록빛이 번쩍이며 강하온의 눈에 환상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