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은순이의 취향
96. 은순이의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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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온은 영화, 아니 만화 같은 상황이라고 해야 하나?
불에 타서 박살 난 집, 게다가 저건 뭐야? 용암? 집 앞에는 붉은 연못이 하나 생겨 있었다.
하여튼 정상적이지 않은 집 상황에 어이가 없었다.
“하하······.”
너무 어이가 없으니, 한숨이 아닌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조금 안심한 것은 적의 습격 같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쟤는 또 왜 저러고 있는 거야.”
강하온은 시선은 드라쿨한테도 이동했다.
용암 연못 옆에 쪼그려 앉아서 실실 웃고 있었다.
“그래도 애들이 좋아하긴 하네.”
강하온은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은순이 옆에서 신나게 웃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애초에 집이야 다시 되돌려 놓으면 됐다.
“그래도 뭔 일인지 듣기는 해야지.”
강하온은 궁금했다.
대체 무슨 일을 했길래,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서 집을 이렇게 만들어 놨는지 말이다.
“왔나?”
지상으로 내려온 강하온을 가장 먼저 인식한 것은 은순이었다.
은순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인사했다.
“아빠!”
나래는 강하온을 확인하고는 뛰어가서 안겼다.
“나도.”
나래 바라기인 레아 역시, 나래를 따라 움직였다.
『드디어 왔군.』
나래 품에 안겨 있던 바오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히히.”
드라쿨은 강하온이 오든지 말든지, 그냥 용암 연못 옆에서 실실 웃고 있었다.
“이게 어······.”
“아빠, 은순이 이모가 케이크 만들어줬어요.”
“케이크?”
“네! 이거!”
강하온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이라고 물으려고 했지만, 그러지 않아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나래가 보여준 스마트 폰 안에 다 설명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용암 화덕으로 케이크 만들기』
각성이라는 시스템이 생기고, 신체가 강해진 헌터들이 생겨나다 보니 이색적인 인터넷 방송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지금 나래가 보여주는 것은 너튜브는 오지 탐험 셰프라고, 각종 오지를 돌아다니면서 쿡방을 하는 너튜버였다.
대표적인 방송으로는 히말라야 꼭대기에 올라가서 만년설 빙수 먹기.
아마존 오지에 있는 풀로 녹즙 만들어 먹기가 있었다.
유치한 말투와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어린아이한테 인기가 많았고, 그래서 강하온도 나래 때문에 몇 번 본 기억이 있었다.
“설마 저걸 따라 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보면서도 생각을 하긴 했었다.
저걸 설마 따라 하는 미친 사람은 없겠지, 그런데 여기 있었다.
아니 사람은 아니고 드래곤이 있었다.
“이제 막 케이크가 완성됐다, 먼저 먹어보겠나?”
그때, 은순이가 화덕이라 추정되는 곳에서 케이크를 꺼내왔다.
『저런 악마 같은 것들······.』
바오는 케이크를 건네는 은순이를 보며,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거 케이크 맞아?”
케이크를 확인한 강하온은 멈칫했다.
검은색······, 그래, 그냥 검은색 물체가 있었다.
“그래, 특별히 판게아에서 황제가 진상했던 최고급 쇼콜라를 사용해서 만들었다. 초코케이크다.”
“마자요! 초코케이크!”
“초코케이크?”
“그래, 초코케이크구나······.”
그래도 양심이 있다고 초코케이크란다, 그런데 강하온의 눈에는 케이크보다는 숯이라고 말하는 게 어울려 보였다.
‘설마 죽겠어······.’
강하온은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는 은순이, 그리고 나래와 레아를 보고 결정했다.
숯, 아니 초코케이크로 추정되는 물체, 아니 음식을 먹어보겠다고.
‘떨리네.’
강하온은 두근거림이 아닌 떨림을 느꼈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두려움이었다.
바오의 반응 때문에 더 그랬다.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는 마신룡과의 전투에서도 떨지 않았으니 말이다.
“빨리 먹어봐라.”
“아빠, 빨리!”
“빨리, 나도 먹고 싶어.”
강하온이 머뭇거리자 셋이서 재촉했다.
그는 순간적으로 먼저 먹고 싶다는 레아한테 넘기고 싶었지만, 아이한테 그런 가혹한 짓을 할 수 없었다.
“알았어, 먹을게.”
강하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 냄새부터 맡았다.
“응?”
냄새를 맡은 강하온은 의외라는 듯 셋을 쳐다봤다.
달콤한 향기, 일단 냄새는 합격이었다.
‘이거 맛있을지도?’
순간 강하온의 머릿속에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그나마 먹을 마음이 생겼을 때, 눈을 딱 감고 한입 먹었다.
“맛은 어떤가?”
“맛있어요?”
“맛있겠다.”
셋은 기대하며 강하온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게 왜 맛있어? 맛있다.”
강하온은 먹으면서도 이해가 안 갔다.
겉에 얇은 면은 바삭, 그리고 안에는 폭신거렸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솜사탕처럼 살살 녹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안에 쇼콜라도, 판게아 최고급을 사용해서 그런지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아주 높은 열 때문인지, 쇼콜라의 단맛은 한층 더 높아졌고, 잔잔하게 나는 쌉싸름함이 맛의 밸런스를 잡았다.
“얘들아, 우리도 먹어보자.”
“네!”
“응! 빨리 먹고 싶어!”
강하온이 맛있다는 말에 셋은 좋아하며,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진짜 맛있네?”
“응! 맛있어요!”
“맛있어.”
레아야 그냥 정신없이 먹었지만, 은순이와 나래는 맛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었다.
“대체 왜 나부터 먹인 거야?”
강하온은 그 모습을 보면서 조금 어이가 없었다.
잠시 후, 케이크를 전부 먹고 은순이가 움직였다.
차라락-! 탁-! 탁-!
폭탄이 터진 거 같았던 집은 은순이의 마법으로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니, 원 상태보다 훨씬 더 좋아졌다.
은순이가 마법을 사용하면서 약간 부족함이 있었던 곳을 손봤고, 광인을 대상으로 실험할 실험실도 만들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시설까지 하는 김에 만들어졌다.
게다가 바오한테 미안한 게 있었는지, 품질 좋은 대나무 숲까지 만들어줬다.
모두가 만족하는 리모델링이었다.
하니, 단 한 명만 빼고 말이다.
“추, 추워!”
아직 몸속에 은순이가 심어 놓은 냉기가 빠지지 않은 드라쿨이었다.
드라쿨은 없어진 용암 연못을 생각하며 절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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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강하온은 애들을 재우고 새로 생긴 은순이의 실험실로 향했다.
실험실은 늦은 밤이었음에도 아직 불이 들어와 있었다.
“열심이네.”
은순이는 얼마나 집중을 했는지, 강하온이 온 것도 모른 채 열중하고 있었다.
“영혼석의 역할을 대신하는 건가.”
강하온의 시선은 은순이가 보고 있는 거대한 유리 플라스크로 향했다.
그곳에는 광인이 들어가 있었다.
『으아악!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하는 거냐!』
하지만 밖으로는 나오지도 못한 채, 중간중간 나오는 푸른빛을 맞으면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허억, 허억······.』
“어? 무슨 일이야?”
뒤늦게서야 강하온을 발견한 은순이는 실험을 멈췄다.
“그냥 잘 준비되고 있나 해서.”
“생각보다 빠르게 될 수도 있을 거 같아.”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그래?”
“응, 어려울 거로 생각했던 저 물건을 생각보다 쉽게 만들었거든.”
은순이는 유리 플라스크를 슬쩍 보면서 말했다.
“영혼석을 크게 만든 건가?”
“맞아, 영혼석의 매커니즘을 그대로 옮긴 거야. 어려울 거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간단하더라고.”
강하온은 진심으로 은순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영혼석은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신의 영혼마저 구속할 수 있는 물건.
판게아에 있던 고도로 문명이 발달한 초고대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물건은 불과 하루도 안 돼서 해석해서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은순아, 역시 네가 와서 좋다.”
강하온은 뭔가 막혀있던 벽이 부서지는 느낌에 은순이를 껴안았다.
“무, 무슨 소리를······.”
은순이는 강하온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새하얀 얼굴이 터질 거 같이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강하온의 푹 묻히고, 굳이 강하온을 밀어내지 않았다.
“아, 맞다!”
잠시 잊고 있던 것이 떠오른 강하온은 은순이와 떨어졌다.
은순이는 그것이 내심 아쉬웠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혹시, 태초 신이라고 알아?”
오늘 그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였다.
강하온은 오늘 가이아와 대화하면서 이상한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태초 신, 정확히 말하면 창조주.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모든 시작의 시발점이 된 존재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가 태초 신에게 뭔가 좋지 않은 기시감을 느낀 것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일단, 가이아는 태초 신이 자신을 빚은 아버지라 불렀지만, 정작 태초 신에 대해서는 아무런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녀는 마치, 꼭두각시처럼 무작정 지구를 지키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는 것만 알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이아의 힘에서 느껴지는 힘, 뭔가 꺼림칙했다.
정확히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강하온의 본능에 위험의 경종을 울리는 힘이었다.
강하온은 뭔가 딱, 정의할 수는 없었지만, 신경이 쓰였다.
“태초 신? 창조주를 말하는 것인가?”
은순이는 뭔가 아는 눈치였다.
“그래, 굳이 말하자면 창조주가 맞지. 모든 시작을 만든 존재.”
강하온은 역시 은순이한테 물어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뭐 아는 거라도 있어?”
“으음,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지금은 사라진 로아님이 남긴 예언에 창조주에 대해 언급이 되는 것이 있다.”
로아, 판게아의 주신이었다.
강하온도 직접 보지는 못하고 판게아에 있는 현자의 신에게 건너 들었던 적이 있어서 알았다.
아주 오래전, 사라졌다고만 들었다.
“그 예언이 뭔데?”
“시작과 끝, 그것은 하나이며 빛과 어둠이 저문 뒤에 다시 시작하게 될 것이다.”
은순이는 뭔가 있어 보이지만, 전혀 알 수 없는 말을 뱉었다.
“그게 예언이야? 참, 예언이면 시원시원하게 딱 말하던지, 왜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하는지.”
강하온은 어이가 없음을 떠나서 이해가 안 됐다.
항상 예언이라고 남긴 것들은 죄다 그럴싸하고, 애매하게 남겨 놓는다.
“그렇다, 사실 이것이 맞는 예언인지는 모른다. 나도 아주 오래던 비석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을 해석한 것뿐이기 때문이다.”
“알았어, 고맙다.”
강하온은 뭔가 찝찝한 기분으로 은순이의 실험실을 나가야 했다.
“아, 그거 말 안 했네.”
강하온은 잊은 말이 있어서 다시 실험실로 들어갔다.
“······뭐해?”
강하온은 은순이를 보고 멈칫했다.
은순이는 자신의 옷 냄새를 맡으면서 얼굴을 붉히고 좋아했다.
“아, 아니다! 이건 뭐가 묻어서······.”
갑작스러운 강하온의 등장에 은순이는 얼굴이 터질 듯 더 빨개져서는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다 뭔가 허탈한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숙였다.
“쉬엄쉬엄해, 빛나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굳이 너한테 피해를 강요할 생각은 없으니까.”
강하온은 은순이가 피곤해서 좀 이상한 행동을 생각하고 그러려니 했다. 설마, 냄새 패티쉬가 있다거나 그럴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은순이는 드래곤이었으니 말이다.
“······알았다.”
하지만 은순이한테는 전혀 위로되지 않은지, 힘 없인 대답했다.
“그나저나 무슨 일 때문에 다시 온 거야?”
“아, 그거? 내일 애들하고 바다나 갈까 하는데 같이 갈 거냐고 물어보려고.”
마침, 내일은 주말이었고, 레아가 온 기념으로 바다를 가기로 했다.
“바다? 좋다.”
“그래, 너도 이참에 머리 좀 식혀야겠다.”
강하온은 은순이가 당연히 좋아할 거로고 생각했다.
실버 드래곤은 블루 드래곤과 함께, 드래곤 중에서 유일하게 물과 친화력이 높은 종이였기 때문이다.
은순이는 강하온의 말을 듣고, 고개를 푹 숙였다.
‘······역시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야.’
강하온은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이 아니었지만, 은순이 혼자 오해하고 있었다.