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 찾으러 갈 준비.
158. 찾으러 갈 준비.
#
은순이는 자신의 실험실로 들어오자마자, 공간 확장 마법을 사용해서 실험실을 넓혔다. 제대로 된 준비를 하기 위해서 베히모스의 심장을 놓은 곳이 필요했다.
공간 확장 마법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은순이 수준의 마법사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은순이의 실험실이 순식간에 몇 배는 넓어졌다.
쿵-!
은순이는 넓어진 실험실 한쪽에 베히모스의 심장을 꺼냈다.
새로 생긴 공간 한쪽이 노란빛 보석으로 가득 찼다.
게다가 실험실 안에 마나 농도가 두 배 이상 짙어졌다.
전부 엄청난 양의 마나를 담고 있는 베히모스의 심장 때문이었다.
『엄청나군······.』
플라스크 안에서 가만히 은순이를 지켜보던 대교주는 감탄했다.
정순한 순도를 가진 마나, 게다가 무시무시할 정도로 많은 양.
광인 수천 명, 아니 수만 명보다도 훨씬 많은 가치를 가진 마나였다.
“이 정도면 가능하겠지?”
『물론이다, 이 정도 양이라면 몇 번이고 해도 상관없을 정도다.』
“바로 준비하지.”
은순이는 바로 대교주가 한빛나를 찾을 수 있는 준비에 들어갔다.
#
다음 날, 강하온의 일상은 평소와 달랐다.
원래였다면 온종일 드라쿨, 바오, 세주와 특훈을 했겠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셋에게 자율 시간을 주고, 오랜만에 나래와 단둘이 시간을 가졌다.
레아와 호이가 따라오고 싶어서 하는 눈치였지만, 은순이와 잠시 대화의 시간을 갖더니 조용해졌다.
덕분에 나래와 단둘이 있을 수 있었다.
“나래야, 갈까?”
“네!”
나래는 강하온의 손을 잡고 배시시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럼 가기 전에 친구들 선물 사러 갈까?”
“네!”
오늘 처음으로 갈 곳은 나래가 강하온이 오기 전까지 머물렀던 보육원이다.
그렇게 둘은 보육원 근처에 대형 마트로 이동했다.
“아빠, 이거 사도 돼요? 저거 민지가 좋아하는 건데.”
마트에 도착한 나래는 과자 봉지가 가득한 곳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서 그런지 들떠 있었다.
“물론이지, 다 사도 되니까 사고 싶은 거 다 골라.”
“네!”
나래는 친구들을 좋아하는 것들을 다 기억하는지, 마트 곳곳을 돌면서 카트를 채웠다.
그렇게 마트에서 양손 무겁게 나온 뒤, 보육원으로 향했다.
“오랜만입니다, 나래 아버님. ”
“안녕하세요, 마가렛 원장님.”
보육원에 도착하자, 마가렛 원장이 두 사람을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마가렛 원장님!”
나래는 마가렛 원장을 보자 기분이 좋았는지, 달려가서 그녀의 품에 안겼다.
이미 영약으로 웬만한 육체계열 각성자보다 강해진 나래라 그 속도가 상당했지만, 마가렛 수녀 역시 강한 헌터였기에 쉽게 받아냈다.
“우리 나래, 잘 있었는지 살이 아주 포동포동해졌네.”
마가렛 원장은 나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네! 요새 아빠가 맛있는 것도 많이 해주고, 나래 동생도 생겼어요.”
“그래? 나래한테 동생이 생겼어?”
“레아인데, 엄청 착해요! 그리고 엄청 많이 먹는데······.”
나래는 마가렛 원장에게 그간 못했던 얘기를 쉬지 않고 떠들었다.
“그렇구나, 엄청 대단하네.”
마가렛 원장은 나래의 말에 하나하나 웃으면서 좋아했다.
꼭 손녀를 보는 할머니 같은 모습에 강하온은 자주 데려올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일만 다 해결하면 종종 와야겠네.’
강하온은 한빛나와 레이나를 찾아오고, 평화로운 일상이 오기를 기도했다.
“일단 들어갈까요?”
“그러죠.”
강하온과 나래는 마가렛 수녀를 따라서 보육원으로 들어갔다.
“원장님, 호이도 있어요. 호이는 흰 돌고래인데, 아빠가 예전에 수족관에서 구해준 친구에요.”
나래는 집에 있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에 대해서도 빠짐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굳이 알려져 봐야 좋을 건 없어서 화제를 돌릴까 했는데, 그냥 놔두기로 했다.
“그래? 돌고래 친구도 있구나. 뱀파이어 삼촌도 있고?”
“네! 은순이 이모는 엄청 큰 용이에요!”
“그래? 엄청나구나.”
마가렛 원장은 완전히 나래 말을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
하긴,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그냥 허무맹랑한 얘기다.
마치, 어릴 때 사실 삼촌은 도깨비라고 장난치는 것 같았다.
마가렛 수녀는 지금 같이 사는 존재들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래다!”
“나래야!”
잠시 후, 예전에 나래가 있던 건물에 도착했다.
건물 앞에는 나래가 올 줄 알았는지,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처음 강하온을 공격했던 유리아 수녀도 있었다.
“헤헤, 안녕!”
나래는 오랜만에 보는 보육원 사람들에 배시시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게다가 많이 들떴는지, 염동력으로 자신의 몸까지 띄우면서 말이다.
“우와! 나래가 두둥했다!”
그 모습에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나래를 쳐다봤다.
“참 밝은 아이예요.”
마가렛 수녀는 금방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나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를 많이 닮았거든요.”
항상 느끼는 거지만, 유전이라는 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학창시절, 한빛나도 나래처럼 주변의 친구들을 밝게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나래 엄마를 찾는다고 했죠? 찾으셨습니까?”
마가렛 원장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찾았습니다.”
“다행이네요.”
마가렛 수녀는 잠시 놀랐다가 이내 환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사실 그녀는 한빛나가 죽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었기 때문이다.
강하온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했었다.
“이제 곧 찾으러 갈 거 같습니다, 다음에는 빛나랑 같이 오겠습니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인자하게 웃는 마가렛의 말에 강하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강하온도 한빛나를 찾는다면 이곳을 가장 먼저 올 생각이었다.
자신과 한빛나가 없는 사이, 나래를 지켜주고 보살펴준 곳이었으니까.
그들에게 보육원은 최고의 은인이었다.
“참, 아이들한테 선물을 주려고 가져왔는데 깜빡했네요.”
강하온은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났다.
너무 아이들이 즐겁게 놀아서 선물 줄 타이밍을 놓쳤다.
“또요? 안 그래도 너무 많이 보내서 말하려고 했는데.”
마가렛 수녀는 골치 아프다는 듯 말했다.
보육원 아이들 모두, 나래의 친구들이었기에 강하온에게는 지켜야 할 사람들에 들어갔다.
그래서 이곳에 오지는 못했어도, 항상 지원은 하고 있었다.
각종 선물은 물론, 음식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최고로 지원해주고 있었다.
어차피 강하온에게 돈은 그저 숫자일 뿐, 신경 쓸 요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담스러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없는 동안 나래를 돌봐주신 것을 생각하면 한참 부족하니까요.”
강하온은 모든 사실을 알았을 때 심장이 철렁했다.
만약, 나래가 마가렛 원장이나 유리아 수녀, 그리고 보육원 아이들처럼 착한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끔찍했다.
그 때문에 보육원 사람들에게는 항상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마가렛 수녀는 이미 몇 번 말해봤지만, 강하온의 태도가 확고하다는 것을 느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럼 저는 애들 밥이나 준비하러 가보겠습니다.”
“그런 건 항상 환영입니다, 대신 적당히 맛있게 해주세요. 애들이 나래 아빠가 해준 밥 먹고 다음 날 밥을 안 먹는다고 수녀님들이 우는소리 하느라 애 좀 먹었거든요.”
“그건 좀 힘든데, 노력해보겠습니다.”
강하온의 장난스러운 말에 마가렛 수녀는 크게 웃었다.
“그럼, 준비하러 가보겠습니다.”
강하온은 주방으로 향했다.
“또······오셨네요.”
“아, 그렇게 됐습니다.”
주방으로 들어가자, 수녀들이 떨떠름하게 강하온을 맞이했다.
그 모습에 강하온은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혹시 옆에서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도와요?”
수녀들은 의외라는 듯 강하온을 쳐다봤다.
저번에 강하온 혼자 했기 때문이다.
“옆에서 조금 보조해주시면서 어떻게 만드는지 보면 좋을 거 같아서요, 다음에 애들 해줄 때 만들어주시면 되니까.”
“좋아요!”
“맞아요! 도울게요!”
수녀들의 태도는 급변했다.
사실 그녀들은 괜한 자존심 때문에 말하지 않았지만, 강하온에게 요리 레시피를 묻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이죠, 그럼 요리를 할 테니까 옆에서 재료 준비만 도와주세요.”
“네!”
강하온은 곧바로 요리에 들어갔다.
사실, 강하온이 도와달라고 했지만, 수녀들이 할 일은 없었다.
재료를 가져오는 것은 마법을 사용하면 됐고, 칼질은 직접 움직였다.
애초에 수녀들한테 도움을 받으려고 부탁한 게 아니었다.
“어, 저기에는 토마토가 들어가는구나.”
수녀들은 수첩에 강하온의 레시피를 적으면서 감탄했다.
강하온이 원한 모습 그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카레 할 때는 토마토를 갈아서 넣으면 감칠맛이 살아납니다.”
“아! 감칠맛, 그래서 그런 맛이 났구나.”
“초콜릿이나 코코넛 밀크를 넣어줘도 좋습니다.”
“카레에 그런 것도 넣어요?”
“네, 넣어주면 부드러워질 거에요.”
강하온은 마치 요리 선생임처럼 수녀들에게 하나씩 가르쳐줬다.
맛있는 요리를 배우는 것은 수녀들에게도 좋은 거지만, 아이들한테도 좋은 일이었다.
최고의 재료를 쓰는데, 이왕이면 최고의 맛을 먹는 게 좋으니 말이다.
“전부 식사하세요!”
잠시 후, 모든 음식이 완성됐다.
원래 강하온 혼자 하는 것보다 조금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수녀들에게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
“우와! 맛있는 음식이다!”
“맞아! 나래네 아빠가 해준 밥이 제일 맛있어.”
“나도! 수녀님 건 맛없어!”
워낙 순순한 아이들이다 보니, 수녀들한테 상처 주는 말도 했지만, 그래도 전부 좋아했다.
“애들아······, 이번에는 우리도 같이 준비했어.”
보고 있던 수녀는 이를 악물고 아이들한테 말했다.
“······.”
그 순간 아이들이 멈칫했고, 그 모습은 수녀들을 더 슬프게 했다.
역시 아이들은 정직했다.
“맛있다!”
“진짜! 맛있어!”
다행히 걱정과 달리 아이들은 맛있었는지 맛있게 음식을 먹으면서 식사는 끝이 났다.
#
강하온과 나래는 점심을 먹고, 조금 더 보육원에서 놀다가 나왔다.
“나래, 오늘 즐거웠어?”
“네! 너무 재밌었어요!”
나래는 아직도 기분이 좋은지, 염동력으로 몸을 띄우고는 강하온의 주위를 돌아다녔다.
주위에 사람들이 있기는 했지만, 강하온이 이미 왜곡 마법을 사용해서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아빠 어디 가요? 집에?”
나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과연 어디 갈까?”
“모르겠어요.”
“나래 옷이나 사러 가려고.”
“옷? 나래 옷 많은데.”
“그래? 그러면 가지 말까?”
“아니요!”
나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지만, 정작 가지 말자고 하니 고개를 단호하게 접었다.
진짜 모델이라도 되고 싶은 건지, 옷에 관한 관심은 확실했다.
“그래, 예쁜 옷 사러 가자.”
강하온은 나래와 함께, 단골 샵인 ‘프린세스 메이커’로 향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성공한 디자이너의 모습으로 변한 이정현이 인사하며 다가왔다.
“예쁜 옷이 필요해서요.”
“그런 거라면 환영합니다, 안 그래도 나래가 입었으면 해서 만들어놓은 옷이 많거든요.”
이정현은 기다렸다는 듯, 여러 벌을 옷을 가지고 나왔다.
전부 하나하나가 감탄이 나올 정도로 예쁜 옷이었다.
“전부 주실래요?”
“네, 바로 준비해드릴게요.”
그렇게 옷까지 사고, 강하온은 나래와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강하온은 나래와 마당에 있는 그네에 탔다.
“나래야, 엄마 보고 싶지?”
“······.”
평소였으면 크게 대답했을 나래였지만, 나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부터인지 내가 힘들어하는 것 느꼈는지, 나래는 빛나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아빠가 엄마 찾으러 갔다 올 거야.”
“진짜요?”
나래는 놀란 눈으로 대답했다.
예전부터 궁금했지만, 강하온이 신경 쓰여서 참고 있었기 때문이다.
“응, 그래서 아빠가 며칠 어디 갔다 올 수도 있어.”
오늘 강하온이 나래를 데리고 나갔다 온 이유가 이거였다.
다른 거였다면 모르겠지만, 대교주이 말이 이번에 가는 차원은 시간의 흐름이 다를 수도 있다고 했다.
물론, 그 차이는 크지 않지만, 적어도 며칠의 차이가 생겨날 수 있다고 했다.
“······.”
나래는 불안감에 강하온의 옷 끝을 꽉 잡았다.
혹시라도 강하온도 엄마인 한빛나처럼 사라질 거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강하온이 곁에 없어도 괜찮지만, 완전히 며칠 떨어진다고 하니 무서웠다.
“아빠가 금방 엄마랑 올 테니까, 나래 예쁜 옷 입고 기다릴 수 있지?”
“······약속.”
나래는 잠시 조용히 있다가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래, 약속.”
“복사, 도장도 해야 해요.”
나래는 누구 딸인지 철저했다.
그날 밤, 강하온은 떠날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