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첫 번째 사도, 데미안
144. 첫 번째 사도, 데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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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신 누스, 그는 최상위 신들과 도모해서 창조주를 잠재웠다.
그 후, 시온이 분열하며 생겨난 수많은 차원 중 한 곳에 정착했다.
『허무하군.』
그는 블미르가 참회동에 갇히는 것을 보고, 언젠가 자신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창조주를 공격했다.
그렇게 목적을 이뤘지만, 그의 마음은 시원하지 않았다.
『죽이지 못했다.』
바로 창조주를 죽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를 포함한 다른 원시의 존재들도 그렇겠지만, 불안함은 어찌 보면 명분을 챙기기 위한 핑계일지도 몰랐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창조주를 죽인 후, 그의 힘을 손에 넣은 것이었다.
하지만 창조주는 그들의 예상보다 훨씬 더 강했고, 겨우 재우는 것이 최선이었다.
『힘이 필요해.』
그리고 이번 일을 겪으면서 느꼈다.
이번에 창조주를 공격하는데 도모했던 자들, 자신을 포함한 그들은 힘을 탐하는 괴물이었다.
지금이야 창조주와의 전투 여파로 쉬고 있지만, 언젠가 전부 같이 싸웠던 동료를 탐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그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이 필요했다.
『미리 움직인다.』
잡아먹히기 싫으면 잡아먹으면 됐다.
누스가 선택한 것은 먼저 자신과 같은 힘을 탐하는 괴물들을 잡아먹는 것이었다.
『내 손발이 되어 움직일 녀석들이 필요해.』
누스는 그래서 자신을 대신해서 차원을 정복해갈 종족을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탄생한 종족이 광인이었다.
누스는 다섯 광인을 만들 때, 유독 한 존재는 특별하게 만들었다.
『하나는 그 녀석 같은 놈이 좋겠어.』
원시의 차원 시온, 그곳에서도 이방인 같았던 존재.
구름의 신 코라손이 자신의 근원 일부를 넣으면서까지 만든 존재, 세주를 본떠서 만들었다.
『정확히는 녀석을 대적할 수 있어야지.』
세주가 비록 창조주를 공격하는 계획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누스는 알고 있었다.
세주가 자신을 비롯한 최상위 존재에 필적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정확히는 원시의 존재를 위협할 정도의 강력한 힘을 가진 ‘아스트라페’를.
누스는 언제가 상대해야 할 세주를 생각하며, 광인 한 개체는 자신의 근원을 넣으면서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교단의 첫 번째 사도이자 진정한 검, 데이안이었다.
『훌륭하구나.』
누스는 광인을 만들고 아주 만족했다.
그들은 자신과 달리, 차원을 넘어서는 데 있어서 큰 부담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육체가 없고, 빙의해야만 본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제약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을 살아가는 그들이 촉박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천천히 그 차원을 잠식해나가면 그만이었다.
『특히 데미안, 너는 누구보다 찬란하구나.』
누스는 무엇보다 데미안이 마음에 들었다.
그의 근원 일부 때문인지, 데미안은 빙의부터 특별했다.
신의 육체, 정확히는 신의 피가 흐르는 육체가 필요했다.
어찌 보면 일반적인 광인이 파장을 받는 인간을 찾은 것보다 훨씬 까다로울지 모르지만, 의외로 이 부분은 쉽게 풀렸다.
시온이 분열되면서 전부 흩어진 원시의 존재들은 자연스러운 본능 때문인지 자신의 씨를 이곳저곳에 뿌려놨기 때문이다.
그렇게 데미안이 첫 빙의를 했고, 그 모습을 확인한 누스는 감탄했다.
제약이 있는 만큼, 다른 광인과 비교도 할 수 없는 강함을 가졌던 것이다.
직접 데미안을 창조한 누스의 예상조차 아득히 넘어설 정도였다.
『아버지의 명대로 움직이겠습니다.』
게다가 데미안은 누스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했다.
누스는 절대적인 승리의 검을 손에 쥔 거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누스의 검과 그 검을 본떠서 만들었던 세주가 만났다.
『으음, 늦었나 보군.』
강제로 영역을 베고 들어온 데미안은 사라져가는 벨크스를 쳐다봤다.
광인에게는 인간과 달리 형제의 개념이 덜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애초에 그에게는 누스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 그 외에는 감정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네놈이 그 첫 번째 사도인가 하는 그놈이군.』
평온한 데미안과 달리, 세주는 잔뜩 경계했다.
자신의 영역을 쉽게 뚫고 들어왔다는 것은 그만큼 강하다는 거였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강하다······.’
세주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사실 그는 첫 번째 사도가 이곳에 올 거란 사실을 알았다.
애초에 그가 강하온과 짠 작전이 이것이었기 때문이다.
교단의 모든 병력을 밖으로 빼놓고, 그 사이에 대교주를 잡는 거였다.
하지만 그의 예상보다 데미안에게 느껴지는 힘이 너무 강했다.
‘저 새끼가 조금 전 녀석이랑 같은 존재라고?’
데미안을 본 세주는 전혀 벨크스랑 같은 광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지금 녀석에게는 광인이라기보다는 누스에 가까운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데미안, 교단의 첫 번째 사도다.』
데미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맑은 두 눈으로 세주를 쳐다봤다.
『그대는 세주군.』
데미안은 단번에 세주를 알아봤다.
자신의 아버지, 누스가 세주를 본떠서 자신을 만들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에 자신이 대적해야 할 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때문인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유명한가? 나를 보는 녀석마다 다 아는 척을 하네?』
세주는 어이가 없다는 듯 대답했다.
보는 족족, 말하지 않아도 전부 자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 창은 대단하군, 무시하지 못하겠어.』
데미안은 세주의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세주가 든 황금빛 번개의 창, ‘아스트라페’로 시선을 돌렸다.
존재 자체를 소멸시켜버리는 번개의 창, 시온의 재앙, ‘아스트페라’에 대해서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다.
처음에는 그냥 누스의 걱정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듣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했다.
데미안은 본능이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조금 전이랑은 다른 의미로 재수 없는 놈이네, 누스의 새끼들이라 그런가?』
짜증이 난 세주는 데미안을 도발했다.
하지만 데미안은 신경도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생각을 이어갔다.
『생각보다 실망이야,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길래 기대했는데 너무 나약하군.』
데미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원시의 존재를 상대라면서 힘든 적은 있었어도, 뭔가의 가로막힌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다.
그래서 세주를 만나기를 기대했다.
자신의 존재 가치는 세주를 대적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렇기에 세주는 분명 자신에게 긴장감을 줄 만한 상대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만나보니 자신의 기대가 너무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창을 제외하면 그저 그런 원시의 존재와 다를 게 없어.』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커졌다.
세주가 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강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세주는 최초의 12신 중 한 명인 코르손의 힘을 흡수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아스트라페’를 제외하면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역시 네놈들과는 대화라는 것을 하면 안 돼.』
세주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스테락과 벨크스도 그랬지만, 지금 눈앞에 데미안도 같았다.
전부 성격은 달랐지만, 대화를 해봤자 괜히 기분만 나빠졌다.
이런 놈들하고는 굳이 대화할 필요가 없었다.
파지직-!
세주는 ‘아스트라페’를 데미안한테 겨눴다.
『그냥 죽어라.』
그리고 곧바로 ‘아스트라페’를 강하게 찔렀다.
굳이 데미안과 대화를 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
『크윽······.』
벨크스한테도 보여 주지 않았던 전력을 다한 찌르기, 세주는 손끝에서 빠르게 펴지는 고통에 신음을 삼켰다.
하지만 그 고통을 느낄 만큼, 전력을 다한 이유는 충분했다.
찌르르르-!
수 천마리의 새, 아니 천둥새가 울면 이럴까? 하는 소리가 세주의 영역을 가득 채었다.
게다가 찬란한 오색 빛은 영역 전체를 비추며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뇌신의 성창, 과거 시온에서 뇌신이 던지는 성스러운 창 같다고 해서 붙여진 기술이었다.
그것이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그 창은 무시할 수 없는 힘이군.』
데미안은 반짝이는 눈으로 흔들림 없이 뇌신의 성창을 주시했다.
위험한 상황임에도 데미안의 표정에는 그 어떤 흔들림도 없었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대에게는 과분한 무기야.』
데미안은 손을 그대로 뻗었다.
그 순간, 허공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땅이 생겨나고, 비가 내리고, 빛이 내리쬐니 굵은 나무가 자라났다.
나무는 그대로 뇌신의 성창 앞을 가로막았다.
파지직-!
나무는 그대로 타버렸지만, 자라나는 속도는 타는 속도를 추월했다. 어느새 거대한 나무의 벽이 나타나면서 뇌신의 성창을 막아냈다.
그 모습에 세주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단순히 공격이 막혀서가 아니었다.
『비비, 엘리시아, 파이톤······.』
조금 전, 데미안이 보여줬던 기적과 같은 힘에서 익숙한 존재들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비의 신, 숲의 신, 땅의 신, 빛의 신까지.
『네놈, 정체가 뭐지?』
세주에게 데미안의 존재는 혼란이었다.
분명, 지금 느낀 것은 자신이 알던 가이아가 악신이라 부르는 지구에 잠들었던 신들의 힘이 맞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알기로 악신들은 전부 강하온과 바오에 의해서 죽었다고 들었다.
데미안이 그들의 힘을 얻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저기군.』
데미안, 그는 악신들의 세포 일부를 전부 합쳐서 만들어낸 육체에 빙의한 존재였다.
그래서 육체가 완성된 지금에서야 움직일 수 있었다.
게다가 데미안은 자신의 육체를 이루는 신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것은 데미안이 강한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데미안은 이러한 사실을 굳이 세주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애초에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가 볼 때, 세주는 자신과 대화를 할 정도의 격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이아의 파편이 있는 곳이.』
데미안의 시선은 세주의 뒤쪽, 구름이 유독 뭉쳐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은순이와 일행들이 숨은 강하온의 저택이 있는 곳이었다.
최대한 숨기려 했지만, 조금 전 공격의 여파로 결계가 부서지며 그 공간이 드러났다.
『비켜라, 네놈이 방해했거나 그런 것은 상관하지 않겠다. 하지만 앞으로 방해한다며 죽여주지.』
데미안은 처음으로 제대로 세주의 눈을 마주치면서 대답했다.
원래는 세주를 죽일 계획이었지만, 한 번의 격돌 이후 세주가 큰 위협이 되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쉬운 존재도 아니었다.
대교주를 혼자 놔두고 온 지금, 그에게 시간은 중요했기에 굳이 시간 낭비를 할 생각이 없었다.
『빌어먹을 새끼가 계속 사람 신경을 거슬리게 하네.』
세주는 터벅터벅 걸어오는 데미안을 보면서 이를 바득 갈았다.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무시하는 태도가 그를 진심으로 짜증 나게 했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네놈이 원하는 건 절대 이루지 못하게 만들어주마.』
세주는 분노한 것도 있었지만, 강하온과의 약속은 꼭 지킬 생각이었다.
파지직-!
세주의 몸에서 엄청난 양의 번개가 뿜어져 나오면서 사람의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광인과 비슷했다.
하지만 다른 것이 있다면.
파지직-!
세주의 몸은 강력한 번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원시의 존재들에게 재앙으로 불렸던, 번개의 신 세주의 진정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