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드라쿨 삼촌 데리고 올 게.
105. 드라쿨 삼촌 데리고 올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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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뒤질 뻔했군.”
드라쿨은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사실 첫 죽음에서는 그냥 죽어버렸기 때문에 죽음의 공포를 느낄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 후에 다시 강하온을 만났을 때는 무섭기는 했지만, 그래도 진짜 죽을 거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자신의 힘을 빨아들이는 블미르의 손아귀, 드라쿨은 자신의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힘이 돌아오지 않네.”
게다가 잠깐이었지만, 힘을 빼앗긴 것인지 무력감이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드라쿨은 힘을 잃은 게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목숨을 건졌다는 것만으로 안도했다.
“그나저나 저 새끼들 뭐야······, 내가 꿈이라고 꾸는 건가?”
안도하는 것도 잠시, 드라쿨은 눈 앞에 펼쳐진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어안이 벙벙했다.
대치하고 있는 수십 명의 블미르, 블러드 슬라임이 변신한 것이다.
애초에 블러드 슬라임은 블미르의 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굳이 피를 흡수하거나 하지 않아도 변할 수 있었다.
“왜 도망가나 했더니, 천적 같은 건가?”
블미르가 자신을 놓고 뒤로 물러났을 때, 안도했지만 속으로는 이해가 안 갔었다.
블러드 슬라임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보니 조금 이해가 갔다.
“외부로부터 적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저 녀석을 내부에서 나가지 못하게 수호하는 역할이었군.”
드라쿨은 이제야 블러드 슬라임이 존재하는 이유를 파악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드라쿨은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대체 저놈들을 만든 존재는 누구일까?”
블미르라는 강력한 존재를 가뒀으며, 블미르를 막을 수 있는 블러드 슬라임을 만든 존재.
그게 누군지 알 수는 없지만, 드라쿨은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드라쿨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존재라는 거.
“애들아, 힘내라.”
드라쿨은 금방 쓸데없는 생각을 접고, 구석에 찌그러져서 블미르로 변한 블러드 슬라임을 응원했다.
지금 그가 살 수 있는 길은 블러드 슬라임이 이기는 것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희망이었던 강하온을 기다리는 방법은 진작에 버렸다.
“지금까지 안 왔는데 올 리가 없지······.”
분명, 피의 맹약으로 이어진 피의 실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는 데도 안 왔는데, 다시 위험에 처한다고 올 리가 없었다.
“힘내라, 녀석들아.”
드라쿨은 블러드 슬라임을 응원하면서 생각했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것을.
그는 다시는 강하온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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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미르는 자신을 둘러싼, 자신과 같은 모습을 한 블러드 슬라임을 보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뀨, 뀨!』
『뀨우! 뀨!』
자신의 모습을 한 채, 뀨뀨 거리는 블러드 슬라임의 모습에 안 좋은 옛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기억은 아주 오래전, 그가 참회동에 갇히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자신이 갇힌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던 블미르는 당연히 참회동을 나가려고 시도했고, 그날 그는 블러드 슬라임을 마주해야 했다.
그날, 그날 정신없이 맞았고,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부르르-.
블미르는 그때 기억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몸이 반사적으로 떨렸다.
『저 새끼들이 감히 내 얼굴을 가지고 저딴 짓을······.』
그 때문에 짜증이 났음에도, 선뜻 먼저 나서지 못했다.
『뀨, 뀨?』
블미르가 경계하며 움직이지 않자, 선두에 있던 블러드 슬라임이 앞으로 나오더니, 손짓으로 뭔가를 설명했다.
“덤빌 게 아니면, 꺼지라는군.”
그 모습을 지켜보던 드라쿨은 자신도 모르게 블러드 슬라임의 말을 해석했다.
『뀨, 뀨.』
블러드 슬라임은 드라쿨이 말이 맞았다는 듯, 드라쿨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 새끼가······.』
그 모습을 지켜보던 블미르는 눈을 부릅뜨고, 블미르를 노려봤다.
“아니, 이건······.”
엄청난 살기에 다급하게 변명을 하려던 드라쿨은 멈칫했다.
‘응? 생각해보면 저 녀석이 슬라임들하고 싸워야 이득 아닌가?’
드라쿨의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돌아갔다.
아까, 블미르가 말하는 뉘앙스를 보면 출구는 안쪽에 있었다.
결국, 나라가면 블미르를 쓰러트려야만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저 무시무시한 슬라임들이라면 가능했다.
실제로, 블미르는 블러드 슬라임이 나타난 이후부터 표정이 두려워했다.
‘이거 사과할 게 아닌데?’
그렇다, 지금은 사과가 아닌, 도발을 해야할 타이밍이었다.
“뭘 쳐다봐? 눈깔아, 새끼야.”
드라쿨 역시, 눈을 부릅뜨고는 블미르를 도발했다.
심장이 조금 두근거리기는 했지만, 그는 고귀한 밤의 귀족, 연기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전혀 티를 내지 않고, 아주 건방진 표정으로 연기했다.
그리고 이러한 도발은 제대로 먹혀 들었다.
문제는 그 도발이, 필요 이상으로 들어갔다는 거다.
『저 빌어먹을 새끼가! 네놈부터 당장 죽여주마.』
안 그래도 블러드 슬라임 때문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던 블미르는, 별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드라쿨이 시비를 걸자 참던 화가 폭발했다.
‘······그냥 가만히 있을 걸 그랬나?’
드라쿨은 순간 움찔했지만, 겁을 먹지는 않았다.
『뀨!』
블미르의 태도가 덤빈다고 생각한 것인지, 사방에 있던 블러드 슬라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드라쿨은 서늘해진 간담을 쓸어내리며, 조용히 전투를 지켜봤다.
쾅-! 번쩍-!
동굴 안에서는 굉음이 터져 나왔고, 순간순간 붉은빛으로 번쩍거렸다.
블미르의 힘, 혈기가 충돌하면서 생긴 여파였다.
동굴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동굴이 무너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창조주가 만든 던전이 그리 쉽게 무너질 리가 없었다.
“으음, 혈기? 저 녀석 어떻게 혈기를 사용하는 거지?”
전투를 지켜보던 드라쿨은 익숙한 힘에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블미르와 블러드 슬라임이 사용하는 힘은 분명히 혈기였다.
물론, 그가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순도가 높고, 신성까지 담겨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설마 저 녀석, 피의 신이라도 되는 건가?”
드라쿨은 블미르가 피의 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 확신했다.
“피의 힘에 먹힌 원시의 존재······.”
비석에서 본 글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비석에 적힌 글씨, 거기에 신성이 담긴 혈기까지.
퍼즐이 맞혀졌다.
“등신이 따로 없군······, 원시의 신이 있는 곳을 제 발로 걸어 들어오다니.”
원시의 괴수만 해도 강력한 존재인데, 무려 원시의 신이었다.
스스로 드래곤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민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드라쿨은 자신을 탓했다.
“앞으로는 매사의 조심해야겠군.”
드라쿨은 이번 일로 한 가지를 다짐했다.
앞으로는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그는 다짐하고 몇 초도 지나지 않아서, 자신의 말을 어겼다.
“어이, 시간 끌지 말고 그냥 죽어라.”
『넌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죽여주마.』
드라쿨은 곧바로 블미르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도발을 펼쳤고, 블미르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노려봤다.
“······히끅.”
그 모습에 드라쿨은 딸꾹질을 하면서 입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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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온은 이번 여행은 아주 알차게 보냈다.
제주도의 명소라는 명소는 거의 다 가봤고, 한빛나와 갔었던 맛집을 포함해서 제주도에 있는 맛집이라는 맛집은 거의 다 가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이 갔다.
“얘들이 재밌었어?”
“네! 재밌었어요.”
“맛있었어!”
강하온의 말에 두 아이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나래와 레아도, 서로 느낀 것은 달라 보였지만 만족스러운 여행임은 틀림없어 보였다.
“은순이, 너는?”
“좋았다, 시간이 된다면 다른 곳도 가보고 싶었다.”
“그래? 다음에는 다른 곳도 가보자.”
강하온은 은순이를 의외라는 듯 쳐다봤다.
판게아에서는 항상 레어 안에 틀어 박혀서 실험만 하려고 해서, 그런 걸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아닌 모양이었다.
“바오, 너는?”
『그냥 그랬다.』
“그래?”
강하온은 고개를 훽 돌리면서 말하는 바오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뭐지, 그 웃음은?』
“그냥.”
바오는 강하온의 웃음을 보고 기분 나쁘다는 듯 말했지만, 강하온은 계속 웃을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게, 지금 바오는 대나무 잎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자란 대나무인데, 바닷바람 때문인지 짭짤해서 맛있다고 아침부터 쉬지 않고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렇게 맛있게 먹으면서 별로였다고 말하다니, 전혀 신빙성이 없었다.
“전부 즐거웠다니 다행이네.”
강하온은 모두 만족스러운 여행이 된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전부? 모기 녀석은 없잖아.』
그때, 바오가 드라쿨은 언급했다.
“뭐, 녀석도 나름 휴가를 잘 보내고 있겠지.”
강하온은 드라쿨도 즐거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얼마나 흥분을 했는지, 피의 맹약으로 이어진 실이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
강하온은 그 때문에 한참 더, 휴가를 줄 생각이었다.
어차피 경비는 바오가 하면 됐으니 말이다.
“그럼, 전부 집으로 가자.”
강하온 일행은 그렇게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그들은 다시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다.
은순이는 바로 실험실로 향했고, 두 아이는 체력이 아직도 남았는지 다시 놀기 시작했다.
강하온은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서 고민했다.
“으음, 레벨을 올려야 할 곳을 찾기가 힘들군.”
은순이가 실험에 성공해서, 광인을 통해 암인을 찾기 전까지 강하온이 해야 할 일은 레벨 업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러려고 하니, 레벨 업을 할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강하온은 여행 중에 대마도에 있는 S급 게이트를 잠깐 해결하고 왔지만, 거기서 고작 1개의 레벨을 올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한 존재를 잡아야 하는데, 현재 지구에는 그런 곳이 없었다.
참고로 현재 강하온의 레벨은 174였다.
그렇게 한창 고민을 하던 그때, 방문을 열고 나래가 들어왔다.
“응? 나래, 무슨 일이니?”
“아빠, 드라쿨 삼촌은 어디 갔어요?”
“드라쿨? 드라쿨은 잠깐 휴가 갔지? 무슨 일 있어?”
강하온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드라쿨을 찾는지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다.
“응!”
나래를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저러는 걸 보니까 중요한 이유 같았다.
“무슨 이유일까?”
“소꿉놀이해야 하는데, 사람이 없어요!”
소꿉놀이라······, 아주 중요한 일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휴가 간 드라쿨을 다시 불러들이기는 좀 그런 문제였다.
“그래? 그러면 그냥 아빠가 도와줄게.”
강하온은 괜히 드라쿨을 부르는 대신, 자신이 하기로 했다.
자신도 겪어봐서 알지만, 휴가 때 누가 부르면 아주 기분이 잣 같았다.
하지만 그는 거실로 나가자마자, 바로 생각을 바꿨다.
“으음, 아빠가 드라쿨 삼촌 빨리 데리고 올게.”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바오가 무지개 팬더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옆에 있는 레아는 어디 전설에 고향에 나오는 구미호 같이 만들어 놨다.
한동안 안 해서 질린 줄 알았는데, 하필 오늘 하는 게 화장 놀이었다.
“나래,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강하온은 곧바로 피의 맹약으로 이어진 곳을 추적해서, 그곳의 차원을 열었다.
이렇게 연결이 되어 있다면, 차원을 여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잉-!
강하온의 앞에는 기분 나쁜 검은 색 차원이 열렸고, 강하온은 곧바로 그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