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신을 잡아먹는 바오의 영역.
122. 신을 잡아먹는 바오의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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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신, 엘디어스를 중심으로 일대가 울창한 숲으로 바뀌었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악신들과 달리 거대한 영역, 그녀가 여타 악신보다 훨씬 강하다는 증거였다.
『네놈은 반드시 죽여주마.』
엘디어스는 이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녀의 분노는 공간 안에 있는 모두가 느낄 수 있었고, 그 분노가 향하는 대상은 다른 누구도 아닌 강하온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영역 안에 생겨난 식물들은 당장이라도 강하온을 공격할 기세로 살기를 뿜어냈다.
"엄청난 살기네, 이 정도면 숲의 신이 아니라 살육의 신이라고 불러야 하겠어."
강하온의 말대로 끔찍한 살기였다.
폴 데이비스의 천살기와 결은 다르지만, 끔찍한 살기임에는 분명했다.
하지만 강하온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 증거로 강하온의 얼굴에는 시종일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죽어!』
그러한 강하온의 모습은 엘디어스의 심기를 더욱 건드렸다.
결국, 폭발한 엘디어스는 강하온을 공격했다.
나무, 풀, 꽃, 모든 식물이 강하온에게 날카로운 가시를 세워 쇄도했다.
신성이 담긴 공격, 모든 공격 하나하나가 위력적이었지만, 그녀의 공격은 강하온에게 닿지 못했다.
쾅-!
갑자기 마나로 이루어진 단단한 대나무의 벽이 공격을 막은 것이다.
그 공격을 막아내는 존재는 당연히 바오였다.
마나로 이루어진 대나무의 벽 곳곳은 구멍 나고 부숴줬지만, 그대로 엘디어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빌어먹을 귀쟁이 녀석아, 네 상대는 나다.』
공격을 막아낸 바오는 황금 죽창을 엘디어스한테 겨누면서 말했다.
『하하하!』
그 모습을 본 엘디어스는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하온, 저 녀석 제정신 같지가 않다.』
"언제 악신 중에 제정신인 애가 있었냐?"
『그렇군.』
바오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상대한 악신 중에 정상적인 정신머리를 가진 존재는 본 적이 없었다.
『······.』
실성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미친 듯이 웃던 엘디어스가 돌연 웃음을 그쳤다.
그리고는 싸늘한 표정으로 바오를 쳐다봤다.
그 모습에 바오는 미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 미개한 짐승. 그렇게 죽는 게 소원이라면 네놈부터 죽여주마.』
엘디어스의 적의가 오롯이 바오한테 향하는 순간이었다.
『정신 나간 게 분명하군, 소원이 죽고 싶은 놈이 어디 있어.』
바오는 끝까지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하지만 그는 엘디어스의 강력한 적의에 식은땀을 흘렸다.
엘디어스, 그녀는 지금까지 만난 악신들과는 확실히 다른 존재였다.
『!!!』
공격에 대비하고 있던 바오는 순간 옆에서 위험을 감지했다.
분명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직감을 믿고 황금 죽창을 휘둘렀다.
서걱-.
그러자 투명했던 식물 줄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 강하온을 공격했던 투명 식물이었다.
『제법 감이 좋은 놈이군, 과연 어디까지 발버둥 칠지 지켜보지.』
엘디어스는 바오를 비웃었고, 쉴새 없이 엘디어스의 공격이 쏟아졌다.
중간중간 사각을 노리는 투명 식물, 앞에서 강력한 힘으로 공격하는 거대한 나무, 은밀하게 접근해서 몸을 구속하려는 줄기들까지.
전투의 흐름은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쾅-! 서걱-!
바오는 오로지 방어밖에 할 수 없었다.
현재 그의 수준으로는 막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이었다.
『······.』
바오의 얼굴에 옅게나마 있던 미소가 완전히 사라졌다.
『말 만 번지르르 한 놈이었구나.』
반면에 엘디어스의 얼굴에는 광기 어린 미소가 지어졌다.
『크윽······.』
시간이 지날수록 바오의 몸에는 상처가 늘어갔다.
아무리 방어를 한다고 한들, 비처럼 쏟아지는 엘디어스의 공격을 전부 막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애초에 둘의 힘의 차이가 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어디 이번 공격도 막아 보거라.』
지루한 공방이 이어질 때 즈음, 엘디어스가 움직였다.
그녀의 앞에는 작은 나무가 솟아오르면서 활의 형태로 변했다.
생긴 것은 평범한 나무 활이었지만, 활 자체에서 느껴지는 힘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강력한 신성이 담겨 있었다.
끼익-!
그녀가 활시위를 당기자, 활에서는 고통스러운 소리가 났다.
그만큼 엄청난 힘이 들어간다는 말이었다.
지잉-!
그녀의 활에는 초록빛 신성을 담은 화살이 생겨났고, 그녀는 곧바로 바오늘 노리고 활시위를 놓았다.
탕-! 슈욱-!
엄청난 탄성음과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화살은 정확히 바오의 심장을 노리고 쇄도했다.
『!!!』
쏟아지는 공격에 정신이 없던 바오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강력한 힘을 느꼈다.
바오는 마나의 벽을 만들었다.
처처척-!
그의 앞에는 대나무 형태의 마나 벽이 일곱 개가 생겨났다.
짧은 시간,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숫자였다.
콰앙-!
하지만 바오의 노력이 무색하게, 화살은 폭풍처럼 바오의 대나무 벽을 가볍게 부수면서 돌진했다.
『빌어······크윽!』
바오는 재빨리 옆으로 피했다.
하지만 그 공격을 완벽히 피할 수는 없었다.
분명 화살은 피했지만, 화살로 생겨난 바람에 옆구리 일부가 뜯겨나갔다.
『······진짜 죽을 뻔했군.』
바오는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통증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7중 대나무 벽으로 위력을 감소시켰는데도 불구하고 말도 안 되는 위력이었다.
실제 엘디어스의 공격을 그대로 맞았다면 바로 죽었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편히 죽을 기회를 버리다니, 조금 전 네 행동은 후회를 부르게 될 거다.』
엘디어스는 자신의 직접 한 공격이 통하지 않았지만, 전혀 아쉽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워하고 있었다.
『뭔 개소리야······.』
바오는 그런 엘디어스를 가볍게 무시했지만, 잠시 후 엘디어스의 말이 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커억!』
힘겹지만 큰 공격은 잘 막아내던 바오는 거대한 나무뿌리에 복부를 맞고 튕겨 나갔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공격을 막기 위해서 바오는 곧바로 자세를 잡고 방어를 준비했다.
『대체 무슨······.』
그리고 조금 전에 있던 상황을 복기했다.
분명 바오는 확실히 마나를 사용해서 제대로 방어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마나로 이루어진 대나무가 스스로 벽을 열면서 공격에 당한 것이다.
『이해가 가지 않은 표정이군.』
엘디어스는 당황한 바오를 보며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갔다.
그리고 결과는 같았다.
『크윽······.』
바오는 이번에도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한쪽 팔이 부러졌다.
상황은 똑같았다, 바오의 마나가 알아서 엘디어스의 공격을 피한 것이다.
『이 몸을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숲의 신, 엘디어스다. 숲과 관련된 모든 마나는 내가 주인이다.』
원시의 존재, 신이라고 모두가 동시에 빚어진 것은 아니었다.
세상을 구성하는 주요 구성, 빛과 어둠, 물과 불, 땅, 바람과 같은 주요 원소들의 신은 먼저 빚어졌다.
그래서 이들은 특별했다.
그 구성의 근원이 되는 신성을 가졌다.
그리고 숲의 신, 엘디어스. 그녀 역시 나무라는 구성의 근간이 되는 신성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숲과 관련된 것은 그녀가 지배하고 있었다.
애초에 바오와 엘디어스, 둘의 전투는 시작부터 정해진 결과가 존재하는 전투였다.
바오의 대부분의 마나는 황금 대나무, 식물로 섭취한 마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엘디어스가 지금까지 가만 놔둔 것은 하나였다.
『끝없이 절망해라, 네놈이 이룬 모든 것을 빼앗아주마. 아니, 애초에 내 것이었으니 가져가는 거구나.』
그것은 엘디어스의 고약한 취미 때문이었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절망하는 모습을 보는 것, 엘디어스의 취미였다.
『웃기지 마, 전부 다 내 꺼다!』
바오는 충격적인 얘기에 오히려 악을 지르면서 창을 휘둘렀다.
게다가 무지막지한 마나를 사용해서 엘디어스를 공격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바오의 마나는 엘디어스한테 흡수되기 시작했고, 바오의 몸에는 엄청난 속도로 상처가 늘어갔다.
"위험해요······, 이미 의식을 잃었어요."
옆에서 전투를 지켜보던 레이나가 말했다.
레이나의 말대로 바오는 반쯤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현재 공격을 막아내는 것은 그의 생존 본능, 무의식이 저절로 반응하는 것이었다.
"가만히 지켜보실 건가요? 이대로 가면 진짜로 죽을지도 몰라요."
레이나가 바오를 걱정하며 물었다.
"······."
강하온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분명 레이나의 말대로 위험한 상황은 맞았다.
하지만 전날, 늦은 밤에 바오가 찾아와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죽어도 상관없으니까 도와주지 말라고?'
물론, 강하온은 앞에서는 알았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럴 생각은 없었다.
바오는 그의 몇 없는 친구이기도 했고, 바오가 없어지면 나래가 무척이나 슬퍼할 테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선뜻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경계에 접어들었다.'
지금 바오는 무의식이지만 영역의 경계에 들어섰다.
실제로 의식이 없이 움직이지만, 바오의 움직임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었다.
『······.』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 엘디어스가 마나를 빨아들이는 속도가 현저히 줄어있었다.
살짝 굳은 표정을 보아하니 엘디어스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일단은 지켜보지,"
강하온은 바오를 믿고 지켜보기로 했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았다.
그리고 지금 바오의 각오라면, 오히려 도움을 줬다고 원망할 수도 있었다.
강하온의 예상대로 현재 바오는 아주 중요한 상황이었다.
『대수림?』
바오는 잊고 있던 아주 오래전 기억을 보고 있었다.
흉수에게 동족을 모두 잃고, 외톨이가 대수림을 살아가던 때였다.
죽이지 않으면 죽고, 빼앗지 않으면 빼앗기는 곳.
그곳에서 어린 바오는 힘겹게 살아왔고, 어느새 대수림의 주인이 되었다.
바오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금세 어두워졌다.
『안 돼! 내 것이다!』
그가 군림하는 대수림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자신의 대수림을 가져가는 이는 바로 숲의 신, 엘디어스였다.
『모든 것은 내 것이다,』
『꺼져! 전부 다 내 꺼다!』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기려는 순간, 바오의 진정한 야성이 깨어났다.
바오는 눈에 보이는 엘디어스를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전부다 내 꺼야! 빼앗기지 않을 거다, 내가 전부 다 빼앗을 거야.』
대수림의 법칙, 그것은 평생을 그곳에서 나고 자란 바오의 근간이었다.
『이거였나?』
바오는 의식 속에 있는 엘디어스를 전부 집어삼키고, 머리가 맑아짐을 느꼈다.
그리고 영역이라는 것에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도달했군."
바오를 지켜보던 강하온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바오가 영역에 도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번쩍-!
그 순간, 바오의 몸에서는 진한 초록빛 마나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는 그의 주변에는 엘디어스의 숲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거대한 숲이 생겨났다.
그가 나고 자란 대수림이었다.
『전부 다 내 거다.』
엘디어스를 쳐다보는 바오의 눈동자에서 시퍼런 안광이 번뜩였다.
그 순간, 바오의 대수림이 덩치를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그 양분은 엘디어스의 숲이었다.
『이 무슨······.』
갑작스러운 상황에 엘디어스도 반격을 시도했지만, 바오의 대수림은 끈질기게 숲을 집어삼켰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끄어억!』
바오의 대수림은 배가 고픈지 엘디어스의 힘은 물론, 신성까지 전부 집어삼켰다.
결국, 엘디어스는 뼈밖에 남지 않은 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영역이라."
강하온은 그런 바오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욕심쟁이 같은 영역, 바오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