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저 인간은 미친 게 틀림없다.
108. 저 인간은 미친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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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온의 예상대로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의 주인공은 가이아가 맞았고, 그냥 넘어가길 바라면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가이아는 식겁했다.
설마 강하온이 지구를 가지고 협박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사실, 감히 자신에게 손찌검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가 있어서 안심됐다.
자신조차 가늠되지 않는 강함, 그가 있는 것만으로 지구가 안전하다는 생각이 깔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강하온이 갑자기 지구의 적으로 돌아선다? 상상도 하지 않았으며, 상상도 하기 싫은 문제였다.
『거짓말······.』
그래, 저것은 거짓말이다.
가이아는 처음에는 강하온이 거짓말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누구보다 강하온을 잘 안다고 자부했기 때문이다.
그를 처음에 발굴한 것도 그녀였고, 판게아로 보낸 것도 그녀였다.
그녀는 그렇기에 강하온이 사랑하는 딸 아이가 있고, 사랑하는 아내가 돌아올 곳인데 공격하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하온의 숫자를 들을수록 그녀는 괜한 불안함이 생겼다.
『판게아도 있잖아?』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것은 판게아였다.
강하온이라면, 지구가 없어져도 살아갈 차원이 있었다.
『게다가 저놈은 거기서 신이잖아······.』
그녀가 아무리 인간과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해도, 뭐가 좋고 안 좋고는 판단할 수 있었다.
그녀가 생각할 때에도 판게아에서 신 대접을 받으면서 사는 게 좋아 보였다.
『자, 잠깐!』
그녀는 결국, 불안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강하온을 멈추게 했다.
이대로 간다면, 진짜로 강하온이 지구의 적으로 돌아설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 그렇지.”
다급한 가이아의 대답에 강하온의 입꼬리는 올라갔다.
그 모습에 가이아는 자신이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생각대로, 강하오는 지구를 멸망시키거나 할 정도로 미친놈은 아니었다.
그리고 한빛나와 나래와 추억이 있는 지구가 사라지는 것을 원치도 않았고 말이다.
이러한 가이아의 대답을 들은 것은 강하온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가이아의 파편이자 대리인인 레이나도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강하온과는 달랐다.
‘가이아님······맞으신가?’
그녀는 놀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그녀가 생각하는 가이아는 고고하면서도 우아한 존재였다.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목소리가 그랬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들리는 가이아의 목소리는 톤도 한층 더 올라가 있었고, 고고함과 우아함, 그 둘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게 바로 부를 때 나왔으면 좋잖아.”
『됐고! 나를 부른 이유나 말해라!』
강하온의 비아냥거림을 듣기 싫었는지, 가이아는 언성을 높였다.
“······부른 이유를 말하라고?”
강하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진짜 몰라서 묻는 건가?”
『······.』
강하온의 싸늘한 목소리에 가이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강하온이 자신을 찾았던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 숨어있었던 것이니까.
“우리끼리 할 얘기도 있는 거 같으니까, 저번에 봤던 그곳에서 얘기해보자고.”
『······알았다.』
결국, 가이아는 자신의 공간에 강하온을 초대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거절했다가, 강하온이 어떤 행동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녀는 차라리 자신이 아프면 아팠지, 지구가 망가지는 꼴은 보기 싫었다.
“잠깐 기다리고 있으라고, 금방 갔다 올 테니까.”
강하온은 세 사람에게 인사하고, 빛과 함께 사라졌다.
“······.”
남은 세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그저 멍하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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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온이 눈을 뜨자, 유토피아 같은 가이아의 공간이 보였다.
그의 앞에는 떨떠름한 표정의 가이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뭐지, 그 표정은?”
저, 저 건방인 인간 같으니라고!
가이아는 표정을 지적하는 강하온의 태도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리고 분노했다.
자신은 창조주가 직접 빚은 신이었다.
게다가 강하온이 태어난 지구와 시작을 함께하고 수호해온 성계신이었다.
감히 인간이 쳐다도 보지 못할 존재라는 거였다.
그런데 감히 표정을 지적해? 이번에는 가이아도 할 말을 하기로 했다.
강하온의 무력이 무서워서 참고 넘어갔다가는 화병이 날 거 같았기 때문이다.
“흥, 이제는 내 표정도 내가 마음대로 짓지 못하는······.”
불만을 말하려던 가이아는 멈칫했다.
강하온의 행동 때문이었다.
갑자기 아공간에서 꺼내는 보랏빛 몽둥이, 저번에 정신 교육에 강하온이 사용했던 통 아다만티움이었다.
사실 좋게 말해서 몽둥이지, 그냥 원석 그 자체였다.
“거냐······요.”
가이아는 몽둥이를 보자 기억이 떠오른 것인지,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사적으로 말을 올렸다.
게다가 반사적으로 몸이 떨리기도 했다.
그만큼 그날의 기억은 가이아한테 충격적이었다.
“그, 그건 왜 꺼내는 거냐······요.”
가이아는 너무 떨려서 그런지, 말까지 더듬었다.
“왜긴? 이게 또 우리 둘의 신뢰잖아, 안 그래? 이게 있으면 진솔한 대화가 될 거 같아서.”
“······.”
가이아는 반박할 수 없었다.
저 몽둥이만 보면, 허튼 생각이 모두 사라졌으니까.
“그럼, 지금부터 거짓을 말한다? 혹은 잠시라도 대답을 머뭇거린다? 그냥 내가 느낄 때 거짓말을 하는 거 같다? 이런 상황일 때, 이 친구가 다시 움직이게 될 거야.”
강하온은 보랏빛 아다만티움 원석으로 붕붕 휘두르면서 말했다.
“그럼 대화를 시작해 보자고.”
“자, 잠깐!”
가이아는 다급하게 말했다.
“뭐지?”
“세, 세 번째는 이상하지 않느냐······요.”
가이아는 자꾸 존댓말을 하기 싫었지만, 강하온이 몽둥이를 움직일 때마다 반사적으로 겸손해졌다.
“뭐가?”
“거짓말하는 거 같다고 느낄 때는 완전 억지잖아······요.”
“불만이야? 불만이면 다시 덤벼보든가, 시작할까?”
“아, 아니요!”
강하온이 몽둥이를 어깨 위로 올리자, 가이아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대답했다.
그녀는 다시 영혼까지 울리는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좋게좋게 끝내자고, 안 그러면 나도 깡패가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서로 숨기는 거 없이 대화하자고, 알았지?”
“······.”
이미 깡패 새끼면서······.
가이아는 어이가 없었지만, 속으로 욕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다.
“아! 맞다.”
그때, 강하온이 뭔가 기억이 났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뭐가 맞아······요?”
“뭐긴, 괘씸죄지.”
강하온이 손이 움직였다.
빡-!
그리고 아주 경쾌한 소리가 들렸고.
“꺄아아악!”
가이아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데구루루 굴렀다.
“왜, 왜 때려!”
잠시 후, 고통이 가라앉은 가이아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강하온에게 따지듯 말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번에는 눈치도 보지 않았다.
“그야 한 짓이 너무 괘씸해서? 사전에 부탁도 없이 나한테 일을 떠넘겼잖아? 그 정도로 넘어가 준 걸 감사하게 여겨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면 죗값이 부족했나?”
“아, 아니, 충분하다······요.”
가이아는 억울했지만, 반박할 생각을 접었다.
저 당당한 태도, 말을 한다고 태도를 바꿀 인간이 아니었다.
불과 2번째 대면이었지만, 가이아는 강하온을 누구보다 제대로 파악해냈다.
“그래, 그 정도로 끝난 걸 감사하게 여기라고.”
“······고마워······요.”
가이아는 속으로 분을 삭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맞장구쳐서 빨리 넘어가는 게 답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일단 확인부터 하고 들어가자. 이 전직 퀘스트라는 귀찮은 짓, 네가 한 거 맞지?”
이 새끼가······.
지금 보니까 자신이 한 지 확신도 없었다.
대화할수록 가이아는 어이가 없었지만, 가이아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한 짓이 맞았기 때문이다.
“이유는?”
“네가 블미르를 죽이지 않았느냐······요.”
“······그 녀석이랑, 이 퀘스트가 무슨 상관인데?”
강하온은 멈칫했다.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네 녀석이 블미르와 싸운 여파로 잠들어 있던 신들이 깨어나지 않았느냐!”
말하던 가이아의 감정이 격해졌는지, 울분을 토해내면서 이유를 설명했다.
그도 그럴 게, 이번에 그녀가 강하온에게 전직 퀘스트를 내린 이유는 바로 강하온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지구를 노리는, 정확히는 가이아가 가진 태초신의 파편을 노리는 악신은 많았다.
그럴 때마다 가이아는 태초신의 힘을 사용해서 악신들을 잠재웠다.
그런데 차원이 강제로 열린 상태로, 강하온과 블미르의 힘이 지구로 흘러나오면서 악신들이 깨어났기 때문이다.
“그런 거였으면 진작 말을 하지······.”
강하온은 아직도 분한지, 씩씩거리는 가이아를 보자 괜히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애초에 먼저 물어보지도 않았잖아!”
“······.”
발끈하며 말하는 가이아의 말에 강하온은 할 말이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물어볼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케이, 그건 내가 사과하지.”
강하온은 깔끔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사과하면 끝인가? 내 이마는?”
가이아는 붉게 혹이 튀어나는 이마를 내밀면서 말했는가.
그녀는 이참에 주도권을 뺏어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강하온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으음, 다시 때려가면 들어가지 않을까?”
강하온은 무미건조한 눈으로 가이아를 보며, 보랏빛 몽둥이를 들어 올렸다.
“됐어······요.”
잠시 흥분했던 가이아는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앞에 있는 강하온은 자신이 여태 알던 일반적인 인간과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그래, 뭐든 적당히 해야지. 하여튼, 그 잠든 신의 숫자가 열이라는 건가?”
가이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 안 그래도 레벨을 올릴 놈들이 필요했는데.”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오히려 악신을 상대한다는 데 좋아하는 강하온의 태도에 가이아는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게, 그녀가 악신이라 규명한 존재는 사실 원시의 존재, 신이었다.
블미르와 비슷한 격을 가진 존재들이었다.
심지어 봉인되어 있던 블미르와 달리, 오랜 시간 더 살아왔던 그들의 힘은 블미르보다 강하면 강했지, 약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존재를 만나는 데 좋아한다? 아마 이런 존재는 모든 차원을 통틀어도 강하온밖에 없지 않을까 싶었다.
“참, 그런데 그 블미라는 놈은 정체가 뭐야? 생각보다 강하던데.”
이어지는 강하온의 말에 가이아는 소름이 끼쳤다.
그녀는 원시의 차원, 시온에서 탄생한 것은 아니지만, 원시의 존재에 대해서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소멸한, 지구로 대피했던 원시의 신에게 들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블미르는 강력한 원시의 신 중에서도 최상위에 있었던 신이었다.
그런 블미르가 제법 강해? 그녀로서는 강하온이 점점 더 괴물로 느껴졌다.
“블미르는 원시의 존재, 신이다.”
“원시?”
“창조주가 최초로 만든 차원, 시온을 부르는 말이다.”
가이아는 강하온에게 창조주의 시작과 시온에 대해 말했다.
모든 시작의 비밀, 인간이 알아서는 안 될 내용이었지만, 가이아에게는 강하온이 전혀 인간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군, 그래서 강한 거였군.”
얘기를 전부 들은 강하온은 블미르의 강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면 네가 말한 악신이란 놈들도 전부 원시의 신인가?”
“맞다.”
“좋네.”
강하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앞으로 폭업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난 가보도록 하지.”
강하온은 그렇게 가이아의 차원을 빠져나왔다.
“저 인간은 미친 게 틀림없다.”
가이아는 강하온의 사라진 자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그만큼 든든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