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투신은 초보아빠-104화 (104/186)

104. 피의 신, 블미르

104. 피의 신, 블미르

#

블러드 슬라임, 드라쿨이 임의로 지은 붉은 슬라임의 이름이었다.

“너무 빨리 끝냈나?”

드라쿨은 아쉬워했다.

조금, 아주 조금 당황하는 바람에 무작정 다 죽이고 말았지만, 일을 저지르고 나니 녀석들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 말이다.

이건 드래곤의 피를 흡수한 영향일지도 모르겠지만, 드라쿨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그러한 성질이 블러드 슬라임에게도 적용된 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아쉬움은 금방 충족됐다.

『뀨!』

동굴 안으로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블러드 슬라임 무리가 나타난 것이다.

그 숫자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배 이상 많았다.

“그래, 그래. 계속 뀨뀨해라, 나는 너희들을 알아볼 테니.”

드라쿨은 조금 전, 블러드 슬라임을 상대할 때와 달리 평온한 표정이었다.

이제 블러드 슬라임이 자신, 정확히는 강하온의 힘에 전혀 상대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럼, 시작해 보자.”

꺼릴 게 없어진 드라쿨은 곧바로 움직였고, 잠시 후, 어느 정도 블러드 슬라임에 몇 가지 알 수 있었다.

“묘한, 아니 애매한 존재야.”

일단 드라쿨이 알아낸 것은 블러드 슬라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는 거였다.

정확히 말하면 완전한 초월종이 아니었다.

“강제로 만들어진 초월종이라.”

그렇다, 블러드 슬라임은 강제로 만들어진 초월종이었다.

초월자의 힘을 강제로 담은 슬라임일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이상하긴 했다.

종을 초월한 존재가 의념을 사용할 뿐, 의사 표현을 제대로 못 할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강제로 종을 초월하게 만들 수 있는 존재라, 신기하군.”

그 존재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엄청나게 강한 존재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드라쿨은 놀라지 않았다.

그는 그보다 더 대단한 존재를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바로 강하온이었다.

그로부터 느낀 한 방울의 기적, 강하온이 마음만 먹는다면 초월자를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녀석들은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피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네.”

블러드 슬라임은 피가 없으면 상대방으로 모습으로 변할 수 없었다. 사실 일반 슬라임과 다른 바 없는 전투 능력이라는 거였다.

혈마법에 반응했던 것은, 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는 했다.

재생 능력은 어디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붙어버리면 흡혈을 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블러드 슬라임의 흡혈 능력은 꽤 뛰어났다.

드라쿨의 질긴 피부를 가볍게 뚫었기 때문이다.

물론, 강하온의 피 때문인지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터지고 말았지만 말이다.

“아이고, 아까워.”

드라쿨은 바닥에 떨어진 피 웅덩이를 보고 아쉬워했다.

자신의 피였지만, 강하온이 피가 섞여 향긋함을 넘어서 황홀하기까지 한 피 냄새.

바닥에 피 웅덩이를 핥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고귀한 귀족의 체면 때문에 꾹 참았다.

그는 그렇게 모든 실험을 끝냈고, 드라쿨은 유리병을 꺼내서 블러드 슬라임을 담기 시작했다.

“챙겨두면 쓸만하겠어.”

그는 던전에서 나가면, 바오와의 서열 정리에서 써볼 생각이었다.

“흐흐.”

바오가 놀랄 것을 생각한 드라쿨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때였다.

쿵-!

갑자기 지진이라도 난 듯, 동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

바오를 골려줄 생각에 신났던 드라쿨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동굴이 흔들려서가 아니었다. 그를 긴장하게 만든 것은 동굴 안쪽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힘이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 느꼈던 존재감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그는 봉인되어 있던 원시의 존재가 풀려났다는 것을 인지했다.

‘어째서 봉인이 바로 풀린 거지?’

하지만 그 이유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실험한다고 자신의 피를 먹였던 슬라임, 그 슬라임이 터지면서 거기에 담겨 있던 강하온의 피 냄새 때문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크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겠군.”

드라쿨은 헛기침을 하면서 뒤로 돌았다.

자신이 현재 가진 전력을 확인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접은 지 오래였다.

힘도 얼추 비슷해야 그것이 가능한 것이지, 지금 느껴지는 힘은 압도적이었다.

물론, 강하온처럼 아득해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은순이보다는 훨씬 강했다.

즉, 저 광포한 존재감을 표시하는 녀석과 만났다가는 죽는다는 거였다.

하지만 세상만사,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빌어먹을······.”

드라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디를 가려는 것이지?』

초월자인 드라쿨이 어지러울 정도의 광포한 의념, 그리고 그의 앞에는 붉은 머리에 잘생긴 남자가 서 있었다.

최초의 신살로 참회동에 가친 원시의 존재, 피의 신 블미르였다.

#

피의 참회동, 이곳은 이름 그대로 블미르가 참회하라는 의미로 창조주가 직접 만든 동굴이었다.

그럼 블미르는 과연 참회했을까? 정답은 아니다.

블미르는 참회하지 않았다.

『왜 나를? 나를 가둔 것일까?』

『모든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었나?』

『그럼 어째서 우리에게 의지를 부여했지?』

『대체 왜! 당장 대답을 해 보란 말이다!』

처음에는 의문을 가졌던 것이, 종국에는 분노로 바뀌었다.

당연히 그 분노의 대상은 자신을 참회동에 가둔 창조주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빌어먹을!』

창조주에 의도대로 참회하지 않으면, 혼자서는 절대로 나갈 수 없게 만들어 놨기 때문이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참회동에서 자신을 꺼내 줄 존재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억겁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존재가 참회동에 들어왔었지만, 그런 존재는 없었다.

참, 많은 존재가 참회동을 찾았었다.

동물부터 인간, 수많은 아인종까지.

그중에서는 초월자, 심지어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스스로를 신이라 지칭하는 존재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블미르를 참회동에서 꺼낼 수는 없었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잠에 드는 것이었다.

잠이 들어서, 언젠가 자신을 이곳에서 꺼내줄 존재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정신이 버티지 못하고 진정으로 미쳐버릴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긴 시간 잠이 들었던 블미르가 잠에서 깨어났다.

『크하하하!』

그는 실로 오랜만에 흥분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자신의 오랜 잠을 깨운 피 냄새 때문이었다.

희미하게 느껴진 황홀한 피 냄새, 그는 맡는 순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드디어 나갈 수 있겠구나,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지금 들어온 존재의 피 냄새, 저 힘을 탐한다면 이곳을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피 냄새가 느껴지는 곳으로 단번에 이동한 그는 그곳에서 드라쿨을 만난 것이다.

『으음.』

블미르는 잔뜩 긴장한 드라쿨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다.

『어째서 네 놈에게 용신과 마신의 냄새가 나는 거지?』

그건 드라쿨의 피에서 느껴지는 짙은 향기 때문이었다.

용신과 마신, 그를 적대했던 신들이었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블미르가 적대감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지금 그의 분노는 오롯이 창조주에게만 향해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필요한 건 네 몸 안에 있는 그 힘일 뿐이니까.』

블미르가 원하는 드라쿨의 몸속에 있는 강하온의 힘이었다.

너무 적은 양이기는 했지만, 그 힘이라면 이 참회동을 벗어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내게 내놓거라, 그 힘을.』

그는 멍하니 서 있는 드라쿨의 목으로 손을 움직였다.

블미르가 나타난 직후부터, 드라쿨은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

정신을 흔드는 광포한 의념도 있었지만, 마주 서면서부터 느껴지는 위압감에 압도된 것도 있었다.

드라쿨은 끊어지려는 의식을 붙잡기 위해서 극한까지 정신력을 끌어올렸지만,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이 새끼 아까부터 뭐라고 하는 거지?’

현재 드라쿨은 의식을 유지하는 곳조차 벅찼다.

그에게는 블미르가 말을 하는 것만 보였지, 어떤 말을 하는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마치, 바닷속에 있는 것처럼 먹먹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드라쿨은 알지 못했지만, 이러한 일은 격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블미르는 창조주가 직접 만든 원시의 존재였다.

그중에도 최상위에 있는 존재.

드라쿨이 초월자라고 하지만, 블미르의 존재를 감당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드라쿨이 의식을 잃지 않은 것만으로 대단한 일이었다.

『오호? 의식을 유지해?』

실제로 블미르는 드라쿨을 보며 감탄했다.

정신을 잃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존재감을 발산했는데도, 드라쿨이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게 모르게 강하온의 존재감에 미약한 내성이 생긴 덕이었지만, 그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이제 드라쿨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저 손은 뭐지?’

간신히 의식을 유지하던 드라쿨의 눈에 블미르의 손이 보였다.

‘······이대로 죽는 건가?’

자신의 목으로 점점 다가오는 손에 드라쿨은 죽음을 직감했다.

그 순간, 드라쿨의 머릿속에는 주마등이 지나갔다.

돌연변이라고 마족들에게 무시당하던 아주 먼 옛날부터, 우연히 드래곤의 피를 흡수한 때, 강하온에게 잘못 덤벼서 죽었을 때, 그리고 다시 강하온을 만나고 난 이후의 기억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빌어먹을 팬더 새끼······, 그 새끼 죽통을 때려야 했는데.’

그중에서도 드라쿨에게 가장 강렬한 기억은 바오가 죽통밥 심부름을 시켰을 때였다.

그 억울함 때문이었을까? 드라쿨은 순간 정신이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심장에서부터 강력한 힘이 몸 전체로 퍼져나가는 것도 느껴졌다.

‘팬더 녀석, 한 번 정도는 죽통 한 대 정도로 봐주지.’

드라쿨은 이게 바오 덕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드라쿨의 생존 본능으로 인해 아직 흡수되지 않은 강하온의 힘이 흡수된 것뿐이었다.

“······꺼져라, 어디서 이 고귀한 몸에 손을 대려 하는 거냐!”

드라쿨은 무례하다는 듯, 블미르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의 발아래에서는 거대한 피의 송곳이 솟구쳐 올랐다.

『······.』

블미르는 피의 송곳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기운에 뒤로 물러섰다.

『갑자기 강해졌군? 재미있는 놈이야.』

블미르는 드라쿨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는 개미나 다른 바 없는 존재가, 단번에 개 정도로 강해진 것이다.

『이 지긋지긋한 곳을 나가기 전, 오랜만에 몸을 푸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블미르는 재밌다는 듯 웃으면서 드라쿨에게 달려들었다.

“이 몸을 상대로 몸을 푼다? 그 오만한 생각을 친히 바로잡아주지.”

드라쿨도 바로 맞받아치며, 공격을 시작했다.

갑자기 넘쳐 오르는 힘 때문에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드라쿨과 블미르, 둘이 격돌했고, 결과는 금방 나왔다.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군, 존재에 위협을 가할 정도의 힘을 가졌는데 네놈은 그냥 쓰레기군.』

당연히 블미르의 압승이었다.

애초에 강하온의 힘이 위협되는 것이지, 드라쿨이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것을 모르는 블미르한테는 이상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

드라쿨은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하도 맞아서 입을 여는 것조차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만 꺼져라, 너는 이곳에 있을 정도로 내 인내심은 그리 좋지 않으니 말이다.』

블미르는 드라쿨을 끝내기 위해서 손을 뻗었다.

드라쿨은 그 손을 지켜봐야만 했다.

‘대체 왜 안 오는 거냐! 집에 경비가 도망갔으면 찾아야 하잖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강하온을 욕하면서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물론, 그가 바라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강하온은 당분간 드라쿨을 찾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턱-!

결국, 드라쿨의 목은 블미르의 손아귀에 잡혔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끝이군······.’

드라쿨은 그 순간, 죽음을 체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가 생각하는 죽음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목을 잡고 있던 구속감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가 눈을 떴을 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보였다.

『빌어먹을 새끼들······, 없어진 게 아니었구나······.』

『뀨? 뀨!』

『뀨! 뀨!』

아공간에서 어떻게 나온 지 모를 블러드 슬라임과 그 슬라임을 보면서 표정이 일그러진 블미르였다.

그렇다, 블러드 슬라임은 외부로부터 던전을 지키는 가디언이 아닌, 내부의 블미르를 막는 창조주의 안배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