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죽어가는 차원, 테라.
160. 죽어가는 차원, 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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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마나가 사라지기 전, 차원을 강제로 베고 그 안으로 몸을 들이민 강하온은 죽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강하온은 이미 대수림을 나올 때 즈음, 거의 완성된 무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죽음이라는 것을 걱정하는 것은 대수림 때가 마지막이었다.
‘역시 죽음이란 무섭네.’
강하온은 잊었던 감정을 떠올렸다.
스스로 죽는 것은 상관없었지만, 한빛나를 찾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는 나래한테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무서웠다.
“그나저나 느낌부터 불길하네.”
잠시 누워서 바닥이 쉬던 강하온은 주위를 살폈다.
어두컴컴한 하늘, 주위에는 모든 것이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거의 생명을 다했군.』
그때, 대교주의 목소리가 들렷다.
“생명을 다했다니?”
『말 그대로다, 이 차원은 이제 유지할 힘이 없다는 거지. 아마도 암인 녀석들 짓거리겠군.』
“자세히 말해봐.”
강하온의 말에 대교주는 지금의 차원이 왜 이런 모습인지 설명했다.
모든 것은 암인 때문이었다.
광인을 피해서 도망갔던 암인은 강제로 다른 차원에 정착해야 했고, 상처 입은 테스를 치료하기 위해서 강제로 차원의 힘을 빨아들인다는 거였다.
결국, 암인들은 자기들이 살기 위해서 주인이 있는 차원에 강제로 기생해서 살아가는 기생충 같은 놈들이었다.
“역시, 이 새끼들도 더러운 새끼들이었네.”
강하온은 암인은 피해자 쪽이라고 생각했다.
광인의 횡포를 버티지 못한 그런 피해자.
물론, 그렇다고 자신들을 위해서 한빛나를 이용한 것은 용서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그런 생각이 있었다는 거다.
그런데 지금 강제로 잘 살아가던 차원을 강제로 점거하고, 결국에는 멸망의 길까지 가게 만드는 암인을 보자, 애초에 쓰레기 같은 놈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광인이나 암인, 이 녀석들은 기본적인 인간의 상식과는 어긋한 녀석들이었다.
『······.』
강하온이 기준에서 한 말임을 안 대교주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이봐, 빛나는 지금 이 차원에 있는 게 맞나?”
『확실하다, 그런데 나도 조금 전 여파로 연결이 희미해져서 정확한 위치를 할 수는 없다.』
대교주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지금까지 본 강하온의 성격이라면 뭐라고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됐다.”
하지만 강하온은 뭐라고 하지 않았다, 이건 애초에 작정하고 암인이 막아서 생긴 일, 대교주를 탓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그나마 현재 있는 차원에 한빛나가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그나저나 상황이 좋지 않네.’
강하온은 현재 자신의 몸을 관조했다.
‘진짜 아무것도 남지 않았군.’
거짓말같이 몸속에 그 어떤 마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틈새의 여파인가 보네.’
상황이 좋지 않은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체내의 마나를 다시 채우기 위해서는 흡수를 해야 하는데, 현재 강하온이 있는 근처에는 마나가 1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차원 전체가 어떨지는 모르지만, 일단 지금 강하온이 있는 일대는 완전히 죽어버린 땅이 맞았다.
“······아공간도 문제군.”
마나가 없으니 아공간도 열 수가 없었다.
“이봐, 내 아공간을 대신 열 수 있냐?”
『가능할 거라고 말하는 건가?』
강하온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대교주한테 물었지만, 원하는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빌어먹을 상황이군.”
마음 같아서는 빠르게 한빛나를 찾아서 돌아가고 싶었지만, 힘을 회복할 시간을 벌어야 했다.
“일단 마나부터 어떻게 해야겠어.”
아공간을 열 수 있는 한 줌의 마나라도 생기면 모든 게 해결된다.
지금 그의 아공간에는 마나를 채울 수 있는 영약들이 넘쳐났다.
특히, 베히모스의 심장을 구한 덕에 강하온의 아공간에는 질최종의 마나 코어가 잠들어 있었다.
“제발 근처에 있어라.”
강하온은 곧바로 감각을 확장 시켜서 마나를 찾았다.
감각은 타고난 힘이다.
마나가 없어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가 좋지는 않았다.
“이건 그냥 걷는 수밖에 없겠네.”
상당히 멀리까지 확인해봤지만, 그 어떤 마나의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강하온은 마나가 있을 만한 곳을 향해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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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테라’ 그곳은 생명력이 가득한 차원이었다.
자연은 아름다웠고, ‘테라’의 존재들은 기본적으로 평화를 사랑했다.
그래서 차원에 해가 되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테라’의 주신은 생명의 신, 테메르였다.
그녀는 태초신이 만든 최초의 12신에 포함되는 존재로, 그녀가 가진 생명 에너지는 엄청났다.
하지만 그런 강력한 힘을 가졌음에도 그녀는 오로지 평화밖에 모르는 존재였다.
그 때문에 창조주를 공격할 때도 그녀는 참여하지 않았고, 시온이 분해 됐을 때도 조용한 곳을 찾아서 온 그녀였다.
그런데 어느 날, 평화로운 나날만 있을 거 같았던 ‘테라’에 방해꾼이 나타났다.
『테스, 당장 제가 있는 차원에서 떠나세요.』
그들은 어둠의 신 테스와 그를 따르는 암인이었다.
빛의 신 누스와의 전투에서 큰 상처를 입은 그들이었다.
『······테메르, 네가 있던 차원이었군. 잠시 상처만 회복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도 되겠나?』
『······상처가 회복되는 대로 곧바로 떠나라.』
테메르는 당장에 테스를 비롯한 암인을 쫒아내려고 했지만, 이미 안면도 있는 사이에다, 상처를 입은 것을 보니 착한 그녀로서는 모질게 대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테라’에게 찾아온 불행의 시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문제는 바로 발생했다.
“생명의 여신, 테메르시여! 타 차원의 이방인들로 인해서 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강이 마르고 있습니다.”
‘테라’ 곳곳에서 이상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를 모시는 신도들이 말을 했지만, 그녀는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했다.
워낙 착한 성정을 가진 그녀였기에, 테스한테 모질게 대하기 싫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가장 큰 실수였다.
테스를 비롯한 암인을 차원에 처음 들인 것보다 말이다.
“테메르시여! 더는 이방인들을 둬선 안 됩니다! 그들 때문에 여신의 신도들이 평생 살아온 터전을 버리고 떠나고 있습니다.”
“이미 일부 지역은 죽음의 땅이 되었습니다, 그 어떤 생명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결국 우리의 터전은 전부 죽어갈 것입니다.”
생명의 여신, 테메르가 조금만 더 기다리자는 마음을 먹은 사이 ‘테스’는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 차원 자체의 생명력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알겠어요, 그들을 보내겠습니다.』
결국, 테메르는 결단을 내렸다.
과거의 인연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녀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테라’의 원주민, 자신을 주신으로 받드는 신도들이다.
과거의 인연보다, 자신을 믿는 신도가 더 중요했다.
『테스, 이만 떠나줬으면 해요.』
『이제 거의 회복이 됐다, 조금만 더 시간을 줘.』
『안돼요! 당장 내 차원에서 떠나세요.』
테메르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면 네가 강제로 하던지, 대신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네가 사랑하는 이 차원의 원주민들의 생명도 많이 사라지겠지.』
그리고 그녀의 달라진 모습에, 테스도 본성을 드러냈다.
애초에 테스는 자신의 아버지나 다름없는 창조주를 공격했던 신 중 하나였다.
비록 지금은 누스한테 밀려서 도망 다니는 처지가 됐지만, 그 역시 누구보다 힘을 갈망하는 존재였다.
『어, 어떻게······.』
예상하지 못한 테스의 모습에 테메르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금방 정신을 차렸다.
『역시, 처음부터 당신을 받아줘선 안 됐어요, 지금이라도 강제로 내보내겠습니다.』
생명의 여신 테메르, 그녀는 자신의 차원과 차원에 주민들을 위해서 처음으로 분노했다.
최초의 12신, 베히모스 만큼이나 강력한 힘을 가진 그녀가 마음을 다하자, 그 힘은 엄청났다.
‘테라’ 전체가 그녀의 힘에 물들었다.
죽어갔던 구역은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시온에서부터 느꼈지만, 네가 가진 힘은 엄청나. 이제는 내게 넘겨라.』
테스는 테메르의 힘을 탐욕적이게 바라봤다.
그렇게 최초의 12신 중 둘의 전투가 시작됐다.
결과는 당연했다.
테스조차 부러워할 정도의 강력한 힘을 가진 테메르, 어느 정도 상처를 회복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테스.
당연히 테메르가 이기는 것이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당장······, 이곳을 떠나세요······.』
전투에서 패배한 것은 테메르였다.
어찌 보면 이 결과가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강력한 힘을 지녔지만 싸워본 적이 없는 테메르와 평생을 힘을 갈망하기 위해서 투쟁하고 살아온 테스.
힘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전부는 단순히 힘의 크기로 하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테라’는 죽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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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가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강하온의 육체가 어디 간 것은 아니다.
지금 강하온의 육체는 각성 시스템으로 인해서 말도 안 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육체의 힘으로 웬만한 광물도 전부 우그러트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 육체를 바탕으로 강하온은 빠르게 죽어버린 땅을 가로질렀다.
『엄청나군······, 그대는 진짜 인간이 맞기는 한 건가?』
마나가 없으니, 당연히 아공간으로 다시 들어갈 수 없는 대교주였다.
대교주는 마나 한 톨도 없이, 말도 안 되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강하온을 보며 물었다.
놀라기도 놀랐지만, 그냥 너무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이아가 가진 태초신의 파편의 힘으로 각성 시스템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그럼 인간이 아니고, 내가 신으로라도 보여?”
『······.』
대교주는 대답하지 못했다.
분명 신으로 보이지만, 그의 육체는 신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건 신경 쓰지 말고, 빨리 기척이나 찾아봐. 아니면 마나라도.”
『······알았다.』
대교주는 군말 없이 대답했다.
마음 같아서는 강하온이 지금 여기 있는 차원에서 죽어버리고, 누스한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그의 느낌상 강하온은 어떻게든 살아남을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랬다가 약속했던 거래가 없어질까 봐 조심해야 했다.
“그런데 테스라는 놈은 어떤 놈이지?”
강하온은 문득 궁금했다.
누스처럼 테스 역시, 귀찮은 잔재주를 쓸지도 몰랐으니 말이다.
『뭘 말하는 거지?』
“그 녀석이 어떤 힘을 쓰나, 또 암인 녀석들도 어떤 힘을 쓰냐 묻는 거지.”
『강함을 묻는 거군, 그대가 한 질문의 답은 ‘강하다’다. 비록 우리가 이기기는 했지만, 한 끗 차이였을 뿐이다.』
“자세히 좀 말해봐.”
앞으로 암인은 물론, 테스와의 전투는 예정된 상황이다.
미리 들어놔서 나쁠 건 없었다.
놈들이 한빛나한테 개 같은 수작을 부려놨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누스님과 테스는 상반되는 존대다. 그래서 누스님이 정신적인 힘이 더 강하다면, 반대로 테스는······.』
“잠깐만 조용히 해봐.”
대교주가 한창 설명하려는 그때, 강하온은 그의 말을 끊었다.
“찾았다.”
강하온의 얼굴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저기 멀리, 처음으로 살아있는 존재를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