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데카의 굴복
128. 데카의 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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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순이가 빛의 물질화.
반쪽짜리 성공인 엘시디움을 만든 지 일주일이 지났고, 그동안 꾹 닫혀 있던 은순이의 실험실 문이 열렸다.
“여기.”
은순이의 손에는 전에 봤던 엘시디움이 들려있었다.
“고생했어.”
투신의 눈으로 엘시디움을 확인한 강하온은 은순이가 불안전한 마법을 완성 시켰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보이는 엘시디움의 구조는 아주 탄탄했기 때문이다.
“김치찌개.”
“알았어.”
힘없이 말하는 은순이의 말에 강하온은 웃으면서 김치찌개를 준비했다.
그 외에도 은순이가 좋아하는 계란말이와 갈비찜도 준비했다.
“그래, 이 맛이야.”
은순이는 오랜만에 먹는 강하온 표 한식에 정신없이 음식을 흡입했다.
그 모습에 강하온은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항상 음식을 만들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면 기분이 좋았다.
그러면서 한빛나도 빨리 만나서 음식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먹었어.”
은순이는 밥을 세 공기나 더 먹고 나서 식사를 끝냈다.
아주 만족스러웠는지, 퀭하던 얼굴이 밝아져 있었다.
“바로 갈까?”
은순이가 먼저 강하온한테 말했다.
“가능하겠어?”
강하온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얼굴이 많이 밝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피곤해 보였기 때문이다.
강하온한테 한빛나와 나래가 최우선이기는 하지만, 은순이도 중요한 존재였다.
“충분해, 이제는 크게 문제없거든.”
은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쉬운 마법은 아니었지만, 그 과정을 완전히 습득하고 이해한 그녀였기에 심력 다 할 정도로 힘든 것은 아니었다.
“그럼, 나야 고맙지.”
강하온과 은순이는 실험실로 내려갔다.
실험실에는 수술대 같은 곳에 묶여 있는 광인이 보였다.
데카가 아닌, 최근 은순이한테 가장 고통을 받았던 광인이다.
“기다려봐.”
은순이는 유리 플라스크를 슬쩍 보고는 마법을 읊기 시작했다.
플라스크 안에는 또 다른 예비 사도 광인 하나와 네 번째 사도, 데카가 있었다.
『으윽,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마법이 전개되자, 광인은 고통스러워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광인의 물음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스스슥-!
광인의 손부터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빛으로 이루어진 광인의 손이 결정을 이루면서 물질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엘시디움이 아니었다.
새하얀 피부, 점점 육체를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대단하네.”
강하온은 그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지금 은순이가 보여주는 것은 마법의 영역을 뛰어넘은 힘이었다.
구름의 신 코르손이 세주를 만든 것, 숲의 신 엘디아스가 엘프를 만든 것처럼.
원시의 신 중에서도 소수의 신만 가능한 권능과 비슷한 힘이었다.
물론, 강하온이 이러한 사실을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마법의 영역을 뛰어넘었다는 것은 인지하고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연구실에는 강하온과 은순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플라스크 안에 네 번째 사도 데카와 예비 사도가 있었다.
『······.』
그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전부 멍하니 은순이의 마법을 지켜봤다.
그도 그럴 게, 광인에게 저렇게 강제로 육체를 만들 수 있는 것은 평생의 숙원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강하온과 광인이 지켜보는 사이에 은순이의 마법이 끝났고, 마법이 끝났을 때는 평범한 인간의 육체를 가지게 된 광인이 있었다.
“어? 어!”
실험대 위에 누워있던 광인은 자신의 목에서 나오는 목소리에 놀라며 고개를 들어 자신의 몸을 살폈다.
그리고 손발도 움직여봤다.
팔다리가 구속되어 있어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그대로 손과 발이 자신의 감각대로 움직였다.
“크하하하!”
육체를 얻게 된 광인은 광소를 터트렸다.
하지만 그의 웃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광인은 혼란스러워하며 강하온과 은순이를 보며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게, 잘못돼도 뭔가가 한참 잘못된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광인은 기본적으로 육체에 빙의하게 되면 강력한 육체를 가지게 된다.
또한, 빛의 신 누스의 형상을 본뜬 아바타라는 강력한 힘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강인한 육체도 아바타도 사용되지 않았다.
“으윽······.”
새로 얻은 육체는 너무나도 약했다.
거칠게 몸부림을 친 덕에 팔과 다리에는 상처가 생겨났다.
“설마 네놈들에게 제대로 된 육체라도 줬을 거라 생각한 것이냐?”
은순이는 한없이 싸늘한 눈으로 혼란스러워하는 광인을 보며 말했다.
강하온을 볼 때와는 완전히 다른 표정이었다.
“그게 무슨······.”
“네놈은 이제 광인이 아닌, 그저 인간일 뿐이다.”
은순이는 빛을 물질화시키면서 수도 없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면서 알아낸 것이 있었다.
실수로 빛의 성질을 고정하지 못하고 물질화를 시킨 적이 있었다.
그때 엘시디움이 아닌, 그냥 아무런 성질도 없는 돌멩이가 생겨났다.
은순이는 그러한 사실을 알아내고, 광인에게 인간의 육체를 만들어낼 때 빛의 성질을 고정하지 않았다.
“인간······? 그럴 리가 없다! 이 몸이 하찮은 인간이 됐을 리가 없다! 당장 나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거라!”
태생이 초월체인 광인에게 인간은, 인간이 생각하는 개미나 다름없었다.
만약 인간이 한순간에 개미가 된다면 어떨까? 현실을 부정하면서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광인도 그랬다, 혼란과 분노를 표출했다.
트드득-.
몸부림에 팔다리에 더욱 큰 상처가 생겨났지만, 은순이는 신경 쓰지 않고 천천히 손을 광인의 머리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정신 세뇌 마법을 사용했다.
툭-.
조금 전까지 미친 듯이 발버둥 치던 광인은 갑자기 실 끊어진 인형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을 멈췄다.
그리고는 눈동자의 초점도 사라졌다.
“이름은?”
“데미······.”
광인은 로봇처럼 은순이가 묻는 말에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 어떠한 거짓도 말하지 못하고, 오로지 은순이의 명에 복종하는 꼭두각시 인형이 된 것이다.
『······.』
플라스크 안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두 광인은 그대로 굳었다.
정신 세뇌, 정신체로서 지고한 곳에 있던 그들에게는 먼 얘기였다. 그런데 지금 그런 일을 눈앞에서 보고 만 것이다.
“드디어 이 새끼들 정신 세뇌가 가능해졌구나.”
그때, 연구실 안에 강하온의 목소리가 퍼졌다.
그 역시 슬쩍 플라스크 안에 광인에게 시선을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제 정신체가 아니게 된 놈들이니까, 이것만 가능한 게 아니지.”
은순이는 다른 것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플라스크로 손을 뻗었다.
『놔, 놔라!』
그러자 데카 옆에 있던 광인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행동이 무색하게, 광인은 플라스크에서 빠져나와 꼭두각시가 된 광인의 옆에 눕게 됐다.
『놓으란 말이다! 뭐든 말할 테니 놓아라!』
광인은 끊임없이 몸부림쳤다.
광인인 그에게 정신 세뇌는 치욕적인 수치였다.
차라리 정신적인 굴복을 하고 말지, 꼭두각시가 되기는 싫었다.
하지만 은순이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크아악!』
곧바로 광인의 몸을 물질화시켜 육체를 만들었다.
그 과정이 고통스러운지, 이번 광인도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제발······.”
광인은 이미 정신적으로 굴복했지만, 은순이는 대답을 듣지 않고 똑같이 머리로 손을 가져다 댔다.
“끄으윽······.”
그 순간, 광인은 거품을 물면서 몸을 바르르 떨었다.
광인을 기억을 강제로 읽기 시작한 것이다.
“······.”
잠시 뒤, 바르르 떨던 광인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의 신체에는 어떠한 미동도 없었다, 죽은 것이다.
『······.』
데카는 이러한 모든 모습을 지켜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는 엄청난 치욕을 느꼈다.
광인으로 태어나, 처음으로 겪는 수치와 모욕이었다.
“뭘 그렇게 보지? 누스가 최초로 만든 다섯 명의 광인, 그중의 다섯 번째 광인, 징벌의 데카.”
광인이 죽은 후에도 한동안 손을 떼지 않았던 은순이가 눈을 떴다.
그러더니 데카를 싸늘한 눈으로 보며 말했다.
『기억을 읽어낸 것인가?』
지금 은순이에서 나온 말, 그것은 광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은순이가 광인의 기억까지 읽은 것을 눈치챘다.
“이제야 눈치챘나 보네? 네 기억을 읽는 것도, 너를 세뇌하는 것도, 이제는 내게 너무 쉬운 일이야.”
은순이는 심리적으로 데카를 압박했다.
그리고 그녀의 압박은 아주 오랜 시간을 살아온 광인을 성공적으로 압박했다.
『······.』
그 증거로 데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를 이루고 있는 빛이 흔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모습을 본 은순이는 속으로 안도했다.
‘다행이군.’
‘확실히 불안해하고 있네.’
강하온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데카의 모습은 이곳에 잡힌 이후 처음 보이는 모습이었다.
사실, 강하온과 은순이는 지금까지 데카를 속이고 있었다.
광인이 아닌, 인간의 육체를 가지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근본은 무수히 많은 시간을 살아온 광인이었다.
그들에게 정신 공격을 손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은 거짓이었다.
예비 사도들이야 모르겠지만, 네 번째 사도 데카, 확실히 남다른 정신력을 가진 그에게 정신 공격을 하는 것은 힘든 것도 있지만, 위험 부담이 있었다.
실제로 은순이는 앞서 두 광인에게 정신 세뇌와 기억 읽기로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
보통 인간은 굳이 손을 대지 않아도 세뇌하고 기억을 읽을 수 있는 그녀가 직접 손까지 대면서 마법을 건 이유가 그 증거였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철저히 숨겼고, 그녀와 강하온은 심리적으로 데카를 압박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어떻게 할래? 너도 저 친구처럼 꼭두각시가 될래? 아니면 그냥 묻는 말에 알아서 대답할래?”
강하온은 플라스크 안 데카를 보며 물었다.
데카는 잠시 고민하다 말을 했다.
『후······, 치욕 없는 죽음을 원한다. 그대들이 원하는 것을 다 말해주지, 그 끝에 나를 그냥 죽어다오. 부탁한다.』
결국, 데카가 선택한 것은 굴복이었다.
꼭두각시가 되는 치욕은 당하고 싶지 않았다.
“잘 선택했어, 우리도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건 싫어하거든. 대답만 잘하면 네 부탁대로 처리해주지.”
강하온은 웃으면서 데카의 선택을 존중했다.
사실 은순이가 데카의 기억을 읽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었다.
데카는 까마득한 먼 옛날에 최초로 태어난 광인이었으니 말이다.
조금 전 기억을 읽은, 어중이떠중이 광인과는 달랐다.
하지만 정신 세뇌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가능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강하온이 굳이 그런 방법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은순이한테 엄청난 부담이 갈 테니 말이다.
『······.』
강하온의 말에 데카는 순간 발끈할 뻔했다.
비인간적? 지금까지 은순이가 한 행동을 생각하면 절대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물론, 은순이는 인간이 아닌 드래곤이었다.
“그럼 대화를 시작해보자고, 너희가 말하는 대교주, 그 자식 어디 있어?”
강하온이 듣고 싶은 것은 하나였다.
암인을 찾아낼 수 있는 유일한 광인이 필요했다.
『대교주라······, 아주 중요한 정보군. 지금까지 그 어떤 광인에게도 듣지 못했겠어.』
데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전에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되나?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이해가 가지 않아서 그렇다.』
“뭐, 서로 좋게 가기로 했으니까. 말해라.”
『대체 우리 교단과 무슨 원수를 졌길래, 그렇게 적대하는 거지?』
“그야······.”
강하온은 한빛나가 암인에게 납치된 일에 대해 말해줬다.
『······.』
그리고 모든 얘기를 들은 데카는 허탈해했다.
이 모든 것이 암인의 계략으로 인해서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