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죄책감
147. 죄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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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온과 대교주의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서걱-! 쑤욱-!
허공을 빠른 속도로 가르는 무기들은 가볍게 대교주의 몸을 찌르고 베었기 때문이다.
대교주도 가만히 당하지만은 않았다.
지금 그의 역할은 첫 번째 사도 데미안이 가이아의 파편을 손에 넣기 전까지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힘을 주먹에 실었다.
번쩍-!
눈부신 광채가 대교주의 주먹에 실렸다.
그의 역할은 첫 번째 사도 데미안이 가이아의 파편을 손에 넣기 전까지 시간을 끄는 것.
어차피 질 걸 알았지만, 최대한 시간이라도 버티기로 했다.
『하압!』
대교주는 기합과 함께 주먹을 뻗었다.
하지만 그의 주먹은 강하온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다.
『크윽······.』
강하온의 심상으로 만든 무기는 물리법칙을 무시하듯, 가볍게 대교주의 공격을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
그 뒤로도 대교주는 속수무책으로 강하온의 공격을 당해야 했고, 전투는 끝이 났다.
“귀찮은 놈.”
강하온은 손에 든 영혼석을 보고 인상을 팍 썼다.
어차피 이렇게 될 거, 놈의 발악 때문에 피곤해졌다.
“······.”
그냥 넘어가기에 짜증이 났던 강하온은 영혼석은 마구 흔들었다.
『크아악! 이게 무슨 짓이냐!』
감각을 수십 배 이상 증폭시켜주는 영혼석 안의 환경은 정신력이 뛰어난 대교주라도 버텨낼 수 없었다.
“넌 각오해라.”
강하온은 조금 더 괴롭히고 싶었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아공간에 대교주의 영혼석을 넣고 교단의 은신처를 나왔다.
“기분 나쁜 곳이야.”
은신처에서 나오자마자, 다시 차원의 틈새 압박이 느껴졌다.
강하온은 빨리 이곳을 나가야겠다 생각하고는 은순이가 준비해준 아티펙트를 발동시켰다.
지잉-!
강하온의 앞에는 포탈이 생겨났다.
강제로 고정 좌표로 연결되는 포탈을 생성되는 아티펙트였다.
그대로 강하온은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그 고정 좌표는 강하온네 집 정원이었다.
“······.”
포탈 밖으로 나온 강하온은 멈칫했다.
망가진 정원, 무력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는 은순이를 비롯한 동료들.
불안했던 상황이 현실로 일어난 것이다.
『미안하다······.』
심각해 보일 정도로 큰 상처를 입은 세주는 강하온을 보고 말했다.
장난기 많은 세주의 다른 모습에 뭔 일이 확실히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부 괜찮아?”
하지만 강하온은 상황을 묻기에 앞서, 동료들의 상태를 물어봤다.
그가 보기에도 넷의 상태는 심각했다.
특히, 세주 같은 경우 당장에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
그들은 전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들에게는 육체적 고통보다, 레이나의 희생으로 살아남았다는 무력함이 더 고통스러울 뿐이었다.
“그럼 다행이네, 전부 쉬고 있어.”
강하온은 일단은 넷을 챙겼다.
그도 레이나의 기척이 사라진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일단 앞에 있는 넷이 먼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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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데미안을 상대하면서 큰 상처를 입었지만, 별 무리 없이 전부 회복할 수 있었다.
강하온의 아공간에 있는 수많은 영약 덕분이었다.
“고생 많았다.”
강하온은 영약을 먹자마자, 기절하듯 쓰러진 세주와 드라쿨, 바오를 놔두고는 은순이한테 갔다.
그나마 큰 상처를 입지 않았던 은순이는 아직 깨어 있었다.
“괜찮아?”
“······괜찮다.”
은순이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사실 괜찮지 않았다.
자신이 조금만 더 강했다면, 아니 강해지고자 노력을 했다면 레이나가 희생하는 일을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실제로 데미안과 레이나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강하온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물론, 결과론적인 얘기였지만, 그래도 그녀는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했다.
“이거 레이나가 남긴 거야.”
은순이는 강하온한테 편지 봉투 하나를 건넸다.
레이나의 말대로, 서랍 속에 있던 편지였다.
“나는 좀 쉴게.”
은순이는 레이나의 부탁대로 편지는 전해주는 자신의 연구실로 향했다.
“잠깐만.”
강하온은 은순이를 불러 세웠다.
“여기. 대교주의 영혼석이야.”
그리고는 아공간에서 대교주을 가둬둔 영혼석을 꺼내서 건넸다.
“알았어.”
은순이는 광기 어린 눈으로 영혼석을 건네받고 연구실로 향했다.
혼자 남은 강하온은 레이나가 남긴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하온님, 안녕하세요.
편지에는 언제 배웠는지 한글로 적혀 있었다.
강하온은 편지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일단 미안해요, 미래를 보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어겼어요.
시작은 레이나, 그녀가 미래를 읽었다는 사실로 시작했다.
강하온은 편지를 아직 읽지 않았지만, 왜 레이나가 이런 선택을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괜한 불안감에 미래를 읽었고, 처음에는 자신 제외한 모두가 죽은 미래를 봤다고 했다.
그 뒤로 수차례 미래를 확인했고, 거기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미래가 자신이 데미안을 따라가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혹시라도 저 때문에 원래 계획한 일을 포기하실 거라면 그러지 마세요, 아내분을 빨리 찾으셨으면 좋을 거 같아요.
그렇게 편지가 끝이 났다.
“후······.”
편지를 다 읽은 강하온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왜 이렇게 닮아서······.”
성격은 아내인 한빛나와 전혀 다를 거로 생각했는데, 이런 부분은 또 비슷했다.
마치 처음에 지구로 돌아와서 한빛나의 편지를 읽은 기분이었다.
대체 둘 다, 왜 그렇게 자신이 희생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년은 지만 아는 이기적인 성격인데.”
한빛나와 레이나, 둘은 가이아의 파편 일부를 가지고 있었는데, 정작 가이아는 둘하고 외모만 닮았을 뿐 전혀 다른 성격을 가졌다.
“너도 꼭 찾으러 갈게.”
강하온은 스스로 다짐했다.
한빛나를 찾는 것처럼, 레이나도 꼭 찾아오겠다고.
“이봐, 가이아.”
강하온은 하늘을 보며 가이아를 불렀다.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고, 그는 인상을 팍 썼다.
“보고 있는 거 다 알아, 대답해라.”
각성 시스템으로 육체에 막대한 포인트를 사용한 덕에, 현재 강하온의 감각은 비약적으로 높아진 상태였다.
현재 강하온은 이곳, 정확히는 자신을 지켜보는 가이아의 시선이 느꼈기 때문이다.
『왜?』
그제야 가이아는 대답했다.
지금 강하온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괜히 여기서 잘못 행동했다가는 강하온이 진짜 무슨 행동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잠시 얘기 좀 하자.”
『알았다.』
가이아는 강하온의 자신의 낙원으로 소환했다.
번쩍이는 빛과 함께, 이제는 익숙한 가이아의 낙원에 도착한 강하온은 곧바로 움직였다.
가이아의 목을 움켜쥔 것이다.
『커억! 이게 무슨 짓이야······.』
가이아는 떨리는 눈빛으로 힘들게 대답했다.
“어째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지?”
강하온은 자신이 도착하기 직전에 데미안과 레이나가 사라졌다는 말을 듣는 순간 분노했다.
하나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안일하게 작전을 실행했던 자신에 대한 분노였고, 다른 하나는 가이아였다.
가이아는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을 거다.
그런데도 나서지 않고 방관하고 있었다.
그녀가 가진 힘이라면 적어도 자신이 오기 전, 그 짧은 시간은 버틸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거짓을 말할 생각이라면 버려, 그렇다면 이대로 네 목을 꺾어 버릴 수도 있어.”
강하온은 처음부터 가이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를 판게아로 보낸 것이 가이아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한빛나와 나래는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이해했다.
자신이 판게아에 가든 말든, 어차피 교단의 지구 침략은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암인이 한빛나를 납치한 이유는 가이아가 목적이 아닌, 자신의 강함을 이용하려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레이나가 납치된 이유는 오로지 가이아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가이아는 숨어서 모든 것을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강하온의 주변에 있는 사람이 피해를 입었다.
다른 건 몰라도, 강하온은 자신의 주변 사람이 다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마, 만약에 내가 도왔다면 그 녀석들은 바로 나를 찾아서 죽였을 거다. 그러면 이 지구는 결국 멸망하게 됐을 거야.』
가이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녀는 데미안이 자신을 노린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도 세주 일행을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태초신의 파편으로 보호되는 공간이 아니라면, 자신의 힘을 노출되게 된다.
그렇다면 데미안은 바로 자신을 공격 목표로 바꿨을 게 분명했다.
애초에 그들이 레이나를 데려간 이유가 레이나 안에 있는 가이아의 파편을 이용해서 가이아를 잡을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가이아는 지구의 성계신이었고, 지구와 같은 운명 공동체나 다름 없었다.
그녀가 죽기라도 한다면, 지구 역시 멸망의 길을 걷게 됐다.
그녀는 절대 그런 선택을 할 수 없었다.
“후······.”
강하온은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글썽이는 가이아를 보며 손에 힘을 풀었다.
『쿨럭, 쿨럭······.』
그러자 가이아는 바로 주저앉아서 기침했다.
가이아가 싫기는 했지만, 그녀의 말에서 거짓은 없었다.
그녀 말대로 그녀가 죽었다면, 지구가 멸망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받아.”
강하온은 떠는 가이아한테 목걸이를 건넸다.
『이건 뭐야······.』
가이아는 조심스럽게 목걸이를 받았다.
“이제 놈들의 타겟은 너니까, 혹시라도 위험한 상황이 되면 그 목걸이를 부숴.”
나래가 차고 있는 목걸이와 똑같은 물건이었다.
절대 방패를 해주는 역할도 있었지만, 이 물건의 진정한 능력은 절대 방패로도 막지 못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 되면 강하온이 바로 소환되는 물건이었다.
마신룡의 부산물로 만든 최상위 아티펙트로, 딱 2정이 있었다.
원래 하나는 한빛나 거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 만큼 가이아한테 넘긴 것이다.
어차피 그들이 노리는 것은 가이아였기 때문이다.
강하온은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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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나가 사라진 이후, 강하온네 집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진짜 가족은 아니었지만, 짧은 시간 모두에게 항상 친절하게 행동했던 레이나였다.
피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들에게 레이나는 확실하게 동료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 다녀오겠습니다.”
“나도!”
“다녀올게!”
다만 세 아이는 달랐다.
아이들은 레이나가 잠시 협회로 돌아갔다는 얘기만 들었다.
처음에는 말없이 갔다며 서운해했지만, 금방 돌아온다는 사실에 기분이 풀렸다.
“······.”
평소였다면 호이한테 찝쩍거렸을 드라쿨은 어두운 관에 틀어 혀 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인상을 팍 찌푸렸다.
“오만했다······.”
블미르의 힘을 얻었다고, 자만하고 있었다.
강하온이나 은순이, 세주나 바오가 아니라면 절대로 지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다.
이러한 생각이 그를 다시 나태하게 했었다.
드라쿨은 그런 자신에게 분노했다.
자신의 나약함 때문에 동료를 구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내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바오도 마찬가지였다.
영역을 잡아먹는 영역, 비상식적인 영역을 얻은 뒤 바오도 나태하게 행동했다.
만약, 자신이 꾸준히 강해지려 노력했다면 레이나가 희생하는 일 같은 것은 생기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네가 뭘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빨리 부는 게 좋을 거야.”
은순이는 대교주를 섬뜩하게 심문했다.
세주 역시 이들과 같았다.
오히려 그들보다 더 큰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작전을 하자고 했던 이유는 자신의 자신감 때문이었으니까.
『하온, 강하게 만들어줘.』
며칠 동안 말없이 하늘만 보던 세주는 강하온을 찾아가서 무릎을 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