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암인
100. 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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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온은 모든 것이 뛰어나지만, 뭔가를 감지하는 감각이나 위험을 감지하는 직감이 뛰어났다.
전부 그가 처음 떨어졌던 곳, 대수림의 환경 탓이었다.
그도 그럴 게, 강하온은 처음 대수림에 떨어졌을 당시에 최하급 피식자였다.
대수림에서 그보다 약한 존재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그는 언제 적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항상 긴장 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감각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한 결과물이 후에는 불과 몇 초기는 하지만, 미래를 볼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하여튼 강하온은 뭔가를 감지하는데 뛰어났다.
‘일단 따로 느껴지는 것은 없어.’
먼저 감각을 극대화 시켜서 나래한테 집중시켜봤지만, 아무런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원래였다면 지금 느낀 그대로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겠지만, 지구에 온 뒤로 강하온의 생각은 바뀌었다.
‘또 거지 같은 힘일 수도 있겠어.’
바로 누스나 가이아 같은 그의 상식을 벗어나는 힘을 쓰는 존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 확실히 느껴봐야 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돼.”
“네.”
강하온은 나래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직접 마나를 몸속에 넣어서 확인한다면, 또 상식을 벗어나는 이상한 힘이라도 느낄 자신이 있었다.
그는 곧바로, 나래의 머리를 통해서 소량의 마나를 집어넣었다.
원래였다면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었겠지만, 강하온이었기에 괜찮았다.
그의 마나 컨트롤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니 말이다.
오죽했으면, 드래곤조차 강하온이 마나를 다루는 쪽으로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고 했었다.
‘찾았다.’
강하온은 마나를 넣는 순간, 수상한 힘을 찾아냈다.
나래의 머릿속에 은밀하게 숨어 있었다.
아무런 적의도 없는 데다, 너무 은밀해서 강하온도 아무런 이상도 느끼지 못하고 넘어갈 정도였다.
마나로 탐색해도 이런데, 단순히 감각으로 찾아내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거다.’
강하온은 지금 느껴지는 힘이 나래가 한빛나를 꿈에서 보게 한 힘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의 직감이 강하게 말하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
수상한 힘은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강하온은 마나를 사용해서 수상한 힘을 감싸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나래한테서 분리해냈다.
강하온의 손에는 작은 돌멩이 크기의 검은빛 에너지 구체가 생겨났다.
‘······녀석들의 힘이다.’
강하온은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이 수상한 검은 에너지 구체가 암인의 힘이라는 것을 알았다.
마나가 아닌, 신성력에 가까운 힘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빛나가 사라졌던 곳에서 과거를 읽을 때, 잠시 봤던 암인이 아바타를 사용했을 때 뿌리는 힘의 색과 똑같았다.
‘나래야, 미안.’
강하온은 곧바로 나래한테 수면 마법을 사용했다.
사랑스러운 나래한테 이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너무 급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암인의 힘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쿨.”
“아직 근무 시······, 무슨 일이지?”
현재 시작은 9시 45분, 자신의 방에서 쉬던 드라쿨은 아직 근무 시간이 안 됐다고 말하려다 멈췄다.
강하온의 분위기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잠시 집에 좀 갔다 올 테니까, 나래랑 레아 좀 지키고 있어.”
“알았다.”
드라쿨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였으면 이참에 피 한 방울이라도 더 달라고 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바오, 부탁한다.”
『급한 거 같으니 빨리 가라.』
바오는 강하온과 꽤 시간을 보냈기에 강하온의 표정 변화에 민감했다. 맞지 않으려면 눈치를 많이 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지 지금 강하온은 불안해하고 있었다.
바오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강하온을 빨리 보냈다.
“고맙다.”
강하온은 곧바로 집으로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현재, 이 힘을 풀어내고 추적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수준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건 문제 되지 않았다.
이런 쪽의 전문가가 자신의 집에 있었기 때문이다.
“은순아!”
그 전문가는 은순이었다.
마법의 신조차, 차기 마법의 신으로 생각하는 은순이라면 강하온이 원하는 것을 해결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야?”
은순이는 놀라서 물었다.
이렇게 다급한 강하온의 얼굴을 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 힘, 추적할 수 있겠어?”
“잠깐 기다려봐.”
은순이는 이유를 묻지 않고, 곧바로 검은 에너지 구체를 파악해가기 시작했다.
‘마나는 아니야, 신의 힘이네.’
은순이도 강하온처럼 단순에 힘의 정체를 얼핏 파악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쪽으로는 강하온보다 은순이가 더 뛰어났으니 말이다.
“어때?”
“복잡하네.”
모든 현상을 일으키는 힘은 형태, 즉 구조를 이루고 있다.
간단한 마법인 매직 미사일도 그렇고, 고위 마법인 블리자드, 헬파이어 역시 마나가 유기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 구조의 차이만 있을 뿐.
그렇게 봤을 때, 현재 이 검은 에너지의 구조는 아주 복잡한 구조였다.
“조금만 노력해줘.”
강하온은 안도했다.
은순이가 성격이었으면 불가능하면 불가능하다고 했을 텐데, 그런 말이 없었기에 가능하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마라, 그러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니까.”
은순이의 눈이 반짝였다.
모든 드래곤이 그렇지만, 그녀는 특히나 더 그랬다.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는 데 있어서 큰 흥미를 느끼는 드래곤이었다.
강하온이 부탁이 없다고 해도, 스스로 부탁해서라도 수상한 힘을 분석했을 것이다.
그녀는 극한으로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그녀는 엄청난 속도로 힘을 분석해갔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그녀의 뇌가 소모하는 에너지로 인해서 주위가 뜨거워질 정도였다.
불과 1초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는 수십, 아니 수백만 번이 넘는 분석을 시도했다.
괜히 신들 사이에서 은순이가 태어났을 때, 진리를 엿볼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말이 나온 게 아니었다.
“찾았다.”
1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은순이가 눈을 크게 뜨면서 말했다.
그녀는 힘을 완벽히 분석해냈다.
“정신적인 공간으로 이어진다, 준비해.”
“고마워.”
강하온은 웃으며 대답했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지잉-!
그 순간, 강하온은 몽롱한 기분과 함께,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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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롱한 기분이 사라진 강하온은 곧바로 주위부터 살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은 펼쳐진 새하얀 찔레꽃밭, 노을 진 하늘과 곳곳에 생긴 균열.
“역시, 나래가 만난 건 진짜 빛나였어.”
하늘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나래가 말한 꿈대로 하얀 꽃밭이었다. 그리고 그토록 보고 싶었던 한빛나를 볼 수 있었다.
찔레꽃밭 위에 앉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여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강하온은 그녀가 한빛나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의 머리에 있는 나비 머리핀, 강하온이 처음 받은 월급으로 사준 머리핀이었다.
“빛······.”
“나도 너무 힘들어······.”
당장 다가가려던 강하온은 울먹이는 한빛나의 목소리에 멈칫했다.
“······.”
강하온은 충격을 받았다.
그의 기억 속에 한빛나는 누구보다 밝고, 강인한 여자였다.
지금 같은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나도 하온이 네가 보고 싶어······, 나도 위로받고 싶어······.”
이어지는 한빛나의 말에 강하온은 가슴이 찢어지는 거 같았다.
‘후회하게 해주지.’
강하온은 머리는 그 어느 때 보다 차가워졌다.
그는 이런 일을 저지른 암인에게 꼭,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것은 강하온 스스로의 존재를 걸고 하는 맹세였다.
“미안해, 빛나야.”
강하온은 우는 한빛나에게 다가갔다.
그 역시 눈물이 날 거 같았지만, 최대한 환하게 웃었다.
안 그대로 힘든 한빛나한테 걱정거리를 주고 싶지 않았다.
“강······하온?”
“맞아, 예전하고는 조금 달라졌지? 그래도 한 번에 알아봐 주니까 기분이 좋네.”
강하온은 놀란 한빛나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 농담도 뱉었다.
“아니, 많이 달라졌어. 나래가 잘생겨졌다고 안 했으면, 몰라볼 뻔했어.”
“그런가? 그래도 지금이 더 좋지?”
“아니, 예전이 더 좋아.”
“그래? 쓰음, 그건 좀 변순데? 다시 망가트려야 하나?”
“훗, 됐어. 지금도 좋아, 아니 그냥 나는 하온이 너라면 뭐든 다 좋아.”
강하온의 농담이 통했지만, 한빛나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한빛나, 여전히 예쁘네.”
강하온은 웃는 한빛나의 모습에 반사적으로 중얼거렸다.
“뭐래······.”
한빛나는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혔다.
그때였다, 그들의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 갈 시간이다.”
암인이었다.
암인의 말대로 이제 노을 진 하늘은 거의 어두워져 있었고, 하늘의 반 이상은 균일이 생겨 있었다.
‘절대 놔줄 생각은 없군.’
강하온은 암인의 말에서 느낄 수 있었다.
저들은 한빛나를 절대로 보낼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쓸데없는 짓 하지 마.”
한빛나는 반사적으로 강하온의 앞으로 나서며 막아섰다.
“여전하네.”
강하온은 그런 한빛나를 보면서 씁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항상 이랬기 때문이다.
처음 봤을 때도, 연애할 때도, 그랬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한빛나는 당연한 듯 강하온의 앞에 섰다.
그때는 무척이나 거대해 보였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
강하온은 한빛나의 작고 왜소한 뒷모습을 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괜찮아.”
강하온 한빛나의 앞으로 나오면서 말했다.
항상 한빛나가 자신을 지켰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이제는 자신이 한빛나와 나래를 지킬 생각이었다.
“위험······.”
한빛나는 말을 하려다 멈칫했다.
‘하온이가 이렇게 컸었나?’
생각이 달라진 것은 강하온뿐만이 아니었다.
한빛나 역시, 강하온의 뒷모습이 예전과는 다르게 아주 넓게 느껴졌다.
“후······, 설마 꿈의 거울로 만든 공간에 침투할 줄이야.”
항상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암인은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그는 강하온을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 쳐다봤다.
“막을 생각인가? 어차피 소용없다는 것은 그대가 더 잘 알 텐데.”
“알지.”
강하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암인의 말대로, 강하온도 알고 있었다.
지금 이 공간은 정신체로 존재하는 꿈속이었다.
한빛나를 지구로 데려갈 수도, 이 공간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내 성질이 그리 좋지 않아서 말이야.”
강하온은 다 알았지만, 그대로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건드려서 안 될 사람을 건드렸다는 것을 알려줄 생각이었다.
“한빛나, 잠깐만 눈 좀 감고 있어.”
“······알았어.”
한빛나는 불안했지만, 강하온을 믿기기로 했다.
서걱-!
한빛나가 눈을 감기 무섭게, 암인의 어깨가 날아갔다.
“크윽······.”
암인은 허전해진 한쪽 어깨를 부여잡았다.
현실의 육체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육체가 없이, 정신체로 있었기 때문에 감각은 더 예민했다.
“이래 봤자, 쓸모없는 행동이다. 어차피 이 공간은 곧 무너진다.”
암인은 균일이 가득한 하늘과 거의 다 저물어 사라지는 해를 보며 말했다.
“쓸모없는지는 지켜보면 알겠지.”
현재 강하온은 육체의 탈에서 벗어난, 진정한 투신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진정한 힘을 꺼냈다.
쿵-!
그를 중심으로 세상이 흔들렸다.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니고, 그런 느낌이 받았다.
그도 그럴 게, 이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마나가 순간 강하온과 공명하며 한층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쩌적······-
하늘에 생기고 있던 균열이 멈췄다. 강하온은 막대한 마나로 막아선 것이다.
“무, 무슨······.”
조금 전, 강하온의 공격을 받았을 당시에도 놀라지 않았던 암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너지는 공간을 멈춘다는 것은 그의 상식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별로 없군.’
하지만 암인의 생각대로 공간을 멈추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임시로 무너지는 것을 늦은 것뿐이었다, 실제로 균열은 아주 미세하게 생겨나고 있었다.
그래도 시간은 충분했다.
이 정도 시간이라면, 암인에게 공포심을 새기는 것은 가능했다.
이것이 강하온의 목적이었다.
“세상에는 건드려서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
강하온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암인을 보며, 주먹을 뻗고 쥐었다.
“크아아악!”
그 순간, 암인은 비명을 질렀다.
엄청난 양의 마나가 사방에서 암인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그 뒤로도 강하온은 끔찍한 고통을 암인의 영혼 깊숙이 새겨넣었다.
잠시 후, 고통을 버티지 못했는지, 암인으로 추정되는 존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빛나야.”
암인을 완전히 전투 불능으로 만든 강하온은 한빛나를 불렀다.
“응.”
“조금만 더 기다릴 수 있지?”
“당연하지!”
강하온은 씩씩한 한빛나의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스르륵-.
그때, 한빛나의 몸이 점점 투명하게 변했다.
강하온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 이 공간이 사라지고 있다는 거였다.
“금방 데리러 갈게.”
“기다리고 있을 게.”
그렇게 둘은 서로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다시 헤어져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