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제카의 후회.
165. 제카의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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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모은 라프 일족의 생명력을 모두 소화한 제카의 힘은 막강했다.
수십 명이 넘어가는 암인을 압도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박빙의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현재 제카과 전부를 벌이는 암인을 이끌고 나타난 열한 번째 사도 콜리스였다.
그는 전력을 다해서 바로 제카를 공격하려 했지만, 이상한 느낌에 잠시 멈추고 제카를 지켜봤다.
『저놈······, 뭔가 낯이 익단 말이야.』
콜리스는 암인과 전투하는 제카의 모습이 이상하게 익숙했다.
분명 지금 제카는 처음 보는 것이 분명했는데 말이다.
『어째서 이 상처가 네놈에게 반응할까?』
콜리스는 자신의 왼쪽 가슴에 손을 얻었다.
그곳에는 자신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흉터가 남아 있었다.
과거에 이곳의 원주민과 싸우다 생긴 흉터였다.
『설마 그때 그 꼬맹이?』
순간적으로 콜리스의 머리에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있었다.
『크하하하! 이제야 기억났다.』
콜리스는 광소를 터트리자, 어둠으로 이루어진 콜로스의 몸이 일렁거렸다.
『그때 주지 못한 선물은 지금 주도록 하지.』
찢어진 입꼬리.
섬뜩한 미소를 지은 콜리스의 손에는 거대한 어둠의 활이 만들어졌다.
『한심한 놈들, 전부 물러나라!』
콜리스는 제카를 상대로 고전하는 암인들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암인들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고, 콜리스는 그대로 당기고 있던 시위를 놓았다.
팽팽하던 전투의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슈욱-!
길게 늘어진 검은 빛의 궤적.
그 손을 떠난 화살은 검은 레이저 같았다.
실제 화살의 담긴 위력도 엄청났다.
“!!!”
제카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보고는 재빨리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화살의 속도는 그의 예상을 넘어섰다.
‘흘려낸다.’
제카의 재능은 라프 일족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였다.
그는 화살을 막는 것은 자살 행위라는 것을 짧은 시간에 파악했다.
살 방법은 화살을 흘려내는 것뿐이다.
그는 오른 주먹에 힘을 모은 뒤, 정면에서 날아오는 검은빛의 화살을 쳐냈다.
콰앙-!
두 힘은 부딪히는 것만으로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초록빛과 검은빛이 터져 나왔다.
“크윽······.”
빛이 사라지고, 들려오는 것은 제카의 신음이었다.
화살을 흘려내기는 했지만, 그 힘이 너무 강력해서 완벽히 해낼 수는 없었다.
그의 손에는 뼈가 드러날 정도의 상처가 생겨 있었다.
『크하하하, 그걸 흘려? 역시 제법이네.』
콜리스는 제카가 공격을 막아낸 것을 보자, 웃으면서 즐거워했다.
『네놈, 그때 그 꼬맹이 맞지? 조금 전 화살은 그때 너한테 주지 못했던 선물이다.』
“······.”
콜리스의 물음에 제카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었다.
이러한 제카의 모습은 콜리스한테 충분한 대답이 됐다.
『우리 만난 적 있지? 그때, 네 놈이 울면서 도망갔던 것이 아직도 선명해.』
“······.”
제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콜리스는 대답을 들 생각으로 한 질문도 아니었기에 자신의 할 말을 이어갔다.
『네놈 아비가 어떻게 죽어갔는지 아나? 크크큭, 전신에 화살이 쓰레기 같은 네놈들을 살리겠다고 전신에 화살이 꿰뚫린 채 죽었다.』
『이놈!』
제카는 언제나 이런 날을 생각했었다.
암인들이 쳐들어오면, 어렸던 자신과 일족을 지켰던 선대 족장인 아버지처럼 목숨을 걸고 지키겠노라고.
그렇기에 언제나 죽을 생각을 했고, 이번 전투도 담담하게 임했다.
하지만 지금 처음으로, 그의 감정은 폭발했다.
과거, 어렸던 그의 실수로 암인에게 은신처가 노출됐고, 그로 인해서 아버지가 희생해서 일족을 구한 것은 그의 평생 후회며 역린이었다.
『네놈은 꼭 죽여버리겠다!』
제카는 그 언제보다 분노했지만, 이 상황에 감사했다.
그는 아버지가 여신의 품으로 돌아간 그 날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빼지 않고 기도했다.
아버지의 목숨을 빼앗은 열한 번째 사도 콜리스, 그자를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 있게 해달라고.
그는 지금이 그 기회라고 생각했다.
『네놈이 날? 그게 가능하다면 어디 한번 해봐라.』
콜리스는 제카를 비웃으며 활시위를 당겼다.
‘최대한 속도를 올린다.’
제카는 분노에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 그의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
그 어떤 분노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머리는 차갑게 이성을 유지하고, 분노는 가슴에 담아 뜨겁게 하라고.
제카는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항상 가슴 속에 담고 살아왔다.
‘속도를 최대로 올린다.’
라프 일족의 진정한 힘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인한 육체다.
그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육체를 활용하는 방법이 발달했다.
제카는 자신의 몸 근육을 가장 날렵한 형태로 바꿨다.
실시간으로 넓었던 상체는 얇아지면서 다리 근육이 비약적으로 두꺼워졌다.
‘지금이다.’
제카는 콜리스가 활시위를 당기는 순간, 곧바로 움직였다.
아까는 기습이었지만, 이미 공격을 한다는 것을 아는 순간 활을 피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활은 조준한 방향으로 움직였으니까.
쾅-! 쾅-!
제카는 콜리스가 쏘는 족족, 화살을 피해냈다.
그 때문에 화살은 애꿎은 곳에 맞으면서 커다란 구덩이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피하기만 하면 날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콜리스는 제카를 비웃었다.
“······.”
제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그럴 정신이 없었다.
콜리스의 활이 예상보다 훨씬 위력적이었기 때문이다.
피할 수는 있지만, 피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대로는 안 된다.’
제카는 지금 이 상태로는 콜리스를 죽이기는커녕, 한 번의 공격도 제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조금만 더 버틴다.’
알고 있었지만, 제카는 지금 상황을 더 유지했다.
지금 그의 감각에 떠나는 라프 일족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각을 완전히 벗어나면, 그때 전력을 다해서 싸울 생각이었다.
‘이제 됐다······.’
제카는 자신의 감각에서 라프 일족이 완전히 벗어난 것을 느꼈다.
그는 곧바로 전력을 끌어올렸다.
투드득-!
근육이 엄청난 속도로 자라나면서 제카의 몸이 커졌다.
마치 근육으로 이루어진 갑옷을 입은 것처럼 엄청난 위압감을 뿜어냈다.
『그래, 그렇게 끝까지 발악해봐라.』
콜리스는 여전히 제카를 비웃으며 활시위를 당겼고, 검은빛 화살은 제카에게 적중했다.
쾅-!
이번에도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하지만 먼지구름이 사라진 뒤, 드러난 제카의 모습은 멀쩡했다.
『네놈, 지금 정상이 아니구나.』
그는 지금의 공격을 막고 느꼈다.
콜리스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그가 기억하는 콜리스의 위압감은 이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
시종일관 웃던 콜리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제카의 말대로 그는 정상이 아니었다.
과거, 자신의 목숨을 건 제카 아버지의 공격에 입었던 상처가 아직도 회복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혼 자체에 받은 타격이라 회복이 쉽지 않았다.
『버러지 같은 새끼······, 네놈도 네 아비처럼 똑같이 전신에 구멍을 뚫어서 죽여주마.』
콜리스는 분노했다.
벌레라고 생각했던 제카가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쾅-! 쾅-!
그때부터 전투는 단순해졌다.
콜리스는 죽일 듯 제카를 노려보며 활을 쏴댔고, 제카는 우직하게 활을 막으면서 앞으로 전전했다.
제카의 몸에는 화살을 막을 때마다 상처가 생겨났다.
하지만 제카는 굳이 그 상처를 회복하는 데 자신의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
‘치명상이 아니면 무시해도 돼.’
생명력으로 세포를 재생시키는 것은 상당한 힘을 소모한다, 그것이 작은 상처라고 한들.
하지만 그의 생명력이 아무리 방대하다고 해도 한계는 있었다.
지금 전투 형태를 유지하는 데에도 엄청난 생명력을 소모하는데, 굳이 자잘한 상처를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일단 녀석에게 붙기만 하면 된다.’
제카는 콜리스한테 붙기만 하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콜리스의 공격 스타일 때문에 다른 암인은 끼어둘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단 한 번만’
제카는 두 번도 필요 없었다.
단 한 번, 자신의 영혼까지 전부 태운 공격 한 방이면 콜리스를 처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크윽······.”
어둠의 화살에 담긴 힘, 고통을 자극하고 회복을 더디게 만들었다.
제카는 몸 곳곳에서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이를 악물고 계속 앞으로 나갔다.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그는 죽는 한이 있어도 콜리스의 죽음을 본다면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날 수 있었다.
『저 미친놈이······.』
우직하게 공격을 받아내면서 오는 제카의 모습은 콜리스의 공포를 자극했다.
그의 영혼에 치명상을 남긴 그의 아버지의 모습과 오버랩 됐기 때문이다.
『전부 저 녀석을 막아라!』
공포를 느낀 콜리스는 자신의 말을 번복하면서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본인은 그것조차 인지하지 못 하고 있었다.
『굳이 방패를 준다니 고맙군.』
『커억!』
제카는 지켜보던 암인의 참여가 고마웠다.
곧바로 암인의 목덜미를 잡아 방패처럼 화살을 막아냈다.
『무슨······.』
콜리스는 무식한 제카를 보며 움찔했다.
끔찍한 상처를 입었던 그때가 절로 떠올랐다.
『죽어!』
콜리스는 공포를 분노로 이겨냈다.
그는 쉬지 않고 활시위를 당겼다.
쾅-! 쾅-! 쾅-!
그의 공격은 더 빠르고 강해졌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제카는 머리가 하얗게 될 정도의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묵묵히 앞을 걸었다.
이런 고통보다, 자신을 평생 괴롭힌 후회는 훨씬 더 고통스러웠다.
참아낼 수 있었다.
터벅-.
결국, 제카는 콜리스의 앞에 도달했다.
『죽어라······.』
제카는 자신의 가진 모든 힘을 다해서 콜리스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탁-.
그의 주먹은 힘없이 콜리스의 가슴에 부딪혔다.
그가 원하는 대로 콜리스에게 부딪혔지만, 그의 힘은 이미 소진된 상태였다.
방대했던 생명력은 한 줌도 남지 않았다.
털썩-.
제카는 힘없이 콜리스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크하하하, 결국에 이기는 건 나다!』
조금 전까지 공포로 물들어있던 콜리스는 제카를 보며 광소를 터트렸다.
그리고는 활시위를 다시 당겼다.
탕-!
하지만 그의 화살을 제카에게 닿지 못했다.
검은 화살은 제카가 아닌 하늘로 향했다.
『커억······.』
콜리스의 몸을 감싸고 있었던 어둠은 전부 흩어졌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가슴을 꿰뚫고 튀어나온 하얀 손을 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 늦었네.”
이어서 탄식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강하온이었다.
파사삭-!
콜리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과 함께 가루가 되어서 사라졌다.
서걱-! 서걱-!
강하온은 놀라서 멍하니 서 있는 암인들을 향해서 손을 휘둘렀다.
남은 암인들 역시, 전부 영혼까지 소멸 돼서 흩어지며 사라졌다.
이제 남은 것은 제카를 돕기 위해서 남았던 전사들과 비쩍 말라 버린 제카뿐이었다.
『나름 일찍 온다고 했는데······, 미안합니다.』
강하온은 제카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이건 자신의 실수가 맞았다.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
『고맙네, 덕분에 후회를 남기지 않고 떠날 수 있겠어······.』
제카는 웃으면서 마지막 말을 남기고, 초록색 입자가 되어 사라졌다.
“······어둠을 걷어준다는 약속은 지키겠습니다.”
강하온은 한동안 제카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다, 신전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